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36화 (36/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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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자 하고 싶은 거 해

양반탈 속 거문고 주자의 얼굴이 공개된 직후부터, 군자를 응원하던 방청객들은 완전히 이성을 잃어 버렸다.

“아아아아아악—!!”

“어떡해, 어떡해 진짜아아—!!”

“미쳤어어어—!!”

물론 이번에도 연지는 그 사이에 있었다.

이번만큼은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창작곡이 구렸던 게 아니라, 창작 과정에서 편법을 사용해 버린 경우니까.

원래 대중은 실력 없는 것보다 약아빠진 것, 공정하지 못한 것에 더 혐오감을 느끼는 법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번 미션에는 기대감을 가질 수 없었다.

가까운 자리에 앉은 주하성의 팬들이 큰 목소리로 쑥덕거리는 소리가 귀를 콕콕 찔렀다.

“이번엔 유군자 진짜 나락 가겠지?”

“걔 선 세게 넘었잖아.”

“그렇게 하성이 이기고 싶었나 봐.”

화가 났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최애의 실수는 곧 내 실수. 이미 연지는 군자와 혼연일체가 되어 있었으니까.

이젠 어쩔 수가 없다. 핵심인 거문고, 가야금 사운드를 모두 빼더라도 공정하게 무대를 마무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리가 빠지기는커녕, 무대 위에 거문고 주자가 무대에 직접 등장해 버렸다.

그 모습엔 연지조차도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아, 저건 좀 아닌데에···.”

그런데 그 거문고 주자의 정체가 사실 군자였다니.

세상에, 저 미친 연주가 내 최애의 솜씨였다니.

심지어 그 위에 저렇게 맛깔나는 후렴까지 얹어 부르고 있다니!

모든 암울한 예상이 180도 뒤집어진 순간.

연지는 도저히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국악엔 관심조차 없었던 연지였지만 이게 어른들이 말하는 흥이고 신명인가 싶었다.

얼굴을 보니 심장이 두근거리고, 음악을 들으니 어깨가 위아래로 덩실거렸다.

사방을 둘러싼 방청객들 역시 모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는 듯.

휘모리 장단에 맞춰 단체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모습은, 마치 신흥 사이비 종교 ‘거문교’의 집회 현장 같았다.

첫 벌스부터 비트를 갈기갈기 찢으며 펄펄 날아다닌 지현수의 차례가 끝나고.

윤정훈과 장민기가 함께한 두 번째 벌스가 끝난 다음엔, 다시 한번 군자가 전면으로 등장했다.

왜 이리 버르장머리 가-!

예끼! 이 버르장머리 가-!

예의를 배우란 말이 다-!

도리를 갖추란 말이 다-!

그러나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비트가 터져 나오며 자유로움이 폭발했던 첫 번째 훅과 달리, 이번엔 군자를 중심으로 V자 대형으로 늘어선 멤버들이 칼 같은 군무를 선보인다.

왜 이리 버르장머리 가-!

예끼! 이 버르장머리 가-!

예의를 배우란 말이 다-!

도리를 갖추란 말이 다-!

스웨그 넘치는 단체 군무, 그 아래에 깔리는 단단한 저음의 거문고 선율.

군자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비명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아아아아—!!

그렇게 두 번째 훅이 끝난 뒤.

파아앗-.

돌연 무대는 어두컴컴하게 암전되어 버렸고.

“···?”

“뭐, 뭐야 이거?”

“정전이야?”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다앙-.

거문고 소리보다 한층 맑고 투명한 가야금 소리, 동시에 또 한번 무대 중앙에 조명이 떨어졌다.

당, 다앙, 다다당, 다앙-.

양반탈을 쓴 채, 가야금 산조의 절정을 연주 중인 고고한 선비.

처음에는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젠 모두 그가 누군지 안다.

착장만 봐도, 체구만 봐도 그의 정체는 너무도 뻔한 것이었다.

“또, 또 유군자야—!?”

거문고에서 가야금으로.

똑같은 멜로디를 연주한다고 해도, 악기가 변하자 비트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화선지에 떨어진 먹물처럼 관객들 사이로 환희가 퍼져 나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처음엔 등받이에 파묻힌 채 시큰둥한 얼굴을 하고 있던 심사위원들도 이젠 모두가 미어캣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왼쪽 구석의 영은채 트레이너는 이미 실신 직전이었다.

“···가야··· 금···.”

“영 쌤! 아직 노래 안 끝났어요-!”

“···나 죽어···.”

“쌔애앰, 아직 군자 벌스도 안 나왔는데에에-!”

장민혁 트레이너가 영은채 트레이너를 부활시키고 있는 동안, 이번엔 무대 중앙에 하현재가 자리잡았다.

채도 높은 금발로 머리를 염색한 하현재는 오늘따라 무대 위에서 더욱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하현재애애애애—!!”

“너무 예뻐어어어—!!”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응답하듯, 장난기 가득한 미소와 함께 하현재가 부채를 활짝 펼쳤고.

파아앗-!

동시에, 여섯 멤버들의 부채가 일시에 정교하게 펼쳐졌다.

그래, 그래, 그렇지.

옳지, 옳지, 옳거니.

참으로 아름답구나.

밤낮으로 아른거린다.

못가에 떨어진 꽃잎.

하얀 손이 잡아드니.

그또한 아름답구나.

밤낮으로 아른거린다.

가야금 선율에 얹힌 부드러운 싱잉 랩이 관객들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곡의 중심부에 삽입된 하현재의 벌스는, 마치 대나무 숲 가운데에 피어난 매화 같았다.

거문고에서 가야금으로, 강렬한 랩에서 싱잉 랩으로.

그러나 곡조는 여기서 차분하게 가라앉을 생각 따위 없다는 듯 다시 한번 드럼 소리를 키워 가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이번엔 가야금 소리마저 줄어들고, 대신 타악기의 소리가 우퍼 스피커를 가득 채웠다.

갈비뼈를 통과하여 심장까지 쿵쿵 울리게 만드는 힙합 드럼.

거대한 덩치의 차인혁이 그 위에 목소리를 얹었다.

Manners Maketh Man,

Manners Maketh Man.

Seniors Maketh Manner,

Seniors Maketh Manner.

공격보다 공경.

공경보다 공생.

Seniors Maketh Manner,

Seniors Maketh Manner.

Let her take her Chair,

Let her take her Chair.

분홍색 의자,

우리에겐 비싼.

동굴 같은 저음의 목소리가 베이스, 드럼 위를 한가득 메웠다.

별다른 동작 없이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투박한 랩을 뱉을 뿐인데도, 그 쩌렁쩌렁한 울림은 공연장의 모두에게 전달되고도 남았다.

“인혁이 오빠아아아아아아—!!”

“오빠는 무슨, 쟤가 몇 살인데 오빠야!”

“몰라, 잘생기면 다 오빠지—!!”

“아, 저 어깨에 치여서 죽고 싶다—!!”

하현재와 차인혁의 벌스를 거쳐, 곡은 점점 절정으로 치달아 가고 있었다.

세 번째 훅 역시 거문고와 가야금 없이, 타악기로만 이루어진 비트 위에 얹혔다. 미니멀한 악기 구성이었으나, 그 공백이 군자의 목소리를 오히려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왜 이리 버르장머리 가-!

예끼! 이 버르장머리 가-!

예의를 배우란 말이 다-!

도리를 갖추란 말이 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군자는 일종의 환각 상태에 빠져 있었다.

후렴이 세 번 반복되자 이젠 모든 관객이 그의 가락을 따라 불렀다.

닿지도 않을 거리에서, 그를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는 관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당장이라도 저들 사이에 파묻혀 희락(喜樂)을 나누고 싶구나.

누군가의 맹목적인 사랑이란 이토록 짜릿한 것이었던가.

행복에 도취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팬들이 그를 웃게 만들었다. 그 웃음에, 팬들이 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너무도 아름다운 선순환이었다.

그러나 아직 군자의 무대는 끝나지 않았다.

완벽주의자 지현수가 사흘 밤을 꼬박 새며 만든 이 곡의 절정부, 군자의 독무대 구간.

그 구간이 시작된 순간.

휘익-.

머리 위에 걸쳐 있던 양반탈을 다시 뒤집어 쓰며, 군자가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왜 이리 버르장 머리가,

예의를 배우란 말이다,

성미가 유하니 타박을 안하니

옳거니 맞거니 싫거니 좋거니

마당을 누비어 양발을 뒤집어

침소를 헤집고 눈알을 뒤집고

지필묵 사군자 희롱을 하다가

데구르르르르- 익살을 떨다가

반말을 하다가 존대를 하다가

뉘집 자손인지 뉘집 어른인지

예끼! 이 버르장 머리가,

예의를 갖추란 말이다,

고조부 증조부 외조부 외숙부

시누이 며느리 사대부 권문세

위아래 없으니 앞뒤도 없구나

앞뒤가 엎으니 좌우도 없구나

경우가 없으니 도리가 없구나

도리가 없으니 배움이 없구나

배움이 없으니 학식이 없구나

학식이 없으니 예의도 없구나

예의가 없으니 예절이 없구나

예절이 없으니 예의가 없구나

예의, 예의, 예의, 예의,

예끼, 예끼, 예끼, 예끼 이놈아아아아아—!!

···.

···.

“하아, 하아···.”

쏟아진 단어의 홍수가 마치 해일처럼 관객들을 덮치고 지나갔다.

“이, 이게 뭔-.”

“이게 뭔 아이돌 서바이벌···.”

“···아니, 잠깐만···.”

충격과 공포의 단독 구간이 마무리된 뒤.

모두가 멍해져 있던 순간, 이번엔 거문고와 가야금 가락이 하나가 되어 쩌렁쩌렁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다시금 무대 위로 뛰어 나오는 ‘예의단속반’ 팀원들.

왜 이리 버르장머리 가-!

예끼! 이 버르장머리 가-!

예의를 배우란 말이 다-!

도리를 갖추란 말이 다-!

그제야 관객들은 충격에서 벗어나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후렴을 함께 소리 높여 부르며.

땀투성이가 된 멤버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짖었다.

“유군자아아아아—!!”

“현재야, 여기 좀 봐 줘어어—!!”

“인혁 오빠아아아—!!”

“지현수 잘생겼다아아—!!”

“민기야, 정훈아아-.”

그렇게, 마지막까지 떼창을 이끌어 낸 두 번의 후렴이 끝난 뒤.

부채를 펼쳐 든 엔딩 동작과 함께, 마침내 ‘예의단속반’의 창작곡 <예의없는 것들> 무대가 끝났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함성 소리는 도통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다지 많은 관객이 아니었음에도, 천장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의 어마어마한 함성.

다른 모든 참가자들도, 트레이너들도, 객원 심사위원들까지도, 모두 기립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야, 너네 진짜 미쳤어어어어—!!”

“이거 아이돌 서바이벌이라고오오—!!”

“앞으로 어쩔라고 이래 진짜—!!”

“여, 영 쌤!! 정신 차리세요!! 영 쌔애앰—!!”

사방의 관객들에게 큰절 같은 인사를 올린 뒤.

‘예의단속반’ 멤버들은 서로를 강하게 부둥켜안았다.

“으아아아, 우리 진짜 너무 너무 너무 수고했다-! 그쳐-!?”

“와아, 와아아, 나 지금 진짜 꿈 같아.”

“방금 그 무대가 우리가 한 무대 맞는 거지?”

“아 씨, 아까 실수 하나 했는데···.”

“아 민기 형, 괜찮아! 하나도 티 안 났어여!”

“···.”

“아 뭐야, 혁이 형 또 움?”

“···아니, 그게 아니라···.”

“이 형 뭐야 진짜! 푸하핫-.”

성취감과 만족감에 도취된 동료들을 바라보며, 군자도 티없이 해맑게 웃었다.

해냈구나.

정말로 창작곡을 만들어 공연을 해 낸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또한, 이토록 호응해 준 팬들이 없었다면 의미 없는 무대였을 것이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이 벅찬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든 군자였다.

눈물은 어떻게든 꾹 참겠는데, 큰절 욕구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감사하오오오오—!!”

“푸하하핫-.”

결국 오늘도 동료들을 향해, 그리고 관객석 사방을 향해 큰절을 올려 버린 군자였다.

“그래 그래, 군자 하고 싶은 거 해!”

“오늘은 큰절이든 그랜절이든 다 해도 돼!”

“군자 오빠아아—!!”

그렇게, 감격의 포옹과 큰절 쇼까지 모두 끝난 뒤.

국민 플레이어 정해진이 마이크를 잡았다.

“국악기와 힙합을 조합하여 너무도 멋진 무대를 만든 ‘예의단속반’! 저도 정말 소름이 돋을 만큼 훌륭한 무대였는데요.”

“와아아아아-.”

“그러면 이제부터, 이 곡 <예의없는 것들>에 대한 심사위원단의 경매가 시작되겠습니다!”

정해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많은 카메라의 포커스가 심사위원석을 향해 넘어갔다.

자리에 앉은 심사위원들의 표정은, 마치 신선한 고기를 눈앞에 둔 하이에나 떼 같았다.

“자, 첫 번째로 입찰하실···.”

삐이, 삐이이, 삐이이이, 삐비비비비이-.

정해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찰을 알리는 버저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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