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활과 나
[현시우, 미친 듯이 빠릅니다!! 좀 무서운데요—!! 요즘 유행하는 2D 아이돌이란 것이 저런 의미였나요—!?]
[장애물이 그의 움직임을 전혀 방해하지 못합니다!! 이러면 ‘팀 유군자’에게 역전 가능성이 열리죠—!!]
“아하핫, 재미있다!”
유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현시우가 최단시간으로 장애물을 극복해 냈고.
다음으로 출발한 기유찬과 지현수 역시 좋은 성적을 낸 가운데.
“군자 혀엉-!”
“으음.”
네 번째 주자인 유군자가 힘차게 출발했다.
장애물 극복에 앞서, 군자가 눈을 감으며 무언가를 되뇌었다.
“야! 거기서 왜 눈을 감아!”
마지막 주자인 권태웅은 군자의 기행을 보며 목청을 높였지만, 놀랍게도 군자는 장애물 사이를 번개처럼 극복해 나갔다.
사삭, 사사삭-.
[우와, 대단합니다!! 다가오는 장애물을 스텝만으로 피해 내는 유군자 선수우우우—!!]
[신들린 발놀림입니다—!! 수업 시간에도 항상 저 스텝을 칭찬받았던 유군자였죠—!!]
[아니, 대체 어떻게 하는 거죠—!? 장애물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 움직임이 너무나도 부드럽습니다!! 유군자 선수는 현시우 선수처럼 2D 인간인 것도 아닌데요—!!]
모두가 놀랐으나 군자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장애물의 움직임은 이미 모두 봐 두었다. 거기엔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첫 번째 벽이 남동쪽으로 움직이는 동안 두 번째 벽은 정면을 향해 다가온다. 그것을 피해 내고 나면 세 번째 놈이 남남서 방향으로 돌진해 오지.
그리고 그 다음은···.
사사삭, 사사사삭-.
놀라운 암기력과 신들린 스텝의 연계.
군자는 현시우보다도 더 빠르게 장애물을 극복해 냈다.
다음 관문인 포복 역시 손쉽게 통과한 뒤, 마지막 관문은 밀가루 사이에서 초콜렛 찾기.
모두가 유군자의 엄청난 스피드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우와, 뭐야 쟤?”
“현시우보다도 훨씬 빨랐지?”
“잠깐, 이러다가 군자 팀이 역전 우승하는 거 아냐?”
그러나 하현재만큼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녀, 아마 아닐 걸여.”
“그래? 왜?”
“그건 바로···.”
때마침 군자가 밀가루 접시 앞에 섰다.
매의 눈으로 초콜렛을 찾아 낸 군자가 접시에 코를 박았다.
도톰한 입술을 이용해 네모난 초콜렛을 입에 문 군자는.
“저 인간은 초콜렛을 무지 좋아하기 때문이지!”
결승선으로 가져가야 할 초콜렛을 꿀꺽 먹어 버리고 말았다.
“맛있구나!”
“야, 야 임마아아아아아—!!”
“아, 아뿔싸—!!”
권태웅의 절규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결국 ‘팀 유군자’는 장애물달리기 종목에서 최하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푸하핫, 푸하하핫—!!”
김석훈 PD는 거의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다.
쉬어 가는 코너인 운동회를 이렇게 웃기게 살려 내다니.
아무리 봐도 보물 같은 놈이다. 대본을 짜서 웃기려고 해도 저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기믹질을 천재적으로 하는 거지?
이제 양궁 한 종목만이 남은 가운데, 군자의 팀은 최하위를 달리고 있었다.
기적적인 역전은 불가능해 보였지만, 지금 만들어 낸 분량만으로도 군자의 활약상은 차고 넘쳤다.
김석훈 PD는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팀 유군자’의 분위기는 초상집에 가까웠다.
결성 당시에만 해도 기대감으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최하위. 이대로라면 팀 해체는 확실해 보였다.
[자, 이제 운동회의 마지막 종목!! 양궁이 시작됩니다—!!]
[각 팀원들은 20m 거리의 표적에 화살을 일곱 발씩 쏩니다!! 그 점수의 합계로 승부를 가리는 시스템!!]
[기적적인 역전도 가능한 마지막 라운드, 그러나 혼자서는 거의 불가능한 미션입니다!! 과연 이대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는 팀이 등장할 것인가!! 지금부터 양궁 경기를 시작— 하겠습니다아아아—!!]
양궁 경기를 준비하며, 군자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태웅에게 말을 걸었다.
“···태웅아···.”
“어?”
“···미안하구나···.”
앞선 라운드에서 연이은 실수를 기록한 군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풀이 죽어 있었다. 오히려 태웅이 반쯤 체념한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어쩔 수 없지 뭐.”
“···.”
“열심히 했잖아. 그래도 안 되는 걸 뭐 어쩌겠어.”
“···.”
“가능하다면 이 팀 유지하고 싶었는데···.”
“···.”
“만약 찢어지게 되도 꼭 살아남자고. 알았지?”
어쩔 수 없었다는 듯, 태웅이 군자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었다. 그러나 태웅의 씁쓸한 웃음이 오히려 더 슬픈 군자였다.
“태웅아···.”
“응?”
“그냥 평소처럼 무식하게 화를 내 주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구나···.”
“아오, 진짜···.”
화살은 1등 팀부터 차례로 쏘았다.
[오오, 장선재 참가자 7점입니다! 연속으로 7점을 맞추는 장선재! 배우 출신 참가자 답게 높은 집중력을 보여주는군요—!!]
[이어서 민강열 참가자도 7점을 쏩니다!! 장선재 - 민강열, 상위 랭킹을 차지한 참가자들의 조합이 이대로 유지될 것인가—!!]
[반면 차인혁 참가자, 양궁에는 다소 서툰 모습입니다!! 확실히 힘을 쓰는 것엔 강하지만, 섬세한 컨트롤을 요구하는 종목에서는 타 출연자들이 강세를 보입니다—!!]
대부분이 4~5점. 가끔 7점 이상을 쏘는 참가자도 있었으나 8점 이상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장선재, 8점!”
“오오오-.”
가끔 8점이 나오면 모두가 감탄사를 터뜨리는 정도였으니.
그 동안, 군자는 활이 당겨지는 모양과 화살이 날아가는 궤적을 유심히 관찰했다.
확실히, 그가 알고 있는 각궁(角弓)과는 다른 물건이었다.
이것저것 잡다한 장치가 붙어 있으며, 줄을 당기는 손 모양도 조금 다르다. 화살의 궤적은 상대적으로 곧은 형태, 화살깃 역시 인조적인 소재를 사용한 듯 하다.
그러나 결국 활 아닌가.
조금 만져 보면 어떻게 쏘는 물건인지 알 수 있을 터.
앞선 팀들의 차례가 끝나고, 이제 드디어 군자의 팀이 화살을 쏠 차례가 돌아왔다.
“7점!”
“6점입니다!”
“아아, 4점! 아쉽네요···.”
권태웅부터 기유찬, 지현수, 현시우까지. 모두 심혈을 기울여 활시위를 당겼으나, 점수는 안타깝게도 평균 수준이었다.
화살이 쌓여 갈수록 팀원들의 표정엔 우울함이 차올랐다.
역전하지 못한다면 팀을 해체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더 큰 압박감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겨우, 겨우 다시 만났는데···.”
특히 유찬은 진심으로 군자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는 듯, 한껏 우울한 표정이었다.
[자, 이제 기유찬 참가자의 마지막 화살입니다!! 여기서 잘 쏴야 역전의 가능성을 남길 수 있죠!! 집중해야 합니다—!!]
“기유찬, 9점—!!”
“우와아아아아-.”
그 와중에도 유찬은 집중력을 높이며 최초로 9점을 획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물론 여전히 역전의 가능성은 희박했으나, 마지막 주자인 군자는 담담하게 웃으며 유찬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잘 쐈다.”
“군자 형, 부탁해요.”
“걱정 말아라.”
그렇게 유찬과 인사를 나눈 군자가 마침내 사로(射路)에 들어섰다.
[자, 이제 남은 궁사는 유군자 뿐! 이제 모든 화살을 8점 이상으로 쏘아야 역전이 가능합니다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한 사람이 일곱 발을 쏘는 양궁 종목, 지금까지 최고점은 장선재 선수의 45점인데요! 평균 6점대의 점수가 최고점인 상황에서, 과연 유군자 선수가 평균 8점대 이상의 고득점을 기록할 수 있을지!!]
군자가 눈앞에 놓인 활을 들어올렸다. 다소 생소한 모양이었지만, 기본적인 형태는 비슷하다.
몸통과 활시위, 그걸 통해 발사되는 화살. 군자에게도 익숙한 구조다.
“···.”
군자가 조용히 활을 들어올리며 활시위를 당겼다. 팽팽히 당겨진 시위가 그의 뺨 언저리에 닿았다.
대회라는 긴장감에 잊고 있었으나, 이렇게 시위를 당겨 보니 비로소 반가움이 온 몸을 휘감았다. 거문고와 가야금을 칠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형태가 조금 다를지라도, 이렇게 활을 쏘는 것이 얼마 만이던가.
활과 함께하는 군자의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그걸 보는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어어, 유군자 선수가 활시위를 당깁니다···.]
[자, 첫 번째 화살···.]
아까부터 정신없이 오디오를 채우던 해설과 캐스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키는 가운데, 마침내 군자의 첫 화살이 허공을 갈랐다.
휘익-.
말 그대로, 표적을 넘어 허공을 갈라 버렸다.
[아아, 유군자 선수! 이게 뭔가요오오···.]
[자세는 그럴싸했지만, 정작 화살은 하늘 높이 날아가 버립니다!]
군자에게 일말의 희망을 걸었던 동료들이 동시에 고개를 푹 떨궜다.
“하아···.”
“끝났네.”
“하하, 다음에 다시 팀 하자!”
“···다음이 있을까요···.”
동료들은 낙담하고 있었으나, 군자는 아직도 차분해 보였다.
“흐음-.”
잠시 활의 장력과 화살의 모양, 그리고 과녁까지의 거리를 확인하던 군자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마치 요구사항이 있다는 듯한 모습.
“네, 유군자 참가자. 말씀하세요.”
“혹시, 활을 조금 더 멀리에서 쏴도 되겠습니까?”
“예?”
군자의 말에 잠시 당황한 정해진은, 김석훈 PD와 짧게 대화를 나눈 뒤 돌아왔다.
“네, 가능합니다. 하지만 멀리에서 쏜다고 해서 추가점을 줄 순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과녁으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저벅, 저벅-.
담담히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모두는 그렇게 생각했다.
‘왜 저래?’
‘멀리서 쏘면 점수 더 줄 줄 알았나?’
‘뻔하지, 방송 분량이라도 챙기려는 거지 뭐.’
‘유군자 쟤 방송 괴물이잖아.’
‘에이, 그래도 저기서 저걸 어떻게 맞춰?’
그렇게 한참을 더 걸어간 군자가 마침내 멈춰섰다.
표적으로부터의 거리는 대략 45m.
다른 참가자들은 20m 지점에서 화살을 쏘았으니, 두 배 이상 먼 거리다.
[유군자 선수, 꽤나 먼 곳에서 멈춰 섰습니다!! 하하, 저건 너무 객기 같은데요?]
[하긴, 20미터 위치에서도 못 맞췄는데 저 위치에서는 더더욱 힘들겠죠!!]
지금 이 순간, 군자가 고득점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8점 이상은커녕 과녁까지 화살이 날아갈지도 의문이었으니까.
그러나 활시위를 당기는 군자의 표정은 평온함 그 자체였다.
마치 활과 그 자신이 물아일체(物我一體)라도 된 듯.
부드럽게 활시위를 당긴 뒤, 활의 몸통 너머로 과녁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자, 유군자 선수 두 번째 화···.]
쐐애애애애액-.
캐스터가 말을 맺기도 전에 날아간 두 번째 화살은.
퍼어어억—!!
45m 떨어진 과녁의 정중앙을 완벽하게 꿰뚫어 버렸고.
“—!?”
“——!?!?”
“어어어어—!?!?!?”
그걸 바라보는 모두의 경악 속에서, 군자는 미소와 함께 조용히 읊조렸다.
“관중(貫中, 과녁의 정중앙을 맞춤)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