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42화 (4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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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컨셉도 아니지

“···시, 십 점···.”

“우와아아아아아아—!!”

[10점입니다아아아—!! 유군자 선수의 화살이 과녁의 정중앙을 꿰뚫었습니다!! 세상에, 저 멀리서부터 날아온 화살이 10점을 기록합니다!!]

[유군자 선수, 처음엔 거리를 더 벌리겠다기에 솔직히 뭐 하는 짓인가 싶었거든요!! 20미터 위치에서도 못 맞추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번엔 또 이런 신기를 보여주네요—!!]

양궁 종목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등장한 10점.

참가자들은 환호성을 터뜨렸고, 유찬과 태웅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10점···.”

“잠깐만, 이러면···.”

점수표와 손가락을 번갈아 보며 무언가를 계산하던 태웅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크게 소리쳤다.

“그래도 겁나게 어렵잖아!”

“아하하, 남은 화살 다 9점 이상 쏘면 되지~”

“그러니까 어렵다는 거지!”

역전은 쉽지 않아 보였지만 군자는 여전히 침착했다.

생소한 활이었지만, 한 발 쏘아 보니 그 구조, 장력, 화살의 속성, 궤적까지 쉬이 파악할 수 있었다.

각궁 같이 투박한 손맛은 없다.

그러나 움켜쥐기 편하고 활시위 또한 부드러운 것이, 꽤나 다정한 활이구나.

이 양궁이란 것으로 조금만 훈련을 해도, 300년 전의 군자가 그랬던 것처럼 백발백중의 명사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부족했다.

당장 남은 일곱 발 중 여섯 발을 정중앙에 꽂아 넣어야 한다. 그걸 위해선, 군자 역시 자신에게 편한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본디 궁사(弓師) 유궁자는 거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지키고 싶은 동료가 있다. 만회하고픈 실수가 있다.

그 초콜렛을 꿀꺽 먹어 버리다니, 이 얼마나 우매한 불찰인가···.

고고한 척 정도(正道)를 따질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줄의 장력과 화살의 궤적을 고려했을 때엔, 아마도 일백 오십 자(약 45m) 정도가 적당할 터.

적당한 거리를 벌렸으니 이젠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며 활시위를 당기면 된다.

쭈우욱-.

마침내 무념(無念)의 경지에 이르러 시위를 놓는다면.

쐐애애애애애액-.

화살은 마치 자신의 목적지를 알고 있다는 듯 과녁을 찾아 가기 마련.

퍼어어억—!!

그림 같은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 세 번째 화살은, 두 번째 화살 바로 옆에 정확히 꽂히며 다시 한번 모두를 놀라게 했다.

“10점! 유군자, 10점입니다—!!”

[또, 또 10점입니다아아아—!! 아니, 뭐죠—!? 요행인가요, 실력인가요!! 유군자 선수의 화살, 마치 정중앙에 자석을 갖다 붙인 듯 팍팍 꽂힙니다—!!]

[첫 화살을 허공에 날려 버린 뒤 연이어 텐, 텐!! 분위기 이상해지는데요!! 유군자 선수, 이 정도면 진정한 컨셉 장인입니다!! 선비 컨셉을 잡았다고 활까지 잘 쏴 버리면 어쩌자는 건가요—!?]

묵묵히 세 번째 화살을 들어올리며, 군자는 노랑병아리 동료들이 있는 쪽을 스윽 돌아보았다.

방금 전까지 죽어 있던 눈망울이 기대감으로 되살아났다.

그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군자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군자 역시 같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머리를 텅 비운 채, 오로지 손끝에 걸리는 활시위의 감각에만 집중해야 한다.

파아앙-.

네 번째 화살 역시 관중(貫中).

파아아앙-.

뒤이어 쏜 다섯 번째 살 역시 과녁의 정중앙을 관통했다.

[10점, 10점, 10점의 향연입니다아아—!! 네 번째 10점, 유군자 선수 이제 완전히 감 잡았습니다—!!]

[아니, 저게 감 잡는다고 될 일인가요—!? 정말 놀랍습니다!! 정말 고대의 궁사가 빙의라도 한 듯!! 신들린 솜씨입니다—!!]

화살을 쏘아 보낼 때마다, 군자의 마음은 300년 전으로 돌아갔다.

기억조차 없던 시절부터 활을 만지고 시위를 당기며 놀았다.

그러다가 화살촉에 여린 손바닥을 찔려 엉엉 운 적도 있었더랬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궁술이 늘어 가며, 활은 군자에게 더없이 믿음직한 병기(兵器)가 되어 주었다.

험준한 산중에 홀로 남겨져도 활과 화살만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전쟁이 터진다 해도, 궁술이 있기에 군인으로서 제 몫을 다했을 것이다.

군자에게 활이란 힘이며 자신감이었다.

마음먹은 대로 힘차게 날아가는 화살을 보며, 군자는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뭐야, 뭐냐고 진짜아아—!!”

감탄사가 멈추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한 번, 두 번도 아닌 무려 4연속 10점, 그것도 45m 거리에서.

이제 분위기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팀 해체의 위기 앞에서, 군자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기적의 대역전극을 만들어 나가는 중이었다.

어느새 김석훈 PD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세상에···.”

오늘만큼은 마음껏 망가지며 예능감을 한껏 뽐내나 했는데, 막판에 또 이런 미친 활약을 보인다고?

이거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마침 김석훈 PD의 옆엔 ‘아이돌 육상대회’의 조연출로 일했던 박윤수 PD가 있었다.

“윤수야.”

“예 선배님.”

“아육대 나온 애들도 다 이 정도는 쏘냐?”

“···그럴 리가 있겠슴까.”

“그렇지? 이거 말이 안 되는 거지?”

“예, 저도 이런 건 처음 봅니다.”

놀란 것은 총괄 PD와 조연출 뿐만이 아니었다.

참가자들을 위해 섭외한 일일 선생님, 전 양궁 국가대표이자 현 진천선수촌 양궁 코치인 양해성 역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기, 김 피디님···.”

“예, 코치님?”

“저 유군자라는 아이, 혹시 고등학교 때 활 쐈답니까?”

“아뇨, 체육 특기생은 아녔습니다.”

“···이게··· 이게 말이 안 되는데요.”

“그렇죠? 이건 너무 잘 쏘는 거죠?”

“점수도 점수지만, 저 준비 동작 좀 보십쇼.”

“준비 동작이요?”

마침 군자가 여섯 번째 화살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스윽-.

완벽하게 정제된 그 동작은, 마치 주변의 소란과 완전히 다른 차원에 사는 사람 같아 보였다.

“PD님, 양궁에서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십니까?”

“그, 글쎄요? 시력? 집중력?”

“아뇨, 가장 중요한 건 아마도 루틴(Routine)일 겁니다.”

“루틴이요?”

“한 발을 쏘고 나서, 휴식을 취하고, 사로에 올라서고, 활을 들어올리고, 시위에 화살을 걸고, 그걸 당기는 동작까지···. 여섯 발을 쏘는 동안, 저 친구는 단 한 번도 루틴을 깬 적이 없어요.”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루틴이라는 정신적인 스위치를 통해서, 스스로를 ‘초 집중 상태’로 만드는 거죠.”

“아하···.”

“근데 그거, 선수들도 잘 안돼서 못합니다. 자기만의 루틴 만들려고 하다가 실패한 선수들도 많고요.”

“그래요?”

“그런데 저 친구는···.”

파아아앙-.

경쾌한 활시위 소리가 양해성 코치의 말허리를 잘랐다.

대기를 양단하듯 날아간 화살은, 이번에도 거짓말처럼 정중앙에 메다 꽂히며 또 한번의 환호성을 만들어냈다.

[이번에도오오오—!! 이번에도 10점입니다아아—!! 5연속 텐!! 뭐죠—!? 국가대표 양궁 경기인가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아아—!! 일일 선생님으로 온 국가대표 양궁 코치님의 표정 좀 보세요!! 얘가 왜 진천선수촌을 안 가고 여기에 있지? 라는 듯한 표정인데요—!!]

5연속 10점 행렬을 본 양해성 코치가,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는 듯 황급히 김석훈을 돌아보았다.

“김 피디님!”

“네.”

“혹시 저 유군자라는 아이, 데뷔 못 할 가능성은 얼마나 됩니까?”

“예? 아니, 갑자기 그게 뭔···.”

“저 친구는 무조건 양궁 시켜야 합니다!”

“어허어, 아이돌 하러 온 애한테 그게 무슨 소리세요.”

“경력도 없는데 저 정도면 1년··· 아니, 6개월만 가르쳐도 국대 선발전 내보낼 수 있습니다. 거기서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올림픽 메달도 노려 볼 수 있고요!”

“그러니까 그걸 왜 아이돌 오디션에 오셔서···.”

“국위선양 하셔야죠, 국위선양!”

“코치님이 뭘 모르시네. 요즘은 아이돌 해도 국위선양 할 수 있답니다?”

“그, 그럼 군대는요?”

“아이, 그거야 뭐 나중 일이고···.”

“그럼, 활동 중에 어떻게 합동 훈련이라도 한번 같이 시켜 보면 안되겠습니까?”

“자, 코치님. 일단 진정 좀 하시고요.”

“피디님, 나도 활 쏘던 사람입니다. 근데 저걸 보고 진정을 하라고요?”

“글쎄,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게 없다니까.”

“그럼 오디션 탈락하면 진천으로 보내 주시는 겁니다?”

“아이, 이 양반이 진짜로.”

양해성 코치와 김석훈 PD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어느새 군자는 마지막 화살을 시위에 걸고 있었다.

여기서 7점 이상을 쏘기만 한다면 결과는 대역전.

“군자 혀어엉—!!”

“집중, 집중, 침착하게—!!”

“···군자는 신이야···.”

“아하하, 그냥 쏴 군자야~”

이번만큼은 동료들의 응원이 귀에 쏙 들어온 군자였다. 그 덕분에 가벼운 미소가 입에 걸렸으나, 루틴은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응원이 집중력을 더욱 끌어올려 준다.

시위를 당기는 순간부터 화살을 놓기까지, 실패라는 느낌은 손톱만큼도 없다.

쐐애애애애애애액—.

마지막 화살은 그 어느 때보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퍼어어어억—!!

이번에도 역시 어김없이 정중앙.

굳이 채점을 하기 위해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도 없었다.

여섯 발의 화살 모두 정중앙의 중심점 주변으로 아름다운 육각형을 그리고 있었으니까.

“우와아아아아아아아—!!”

합계 60점. ‘팀 유군자’가 운동회 1등을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10저어어어어엄—!! 미쳤습니다, 유군자, 유군자가 또 10점을 쏩니다—!! 제가 지금 뭘 본 겁니까, 이거 제가 중계해도 되는 경기일까요—!?]

[0-10-10-10-10-10-10—!!  믿을 수 없는 성적표입니다—!! 단 한 발만을 놓친 유군자 선수, 나머지 화살을 모두 정중앙에 꽂아 넣었습니다—!!]

[동료들을 얼싸안으며 기뻐하는 유군자 선수!! 노랑병아리 군단이 막판 대역전극을 이루어 냅니다!! 세상에, 양해성 코치 표정 좀 보세요!! 군침이 싹 돈다는 얼굴입니다!! 김 PD, 이러다가 잘못하면 체육계에 참가자를 빼앗길지도 모르겠는데요—!!]

“야 이 미친놈아아아—.”

“우, 웅이 형! 나쁜 말! 카메라 있는데!”

“아 몰라 몰라, 이걸 어떻게 참냐고오—!!”

“하하, 활 좀 잘 쏜 것 가지고 호들갑들은.”

“얌마, 호들갑 안 떨게 생겼냐!”

“궁술은 선비의 육예(六藝) 중 하나 아니더냐.”

“그래 그래, 오늘도 너 하고 싶은 거 해—!!”

기뻐하는 노랑병아리들을 보며 김석훈 PD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말을 타고 나타났을 때만 해도 미친 어그로꾼이라 생각했지.

칼춤을 추고 거문고를 연주할 땐 음악적 재능까지 충만한 어그로꾼인가 싶었다.

그런데 활도 잘 쏜다.

심지어 선비의 육예라 하며, 너무나도 당연한 듯이.

그러나 거들먹거리지 않고 매 순간 겸손하다. 카메라가 있든 없든 행실은 언제나 대나무처럼 곧다.

“윤수야.”

“예, 선배님.”

“이쯤 되면··· 컨셉이 아니라 그냥 진짜 선비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그러게요.”

“저 정도면 컨셉이 인격을 잡아먹은 거 아니냐고.”

“이름부터 군자 아닙니까.”

“그러니까 말야.”

이젠 무엇이 컨셉인지, 또 무엇이 진짜인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한 김석훈 PD였다.

* * *

예술에 가까운 군자의 활 솜씨가 운동회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그 결과 ‘팀 유군자’는 결성 당시의 멤버를 온전히 지켜 낼 수 있었다.

운동회가 끝나고, 서른 명의 참가자들은 한 시간의 휴식을 가진 뒤 다시 옷을 갈아입고 원 스튜디오로 모였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이제 다시 잔인한 서바이벌의 세계로 돌아갈 때.

바로 다음 일정은 생존자 서른 명의 순위를 발표하는 2차 순위발표식이었다.

순위발표식을 앞두고,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것은 역시 유군자의 노랑병아리 군단이었다.

1차 순위발표식에서 각각 2위, 4위를 기록한 현시우 - 유군자를 필두로 9위 기유찬, 14위 권태웅이 한 팀으로 뭉쳤다.

비록 지현수는 1차 순위발표식에서 29위를 기록하며 중하위권에 머물렀지만, 이젠 이야기가 다르다. 2차 경연 음원인 <예의없는 것들>의 메인 프로듀서를 맡으며 ‘떡상’한 멤버 중 한 명이었으니.

경연에서 신들린 악기 라이브 연주와 판소리 랩을 선보인 유군자는 물론, 기유찬와 권태웅 역시 모두 각자의 팀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2차 순위발표식에선 이 멤버들의 순위가 더욱 상승할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든 저걸 찢어 놨어야 됐는데.’

‘유군자가 활을 그렇게 쏠 줄 누가 알았냐고···.’

‘쟤네는 어디까지 올라갈까?’

‘일단 지현수는 개떡상 확정이고.’

‘현시우는 좀 떨어질 것 같기도 한데.’

‘유군자랑 기유찬은 무조건 올라가겠지?’

‘잘하면 권태웅도 데뷔조 들어갈 것 같은데.’

‘어떻게 되려나···.’

모두의 기대와 궁금증이 한 곳에 모인 가운데.

마침내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의 2차 순위발표식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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