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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명탐정 코난 보고 자랐잖아요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을 보며, 군자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사용자 : 유군자]
[용모 : A-]
[노래 : B-]
[춤 : B+]
[매력 : A+]
[남은 포인트 : 3]
비록 상태창이 친절한 친우는 아니었으나, 군자는 이 체계를 직접 사용하며 꽤 많은 정보를 모았다.
상태창에 표기된 등급을 올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획득한 포인트로 등급을 즉각 끌어올리는 방법.
두 번째, 부단한 노력을 통해 스스로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
지금까지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체험해 본 군자였다. 특히 노래와 춤 등급은 노력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음을, 지난 미션을 통해 확실히 깨달았다.
그러나 용모는 노력을 통해 향상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오디션에 참여하기 전, 용모를 단정히 하는 것으로 등급을 상승시킨 바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게 등급을 올리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터.
그게 아니라면 양정무 소년처럼 용한 의원에게 직접 수술을 받는 법도 있겠지만.
“신체발부 수지부모이거늘, 어찌 안면에 단검을 댄단 말인가···.”
사실은 수술이라는 것이 조금 무섭기도 했다.
얼굴을 단검으로 자르고 이어붙이는 술법이라니!
그 실체를 알고 나니, 용모를 위해 그 고통을 견뎌 낸 양정무 소년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반면 상태창을 사용한다면 얼굴에 칼날을 대지 않고도 용모의 등급을 상승시킬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기회인가.
여러 모로 생각해 보아도, 새로 얻은 포인트는 용모에 투자하는 것이 합당해 보였다.
타고난 용모의 등급을 이렇게 상승시킨다는 것이, 자연(自然)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금 쓰이긴 했으나.
[‘용모’ 등급의 상승은 사용자의 용모 잠재력 최대치에 한하여 이루어집니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성형수술과는 다른 변화입니다.]
그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상태창이 새로 띄워 준 문장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 여기선 용모 등급을 올리는 것이 답이다!”
모든 정신승리를 마친 군자가 마침내 상태창에 손가락을 올렸다.
꾸욱, 꾸욱-.
‘용모’ 칸을 두 번 누르자 잔여 포인트가 소모되며 용모의 등급이 올랐다. 순간 안면 주변의 피골(皮骨)이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식는 것이 느껴졌다.
“···오오···.”
호기심에 바로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솔직히, 자세히 뜯어보지 않는다면 어디가 달라졌는지도 모를 정도의 미세한 변화였다.
피부의 결이 약간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이목구비의 비대칭이 약간은 바로잡힌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묘하게 전체적인 인상이 나아졌다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상태창은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으니, 지금 군자가 느끼는 이 변화도 분명 진실일 터.
포인트 두 개를 투자하니 이제 용모 등급은 A+까지 올랐다. 이제 남은 포인트 하나를 어느 곳에 사용할지 결정해야 할 때.
용모와 매력이 A+ 등급까지 올랐으니, 노래나 춤 둘 중 하나에 투자하는 것이 정답일 테다.
그러나 상태창을 둘러보던 군자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최상위인 ‘A+’까지 등급이 올랐음에도, ‘용모’와 ‘매력’ 등급의 상태창이 여전히 활성화되어 있었다.
마치 A+가 마지막이 아니라는 듯.
그 위에도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듯.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용모에 투자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알파벳 등급 체계는 ‘A’가 끝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 위의 무언가가 있단 말인가.
“···에이, 욕심 내지 말자.”
고민 끝에 ‘노래’ 등급을 올리기로 한 군자였으나 머리와 마음이 따로 움직였다. 호기심이 군자를 이끌었다.
꾸욱-.
반쯤은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손가락이 ‘용모’ 칸을 누른 순간.
[용모 : S-]
“—!?!?!?”
달라진 상태창을 보며 군자는 그만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이것이 과욕의 최후란 말인가!
지금은 동반자가 됐지만 애초에 상태창(常太瘡)은 병이었다. 언제든 폭주해 버릴지도 모르는 병증. 지나친 욕심이 창이를 화나게 한 것이 분명하다. 그 대가를 이렇게 치르게 되다니, 이 얼마나 우매한 과욕이란 말인가.
A에서 S라니, 대체 몇 개의 등급이 하락한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얼굴을 가린 손이 파들파들 떨려 왔다. 거울을 확인해야 하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분명 본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추악한 모습이 되어 있겠지.
하지만 확인해야 한다. 이 과욕의 대가가 얼마나 참담한 것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반성해야 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거울 앞에 서서 두 손을 열어젖힌 순간.
“어?”
뜻밖의 결과에, 군자의 고개가 옆으로 갸웃 기울었다.
“···나 왜 예쁘구나?”
* * *
진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모님은 군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감탄사를 터뜨리셨다.
“이야, 우리 군자 얼굴 편 것 좀 봐.”
“푸욱 자고 일어나니까 이렇게 예뻐졌네?”
“그, 근데 얼굴이 좀 많이 폈네?”
“어어··· 그러게? 하하, 엄청 피곤했구나?”
부모님 역시 군자의 용모를 칭찬해 주셨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알파벳 등급 체계가 잘못된 것 아닐까. 궁금한 것이 있을 땐 질문을 하는 것이 답이다.
“어머니, 아버지, 소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음, 뭔데?”
“혹시 A급 위에도 다른 등급이 존재하는지···.”
“당연하지.”
“!?”
“S급, EX급··· 이런 게 A급보다 높은 등급이야.”
“···S급이 A급보다 높은 등급이었습니까?”
“그러엄.”
그제야 군자의 모든 의혹이 해소됐다. 종종 S급을 높은 등급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의아했는데, 이러한 비밀이 숨어 있었던 것이로구나!
“S급, EX급이라···.”
“응. 게임 안 해서 몰랐구나?”
“예, 제가 무지했습니다.”
“흐흐, 내 아들이지만 참 귀엽다니까.”
부모님이 웃자 군자 역시 따라 웃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깨달아 가는 과정은 언제나 즐거웠으니까.
호기심에 두 눈을 초롱초롱 반짝이며, 군자가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그 두 등급을 합친 등급도 있는지요.”
“어어?”
“S급과 EX급, 두 등급을 합치면 아마도 최강의 등급인 S-E···.”
“아니, 아니, 난 그 합체 반댄데!?”
“예? 어째서···.”
“그, 그러게? 하핫-.”
“우리 군자 오디션 끝나면 빨리 영어부터 배우자! 하하핫-.”
알 수 없는 이유로 새로운 등급의 신설을 거부당하기도 했지만 상관없었다. 지금은 S등급이 A등급보다 높은 것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군자는 행복했으니.
그렇게 군자를 비롯한 최후의 생존자들이 휴가를 보내고 있는 동안.
김석훈 PD가 이끄는 아육시 사단은 9화 방송분 편집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9화 방영분에는 3차 경연 준비 과정이 포함되었다. 준비 과정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연습실 분쟁’이었다.
연습실 사용권 매매를 시작한 뒤부터, 다수의 참가자들이 ‘정면돌파’ 팀을 배제한 정황이 포착됐다.
물론 김석훈 PD의 목적은 이 갈등 양상을 적나라하게 방영하는 것.
이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갈등 만큼 쉽게 재미를 유발하는 요소도 없다.
오디션이 막판으로 접어들수록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참가자들의 욕망은, 김석훈 PD에겐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쉽지만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참가자들끼리 서로를 따돌리는 정황을 방영하는 것에는 반발 의견이 많았다.
우선 스타월드를 비롯한 다수의 소속사들이 반기를 들었다. 게다가 이번엔 방송국의 직속 상부 임원들도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김 PD, 연습실 관련 내용은 빼고 가지? 그거 빼도 재미있는 분량 많잖아.”
“예? 아니, 그 부분이 9화 핵심이나 다름없는데, 그걸 빼자고 하시면···.”
“재미도 좋지만 그래도 애들이잖아. 지켜 줘야지.”
“국장님, 연습실 사건 가담한 애들 전부 스물 둘, 스물 셋 성인입니다. 무슨 중학생이 사고 친 것처럼 말씀을 하십니까. 그리고 그런 식으로 따지면, 군자랑 애들은 누가 지켜주고요, 예?”
“크흐음-.”
“군자네가 지들 능력으로 극복해서 다행이었지, 그거 아니었으면 이번엔 꼼짝없이 탈락각 쎄게 나왔죠. 그 와중에 본인들 따돌림 당한 것도 안 밝혀지면··· 어후, 저 같으면 억울해서 잠도 못 잡니다.”
“그래서, 그거 방송하면 억울한 게 풀려?”
“좀 낫긴 하겠죠?”
“김 PD, 우리 그냥 솔직해지자. 응? 니가 걔네 억울한 거 풀어 주자고 이러는 거야?”
“당연하죠. 제가 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그런 놈이 코인으로 연습실 사게 만들어?”
“예?”
“애초에 니가 원인 제공을 했으니까 이 사달이 난 거 아냐. 잘 쓰던 연습실에 왜 가격표를 붙이냐고. 어?”
“아이, 그거야 뭐···.”
“너 솔직히 말해 봐. 애초에 의도했던 거 아냐? 일부러 이런 그림 뽑을라고 개수작 부린 거 아니냐고.”
“무,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아. 저 그렇게 영악한 놈 아닙니다.”
“아무튼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국장니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쇼. 부당한 대우로 연습실을 잃은 유군자. 그러나 전화위복, 서로를 거울 삼아 연습한 끝에 필살 안무를 만들어 내고! 그렇게 준비한 무대에 쏟아지는 원곡자의 극찬 세례, 그를 따돌렸던 모든 세력은 다시 한번 쳐발리고 말았다! 이 미친 서사를 포기하란 말씀이신 거예요? 예?”
“이 새끼 이거 봐, 시나리오 쓴 거 맞네.”
“그래서 포기 하실 거냐고요.”
“글쎄, 그냥 노력한 것만 보여줘도 충분하다니깐?”
“충분한 걸로는 충분하지가 않다고요! 존나게 재밌어야지!”
“아 몰라 몰라, 이미 다 결정된 사안이야.”
“!”
“암튼 난 분명히 얘기했다? 연습실 가지고 싸우는 분량, 관련된 애들 인터뷰, 싹 다 빼고 순수한 연습 장면으로만 편집해.”
“허, 진심?”
“그래, 진심!”
“국장님!”
“뭠마!”
“진짜 예능, 예능, 예능감 없구나?”
“뭐 이 새끼야?”
“뿅!”
이젠 상부까지 김석훈 PD를 압박하는 형국.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아무리 막 나가는 PD라고 해도 이미 상부에서 결재가 떨어진 내용까지 거스를 순 없었으니까.
“아오, 다음부턴 예능 말고 다큐를 찍든가 해야지···.”
에디터 곽명수와 함께 편집실에 앉은 김석훈 PD는 푹푹 한숨을 내쉬며 편집본을 재검토했다.
“명수야, 9화 소스 처음부터 좀 다시 보자아.”
“연습실 관련 분량은 다 빼람까?”
“그런가 보다아.”
“그럴 줄 알았지 말임다.”
“염장 지르지?”
“에이, 그럴 리가 있슴까.”
“빨리 틀어 봐아.”
“옙.”
시무룩한 표정으로 등받이에 파묻힌 김석훈은 9화 촬영본 영상을 천천히 검토해 나갔다. 확실히, 상부에서 언급된 분량을 빼고 나면 따돌림 정황은 가려질 것 같았다.
“요 썰고, 요 썰고.”
“옙.”
“아으, 마음 아파.”
“자막으로 그렇게 넣슴까?”
“아니 임마, 내 마음이 아프다고.”
“아.”
하지만 편집을 진행해 나갈수록 김석훈 PD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라?”
“왜 그러심까?”
“잠깐만, 이제 다 잘랐지?”
“이제 더 자르면 방송 분량도 못 맞추지 말임다.”
“그래, 다 자른 거 맞잖아?”
“옙.”
“그런데도 이게··· 허어, 허허허.”
편집된 영상을 보며 김석훈 PD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곽명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꿈뻑였으나 김석훈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져 갔다.
“실성하셨슴까?”
“아니, 너무 맨정신인데?”
“그럼 왜···.”
“명수야, 너 이장폐천(以掌蔽天)이라고 들어 봤냐.”
“예?”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말야. 다들 명탐정 코난 보고 자란 세대라 그런가, 추리력 하나는 거의 남도일 급이라고.”
“그게 무슨 씹덕후 같은 소리심까.”
“명수 너도 곧 알게 될 거라능~”
“···?”
* * *
9화 방영분은 결국 편집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문제가 됐던 ‘연습실 분쟁’ 분량은 전체가 편집되어 버렸고, 관련된 참가자들의 인터뷰도 모두 날아갔다.
깔끔하게 편집된 영상을 받아 보고 난 뒤에야 뮤직플래닛 간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것은 연습실에서 성실하게 연습하는 참가자들의 모습 뿐이었으니.
이 정도라면 방송국에서도 최선을 다 한 셈이었다.
본방을 보는 시청자들 역시 따돌림의 정황은 전혀 포착하지 못한 것 같았다.
[ㅠㅠㅠㅠ수트업 밀리터리 버전 넘 기대된다ㅠㅠㅠㅠㅠ]
[내가 또 군복 처돌이인 건 어뜨케 알고]
[애들 팀 다 찢어졌는데두 화기애애한 거 보기좋음ㅋㅋㅋ]
[그러겤ㅋㅋㅋ아직 애들이라 금방금방 친해지나바]
[하현재 진짜 쌉인쌐ㅋㅋㅋ]
[쟤는 차인혁 여섯 명이랑 가둬놔도 오디오 꽉채울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와중에 쩡무 표정 왜케 안조으뮤ㅠㅠㅠ]
[수텁 1조 싸비 안무연습.gif]
[주하성 춤선 진자 무슨일이야ㅜㅜㅜ]
그러나 본방이 끝나고 난 뒤.
바로 이어진 재방송 시간부터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근데 군자네 연습실만 좀 다르지 않음?]
[엥]
[벽 색깔이 좀 다르긴 하네]
[글고 애들이 왜 거울을 안봐]
[좀 이상한데;]
[편집점이 쩜 이상하지 않아?]
[글게 ㅇㄱㅈ 피디픽인데 왜케 분량 창렬?]
의혹이 제기되자 순식간에 증거 자료들이 만들어졌다.
본방 이후 한적해졌던 커뮤니티가 다시 한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수텁 2조 CCTV샷 부감샷 움짤모음]
[어?]
[CCTV샷 오른쪽이랑 위쪽 구석 잘보셈]
[거울 ㅇㄷ?]
[???]
[뭐야이거;;]
[ㅈㄴ이상한데?]
[다른 애들 배경이랑 너무 다르자나]
[에잌ㅋㅋㅋㅋ에바야 그냥 연습시간이 달라서 그럼]
[ㅋㅋㅋ어차피 다 실내인데 시간이 뭔상관]
[그럼 왜 쟤네만 연습실이 다른데]
[거울 어딧냐거ㅋㅋㅋ]
[설마 거울도 없는 연습실에서 연습한 거?ㅜㅜ]
[아 에바야]
이 모든 반응을 모니터링하며, 리클라이너에 앉은 김석훈 PD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명탐정 형님, 누님들 어서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