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주군은 주군일지니
생방송으로 진행된 결승전, ‘일곱 선비들’의 무대 반응은 말 그대로 폭발적이었다.
결승전 실시간 시청률은 무려 19.4%.
동시간대 모든 예능 프로그램을 압도적으로 찍어누른 것은 물론, 역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중 최고치에 해당하는 시청률이었다.
케이블TV 시청률 뿐만 아니라, 실시간 온라인 스트리밍 채널 역시 전무후무한 시청자 수를 기록하며 뻥뻥 터져 나갔다.
대란을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춘 뮤직플래닛이었으나, 특히 해외 쪽에서 쏟아져 들어온 물량은 도저히 감당이 안 될 수준이었다.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뜬금없는 사람들까지 스트리밍 채널에 접속하기 위해 몰려들었으니까.
K-POP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영미권의 3040 밀리터리 매니아들이 그 예였다.
[서버 또 터졌어]
[FXXK]
[이건 존나 잔인한 고문임]
[유군자 같이 쿨하고 멋진 워리어를 알려줘 놓고 그걸 못 보게 한다고?]
[모자방패 꺼내고 곤봉 제식할 때 지릴 뻔 했는데]
[여기서 서버가 터진다?]
[근데 아시안의 방패 + 곤봉 제식은 처음 본다]
[오리엔탈 스파르타 그 자체여]
[인터미션은 한국 궁궐의 수문장 교대식을 모티브로 한 것 같던데]
[이건 그냥 K-POP 퍼포먼스가 아님]
[제식 할 때 동작 척척 잘 맞는거 봤지?]
[히틀러나 김정은도 저렇게 제식훈련을 깔끔하게 시키진 못할듯]
[유군자는 존나 무서운 놈이 분명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저렇게 기강을 빡세게 잡을 수 없다니깐?]
[대체 한국은 뭐 하는 나라인 거야?]
[전에 얘기했잖아 드웨인 존슨이 이름표 떼는 놀이 하는 나라임]
[제정신 아니네]
[아 스트리밍 열어 달라고]
[그리고 왜 외국인들은 투표 못하게 막아둔 건데]
[우리도 유군자 사랑한다고 시발]
상대적으로 인터넷이 느린 북미권의 시청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동안.
한국의 시청자들은 쾌적한 환경에서 케이블TV와 OTT로 생방송을 즐기며 실시간으로 의견을 공유했다.
유군자가 ‘무대 장인’이라는 것은 이미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서바이벌이 그렇듯 결승전은 무대의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촬영 후 편집을 가미하여 퀄리티를 끌어올리는 녹방과는 달리, 생방송은 참가자들의 퍼포먼스가 날것 그대로 나가게 되니까.
그러나 ‘일곱 선비들’의 무대는 달랐다.
첫 경연곡인 에서는 오로지 보컬에 집중하며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었던 가창력을 선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웠다.
그 무대만으로도 충분히 긍정적인 리액션이 쏟아졌다.
그러나 두 번째 무대가 시작하고 나서부턴 모든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서버에 불지옥이 열렸다.
수문장 교대식부터 터져 나온 반응은 가히 역대급이라고 말할 만 했다.
[오늘 군자 왜 이렇게 예브냐ㅠㅠㅠㅠㅠ]
[ㅇㅏ니 왜 쟤만 계속 예뻐지는 건뎈ㅋㅋ]
[처음도 청초하고 잘생겼는데 지금은 개 얼굴천재 다됐네]
[얼굴천재라는 말도 모자람]
[얼굴노벨상 얼굴필즈상 와꾸도르 3관왕]
[첨엔 주하성이 더 나은것 같았느데 어느 순간 군자가 역전한듯]
한층 업그레이드 된 군자의 외모부터, 부분부분 붉은 포인트가 들어간 관군 의상은 물론이며.
[군자팀 + 동양풍착장은 실패가 없넼ㅋㅋㅋ]
[ㅠㅠㅠ의상팀 상줘야되뮤ㅠㅠㅠㅠ]
[우리 군복 저러케 예쁘고 멋진데]
[제에에발 사극 포졸복 좀 멈춰달라곸ㅋㅋㅋㅋㅋㅋ]
[군자팀 의상은 의상팀에서 100% 해주는것도 아니래]
[ㅁㅈ애들이 아이디어 내는거라고 하던데]
[군자야 넌 진심 아이돌 하려고 태어났나보다ㅠㅠㅠㅠㅠ]
구멍 없이 탄탄한 멤버들의 벌스, 귀에 팍팍 꽂히는 중독성 넘치는 후렴구, 네 번의 무대 중 가장 현란하고 화려한 무대 구성과 소품까지.
극찬에 극찬이 이어졌다. 특히, 붉은 갓 주립(朱笠)을 사용하여 방패 안무를 펼쳐 보였을 때엔 현역 아이돌과 트레이너들마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제 이 정도만 하고 끝나도 충분히 레전드 무대다.
이미 ‘일곱 선비들’ 중 절반은 데뷔를 확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현장 분위기가 그걸 증명했다.
여섯 개의 방패 뒤에 몸을 숨긴 군자 역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까부터 인이어 이어폰이 빠져 있었기에, 그 환호성이 고스란히 군자의 고막을 때렸다.
그러나 군자는 방점을 찍을 생각이었다. 여기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지난 보름 간의 노력을 한 치 아쉬움도 없이 내보이고 싶었다. 무대 위 일곱 동료들 모두와 함께 데뷔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를 지지하고 사랑해 준 팬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군자의 마지막 벌스엔, 팬들을 향한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흐읍-.”
괴력의 차인혁이 군자를 번쩍 들어 올렸다. 이제 때가 됐다는 뜻이다.
군자 역시 다리에 힘을 모았다. 차인혁이 군자를 던지는 순간, 그 역시 대퇴근의 탄력으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휘이익, 쿠웅-.
붉은 방패의 가림막을 부수고 나타난 감색의 선비가 영웅처럼 착지하여 관객들 앞에 섰다. 마치 무기처럼 마이크를 쥔 군자가, 격류 같은 가사를 내뱉기 시작했다.
보아라, 주군은 주군일지니.
거꾸로 보아도 군주일지니.
섬긴다, 선비(士)는 선비일지니.
다리가 길어도 진토(土) 일지니.
일진이 사나운 날일지라도,
운수가 대통한 달일지라도,
철없던 어렸던 절었던 나에게
벌었던 것을 다 걸었던 주군께
충성을 다하여 위국충절 (爲國忠節),
마음을 다하여 우국충정 (憂國衷情).
육체를 다하여 충군애국 (忠君愛國),
영혼을 다하여 충혼의백 (忠魂義魄)!
노랫말은 사랑을 넘어선 충성(忠誠)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절절한 목소리엔 한 치의 과장이나 거짓도 없었다.
이제 이 땅엔 더 이상 임금이 없지만 군자에겐 달랐다. 아이돌에겐 달랐다.
우리를 있게 한 사람들,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의 가치를 높여 준 사람들.
팬들이야말로 우리의 군주나 다름없다.
깨달음은 곧 노랫말이 됐다. 가사를 쓰는 데엔 채 한 식경도 걸리지 않았다.
진심을 담았기에 그것을 내뱉는 목소리에도 자연스레 힘이 실렸다. 관객들의 존재가 군자의 연료나 다름없었다.
덕분일까, 맹렬하게 시작한 벌스는 더욱 더 맹렬해지며 공연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나 눈보라 속에 선 소나무처럼,
또 비바람 가운데 청죽림처럼.
마음은 오로지 한없이 올곧길,
방향은 오롯이 하나의 오솔길.
우리가 주군을 우러러 뵈옵고,
주군이 우리를 바라봐 주시네.
덧없는 몸짓이 안무가 되었고,
실없는 목소리 노래가 되었네.
전심을 다하여 적심보국 (赤心報國),
전력을 다하여 진충갈력 (盡忠竭力).
충효를 다하여 충효쌍전 (忠孝雙全),
모든걸 다하여 견마지로 (犬馬之勞).
충신지도, 불사이군! (忠臣之道 不事二君)
언사필충, 사사필경! (言思必忠 事思必敬)
사신이례, 사군이충! (使臣以禮 事君以忠)
진충보국, 충의지사! (盡忠報國 忠義之士)
···.
···.
쿠웅, 쿠웅-.
이번에도 군자는 모두를 얼게 만들었다.
가사 한 줄 한 줄, 글자 하나 하나에 담긴 진심을 모든 관객이 느낀 듯 했다.
전율의 순간이었다. 모든 관객들의 턱은 떡 벌어져 있었다.
비트는 큰북 소리만을 남긴 채 잦아들었지만, 팬들의 심장이 그 큰북보다 강하게 뛰었다.
쿠웅, 쿠웅, 쿠우웅-.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군자를 중심으로, 어느새 일곱 선비들이 다시 모여 들었다.
군신유의(君臣有義), 군신유의(君臣有義).
유의하니 오로지 군신유의.
붕우유신(朋友有信), 붕우유신(朋友有信).
일곱선비 하나로 도원결의.
낮은 곳에서 천천히 발을 구르며, 점점 강해지는 큰북 소리와 함께.
군신유의(君臣有義), 군신유의(君臣有義).
유의하니 오로지 군신유의.
붕우유신(朋友有信), 붕우유신(朋友有信).
일곱선비 하나로 도원결의!
조용히 시작하여 우렁찬 곡조로 변하는 산조처럼, 일곱 선비들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여 도원결의를 외쳤다.
어느새 다시 흥겨워진 비트와 함께, 선비들은 마지막 후렴구를 반복하여 제창했다.
그래 우리 컨셉은 충, 팬들에게 경례!
그들이 우리의 주군, 임금을 향한 경배!
배신은 곧 불충, 언제나 당신들과 연대!
성공으로 가는 중, 팬들의 눈동자에 건배!
일곱 선비들, 무대를 가득 메운 댄서들, 거기에 흠뻑 취한 관객들까지,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달은 순간.
[Concept : 忠]
후방 LED에 곡의 제목이 다시 한번 떠오르며, 군자가 마지막 가사를 내뱉었다.
“그래, 우리 컨셉은 충-!”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무대가 떠나갈 듯한 함성을 들으며, 원샷 카메라에 잡힌 선비들은 모두 가쁜 호흡과 함께 웃고 있었다.
도저히 흠 잡을 곳 없는, 완벽한 성공이었다.
* * *
첫 무대의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관객들은 통제불능 직전의 상태에 빠져 있었다. 가장 높은 수준의 경호팀을 투입했지만, ‘일곱 선비들’의 무대는 그것마저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다음 무대는커녕, 당장 안전사고부터 막아야 할 정도로.
자연스레 다음 무대는 다소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무대 뒤의 주하성은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군자가 또다시 말도 안 되는 미친 무대를 만든 것도.
바로 그 다음 무대에 올라가야 한다는 현실도.
패배가 눈앞에 있는데, 뭐가 좋은지 실실거리고 있는 양정무도.
“양정무.”
“?”
“좋냐?”
“···.”
“행복하냐고.”
“···.”
“하, 씨발···.”
괜한 양정무를 갈궈 봐도 기분은 딱히 풀리지 않았다.
상황은 최악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주하성은 데뷔를 해야 했다. 아니, 사실 아직도 데뷔권에 가까운 주하성이었다.
마지막 순위 발표식에서 4위를 했지만 그 뒤로 사전 투표 순위는 다시 올라갔으니까. 연습실 논란도 코어 팬덤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결승전 무대만 잘 하면, 팀은 몰라도 주하성 본인만큼은 다시 데뷔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양정무는 긴장한 듯 마이크를 손에 쥐고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런 양정무에게 주하성이 다시 다가가 어깨동무를 걸쳤다.
“정무야.”
“···.”
“씨발, 정무야. 대답 좀 해라, 응?”
“···네 형···.”
“잘 좀 해 보자.”
“···네···.”
“나 데뷔 좀 시켜 주라, 이 새끼야.”
양정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실수하지 말고.”
주하성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그의 등짝을 짝 쳤다.
마침 퍼포먼스도 주하성이 돋보일 만한 구성으로 짰으니, 실수만 없다면 충분히 데뷔할 수 있다.
빌어먹을 유군자와 한 팀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 싫었지만, 그것도 딱 3년이다. 3년 후엔, 7IN의 명성과 인지도를 이용하여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지.
그렇게 무대에 오른 주하성은, 큰 실수 없이 무대를 마쳤다.
실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모험도 없었던 무난한 무대.
팀 대 팀의 대결이라면 ‘일곱 선비들’의 압승이었지만, 이번엔 현장 관객 투표와 시청자 투표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결승전 라운드다.
누가 살아남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뜻.
두 팀의 무대가 끝난 뒤, 한껏 차려 입은 MC 정해진이 단상 위에 올랐다.
“자, 두 팀의 결승전 무대를 모두 만나보았습니다! 여러분, 이제 곧 생방송 투표가 마감됩니다!”
10, 9, 8··· 2, 1, 0.
관객들과 함께하는 카운트다운까지 끝나고.
이제 드디어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시즌 2의 데뷔 멤버들 발표할 시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