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67화 (67/303)

#67

옛날 옛적에

마지막 멤버인 7위 발표만을 앞둔 시점, 화면에 떠오른 4인의 표정은 가지각색이었다.

민강열과 주하성은 아직도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초점이 반쯤 풀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주하성도 주하성이지만 민강열 역시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형 강후의 후광을 등에 업고, 초반부터 압도적인 투표수로 상위권에 머물러 온 민강열이었으니까.

그러나 오디션이 중반 이후로 접어들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청률 10%가 넘어가고 프로그램의 자체적인 팬덤이 형성되기 시작하며, 경연에서 두각을 보이지 못한 민강열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 네 명의 참가자 중 최종 10위는··· 민강열 참가자입니다.”

“···.”

그 결과는 최종 순위 10위.

MC 정해진의 발표에 민강열의 고개가 푹 떨어졌다.

같은 팀을 이뤘던 참가자들 역시 충격적이라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웅성거렸다. 그들이 예상했던 최종 10위는 양정무, 혹은 권태웅이었으니까.

“강열 형이 10위야?”

“그럼 권태웅이 9위, 양정무가 8위인가?”

“그렇지, 그래도 하성 형은 데뷔하지 않을까···.”

“당연하지, 하성 형은 붙어야지.”

그들 역시 주하성의 ‘마이크 사태’를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주하성은 달랐다. 양정무 덕분에,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다.

애써 표정관리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끊임없이 흐르는 진땀은 해결이 안 됐다. 식은땀이 온 몸을 싸늘하게 만드는 기분이었다.

그 와중에도 마지막 희망을 포기하지 못한 주하성이었다.

그래도 7등인데. 1등도, 2등도 아닌 7등인데.

설마 여기서도 떨어질···.

“다음으로 9위를 발표하겠습니다.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최종 9위는···.”

그러나 그 순간, 주하성은 MC 정해진의 입술이 둥그렇게 모이는 것을 보고 말았다.

“주하성 참가자입니다.”

9위 참가자가 발표된 순간, 주하성은 하마터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뻔 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MC 정해진을 쳐다보았으나 정정은 없었다.

“···하하···.”

눈물 대신 헛웃음이 났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는 금방이라도 역관절로 꺾여 버릴 것 같았다.

모두 끔찍한 악몽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만약 꿈이라면 여기서 깼겠지. 그러나 정해진의 순위 발표는 멈추지 않으며 이어졌다.

“이제 마지막··· 정말 마지막 두 명만이 남았습니다!”

남은 참가자는 권태웅과 양정무 뿐. 민강열, 주하성과는 달리 두 참가자의 표정은 담담했다. 마치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받아들이겠다는 듯.

“두 참가자 중 마지막으로 데뷔그룹 ‘7IN’의 멤버가 될 7위 참가자는···.”

권태웅과 양정무, 두 사람 사이를 오가던 정해진의 시선이 비로소 한 곳을 향했다.

“축하합니다! 권태웅 참가자!”

“이야아아아아아아아—!!”

7위 참가자의 이름이 발표되자 마자, 무대가 떠나갈 듯한 함성과 함께 일곱 선비들이 다시 한번 권태웅에게로 달려갔다.

“웅이 혀어엉—!!”

“와, 이게 진짜 이렇게 된다고? 와하학, 나 진자 미치겠네-.”

“혀, 형, 우리 다 데뷔예요! 저, 정말 다 같이 데뷔라고요!”

그들은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으며 한 데 엉켜 환희를 나누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7명 전원 데뷔’가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최종 생방송 경연, ‘일곱 선비들’이 1위부터 7위까지의 순서를 모조리 차지하며 데뷔조를 싹쓸이해 버렸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믿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팬들의 환호성은 스튜디오의 조명을 모두 깨 버릴 듯한 기세였다.

가장 긍정적인 팬들조차 주하성, 민강열 정도는 데뷔그룹에 들어올 거라 생각했다. 반면 코어가 약한 권태웅, 지현수 같은 멤버들은 위험하다고 생각했고.

모두의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에, 팬들은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떡해, 우리 애들 다 데뷔래!”

“미쳤나 봐 진짜—!!”

군자 역시 짜릿한 행복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오디션의 시작과 끝을 함께했던 여섯 명의 친우들이다.

데뷔와 무관하게 앞으로도 평생 갈 친구들이라 생각했건만, 이렇게 모두 함께 데뷔까지 하게 되다니.

즐겁지 않을 수 없었다. 함박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군자는 동료들의 어깨 너머로 정무의 표정을 보았다.

“최종 8위는 양정무 참가자입니다. 너무 너무 안타까운 결과입니다···.”

애써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한 번 고개를 숙일 때마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양정무였다.

비록 좋지 못한 인연으로 시작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경연이 진행되는 동안 정무에게도 많은 것을 받지 않았던가.

축하 분위기가 잦아든 뒤, 군자는 정무에게로 다가가 그를 꼭 안아 주었다.

“그 동안 고생 많았다.”

“···.”

“너도 함께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눈물과 코를 슥슥 닦아 낸 양정무가 군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내가 더 잘했으면 내가 붙었겠지 뭐.”

비록 눈물로 범벅된 얼굴이긴 했지만, 주하성이나 민강열과는 달리 양정무는 꽤나 후련해 보였다.

“난 하고 싶은 거 다 했어요. 욕심도 부려 봤고, 인성질도 해 봤고, 마지막엔 짜증나는 놈한테 엿도 먹였고.”

“엿이라? 혹시 호박엿 말이더냐?”

“에?”

“언제 울릉도까지 다녀온 것이냐?”

“뭐래 진짜.”

군자의 헛소리에 양정무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는 양정무를 보니 비로소 군자도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아무튼,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요.”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너무 착하게만 살면 안돼요. 가끔은 나쁘게 굴어야 사람들이 우습게 안 봐.”

“그래.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명심하마.”

그렇게 마지막 순위발표식까지 끝난 뒤, 마침내 일곱 선비들이 미리 마련된 단상 위에 섰다.

우와아아아아아—···.

라이브 스튜디오를 뒤덮은 함성, 그 가운데서 정해진이 힘차게 새로운 아이돌 그룹의 데뷔를 알렸다.

“지금 여러분의 눈앞에 선 이 일곱 명의 선비··· 아니, 죄송합니다! 일곱 명의 소년들이 바로 ‘7IN’입니다!”

천둥 같은 환호성 속에서, 군자는 감격스런 표정으로 팬들을 바라보았다.

지난 몇 달 간의 고단함이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가무(歌舞)를 업으로 삼는 이에게, 이보다 짜릿한 보상이 또 있을까.

물론 팬들의 환호는 최고의 보상이다.

그러나, 군자에게는 또다른 보상 역시 존재했다.

···우우웅···.

군자의 데뷔를 축하하듯 상태창이 요란하게 공명했다.

그 어떤 때보다 격하게 반응하던 상태창은, 이내 새로운 문장을 군자의 눈 앞에 출력했다.

[아이돌 데뷔를 축하합니다.]

[초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초 특별 보상이라. 창이가 호들갑을 다 떠는구나.

이번 보상은 지난 보상과는 궤를 달리할 것 이 분명했으나.

[보상 : #$^$^&&!?]

“···?”

어째서인지 단어는 평소와 다르게 엉망진창으로 깨져 있었다.

그것을 읽기 위해 군자가 이맛살을 찌푸리는 순간, 또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지금은 보상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보상을 열람하기 위해선 조건을 달성하십시오.]

[조건 : 지상파 음악방송 1위]

“아?”

불가능할 것 같았던 목표를 달성하자 마자 새로운 목표가 눈앞에 떠올랐다.

음악방송 1위라. 지금까지는 아이돌을 준비하는 연습생들과 겨루었다면, 이번엔 기존에 활동하던 수많은 고수들과 직접 겨루어야 한다.

그 수십, 수백의 경쟁자를 모두 물리치고 정점에 올라야 1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군자는 좌절하는 대신 웃었다.

음악방송 1위라. 어차피 언젠간 달성하려 했던 과업이다.

그 과업에 색다른 보상까지 주어졌다니, 오히려 즐거운 일 아닌가.

“좋다, 한번 해 보자꾸나.”

* * *

초대박이라는 말도 부족할 만큼의 초 초 초 대박.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시즌 2의 성적표는 천장을 뚫고 나갔다. 최종화 시청률은 25%에 육박했으며, 전 세계의 스트리밍 채널이 동시에 폭발했다.

시청률 뿐만 아니라 화제성 측면에서도 완벽한 성공이었다. 방송이 진행된 세 달 동안, 모든 검색어 순위와 SNS 핫 트렌드 키워드 순위는 아육시의 차지였다.

생방송 욕설 사건 때문에 세 번째 경위서를 쓰게 된 김석훈 PD였지만, 그의 표정은 그저 싱글벙글이었다.

“경위서를 써야 되는데~ 이런, 경위, 경위, 경위가 없구나~ 그럼 뭘 쓰지~”

<아육시> 시즌 2는 스타 PD 김석훈의 입지를 다시 한번 공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군자가 그 일등공신이었으니,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김석훈이었다.

경위서를 작성하는 그의 랩탑 배경화면은 유군자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우리 군자, 언제쯤 데뷔 음원 나오고 활동 시작하나아.”

이제 데뷔조 ‘7IN’은 김석훈 PD의 손을 떠났다. 이제 김석훈 역시 한 명의 덕후로 돌아가, 7IN의 활동을 기다리는 입장이 된 것.

일곱 선비들은 뮤직플래닛의 모기업, MP 산하 기획사인 ‘솔라시스템’으로 들어가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말이 데뷔 준비지, 지난 3개월 간의 여독을 풀기 위해 푸욱 쉬고 있었지만.

솔라시스템 소속의 ‘7IN’ 담당 직원들은 달랐다.

역대 최고로 흥행한 오디션에서 탄생한 그룹인 만큼, 매일 철야를 하며 데뷔 준비작업을 진행했다.

할 일은 태산처럼 많았다. 데뷔 앨범 준비, 방송 일정 세팅, 쇼케이스 준비, 팬과의 커뮤니케이션 창구 준비, 기타 등등···.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화두에 오른 것은 ‘7IN’의 세계관 설정.

최근 데뷔하는 아이돌 그룹은 모두 독자적인 설정을 가지고 있다. ‘7IN’은 오디션으로 데뷔한 만큼 별도의 세계관을 설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문제는 유군자였다.

“다 좋은데, 군자가 너무 튀어···.”

솔라시스템 기획팀장 서은우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7IN의 가장 강력한 힘이자 무기가 유군자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유군자의 미친 개성이, 아이러니하게도 신규 팬들의 몰입을 방해할 가능성이 존재했다.

오디션까지는 참신한 캐릭터였으니 재미로 넘어갔다 쳐도, 신규 팬들에게는 이야기가 다를 수 있다.

신규 팬 중엔 분명 <아육시>를 보지 않은 팬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겐 군자가 그저 뜬금없이 선비 행세를 하는 컨셉충으로 보일 테고.

물론 얼굴이 곧 개연성이 될 만큼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미모를 가진 유군자였다. 허나 서은우는 가능한 한 위험 요소는 줄이고 싶었다.

유군자의 캐릭터성을 조금 덜어내는 방향은 어떨까?

그 문제로 김석훈 PD와 대화를 나눈 서은우였지만, 곧 본인의 판단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김 PD님. 군자를 조금만 더 평범한 캐릭터로 만들어 보면 어떻겠습니까?”

“푸하핫, 서 팀장님 아직 군자 잘 모르시는구나.”

“···.”

“군자 걔, 일반인 오디션 처음 볼 땐 말 끌고 왔습니다.”

“···예?”

“지금도 많~이 평범해진 거예요.”

“···.”

“그렇게 쉽게 평범해질 녀석이라면 아마 결승전까지 큰절을 하진 않았겠지요? 그리고 군자는 그 똘끼가 매력인데, 왜 그걸 굳이 깎아 내려 하십니까.”

“···맞는 말씀이십니다.”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신규 팬들의 거부감을 줄이자고 매력을 덜어내 버리면, 기존 팬들은 분명히 실망하게 되겠지.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떠오른 것이 세계관이었다.

세계관을 설정한다면, 군자의 독특한 캐릭터성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되지 않을까.

기존 팬들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며, 동시에 새로운 팬들도 쉽게 몰입할 수 있을 만한 세계관을 만들어 주자.

세계관의 키워드를 뽑아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팀장님, ‘선비’는 어떨까요? 애초에 ‘일곱 선비들’로 묶인 친구들이잖아요.”

“흐음-.”

서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비, 그게 데뷔 멤버들을 관통하는 단어였다.

물론 모두 캐릭터가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각자 선비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아주 예의가 바르다거나, 무언가에 열중하며 정진한다거나, 여자 사람이라면 학을 뗀다거나.

꼭 누군가 인위적으로 그렇게 묶어 놓은 것처럼, 데뷔조의 인성은 선비 같았다.

그러나 그 키워드를 토대로 세계관의 스토리를 짜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판타지적인 세계관을 배경으로 탄생한 아이돌은 많았지만, 동양적인 세계관을 가진 아이돌은 거의 없었으니까.

며칠 동안 회의를 해도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고민 끝에 7IN 멤버들을 솔라시스템 사무실로 불러들인 서은우 팀장이었다.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무언가 답이 나올 수도 있다.

서 팀장을 만나자 마자 멤버들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벌써 많은 명성과 인기를 얻었지만 이들의 모습은 예의바른 소년 그 자체였다.

‘선비라는 키워드는 완전히 찰떡이군.’

그렇게 생각하며, 서 팀장은 그들의 고민을 설명했다. 군더더기 없는 설명의 끝엔, 멤버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다정한 어투로.

“···이렇게 고민 중인데.”

“아하.”

“혹시,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우리 좀 도와 줄 수 있을까요?”

일곱 소년 중,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군자였다.

“세계관이라··· 제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팬들이 몰입하기 좋은 배경 설정을 만드는 자리가 맞을지요.”

“예, 맞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터무니없어도 괜찮다는 말씀이신···.”

“그렇죠. 흡혈귀나 마법소년 같은 컨셉의 보이그룹도 있으니까요.”

“흐음-.”

잠시 턱을 매만지던 군자가 서 팀장을 바라보았다.

“제가 먼저 말씀드려도 될지···.”

“물론입니다.”

“때는 300여 년 전이었습니다.”

“?”

“문원 유씨 가문의 남자들은 모두 가무(歌舞)에 능했습니다.”

“??”

“그러나, 모두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의문의 병증에 의해 죽어 갔지요.”

“???”

“그 가문에서 태어난, 불세출의 천재 소년이 있었답니다.”

뭐지? 시작부터 그럴싸한데?

범상치 않은 시작에, 모두의 촉각이 바짝 곤두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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