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안방에서 만나는 박물관! 안녕하십니까, 입니다!”
아나운서 손석우의 힘찬 멘트와 함께 <명품진품>의 녹화가 시작됐다.
“요즘 가장 핫하고 트렌디한 아이돌이죠! 국악기를 이용한 다양한 퍼포먼스로도 화제가 된 ‘7IN’의 유군자 님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와아아아아아-.”
쏟아지는 박수 소리에, 군자가 수줍은 얼굴로 고개를 꾸벅꾸벅 숙였다. 스튜디오 뒤편엔 7IN 담당 매니저인 이용중, 기획팀장 서은우가 함께 앉아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담당 매니저만 파견시켰겠지만, 첫 방송 출연인 만큼 서은우 팀장도 동행했다. 담당 매니저 이용중은 나름 연차가 쌓인 실장급 직원이었음에도 불안함을 숨기지 못했다.
“팀장님, 군자 괜찮을까요?”
“괜찮을 겁니다. 인성 하나만큼은 검증된 친구니까.”
“그건 그렇긴 한데, 첫 방송이 <명품진품>이라니···.”
“···.”
짐짓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서은우 팀장 역시 불안하긴 매한가지였다.
그 동안 <명품진품>에 아이돌 멤버가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보통 <명품진품>에 출연한 아이돌들은 병풍처럼 서서 리액션만 하거나, 가벼운 개그를 던지며 웃음을 담당해 왔다.
사실 군자가 그 정도만 해 줘도 합격점을 줄 수 있었다. ‘최고로 핫한 아이돌이 명품진품에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될 테니까.
하지만 말실수를 하는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명품진품> 프로그램의 특성상 역사 이야기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역사에 관한 말실수는 제 아무리 신인 아이돌이라고 해도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
이 부분이 걱정되어 스튜디오에 오기 전에도 단단히 일러 둔 서은우 팀장이었다.
역사에 대한 말실수는 치명적이다.
잘 모르는 역사에 대해서는 그냥 일언반구도 하지 말아라.
신신당부한 서은우 팀장이었지만, 군자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럼 잘 아는 역사에 대해서는 말을 해도 괜찮을지요?”
“···그래요, 뭐 잘 알고 있다면···.”
“감사합니다!”
역사를 잘 안다면 오히려 좋은 이미지를 쌓고 갈 수 있겠지만, 글쎄. 서은우 팀장은 그저 불안하기만 했다.
스튜디오에 오자마자 자문인 원균상 교수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더니, 대체 무슨 말을 한 건지 그 이후로 원 교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군자를 노려보는 원 교수의 표정이 신경 쓰였다. 뭔가 말실수라도 한 건가?
그러나 군자는 그런 서은우 팀장의 마음을 모르는 건지, 그들과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으며 눈인사를 해 보였다.
“하하···.”
참 잘생기긴 했다. 병풍을 배경으로 있으니 저 고고한 얼굴이 더 빛나 보이는구나.
저렇게 카메라에 얼굴만 비추고 있어도 본전 이상은 칠 텐데. 제발 말실수만큼은 하지 말아야 할 텐데.
최대한 말을 아끼라는 뜻에서, 서은우 팀장은 입에 지퍼를 채우는 듯한 동작을 취해 보였다.
그러나 서은우 팀장의 동작은, 군자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전달되었다.
오오, 저것은 지퍼를 여는 동작 아닌가?
군자 역시 지퍼를 알고 있었다. 거문고를 처음 만났을 때, 친우들이 지퍼를 열어 주었지. 지금 서은우 팀장님이 취하고 있는 동작과 똑같았다.
입의 지퍼를 열라는 것은? 최대한 말을 많이 하라는 뜻이렷다.
참으로 은유적이고 세련된 표현법이구나!
팀장님의 의지를 받들어, 가능한 한 많은 말을 하기로 한 군자였다.
마침 원균상 교수와 이야기를 나눈 뒤 결심한 바도 있었다.
원균상 교수, 아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아 꽤나 권위 있는 석학일 테지.
그러나 군자와 이야기를 나눈 뒤, 원 교수의 표정은 그대로 썩어 버렸다. 자리로 돌아간 뒤에도 계속해서 불쾌한 시선을 보내 왔다.
군자가 그 시선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 의중을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래, 원균상 교수님은 아이돌인 내가 이 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불만인 것이다. 대단한 석학들이 모여 명품과 진품을 논하는 자리에, 새파란 얼굴의 젊은 놈이 끼어 있다는 것 자체가 싫으신 게다.
그러니 원 교수님께도 보여드려야 한다.
내 비록 나이는 젊지만, 옛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군자의 결심과 함께, 곧 오늘의 첫 번째 의뢰품이 모습을 드러냈다.
“첫 번째 물건입니다. 짧은 칼 세 점인데요, 겉보기로도 굉장히 만듦새가 좋습니다.”
“오오오···.”
물건을 보자마자 군자의 허리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세상에,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장도(粧刀)더냐.
‘장도’라고 읽지만 한문으로는 ‘단장할 장(粧)’ 자를 써서 장도다. 그렇기에 저렇게 짧은 칼을 장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은장(銀粧) 부분이 섬세하고 아름답게 세공된 것을 보아 틀림없이 훌륭한 장인의 작품이다. 걸작 수준까지는 못 되어도, 수작이라고 부르기엔 충분한 물건 아닌가.
“오, 장도(粧刀)가 나왔네요.”
사실 무기류는 강윤성 교수의 전문 분야였지만 이번엔 원균상 교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시선은 군자를 향하고 있었다.
“유군자 씨는 이런 물건을 본 적이 있나요?”
“네. 본 적 있습니다.”
“허헛-.”
군자의 대답에 원균상 교수는 헛웃음을 쳤다. 보긴 개뿔, 이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유물은 학자들에게도 흔한 물건이 아니다.
“은으로 장식한 장도··· 아마도 여자들이 주로 사용했겠지요?”
물론, 군자에게 창피를 주기 위한 노골적인 함정이었다.
은으로 장식된 장도, 얼핏 줄여 부르면 은장도(銀粧刀)가 되기도 한다. 은장도는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이 정도로 미끼를 던져 놨으니 아마 덥석 물 테지.
그러나 이 물건은 은장도와는 다른···.
“아니요.”
“···?”
허나 군자의 대답은 원균상 교수의 생각과는 달랐다.
“아마 이 물건은 남성이 착용했을 겁니다.”
“어,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칼 자체의 크기, 또 칼집에 가죽 줄이 감겨 있는 걸 보았을 때, 이것은 낭도(囊刀)가 아닌 패도(佩刀)로 보입니다.”
“!”
이번엔 원균상과 강윤성이 동시에 놀랐다.
특히 옛 무기와 무예를 주로 연구하는 강윤성 교수의 두 눈엔 거의 하트가 떠올라 있었다.
이걸 어떻게 알았을까. 오늘 나올 물건 목록을 미리 공유해 준 것도 아닌데.
그냥 꾹 참고 있으려 했지만 도저히 입이 근질거려서 참기가 어려웠다. 결국 이번엔 강윤성 교수가 입을 열었다.
“오, 그러면 낭도와 패도의 차이를 알고 있나요?”
“물론입니다. 낭도는 주머니 속에 넣거나 주머니 끈에 다는 용도의 작은 칼로, 여성이 주로 사용했지요. 반면 패도는 허리춤이나 옷고름에 차는 용도로, 주로 남성의 물건이었습니다. 아마도 저 가죽 줄을 이용하여 허리춤에 칼을 패용하였을 것입니다.”
너무도 올바른 추론이었다. 자문 교수인 강윤성이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훌륭하십니다.”
아까부터 강윤성 교수의 입은 귀에 걸려 있었다.
기특하다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지금 이 순간 그는 이 청년이 너무나도 기특했다.
고증이 뛰어난 무대로 조선 복식과 무예의 아름다움을 널리 전파한 것만으로도 고마워 죽겠는데, 이런 지식은 또 언제 쌓은 것인지.
어느새 강윤성 교수는 군자와의 대화에 푹 빠져들어 있었다.
“칼자루와 칼집엔 태극 무늬가 나뉘어 그려져 있네요?”
“네. 풍년과 다산을 상징하는 태극을 그려 넣었으니, 기복(忌服)의 의미도 가진 장도입니다.”
“칼자루엔 아무래도 가죽을 덧댄 것 같은데, 패턴이 아름답네요.”
“네. 반복적인 섬세한 무늬가 세공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뜨거운 가죽을 능화판(菱花板)에 찍어 아로새긴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상에, 능화판 기법도 안다고요?”
“예. 자주 봤기에 알고 있습니다.”
대화를 주고 받는 강윤성 교수와 군자를 보며, 카메라 뒤편의 사람들은 얼이 빠져 있었다.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책임PD 한구헌이었다.
“김 작가, 저 친구 뭐야?”
“그, 글쎄요. 저도 그 오디션을 안 봐서···.”
“혹시 조연출이 오늘 나올 물건들 스포한 거 아냐?”
“그럴 리가요. 절대 안 그랬습니다.”
“근데 어떻게 저런 걸 다 알고 있냐고. 공부를 해 왔다고 해도 대단한 건데···.”
“그러게 말입니다.”
“허어.”
<명품진품>만 10년 째 연출해 온 한구헌 PD지만 이런 케이스는 또 처음이었다.
젊은 게스트가 오는 날은 으레 모든 스태프가 긴장을 한다.
또 말실수 하는 건 아닌지, 만약 말실수를 했다면 그걸 어떻게 편집해야 할지.
허나 말실수는 커녕, 지금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거의 자문위원단 수준 아닌가.
“강 교수님이 괜히 섭외하자고 한 게 아니구나.”
한구헌 PD는 그제야 강윤성 교수의 호들갑을 이해할 수 있었다. 17세기 장도를 척척 감정해 내는 아이돌이라니! 이런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다.
마침 첫 번째 물건의 감정가 예측이 시작됐다. 모두가 500~600만원대의 감정가를 올린 가운데, 군자 혼자 100억 원을 적으며 또 한번 모두를 놀라게 했다.
“배, 백억이요? 유군자 씨, 진심입니까?”
“옛 물건에 담긴 가치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지요. 굳이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면, 백억으로 하겠습니다.”
“푸하핫, 풍부한 지식만큼 통도 큰 아이돌이네요!”
거기에 감정가는 무려 100억을 써 넣으며 예능감까지 챙겼다.
최종 감정가는 1200만 원. 군자가 쓴 100억 원은, 정답에 근접한 가격은 아니었으나 모두를 웃게 하기엔 충분했다.
“이거 특집으로 내보내야 되는 거 아냐?”
“그래도 될 것 같은데요.”
PD와 스태프들의 표정은 싱글벙글이었다.
핫한 아이돌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프로그램의 화제성은 올라간다. 그런데 그 아이돌이 뜻밖의 활약까지 보인다면? 화제성은 자연스레 두 배, 세 배로 올라갈 테다.
반면 원균상 교수의 상태는 심히 좋지 않았다.
함정을 파 놓고 군자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히려 함정 속 원균상의 머리만 짓밟힌 꼴이 되었으니까.
다음 유물로 나온 17세기 철화백자(鐵畵白磁)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군자 씨, 백자의 입구에 그려진 문양은 꼭 기왓장을 닮았지요?”
이번에도 군자를 골탕먹이기 위한 함정을 판 원균상이었지만.
“제 눈에는 국화꽃잎을 새긴 국판문(菊辦文)으로 보입니다. 안료의 발색을 볼 때, 현란한 청화백자가 아닌 정갈하고 질박한 철화백자 계통의 도자기군요.”
“!”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한 번 얼굴을 대어 봐도 될 지···.”
군자는 번번이 그가 파 놓은 함정을 쉬이 극복해 나가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목재로 제작된 가구네요. 유군자 씨, 이런 건 보통 장이라고 부르죠?”
“아니요, 층이 분리되기에 장이 아닌 농(籠)이라 합니다. 백동으로 장식한 물고기는 돔의 일종으로 보이는데, 어촌인 통영이나 포항 등지에서 제작된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제는 의뢰품이 나올 때마다 모두가 군자부터 쳐다보았다.
군자의 입장에선 즐겁기 그지없었다. 그저 아는 것을 이야기할 뿐인데, 이토록 많은 관심과 칭송을 받다니!
그런 군자를 보며, 솔라시스템의 서은우 팀장과 이용중 실장도 한 시름을 놓았다.
“···휴.”
“말실수 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는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오히려 교수님이 좀 밀리시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실장님, 목소리 줄이세요.”
“앗, 죄송합니다.”
이용중을 다그친 서은우 팀장이었으나, 사실 그도 내심 뿌듯했다.
아까부터 원균상 교수가 군자를 아니꼽게 쳐다보는 것이 그 역시 불편했으니까.
뭣하면 자신이라도 나서서 군자를 비호하려 했다. 그러나 군자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멋지게 그 위기를 극복해 냈다. 오히려 원균상 교수가 당황해 할 정도로.
이제는 그가 군자의 다음 활약을 기대할 정도였다.
“자, 이제 오늘의 마지막 물건 함께 보시겠습니다!”
MC의 멘트와 함께 마지막 물건이 들어왔다. 족자에 걸린 풍속도 한 점이었다.
“오오···.”
섬세하고 세련된 필치와 묵법으로 자아낸 초충(草蟲), 그 형태만 보아도 군자는 그것이 누구의 그림인지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이 분의 화풍을 느낄 수 있다니! 희열로 온 몸이 떨려 왔다.
그러나 원균상 교수의 의견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허어-.”
그림을 세세하게 살펴보던 원균상이 장탄식을 내뱉으며 첫 마디를 꺼냈다.
“보관 상태는 훌륭한데··· 이건 가품일 확률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