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83화 (83/303)

#83

애 있는 자리에서 무슨

음원 순위라. 군자 역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음악방송 경연이 현실의 무대에서 이루어진다면 음원 순위는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승부다. 수천, 수만의 현대 음악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자웅을 겨루는 비무대회인 셈.

바로 어제, 그 비무대회에서 민강후의 ‘페이버릿’이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제는 7IN의 음원 순위가 공개될 시간이다.

일곱 멤버들이 모두 태블릿 PC 앞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차, 차트 인은 했을까요···?”

“야, 당연하지. 티저 화력으로는 우리가 페이버릿 형들도 이겼잖아.”

“또 모르져, 페이버릿은 코어가 워낙 센 그룹이니깐.”

“현재 네가 웬일로 약한 소리를 다 하냐.”

“아하핫, 다들 긴장 풀어~ 잘 안 돼도 다음에 잘하면 되지~”

“이제 확인해 보자.”

“끄아악, 혀엉-!”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인혁이 음원차트 ‘라임’의 TOP100 차트를 클릭했다.

어제는 1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페이버릿은 어느새 내려와 5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초조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인혁이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다.

“제발, 제발···.”

머지않아 <근본 (Origin)>의 이름이 보였다. 타이틀곡의 음원 순위는 17위.

“—!?”

순위를 확인한 순간, 군자를 제외한 멤버들은 모두 벌떡 일어나 서로를 얼싸안았다.

“우와아아아아악, 혀어어엉—!!”

“현수 형, 형아가 해냈어여—!!”

“뭘 내가 해 내! 우리 다 같이 한 거지!”

“와, 와아, 이거 뭐야!? 미친 거 아냐—!?”

“아하하핫, 아하하하하하하핫-.”

멤버들이 모두 방방 뛰며 기뻐하기에 군자 역시 일어나 그 사이에 꼈다.

“하핫, 그래 그래. 다들 수고했다.”

다들 신나기에 덩달아 신나긴 했으나, 솔직히 상황이 온전히 이해된 것은 아니었다. 페이버릿 형님들이 1위를 했으니 못해도 10위 정도는 하고 싶은 군자였다.

17위라니. 솔직히 아쉬움이 남는 성적표다.

허나 동료들이 기뻐하니 군자 역시 아쉬운 마음을 버리기로 했다. 그래, 어떻게 첫 술부터 배부를 수 있을까.

그러나 표정까지는 제대로 숨기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 근데 선비 형아 표정이 왜 그래여?”

“그러게. 뭔가 만족 못한 얼굴인데?”

“아하핫, 군자는 17위로 만족이 안 되나봐~”

“아니, 그게 아니라···.”

솔직한 군자의 마음을 들은 현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군자의 등짝을 팡팡 쳤다.

“형아는 이게 매력이라니깐여.”

“음? 매력?”

“제일 잘하는 사람이 제일 아무것도 모르자나여.”

“군자, 내가 설명해 줄게.”

이어서 현수가 설명에 나섰다. ‘라임’ TOP100 차트 집계 방식 상, 음원 발매 직후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은 천상계 가수가 아닌 한에야 불가능하다.

신인, 중견 아이돌들은 대부분 80위권 언저리의 하단부터 시작하여 하루 동안 치고 올라가는 것이 보통.

어제 1위를 했던 페이버릿도, 진입 당시의 순위는 60위권이었다는 사례까지 덧붙였다.

“페, 페이버릿 형님들도 60위권이었다라?”

“그래, 그런데 우리는 17위잖아. 이거 엄청난 거라니깐.”

“게다가 은 23위, <예의없는 것들> 28위, <몽중화> 33위, 41위. 전 곡 차트 인이라고!”

“!”

그제야 동료들이 얼싸안고 기뻐한 이유를 깨달은 군자였다. 게다가, 즐거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라임에서 17위라면 핵스랑 알라딘에선-.”

다른 차트인 ‘핵스뮤직’, ‘알라딘’에선 다른 방식으로 순위를 집계한다. 아직도 실시간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수의 비중이 매우 높은 집계 방식.

즉, ‘라임’과 다르게 발매와 동시에 최상위권에 올라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유찬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핵스뮤직’ 차트를 열었다. 이번엔 스크롤을 내릴 필요도 없었다. 차트의 최상단에 그들의 이름이 있었으니까.

“——!?!?”

“우와아아아아아아악—.”

데뷔 1시간 만에 첫 1위.

리얼리티 카메라가 그들을 찍고 있었음에도, 멤버들은 숙소 거실에서 뒤엉켜 난리가 났다.

“우왁, 시··· 아오, 나 욕 할 뻔 했어—!!”

“안 돼! 태웅, 정신 차려! 너 아이돌이야!”

“이, 일 위예요! 형, 군자 형! 웅이 형!”

이어서 확인한 ‘알라딘’ 차트에서도 <근본 (Origin)>은 1위에 올라 있었다. 페이버릿의 신곡 순위를 가볍게 뛰어넘은 결과였다.

“아, 알라딘도 1위예요! 혀, 형들, 우리 1등이에요!”

“미쳤다, 이게 진짜라고?”

“와아, 와아아···.”

그제야 군자의 얼굴에 진짜 미소가 번졌다. 그 티 없이 방글방글 해맑은 미소를 보며 멤버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핫, 쟤 잇몸 보이는 거 봐라.”

“이 형아가 은근히 야망 있다니까여.”

“군자야, 1등 해서 좋냐!”

신난 표정으로 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좋지!”

경쟁보단 화합이 좋은 군자였지만, 어차피 비무대회에 나갔다면 1위를 하는 것이 좋았다. 일단 시작한 이상 대충 하다가 끝내긴 싫으니까.

게다가, 모두가 열심히 노력하여 만든 음악이지 않은가.

군자는 최상단에 박힌 7IN의 이름을 보고 또 보았다. 그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괜히 가슴이 뭉클해졌다.

“다들, 그 동안 수고 많았다.”

군자는 동료들을 한 번씩 꽉 안아 주었다. 아직 열일곱인 유찬은 이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유찬아, 웃는 거냐 우는 거냐.”

“···모, 모르겠어요. 내,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당연히 되지.”

“···그, 그래요?”

“그럼, 넌 효자잖니.”

“아, 맞다. 어, 엄마!”

그제야 정신이 든다는 듯, 유찬은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음원 1등 소식을 전했다. 통화 내용을 들어 보니, 유찬의 부모님도 이미 진작에 음원 1위 소식을 알고 계신 듯 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문안 전화를 드리는 군자지만,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부모님이 생각났다. 기쁜 소식을 전할까 싶어 전화기를 들었는데, 마침 어머님께 전화가 걸려 왔다.

“어머님.”

- 군자! 1위 너무 너무 너무 축하해!

“···감사합니다.”

- 감사는 무슨, 내가 더 감사하지. 군자야, 내 아들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 요즘 엄마 아빠 어깨가 아주 파워숄더 돼서 내려가지가 않네!

“···.”

1위 소식에 그저 웃기만 했는데,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괜히 울컥해져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내 아들로 태어나 주어 고맙다는 말이 참으로 따뜻했다. 서로 감사한 마음을 주고받는 부모 자식 지간이라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군자가 소매로 눈물을 훔치자, 물구나무를 서서 발박수를 치며 돌아다니던 태웅이 성큼성큼 두 팔로 걸어왔다.

“뭐야, 너 우냐?”

“아냐, 안 운다.”

“부모님이랑 전화했지? 뭐라시는데?”

“부모님 어깨가 파워숄더가 되셨다더구나.”

“뭐? 그게 뭔 소리야?”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 뭐,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갔다! 그런 뜻 아닐까?”

“···그래, 그런 것 같다.”

군자가 코를 킁 들이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런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는지,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었다. 앞으로도 이 친구들과 함께라면 어떤 성과든 이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멤버들이 아직 차트 1위의 감동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던 때.

숙소 문이 덜컥 열리며 이용중 실장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얘들아, 1위 축하한다!”

“실장님, 감사합니다-!”

“신나는 와중에 이런 말 미안하긴 한데, 스케쥴 가야 되거든!”

“넵!”

“자, 쇼케이스 가자! 기자님들이랑 팬 분들 만나러 가야지!”

“네엡—!!”

멤버들은 파이팅 넘치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본격적인 미니 1집 활동의 시작이었다.

* * *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마치고, 쇼케이스장으로 향하는 차 안.

멤버들은 모두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마 어제 새벽까지 이어진 쇼케이스 공연 연습의 여파일 것이다.

“자는 것도 예쁘게들 자는구만.”

룸미러로 멤버들을 돌아보며 이용중 실장이 픽 웃었다.

실장이라는 직함, 꽤나 높은 연차에도 로드까지 뛰어야 한다는 현 상황이 불만스러울 수도 있었으나, 이용중은 7IN과 함께 일하는 것이 꽤나 즐거웠다.

지금까지 꽤 많은 아이돌 그룹을 보아 왔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친구들은 또 처음 보는 이용중이었다.

당장 쇼케이스 준비 회의 때만 해도 그랬다.

상사인 서은우 팀장은 멤버들의 의견을 가장 존중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었다. 쇼케이스에서도 혹시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은 없는지, 멤버들을 불러 직접 물었다.

다른 멤버들은 딱히 아이디어가 없는 듯 했지만, 군자는 달력을 보며 눈을 빛냈다.

“2022년 7월 13일이라··· 음력으로 6월 15일이군요.”

“네, 달력을 보니 그렇네요.”

커다란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달력을 보던 군자가 낮게 읊조렸다.

“유두.”

“?”

“그 날은 유두(流頭)입니다.”

“에?”

갑작스레 등장한 유두라는 단어에, 항상 평정심을 잃지 않던 서은우 팀장도 안경을 고쳐쓰며 심호흡을 해야 했다. 그러나 군자는 한없이 진지했다.

“유··· 뭐라고요?”

“유두.”

“후우,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군요.”

“저는 쇼케이스 현장에서 유두 잔치를 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어서 유두 잔치까지 나오자 몇몇 여자 팀원들은 마시던 음료수를 뿜으며 물대포를 쐈다. 군자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으로 꺽꺽대고 있었다.

오로지 군자만이 한없이 진지하며 경건한 모습이었다.

“유두 잔치?”

“예.”

“···그걸로 잔치까지 하자고요?”

“그렇습니다.”

군자의 난데없는 제안에 서은우 팀장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갑자기 젖꼭지 타령을 하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유두 잔치? 지금 쇼케이스 현장에서 찌찌파티를 하잔 말인가?

그러나 서 팀장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할 일을 하나씩 해 나갔다.

우선 정신없이 흔들리던 본인의 입꼬리와 동공 먼저 안정시키고.

“정숙해 주세요. 중요한 안건입니다.”

“푸흡, 크흐읍, 네···.”

잠시 혼란해진 회의실 분위기를 가다듬고.

“유군자 씨, 좋은 의견 고맙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군자를 진정시켜야 했다.

“하지만 유두 잔치는 어려울 것 같네요.”

“어째서입니까?”

“간단합니다. 7IN은 신인 아이돌이니까요.”

“예?”

“인터넷에서 뭘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치고 나오는 웃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서은우 팀장이 말을 이었다.

“찌찌파티는 신인 아이돌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

“?”

“···??”

“??”

찌찌파티라는 단어에, 군자는 대체 무슨 말을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서은우 팀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찌찌···파티?”

“예.”

“그건 또 무엇입니까?”

“···유두 잔치가 찌찌파티 말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예에?”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군자가 반문했다.

“팀장님은 무슨 그런 숭한 말씀을 하시는지요?”

“!”

“음란한 분···.”

순간 서은우 팀장의 얼굴이 귀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말문이 턱 막힌 서 팀장을 대신해 군자가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말한 유두는 그 유두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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