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95화 (95/303)

#95

두 명의 유군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보상은 포인트였다.

[첫 번째 보상 : 2포인트]

실로 오랜만에 얻는 포인트였다. 오디션 이후로는 꽤나 오랫동안 포인트 획득 임무가 없었으니까.

연습을 통해 실력을 끌어올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포인트를 활용한다면 보다 간단하게 노래와 춤의 숙련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군자는 모처럼 자신의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사용자 : 유군자]

[용모 : S-]

[노래 : B-]

[춤 : B+]

[매력 : A+]

오디션 초기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그러나 아직도 노래와 춤은 B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다.

군자는 망설임 없이 노래와 춤에 각각 하나의 포인트를 투자했다. 이제 노래는 B, 춤은 A-까지 상승했다. 팀내 메인 댄서, 메인 보컬들과 비교해 봐도 밀리지 않는 수치다.

이제는 어떤 공연을 하더라도 최소한 뒤쳐질 일은 없겠지.

군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 정도까지만 해도 충분히 만족스런 보상이었다. 그러나 상태창은 아직도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두 번째 보상 공개.]

[무엇이든 돌아보세요]

[원하는 인물의 과거 일부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

상태창은 마치 군자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최적의 보상을 내놓았다.

항상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하고 신기한 군자였지만, 지금 이 순간 군자에게 가장 큰 호기심은 이 몸의 전 주인인 ‘유군자’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부모님의 과거, 동료들의 과거도 궁금하긴 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딱 한 명의 과거를 볼 수 있다면···.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당연히 이 몸의 전 주인인 ‘유군자’의 과거를 보아야겠지.

그 사이 상태창은 또 하나의 보상을 출력하고 있었다.

[세 번째 보상 공개.]

[진정환]

[상태창(常太瘡)의 폭주를 일시적으로 진정시켜 줍니다.]

“!”

이것 역시 상상도 하지 못했던 보상이다.

병증의 폭주를 진정시켜 준다니. 그 문구를 보고 나니 비로소 잊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 상태창은 근본적으로 창병(瘡病)이다. 그것도 한 가문 남자들의 씨를 모조리 말려 버린 무시무시한 병증이지.

군자의 친아버지도 그 병으로 죽었다. 숙부 유형원도 아마 군자가 현대로 떠나 온 뒤 머지않아 죽었을 것이다.

이런 보상을 준다는 것은, 언젠가 군자의 상태창도 병증으로 폭주할 수 있다는 뜻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소름이 돋았다. 지금까지 친구라 생각하며 동고동락(同苦同樂)해 온 창이가, 다시 병이 되어 나를 죽일 수도 있다니.

“창이야, 이 보상은 무엇이냐.”

···우우웅···.

“병 주고 약 준다더니, 딱 그 꼴 아니더냐.”

···우웅, 우웅···.

“그래도 내게 이런 보상을 준다는 것은, 너 역시 나를 친우(親友)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느냐.”

···우우우우웅···.

길고 선명한 공명. 이것은 동의일까, 아니면 반대일까.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오랜 친구를 믿을 수밖에 없는 군자였다.

세 번째 보상은 언젠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보상을 먼저 사용하는 것이 옳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군자가 다시 한번 상태창을 불러냈다.

“창아, 유군자의 과거를 보여 다오.”

···우우웅···.

“내가 아닌, 현대에 태어나 이 몸의 주인으로 살다가 죽은 유군자 말이다.”

···우웅, 우우웅···.

상태창은 군자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작게 공명하며 빛났다.

뒤이어 형광의 불빛이 순식간에 군자의 몸을 감쌌고, 군자는 무의식의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

···.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군자의 부모님이었다.

행복한 웃음 소리가 들려 왔다. 부모님의 얼굴엔 근심 하나 보이지 않았다. 소년 유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의 말씀대로, 어린 군자에겐 어떠한 문제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내내 행복한 순간만이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유년 시절이 지나자 풍경은 다소 어두워졌다. 이제 사춘기를 맞은 군자의 표정에도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소년 시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영상은 마치 술 마신 다음 날의 기억처럼 뚝뚝 끊겨 있었다. 삶의 모든 순간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보였다. 마냥 밝고 행복했던 유년기의 군자를 바꿔 놓았던 사건이.

···제 꿈은 멋진 아이돌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돌? 군자 네가···.

놀랍게도, 이 몸의 원 주인 역시 같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재능이 없어 보였다.

소년 유군자는 친구들 앞에서 춤 추고 노래하기를 두려워 하지 않았다. 때는 중학교 3학년의 발표 시간이었다. 부모님에게도 말한 적 없었던 자신의 꿈을,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처음으로 내 보인 거다.

그러나 결과는 그의 예상과 조금 달랐다.

···와하하하···.

웃음소리는 조소에 가까웠다. 그 누구도 군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지 않았다. 심지어 교탁에 앉은 담임 선생님까지도.

웃음으로 끝났다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 그 날부터 군자는 조롱의 대상이 됐다. 힘 세고 불량한 학생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쉬는 시간마다 춤을 추고 노래를 해야 했다.

“저런 고얀···.”

무의식 속에서도 군자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 누군가의 꿈을 비웃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수치심을 주다니.

그 와중에도 이 몸의 전 주인인 유군자는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는 것이 싫은 모양이었다. 부모님에겐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유일한 꿈이 끔찍한 놀림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은, 16살 소년에겐 견디기 힘든 현실이었다.

그렇게 군자는 천천히 어둡게 변해 갔다.

방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며, 부모님에게도 점점 못된 아들이 되어 버렸다.

과거를 돌아보는 내내 군자는 그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마치 그 순간만큼은 과거와 현재의 군자가 한 몸이 된 것 같았다.

이제는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아 버린 그였지만, 그럼에도 꿈에 대한 미련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비좁은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군자는 노래도 없이 춤을 추고 소리 없이 입을 뻥긋거렸다. 모든 동급생들을 웃게 만든 춤사위였지만, 군자는 그것이 한없이 슬퍼 보였다.

···억울해, 억울하다···.

그의 생각이 군자의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가무의 재능을 타고난 군자로서는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삶이었다.

춤과 노래를 즐기고 싶어도 숙부 때문에 그러지 못했던 유군자.

마찬가지로 가무를 즐기고 싶어도 재능을 가지지 못했던 유군자.

둘 중 누가 더 불행한지 군자는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그와 자신의 삶은 어딘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몸으로 빙의하게 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군자가 그것을 깨달은 순간, 화면은 정신없이 전환되며 그 후의 삶을 비추었다.

점점 더 비뚤어지고, 부모님과 반목하고.

유일한 탈출구로 오토바이를 선택했으나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끼이익···.

···콰아아아앙···.

사고 장면을 마지막으로 기억은 끊어졌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빠져나온 군자가 눈가를 스윽 훔쳤다. 어느새 눈가는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제야 이 몸의 전 주인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았다. 우리는 같은 꿈을 가지고 있었구나.

SNS 암호를 입력하는 장면을 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정답을 알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노트북을 연 군자가 트위티 페이지에 접속했다.

[Jayookoon1215]

이미 입력된 계정명, 그 아래에 군자가 비밀번호를 천천히 입력해 나갔다.

Dkdlehf, 한/영 키를 누르지 않고 친 ‘아이돌’. 그 뒤엔 숫자 1215를 붙였다.

[환영합니다, Jayookoon1215!]

“!”

군자의 추리가 들어맞았다. 이 몸의 전 주인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은 꿈이다. 그렇기에 좁은 방에 스스로를 가두고도 그 꿈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겠지.

비공개 계정이었으나, 계정의 주인은 그 안의 게시물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군자는 가장 오래된 게시물부터 찾아 하나씩 눌러 보았다.

···2019년 10월 21일 셀프캠입니다···.

게시물의 정체는 자신의 춤을 직접 찍은 셀프 캠 영상이었다.

“···.”

군자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군가의 가무를 평가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눈으로 보기에도 영상 속 춤사위는 형편없었다.

팔다리는 정처없이 삐걱거렸고, 속삭이듯 부르는 노랫소리는 아주 작은 호흡을 사용했음에도 숨이 차 보였다.

그러나 군자는 웃지 않았다. 웃을 수 없었다. 그가 얼마나 진지했는지 보였기 때문에.

영상은 SNS 타임라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2019년부터 시작하여 2020, 2021년까지.

···2020년 4월 26일 셀프캠입니다···.

···2021년 1월 31일 셀프캠입니다···.

이 방구석에서 보낸 긴 시간 동안, 몸의 옛 주인은 틈만 나면 셀프캠을 찍었다.

···2021년 2월 14일 셀프캠입니다. 언젠가는 실력이 늘 수 있을까요···.

종종 사담이 담겨 있는 셀프캠 영상도 있었다. 그런 영상이 있었기에 ,군자는 단 하나도 빼 놓지 않고 모든 영상을 시청했다.

···2021년 3월 4일 셀프캠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 아이돌에 집착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2021년 4월 21일 셀프캠입니다. 어제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주 멋진 아이돌로 데뷔하는 꿈이었습니다···.

···2021년 5월 30일 셀프캠입니다. 날 괴롭혔던 아이들의 SNS를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아직도 그 시절의 나를 아무렇지 않게 조롱하는···.

그렇게 말하며, 영상 속 주인공은 분노로 몸을 떨었다. 군자 역시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 썩을 놈들···.”

자신이 아는 가장 강도 높은 비속어를 내뱉으며 군자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아마 이 놈들은 아직도 잘 먹고 잘 살고 있겠지.

언젠가 만날 수만 있다면 이 몸의 전 주인을 대신하여 반드시 응징하리라.

영상을 보면 볼수록 군자의 다짐은 굳었다. 이 몸의 전 주인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아이돌로서 성공하고 말겠다고.

그렇게 하나씩 영상을 보던 중.

···2021년 11월 12일 셀프캠입니다···.

한 셀프캠 앞에 삽입된 사담이, 군자의 온 몸을 굳게 만들었다.

···나도 문원 유씨 가문이었다면···.

···얼마 못 살아도 좋으니, 문원 유씨 같은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면···.

영상 속의 ‘옛 유군자’는 문원 유씨 가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현대인이라면 절대로 알 수가 없는, 과거의 전설 같은 그 가문에 대하여.

순간 머리가 혼란스러워진 군자였다.

이 몸의 전 주인이 문원 유씨에 대해 알고 있다? 대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차, 군자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동료 권태웅의 전화였다.

- 군자야.

“으음, 무슨 일이냐.”

- 인터넷 봤어?

“인터넷?”

- 아직 못 봤구나.

“무슨 일이기에.”

- 너, 과거 동창 썰 떴어.

“!”

- 일단 숙소로 와. 혼자 보지 말고.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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