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우리가 너 죽게 안 놔둔다!
사흘 전 솔라시스템 사옥 연습실, 7IN과 영의정은 댄스브레이크 파트를 만드는 데에 한창이었다.
“자, 선배님! 다시 셋, 넷, 여기서 팍!”
“팍! 이렇게?”
“근데 여기서 가슴이랑 골반이 반대 방향으로 가야 돼요.”
“가슴이랑 골반이··· 아, 쉽지 않네.”
일단 무대 위에 올라가면 200%의 활약을 펼치는 영의정이었지만, 그녀에게도 힘든 부분은 있었다. 특히 댄스브레이크 구간처럼 온전히 스킬풀한 안무에 100% 집중해야 하는 구간이 그랬다.
“선배님, 그럼 이 구간 안무를 조금 덜어낼까요?”
“아, 나 민폐 끼치는 건 싫은데.”
“민폐 아녜여 누나. 우리 콜라보 하는 거자나여. 서로 돕는거져.”
“하아··· 일단 알았어. 나 연습 한 번만 더 해 보구.”
쉬는시간에도 영의정은 댄스브레이크 구간 안무를 연습했지만 안무가 몸에 쉽게 익지 않는 모습이었다. 짐짓 태연한 척 했으나 모든 멤버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나, 잠깐 쉬었다 해여.”
“후, 그럴까?”
“넹. 음료수도 좀 마시구여.”
“으으, 잘 안 되네. 요런 춤이면 자신있는데···.”
잠시 연습을 멈춘 영의정이 반쯤은 장난으로 다른 춤을 춘 순간이었다.
파앗, 파앗-.
유행한 지 20년이 다 된, 올드한 느낌의 팝핀 루틴.
확실히 ‘옛날 춤’이긴 했지만, 군자가 보기에는 그 춤이 영의정에게 훨씬 편안해 보였다.
“오오?”
“왜 군자, 너도 팝핀 할 줄 알아? 이거 엄청 옛날 루틴인데.”
“대감 마님, 이 춤을 출 때 훨씬 편안해 보이십니다.”
“아, 이거는 뭐 우리 때 유행한 춤이니까. 친구들이랑 맨날 이것만 연습했는데, 못하면 안되지.”
“흐으음···.”
또 영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듯, 군자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이번 임무는 ‘게임’이라는 가상세계를 표현해 내는 것이 목적 아니던가.
대감 마님은 이 춤이 옛날 춤이라며 부끄러워 하시지만, 내가 보기엔 게임이라는 주제에는 꽤나 어울리는 것 같구나.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군자가 안무창작 담당인 태웅과 유찬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대감 마님의 이 춤 말이다, 우리의 안무로 적용시켜 볼 수는 없을까?”
“댄브 구간에 팝핀 루틴을 넣자고?”
“···파, 팝핀을 이용해서··· 게, 게임 캐릭터··· 움직임을··· 표현해 보자는 말이죠?”
“오, 그건 괜찮은 것 같은데. 좀 올드하긴 한데, 오히려 8비트 샘플이랑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저, 저도 동감이에요···.”
“원래 이런 세기말 갬성이 또 사이버틱한 음악이랑은 잘 묻거든.”
“세기말? 사이버틱? 아무튼 잘 되었다는 뜻이지?”
태웅과 유찬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을 보며 군자도 따라 웃었다. 그 동안 몇 번이고 느꼈던 전화위복의 기운이었다.
“누님! 의정 누님! 팝핀 한 번만 다시 보여 주시겠슴까!”
“엥? 팝핀을?”
“저희가 그 루틴을 댄브에 좀 응용해 보려고 하는데요.”
“진심? 이거 진짜 구닥다리 춤인데?”
“에이, 누님이 추면 구닥다리가 아니라 클래식이죠 클래식.”
“어머, 얘 말 하는 거 좀 봐.”
태웅과 유찬은 빠르게 팝핀 루틴을 전수받은 뒤, 동작 사이사이에 세련된 무브를 추가하여 ‘요즘 안무’로 재탄생시켰다.
“근데 얘들아, 이거 문제가 있는데.”
“네? 문제요?”
“이게 관절을 너무 튕기는 춤이라 그런가, 한 네 루프 넘어가면 삭신이 쑤셔서 동작 퀄리티가 떨어지더라고.”
“···선배니임···.”
“누나, 무슨 그런 슬픈 말씀을···.”
“늙으면 몸 고장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봐, 하하.”
안무창작 팀 옆에 쪼그려 앉아 있던 군자가 ‘고장’이라는 단어를 듣자 마자 아이디어를 냈다.
“고장이라?”
“으응 군자야, 누나가 고장이 나 버렸다.”
“그럼 애초에 고장난 무언가를 묘사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오잉? 고장난 걸 묘사하자고?”
“예. 동작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시점에, 음악도 같이 멈추며 쉬어 가는 겁니다.”
실로 터무니없는 아이디어처럼 들렸으나, 이번에는 작곡팀인 지현수와 나우리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잠깐, 잠깐만. 고장난 캐릭터를 묘사하자고? 아예 음악에 브레이크를 걸면서?”
“현수야, 넌 어떻게 생각하니? 난 아주 괜찮은 아이디어 같은데.”
“저도 동감이에요. 원래 비트 드랍되면서 음악 브레이크 걸리는 편곡이 임팩트 주기에 가장 좋잖아요.”
“맞아. 게다가 자연스럽게 내 와이프의 에이징 커브도 극복 가능하고.”
“진짜 군자는 아이디어 천재가 확실하구만.”
비트 드랍? 브레이크? 에이징 커브?
이번에도 모르는 단어 투성이였지만, 어쨌거나 작곡팀의 표정을 보니 일이 또 잘 풀리게 된 것 같았다.
뜻밖의 참신한 아이디어들 덕분에, 막혀 있던 댄스브레이크 구간은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십덕(十德)>의 약점이 될 것 같았던 구간은 어느새 필살기가 되어 가고 있었다.
거기에 본 무대에선 나우리의 전자 마림바 연주가 가미되었다.
지잉, 지이잉-.
페달을 밟을 때마다 소스가 바뀌며 다른 전자음을 내는 신비한 마림바 소리. 멤버들의 레트로한 팝핀 댄스는 정박을 칼같이 비집고 들어오며 음악과 어우러졌다.
다시 한번 동작이 정지함과 동시에 비트 드랍. 이번엔 은은한 공간 조명까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칠흑 같이 변한 무대 위에, 네온의 윤곽선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트론 댄스!”
심사위원석의 누군가가 무의식 중에 소리쳤다.
트론 댄스(Tron dance).
완전히 어두워진 무대 위에서, LED 조명을 퍼포머의 몸에 부착하여 마치 LED로 이루어진 인간이 춤을 추는 듯한 효과를 내는 무대 기법이다.
셔터쉐이드 선글라스가 한창 유행하던 2000년대 후반 등장하여 이제는 유행이 다소 지난 기법이었지만, 다시 등장한 팝핀 루틴과는 찰떡궁합을 자랑했다.
우웅, 우우우웅—.
캄캄한 어둠 속, 형체가 사라지고 LED로 이루어진 윤곽선만이 남은 멤버들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LED 조명의 점멸은 마치 특수효과를 무대 위에 직접 구현해 놓은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LED가 차례로 점멸하자, 마치 멤버들이 무대 위에서 순간이동을 하는 듯이 보였다. LED의 형태와 색깔이 바뀌니, 멤버들이 순식간에 변신이라도 한 것 같았고.
와아아아아아아—.
도술 같은 환상적인 무대에 관객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심사위원단도 모처럼 보는 하이 퀄리티의 트론 댄스 루틴이 반갑다는 듯 박수를 보냈고.
네온으로 가득했던 댄스브레이크 구간이 끝난 뒤, 마이크를 잡은 인혁과 현수가 쩌렁쩌렁한 발성으로 변주된 후렴을 제창했다.
I Got Too Many Virtues,
I Got Too Many Virtues-.
Imma 예의 바른 Persons,
아마 이것이 우리의 법률-.
모두가 이 무대를 즐기는 동안, 박영제는 내내 심기가 불편한 듯 미간만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2022년에 트론 댄스가 뭔···.”
작은 목소리로 불평을 내뱉어 보았지만, 이미 그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7IN - 영의정의 두 번째 신곡에 푹 빠져든 것 같았다. 심지어 그의 새로운 파트너 하연진까지도.
“와아-.”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었으나 타박을 삼킨 박영제였다. 솔직히 인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무대였다. 대체 어떻게 2주 만에 이런 걸 만들어 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오죽하면 파트너마저 넋을 놓고 있을까.
그 무대를 보고 있으니, 고음 떡칠로 무대를 꾸민 자신이 새삼 초라하게 느껴졌다. 무대 퀄리티에선 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애초에 잘못된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무대를 마친 뒤, 땀범벅이 된 채 엔딩 포즈를 취하고 있는 유군자가 박영제의 눈에 들어왔다.
대체 언제 저렇게 늘어 버린 거지? 그 지독한 재능 쓰레기가?
박영제의 입장에선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정말 영혼이라도 바뀐 건가.
그러나 군자의 과거를 모르는 심사위원들은 그저 이 무대를 조금이라도 더 칭찬하고 싶을 뿐이었다.
“와우, 또 시청률 폭발하겠는데요!”
잔뜩 흥분한 MC 정해진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극찬 세례가 쏟아졌다.
“일단 이 팀은 주제 선정부터 매번 너무 재미있어요. 오덕에 오덕을 더해 십덕이라, 바로 전 경연곡 <유교우먼>과 이어지는 유교 세계관, 뭐 그런 건가요? 영의정 님이 칠린의 세계관을 받아들여서 이런 무대를 하시는 것도 너무 흥미롭고, 또 두 팀이 이렇게 잘 어우러지는 것도 너무 재미있네요!”
주제 선정부터 시작된 칭찬은 곧 편곡과 연주로 이어졌다.
“이번에도 편곡이 정말 좋았습니다. 크레딧 보니까 편곡에 지현수 님이랑 나우리 님이 같이 올라가 있던데, 두 분이 공동 작업 하신 건가요? 8비트 게임 사운드 소스를 재치 있게 잘 썼어요. 근데 또 베이스라인이 탄탄하니까 곡이 유치해지지가 않아. 개인적으로는 너무 좋게 들었습니다. 지현수 씨의 편곡 능력은 매번 감탄이 나오네요.”
댄스브레이크 구간을 장식한 팝핀 루틴, 휘황찬란한 트론 댄스도 빠질 수 없었다.
“와, 나 영의정 누나가 손목 팡팡 튕길 때 울 뻔 했잖아요. 우리 의정 누나가 옛날부터 팝핀 하나는 진짜 기깔나게 췄는데, 이번엔 칠린 멤버들이 거기에 잘 맞춰서 멋지게 댄스브레이크 구간을 만들어 낸 것 같아요. 거기에 트론 댄스! 크으, 이건 뭐 내 세대 퍼포머들이면 다 추억 여행 했을 거라 확신합니다. 어설프게 따라한 트론 댄스가 아니라 더 좋았어요. 너무 너무 멋있었습니다. 오늘도 단연 최고의 무대였어요.”
극찬이 쏟아질 때마다 박영제의 시선은 점점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로 앞 무대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는 심사평엔 화까지 울컥 치밀어 올랐다.
내가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이 프로그램을 계속 해야 하나?
평소 같았으면 다음 무대에서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다짐을 했을 테다. 그러나 이미 박영제는 투쟁심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울화통이 터지긴 했지만, 이제 박영제는 7IN - 영의정 조합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화제성, 무대 퀄리티, 그 어떤 분야에서도 박영제는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짜증나긴 하지만, 이쯤에서 탈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침 유군자 외의 두 팀도 나름 준수한 무대를 해내며 선방한 참이었다. 그에 비해 고음만 비벼 놓은 박영제의 무대는 심사위원들에게 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자, 그러면 2차 경연 심사위원 점수부터 공개하겠습니다!”
그 부정적인 심사평을 반영하듯, 박영제의 점수는 네 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아아, 박영제 - 하연진 조합이 4위를 기록합니다··· 안타깝습니다.”
겉으로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박영제였다.
그래, 차라리 잘됐다. 여기서 그만두자. 이제 더 이상 저 미친놈들과 엮이기 싫으니까.
“자아, 그럼 이제 온라인 사전투표 결과와 현장 방청객 투표결과를 합산한 최종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노래해 듀오>, 결승전에 오를 두 팀은!”
당연히 탈락이겠지. 심사위원 점수에서 저렇게 차이가 나 버렸는데.
달관한 듯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영제였으나.
디리리리리링···.
어째, 올라가는 스코어보드가 심상치 않았다.
“···어?”
2차 경연을 앞두고 터진 학폭 논란, 갑작스런 파트너 교체, 강력한 라이벌 7IN과 영의정.
박영제에게 닥친 모든 악재가, 그의 팬덤을 굳건히 뭉치게 만들어 버린 거다.
“어어, 올라갑니다! 박영제 - 하연진 조합의 투표 수가 계속해서 올라가는데요!?”
방청객의 팬들이 박영제에게 엄지를 치켜올려 보였다. 방청석엔 평소보다 두 배는 많은 박영제 응원봉이 흔들리고 있었다.
영제야, 우리가 너 죽게 안 놔둔다!
결승 가서 제대로 보여주자구 영제야!
“···이런 씨···.”
팬들의 충성도가, 박영제를 원치 않는 길로 떠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