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113화 (113/303)

#113

해명

“어어, 점수 계속 올라갑니다! 대단합니다! 역시 경연 고음불패의 법칙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걸까요!?”

끝을 모르고 솟구쳐 오른 박영제 - 하연진 조합의 점수는 끝내 2위까지 올라섰다. 7IN - 영의정 조합을 제외한 나머지 두 팀은 확실히 앞지른 것으로 보였다.

“잠깐만요, 이렇게 되면 심사위원 점수 순위가 뒤집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MC 정해진의 말처럼 고음이 경연에서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박영제의 약진은 전적으로 그의 팬들에 의한 것이었다.

방청석에 옹기종기 앉아 두 손을 맞잡은 박영제 팬들의 의지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어떻게든 박영제를 살려야 한다.

유군자의 한시가 뜨고, 학폭 논란이 제기되고, 베리타스의 혜진에게 손절당하는 와중에도 팬들은 박영제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 순간 박영제가 느낄 고충을 생각하며 함께 속앓이를 했다.

이럴 때에 우리가 영제의 힘이 돼 줘야지.

영제야, 어깨 펴도 돼! 저 이상한 컨셉충한테 기 죽지 마!

팬들이 보낸 작은 힘이 모여 박영제를 위로 밀어올렸다. 정작 박영제 본인은 탈락을 바라고 있었으나, 단단히 집결한 팬덤 화력은 결국 그의 이름을 2등에 올려 놓고 말았다.

“뒤집어졌습니다! 최종 순위 2위는 박영제 - 하연진 조가 차지합니다! 놀라운 막판 뒤집기입니다! 팬의 사랑이 가수를 살려 냈군요!”

와아아아—.

박영제 팬 방청석 쪽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박영제의 파트너인 하연진 역시 시무룩한 얼굴을 활짝 펴며 방방 뛰었다.

“오빠 오빠!”

“···.”

“우리 한번 더 할 수 있어요! 헤헤.”

그러나 탈락을 바라고 있던 박영제는 표정관리 하기도 벅찼다. 저 망할 놈들과 경연으로 비비는 건 오늘로 끝일 줄 알았는데, 결승을 또 해야 한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라이브 방송에서 징징대지나 말걸. 이제는 7IN 한번 이겨보고 싶다고 했던 라방이 화근일지도 모른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박영제였다.

그러나 결과를 뒤바꿀 수는 없었다. 박영제는 결승에 진출해 버렸고, 2주 후에 승산 없는 경연을 또 해야 한다.

소속사 네이션스 사무실로 돌아온 박영제는 홍현석 실장부터 찾았다. 이 와중에도 홍현석은 여유를 부리며 혼자만의 티타임을 갖고 있었다.

“형! 현석이 형!”

“응, 영제야. 스케쥴 잘 다녀왔어? 결승 진출 했다면서?”

“나 이제 경연 안 할래요. 하차하고 싶다고요.”

“음? 왜?”

박영제는 홍현석에게 하차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이제 더이상 7IN - 영의정 조합과 싸우고 싶지 않다는 말과 함께.

“그러니까, 유군자랑 싸우기 싫어서 하차하고 싶다는 거지? 또 질까 봐?”

“···네, 뭐···.”

“그런 거면 하차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그게 뭔 말이에요?”

“내가 뭘 좀 찾았거든.”

“찾다니, 뭘···.”

“이거 풀면, 어쩌면 칠린 애들이 자진해서 하차할지도 몰라.”

“예?”

“그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알았지?”

그렇게 말하며 홍현석은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커피를 홀짝 들이켰다.

* * *

1차 경연에 이어 2차 경연까지 압도적인 승리를 따낸 7IN - 영의정의 베이스캠프는 축제 분위기였다.

2차경연 본방이 공개되고 경연곡인 <십덕(十德)>의 클립이 생성되자, 이번에도 조회수는 폭발적으로 상승하며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ㅋㅋㅋㅋㅋ곡 제목만 봤을땐 진짜 일본애니풍 노래라도 하는줄ㅋㅋㅋㅋㅋㅋ]

[진짜 매번 컨셉은 병순같은데 곡 퀄리티는 또 잘 뽑는게 함정이야]

[병순같다니ㅠㅠㅠ말넘심]

[솔직히 맞말이짘ㅋㅋㅋㅋ니 본진 돌이 <십덕> 이런 제목으로 컴백곡 낸다고 생각해보셈 찬성할거?]

[;;;;;;확이해됨 ㅈㅅ]

[왜~ 우리 칠링즈는 이미 즐기고있다구~]

[다음곡으로 <십장생>이 나와도 당황하지 않을거임]

[ㅋㅋㅋㅋㅋㅋㅋ하 노듀 직캠 너무 예브게 잘나와서 좋네]

[군자는 어째 테크웨어도 잘어울리냐ㅠㅠㅠㅠ]

[일단 몸 각이 예쁘자나]

[나중에 염색도 한번 해줫음 좋겟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고 안하는거아냐?ㅠㅠㅠ]

[근데 나우리 아재 직캠은 왜 있는건뎈ㅋㅋㅋㅋㅋ]

[ㅁㅊ수요없는공급ㅋㅋㅋㅋㅋㅋㅋㅋ]

[의정언니 보라고 따놓은거 아님?ㅋㅋㅋ]

그 와중, 7IN 멤버들과 박영제 사이의 은근한 신경전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었다.

[근데 칠린 애들 노래부르면서 은근 박영제 쪽 쳐다보는 것 같지 않음?]

[ㅋㅋㅋ권태웅은 거의 잡아먹을 것 같던데ㅋㅋㅋㅋ]

[진짜 뭔가 있긴 있는것 같아]

[ㅎㅏ 박영제가 여기서 탈락했어야 함]

[ㅁㅈㅁㅈ 솔직히 고음떡칠 무대가 2위로 결승진출이라니 이게 말이 돼?]

[ㄴ응 니가 뭐라하든 현장 방청객들이 인정한 무대야]

[ㅋㅋㅋ영제퀴들 슬슬 기어나오네]

[영퀴들아 머릿수로 밀어서 2등한게 자랑이야?]

[ㄴ머릿수로 미는거 칠퀴들이 제일 잘하는 짓 아님?]

[ㄴ어휴 부끄러운 줄을 모르네;;]

[조만간 박영제 학폭 진상 드러나고도 계속 뻔뻔할 수 있는지 보자]

[응 나오려면 벌써 나왔어~]

[박영제 학폭은 느그 칠퀴들 희망사항일 뿐이야~ㅋㅋㅋ]

수많은 반응이 쏟아지는 가운데, <노래해 듀오>는 이번주도 굳건하게 화제성 1위를 사수해 냈다.

7IN 멤버들의 부탁으로 콜라보레이션을 결정한 영의정도 이제는 방송을 완전히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무대 하고 연습실에서 땀 흘리고 하니까 진짜 너무 재밌네. 서 팀장, 나 그냥 연예계 복귀 할까?”

“언제든 환영입니다. 계약은 꼭 저희 솔라시스템과 하시죠.”

“그래야겠어. 일단 잠깐 제주도 좀 다녀올게. 이웃한테 멍멍이들이랑 농작물을 맡겨 놓긴 했는데, 그래도 집 너무 오래 비우면 좀 걱정돼서.”

“네. 그럼 저희는 신곡 준비해 놓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영의정 - 나우리 부부가 잠시 제주도로 돌아간 뒤, 솔라시스템 팀원들과 7IN 멤버들이 경연곡 회의를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시작된 수상한 글이, 온라인 상으로 유포되기 시작했다.

[칠린 ㅇㄱㅈ 고등학교 자퇴한 이유.txt(인증있음)]

본론부터 말하면 오토바이사고 때문임ㅇㅇ

(사진) (사진)

위 사진은 ㅇㄱㅈ 해안도로에서 바이크 타다가 찍힌 사진임

해안마을에선 꽤 유명했다함ㅋㅋ

잘생긴 애가 주말마다 바이크 타고 다닌다고

요즘 ㅂㅇㅈ랑 ㅇㄱㅈ 말 많던데

ㅇㄱㅈ 쪽에서 ㅂㅇㅈ 학폭 프레임 씌우는 것 같아서 제보함

ㅇㄱㅈ 고등학교 그만둔 이유 바이크 때문임

사람들이 이거 잘 모르던데

해안도로에서 바이크 타다가 사고 크게나서

의식불명 될 정도로 크게 다친거임

사고 난거 안타깝고 건강해져서 다행인데

솔직히 고딩때부터 오토바이 타고 다니고

그러다가 사고나서 죽을뻔한 애가 ㅋㅋ

누구한테 학폭 프레임 씌우는게 좀 웃기지않냐?

학교는 잘 나오지도 않고

오토바이 타고 다니던 앤데 ㅋㅋ

제보 글과 인증사진은 삽시간에 온 커뮤니티로 퍼지며 파장을 일으켰다.

[이거 뭐야;;;]

[ㅁㅊ 유군자 폭주뜀?]

[지랄하지맠ㅋㅋㅋ오토바이좀 탔다고 폭주뛴거면 배달의민족 사장은 폭주족 총장님임?]

[배민라이더스 의문의 야쿠자행]

[어휴 칠빠들 벌써 우르르 몰려온거봨ㅋㅋㅋ]

[느그 군자 식으로 말해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솔직히 고등학교때부터 오토바이 타는 애들중에 제대로 된 애 본 적 있어? 난없는듯]

[딱봐도 ㅇㄱㅈ 쪽이 더 불량해 보이는데]

[근데 유군자는 왜 박영제한테 학폭프레임 씌운거야?]

[그런 경우 있자나 같은 학폭러인데 한쪽한테 뒤집어씌울라고 선빵치는거]

[헐;;]

어제까지만 해도 유군자 쪽에 더 우호적이었던 여론은 순식간에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에이설맠ㅋㅋㅋ유군자 성격상 그랬을 것 같진 않은데]

[ㅋㅋㅋ그거 다 컨셉임]

[고등학교 동창들 글 못봄? 고딩땐 걍 조용했다잖아]

[나진짜어이가없넼ㅋㅋㅋㅋ 사진 한장 나왔다고 이제 군자까는거야?]

[박영제 말고 유군자가 학폭러라는 증거 있음?]

[그러는 칠퀴 너네는 박영제가 학폭러라는 증거 있어서 깠냐? ㅋㅋㅋㅋ그냥 유군자 한시에 무지성 선동돼서 우르를 몰려다닌거자나]

[생기부 양호하게 졸업한 박영제 vs 학교 잘 나오지도 않다가 오토바이 사고로 자퇴한 유군자]

[이건 누가 봐도 후자 쪽이 더 문제 아님?ㅋㅋ]

불길은 순식간에 번져 군자와 멤버들을 덮쳤다. 팬들과 소통 중이었던 하현재가 가장 먼저 이 소식을 접했다.

“헐, 이게 머람···.”

인터넷을 확인하자 마자 현재는 팬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라이브 방송을 빠르게 종료했다. 이용중 실장과 서은우 팀장에게도 빠르게 연락을 취했다. 군자가 걱정되긴 했지만, 당사자에게도 사실을 전달해야만 했다.

현재의 긴급호출로 7IN 멤버들이 모두 숙소에 모였다. 이미 몇몇 멤버들은 현 상황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선비 형아.”

“왜 그러느냐.”

“혹시 인터넷 봤어여?”

“인터넷? 바둑을 두느라 잠시 살피지 않았다만···.”

“여기.”

하현재가 군자의 눈앞에 제보글을 내밀었다. 모든 멤버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이었으나, 글을 읽어 내려가는 군자의 표정은 짐짓 차분했다.

“당시 내가 이륜차를 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인가 보구나.”

“머야, 머가 이렇게 태연해여. 지금 사람들 완전 난리 났단 말이에여.”

“군자야, 지금 사람들이 다 뇌피셜 지껄이고 있다고!”

“뢰피설(雷避說)? 번개를 피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단 말이더냐? 그건 꽤나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아니, 그게 아니라. 너가 오토바이를 탄 게 사람들 눈엔 불량해 보일 수 있단 말이야.”

“흐음, 하지만 이륜차를 탔다고 모두 나쁜 이는 아니지 않느냐.”

“그래.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냐. 그냥 학폭 피해자인 줄 알았던 놈이 사실은 오토바이 타다가 고등학교 중퇴한 놈이었다는 게 중요하지. 자극적이잖아.”

“그렇구나. 여론이 호도(糊塗)되고 있다는 말이렷다.”

‘호도? 호도과자는 휴게소에서 먹어야 제맛인데’라고 중얼거리는 태웅의 입술을 짝 때리며, 다시 현재가 입을 열었다.

“이대로 두면 안돼여. 해명해야 된다구여.”

“해명이라. 하지만 내가 이륜차를 탄 것은 사실이다. 그로 인해 고등학교를 자퇴한 것도 사실이고.”

“···그렇게 말하면 할 말 없긴 한데···.”

“원래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을 믿는 법이다. 하지만 진실은 결국 드러나게 돼 있지. 명확한 증거가 갖춰진다면 아마 여론은 다시 한번 뒤집어질 게다. 반대로, 증거 없는 해명은 결국 무의미할 것이고.”

“근데 그 증거를 어디서 찾냐구여.”

답답하다는 듯한 현재의 말이 끝나자 마자 숙소 문이 열리며 서은우 팀장과 이용중 실장이 나타났다.

“증거는 우리가 찾았습니다.”

긴급호출을 받고 달려온 두 사람이었지만, 서은우 팀장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건 아마 네이션스 측의 농간일 겁니다. 놈들도 유군자 씨의 뒤를 캘 거라는 예상은 했습니다. 오토바이 사건, 당연히 건드릴 것 같았습니다.”

“···.”

“제보 글에 올라간 인증사진, 저 사진을 찍은 촬영자와 접선하고 오는 길입니다. 그는 유군자 씨에게 긍정적입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이 유군자 씨를 공격하는 용도로 쓰였다는 데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더군요.”

“!”

“또한, 박영제의 괴롭힘에 대해 증언해 줄 증인들도 모두 확보한 상태입니다.”

“팀장님.”

“저 쪽에서 먼저 칼을 꺼냈으니, 우리도 이제 무기를 꺼내야죠.”

처음엔 차분한 모습이었지만, 말을 이어 갈수록 서은우 팀장의 목소리에 노기가 어렸다.

“물론, 우리 무기는 칼이 아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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