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114화 (114/303)

#114

인과응보

‘유군자 오토바이설’이 돌기 시작한 이후, 박영제는 유독 라이브 방송을 자주 켰다.

신비주의 실력파 이미지를 고수하며 팬들과도 최소한으로만 소통했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하이하이~ 나 또 왔어요.”

라이브 방송을 켤 때마다 유군자 이야기가 나왔다. 대부분은 최근 불거져 나온 폭주족 의혹에 관한 것이었다.

[영제오빠ㅏㅏㅏ]

[오늘도 연습했나보네ㅠㅠㅠ]

[힘들지 저녁은 먹엇어?]

[요즘 라방 자주 켜서 좋당ㅎㅎ]

[ㅇㄱㅈ 썰좀 풀어줘]

[루머 언금;;]

[머어떰 우리애 루머도 아닌데]

[ㅇㄱㅈ 루머는 챗매가 자르지도 않던데?]

[ㅋㅋㅋㅋ영제야 제발썰좀~]

물론 라이브 방송에서 루머 언급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 동안 라이브 방송 관리자인 네이션스 측에서 박영제에게 불리한 루머를 언급하는 팬들은 칼 같이 밴하며 물 관리를 하기도 했고.

그러나 유군자의 루머에 대해선 조금 다른 반응이었다. 선을 넘는 팬들이 보여도, 채팅 매니저는 관리를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박영제 역시 한없이 모호한 태도로 팬들의 궁금증만 증폭시켰다.

“어어, 저도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어서··· 타 아티스트에 대해 언급하기가 조금 조심스럽네요. 이해 부탁드립니다.”

[ㅋㅋㅋㅋ에이 아니자나]

[노듀 송캠프편 보니까 꽤 친하던데]

[으으 송캠프는 진짜 생각할수록 화남ㅠㅠ]

[ㅇㄱㅈ 한시 그건 진짜 선 세게 넘었지]

[영제야 너도 속상했지ㅠㅠㅠㅠㅠㅠㅠ]

[우리영제 진짜 노래랑 춤만 아는 앤데]

[그래 지금부터라도 친하지 말자]

[어차피 나락 가고 있던데 뭐 ㅋㅋ]

[근데 진짜 오토바이 타긴 탐?]

[ㅁㅈ궁금하긴해]

[일진이엇음 학교때 유명했을텐데]

“솔직히 그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는진 몰랐어요. 아마 알았다면 위험하니까 타지 말라고 말이라도 해 줬을텐데···.”

[ㅠㅠㅠㅠㅠ착한거봐]

[이런데 우리 애 일진이라 의심한 사람들 진짜 뭐냐고···]

[심지어 ㅇㄱㅈ 영제가 고등학교때 업어키웠다며]

[노래랑 춤도 다 영제가 가르쳐 준 거라던데]

[진짜 ㅁㅊㅅㄲ아님? 은인 통수를 쳐도 유분수지]

[영제야 힘들었지ㅠㅠㅠㅠ]

[웬 돌아이때매 일진 의심받고]

“전 괜찮아요. 그래도 노듀 이후로 일도 많이 들어왔고··· 또 힘들어도 여러분들이 항상 위로해 주시니까.”

그렇게 말하며 박영제는 눈가를 스윽 훔쳤다. 군자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박영제는 종종 마음고생을 단단히 했다는 듯 처량한 표정으로 눈물을 보이곤 했다.

눈물 흘리는 박영제 클립, 은근히 군자를 돌려 까는 박영제 클립 등이 생성되어 동영상 플랫폼에 퍼졌다. 여론이 천천히 자신의 편에 서는 것을 보며 박영제는 쾌재를 불렀다. 라이브 방송을 켤 때마다 발언의 수위는 높아져 갔다.

진작에 알았다면 그 친구가 나쁜 길 못 가게 막았을 텐데···.

모함 당했을 때는 솔직히 억울했죠. 제가 가해자라니.

법적 대응이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회사에서 알아서 할 것 같은데요.

박영제가 신을 내는 동안 유군자와 솔라시스템 측은 감감무소식이었다. 팬들은 ‘이런 사건은 빠른 초동대처가 중요하다’며 발만 동동 굴렀지만, 그럼에도 솔라시스템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무응답이 곧 인정’이라며 박영제의 팬들이 승리를 확신할 무렵.

끝까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던 솔라시스템이, 별안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 * *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L호텔 컨퍼런스룸은 연예부 기자들로 발 디딜 틈 하나 없었다. 대한민국의 연예부 기자들은 죄다 모인 것 같았다.

단상엔 서은우 팀장과 군자, 그리고 7IN 멤버들이 모두 앉아 있었다. 군자가 얽힌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이었으나, 멤버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그 자리에 함께하길 원했다. 진지한 자리인 만큼, 멤버들은 모두 깔끔한 정장을 갖춰 입고 있었다.

“긴장하지 마여. 형 잘못 하나 없으니까.”

“그래. 억울한 거 풀자고 만든 자리잖아.”

“···후우, 형, 괘, 괜찮아요···.”

동료들은 테이블 밑으로 군자의 손을 꼬옥 잡으며 그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러나 군자가 보기엔 오히려 동료들이 더욱 긴장한 것 같았다.

“내 보기에 너희들이 더욱 긴장한 것 같구나.”

“뭐? 아니거든? 티 나냐?”

“···태웅이 넌 긴장을 했다는 거야, 안 했다는 거야?”

“근데 선비 형아는 어뜨케 이렇게 태연한 거예여, 우리 뻘쭘하게.”

“과거엔 중상모략을 당하여 억울하게 유배를 가는 선비들도 많았지.”

“이 형아 또 조선시대 얘기 하네.”

“어디 그 뿐이더냐. 누명을 벗지 못한다면 유배지에서 사약을 마시기도 했단다.”

“헉.”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죽은 이는 원혼이 되어 구천을 떠돌기도-.”

“그래, 너 멘탈 튼튼한 거 알았으니까 그만 해···.”

“괜찮은 척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걸여. 저 형아 은근 표정 못 숨김여.”

현재의 말대로 군자는 표정을 숨기는 데에 서툴렀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했다면 아마 표정으로 드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군자에겐 초조함이 없었다. 오히려 만면엔 자신감과 당당함이 가득했다.

그런 군자의 얼굴에 정신없는 플래쉬 세례가 쏟아졌다.

찰칵, 찰칵-.

논란 속에서도 침착하고 떳떳한 그 모습은, 담담하게 ‘무고는 큰 죄입니다’를 말하던 한 배우의 모습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잘생기긴 했네.”

“이게 기자회견장이야, 쇼케이스장이야···.”

“정장도 잘 어울리는구만.”

“그나저나, 뭔 해명을 어떻게 할지 궁금하네.”

기자들은 이 논란을 어떻게 해명할 것인지 궁금해 했다. 그러나 사실 서은우 팀장과 군자에게 이 기자회견은 해명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해명은 당연하다. 거기에 응징까지 더해야 할 것이다.

기자회견을 갖기 전, 서은우 팀장은 군자를 조용히 불러들였다. 자료 수집은 이미 완료된 상태였다.

박영제의 학폭에 대해 증명할 증언과 자료는 물론, 박영제와 같은 소속사 연습생인 노엘이 함께 몇몇 아이돌 연습생, 인터넷 BJ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한 증거자료까지.

박영제 - 혜진 열애설을 최초 보도했던 언론 다스패치도 수사에 합류했다. 혜진의 <노래해 듀오> 이탈은 사실 박영제를 손절한 것이 아닌, 박영제의 집요한 추근덕거림과 성희롱성 발언이라는 증거 자료와 함께.

“이 정도라면 아마 박영제 측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겁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군자 씨가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면···.”

“아니요, 원합니다.”

“!”

“인과응보(因果應報).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입니다.”

박영제는 응당 벌을 받아야 한다.

그 괴롭힘 때문에 이 몸의 전 주인이 망가졌다. 그 정신적 붕괴는 죽음의 간접적인 원인이 됐고.

이 몸을 물려받아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자로서, 군자에겐 그 원한을 풀 의무가 있었다. 어쩌면 그 혼이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자회견장의 한가운데서, 군자는 차분하며 단호한 목소리로 논란을 하나하나 해명해 나갔다. 그에 대한 근거 자료는 서은우 팀장이 제시했다.

오토바이를 탄 적은 있으나, 교내 폭력 서클과는 일체의 연관도 없었다.

박영제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집요하게 군자를 괴롭혀 왔다.

박영제는 아이돌에 대한 군자의 꿈을 짓밟고 희롱하며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그래서 학교를 결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방에서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가 되었으며, 탈출구를 찾기 위해 오토바이까지 타게 됐다.

주장에 대한 증거자료는 꽤나 많았다. 박영제가 속한 그룹 채팅방의 채팅 내용, 군자의 옛 스마트폰을 디지털 포렌식하여 복원한 대화.

증인들 역시 차고 넘쳤다. 모두가 박영제의 만행을 잊었을 리 없었다. 단지 그들의 기억도 왜곡되어 있었을 뿐.

박영제는 ‘친구가 아닌 가해자’였다는 군자의 말에, 그들의 왜곡된 기억도 다시 바로잡힌 거다.

육하원칙에 의해 정리된 증언은 단순한 인터넷 썰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기자회견은 솔라시스템의 라이브 스트리밍 채널을 통해 유튜브에서 방송되고 있었다.

7IN의 팬들은 물론, 박영제의 팬들까지 모두 이 방송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들 중 그 누구도 반박 의견을 낼 수 없었다. 모든 증언과 증거가 너무도 명확해 보였으니까.

“자료를 모을수록, 증인 분들을 만나뵐수록 우리는 우리의 아티스트를 더욱 확실히 믿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박영제와 네이션스 측이 이 주장을 반박할 생각이라면, 복수의 증인과 함께하는 다자간 직접 대면을 통해 사실을 검증할 생각도 있습니다.”

서은우 팀장의 강경한 발언에 기자들 사이에선 웅성임이 퍼졌다. 정말 확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발언이었으니까.

“그러나 아마 그렇게 할 수 없을 겁니다. 우리는 당당하지만, 네이션스는 그렇지 못할 테니까요.”

“!”

“수사기관을 통해 유군자 씨에 대한 악성 루머를 퍼뜨린 제보자의 신원을 파악했습니다. 네이션스의 직원이시더군요. 우리는 공개적인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네이션스는 익명성에 기댄 루머 유포를 더욱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자료가 나올 때마다 웅성거림은 더욱 커져 갔다. 네이션스가 그렇게 치졸한 방법으로 군자를 공격하고 있을 줄은 기자들마저 몰랐으니까.

서은우 팀장의 발언이 끝난 뒤엔 군자가 다시 한번 마이크를 잡았다.

마치 스트리밍 카메라 너머의 누군가와 대화하듯, 렌즈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군자가 입을 열었다.

“저는 아이돌입니다. 그렇기에 학교폭력의 피해자였음을 알리는 것이 망설여졌습니다. 아무리 죄가 없다고 해도, 논란은 아이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들었으니까요.”

“···.”

“그러나 피해자가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면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겠지요.”

“···.”

“저와 친구였다던 박영제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친구였는지. 그가 했던 행동들이 모두 장난에 불과했는지.”

“···.”

“물론, 전 그의 말을 믿지 않을 겁니다. 그는 제가 절대로 아이돌이 될 수 없다고 했지만, 보시다시피 전 이렇게 꿈을 이뤘으니까요.”

기자들 사이에서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동료들 역시 군자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러나 군자는 아직 할 말이 남은 것 같았다.

방금까지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던 군자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박영제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했다. 이제는 심려를 끼친 분들에게 사죄를 할 차례다.

“허나, 팬 여러분들께는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항상 힘이 되어 주시는 팬 분들께 충성하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걱정을 끼친 죄. 이는 불충(不忠)의 죄에 해당합니다.”

방송을 보던 팬들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결백을 증명해 낸 것만으로도 눈물이 줄줄 흘렀는데, 가장 마음고생 했을 군자가 사과까지 하니 팬들의 눈가에선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나진짜 지금 울고있어]

[팬질 하면서 이렇게 눈물콧물 다 쏟아본건 진짜 처음이다]

[왜 이 상황에서도 의젓한건데ㅠㅠㅠㅠ]

[고생했어··· 너무 고생 많았어 군자야]

[불충은 무슨 불충이야ㅠㅠㅠㅠ]

[우리한테 사과 안 해도 돼ㅜㅜㅠㅠㅜ]

[우리가 미안해··· 그런 줄도 모르고 노듀 나온다고 좋아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ㅠㅠㅠㅠㅠㅠ]

[ㅂㅇㅈ 그 ㅁㅊㅅㄲ 은근히 라방에서 군자 몰아가던거 생각하면 진자 욕나와]

[ㅁㅈ 예쁜말만 하고싶은데 진짜]

“또한, 부모님께도 죄송합니다. 아마 부모님은 모르고 계셨을 겁니다. 제가 학교를 나가기 싫어했던 이유, 뒤주 같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던 이유. 뒤늦게 진실을 알려 부모님의 가슴을 아프게 한 죄. 이는 불효(不孝)의 죄일 것입니다.”

군자의 부모인 조연수, 유상헌 역시 이 방송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에서도 눈물이 멈출 줄을 몰랐다.

“···우리는 그런 줄도 모르고···.”

“어떡해요 여보, 우리 군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조연수와 유상헌은 거대한 자책에 빠져 있었다. 아들이 가장 힘들었을 때, 그 이유도 모르고 그저 답답해 하기만 했으니까. 팬들 역시 자책하긴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해사하게 웃던 군자의 이면에 그런 과거가 있는 줄 누가 알았을까.

군자의 얼굴이 어두운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박영제의 역겨움은 견딜 만 하다. 그러나 나 때문에 소중한 이들이 자책하는 것은 견디기가 쉽지 않구나.

애써 미소를 지으며, 군자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았다.

“부모님, 그리고 팬 여러분. 절대 자책하지 마십시오. 내 슬픔에 여러분들이 공감하듯, 여러분들이 슬플 때 나 역시 슬픕니다.”

“···.”

“나는 오늘의 불충, 불효를 잊지 않겠습니다. 이젠 누구도 괴롭히지 않으며, 또 누구에게도 괴롭힘당하지 않는 삶을 살겠습니다.”

* * *

기자회견이 끝나자 마자 새로운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토바이 루머’가 터진 뒤 대중은 박영제의 손을 들어 주는 듯 했으나, 이제는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됐다.

군자와 솔라시스템이 제시한 근거는 완벽했다. 박영제가 그 증언의 그물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어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온라인 상에서는 계속해서 제보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자신도 박영제가 유군자에게 노래와 춤을 시키는 것을 보았다는 제보.

“아아아아아악—!!”

스마트폰을 침대에 집어던지며 박영제가 소리를 꽥 질렀다. 어제부터 그는 그 어떤 스케쥴도 소화하지 않으며 잠수를 타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사실상 잠수라고 말하기도 애매했다. 진행 중인 모든 TV예능, 라디오, 광고에서 그를 손절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나 이것은 인과응보의 시작에 불과했다.

[[다스패치 독점] 박영제 - 혜진, <노래해 듀오> 급 하차의 전말.]

[[다스패치 독점] ‘학폭 논란’ 박영제, 이번엔 여자 문제다.]

[[다스패치 독점] 현역 아이돌이 팬 성희롱? 역대급 자료에 다스패치 기자들마저 경악.]

솔라시스템이 친 라이트훅에서 회복되기도 전에, 이번엔 다스패치가 자비 없는 레프트훅을 후려갈긴 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