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117화 (117/303)

#117

칠린픽쳐스

文化財(문화재).

군자가 품에서 꺼내 든 백지에는 ‘문화재’라는 세 글자만 덩그러니 적혀 있었다.

백지를 본 지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문화재? 갑자기?”

“허, 지현수 너 이제 한자까지 막 읽냐.”

“너도 군자랑 친해지고 싶으면 한문 공부 좀 해라.”

“안 해도 친하거든?”

지현수와 권태웅이 투닥거리는 사이, 서은우 팀장은 턱을 괸 채 군자가 꺼낸 백지를 보고 있었다.

애초에 어려운 한자가 아니었으니, 그 역시 군자가 종이를 꺼내 들자 마자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문화재라니?

아이폰도 당황스러웠고 팬티도 당황스러웠지만 문화재만큼은 아니었다. 적어도 아이폰, 팬티는 일단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재화니까.

하지만 문화재는 달랐다. 이 회의 시간에 문화재라는 단어를 단어가 나온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서은우 팀장이었다.

그런 서은우 팀장의 마음을 대변하듯, 이번엔 현재가 나섰다.

“형아, 문화재는 사고 파는 물건이 아니자나여.”

“그렇지.”

“그럼 광고를 하는 의미가 없는 거 아니에여?”

“넓을 광(廣)에 알릴 고(告)를 써서 광고. ‘널리 알리다’라는 것이 광고가 가진 근본적 의미 아니더냐.”

“머 그건 그렇긴 한데···.”

“무언가를 널리 알려야 한다면, 이 땅의 훌륭한 문화재에 대해 알리고 싶구나.”

“정말 좋은 의미고, 또 정말 선비 형아답긴 한데··· 으음···.”

현재가 말 맺기를 망설이자 시우가 거리낌 없이 그 말을 완성시켜 주었다.

“아하하핫, 근데 돈이 안 되잖아~”

“···속물적인 말을 참 해맑게도 하는 재주가 있구만···.”

“맞는 말이긴 하자나여. 나도 시우 형아 말에 동의함여.”

“근데 재미는 있을 것 같지 않냐? 난 왜 팬티같은 것 밖에 생각 안 났지?”

“···마, 맞아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룹 이미지에도 좋을 것 같다.”

“맞아요 형. 근데 시우 말대로, 회사 입장에선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는 게···.”

그렇게 말하며 멤버들은 서은우 팀장의 눈치를 슬쩍 봤다. 한참 턱을 괸 채 멤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은우 팀장이 이내 입을 열었다.

“공익광고도 광고니까 유군자 씨의 의견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오오.”

“게다가, 딱히 돈이 안 된다고도 할 수 없죠.”

“오오오.”

“물론 대기업으로부터 지급받는 광고비에 비하면 직접적인 수익은 낮겠습니다만, 광고로 인한 이미지 상승 효과를 생각한다면 훨씬 더 가치있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오오오오!”

“문화재 광고,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은우 팀장의 말에 멤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히려 처음 의견을 낸 군자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의견을 내라고 해서 내 보았는데, 이러면 또 내 의견만 채택되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동료들의 의견도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태웅이 군자의 어깨를 팡 쳤다.

“왜 그렇게 벌레 씹은 표정이야? 너 또 니 의견만 다 채택되는 분위기라 그러냐?”

“!”

“놀라는 거 보니까 맞나 보구만.”

“그게 아니라, 태웅이 네가 채택이라는 단어도 아는구나 싶어···.”

“이 자식은 내가 진짜 바보인 줄 아나.”

“사실 태웅이 네 말이 맞다.”

“뭠마? 내가 진짜 바보인 줄 안다고?”

“아니. 내 의견만 채택되는 것이 마음에 걸린 것이 사실이다.”

“아, 그 말.”

태웅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근데 너 의견만 채택한 거 아닌데?”

“?”

“그냥 다들 재미있어 보여서 고르는 거지. 안 그러냐.”

“맞아여. 심지어 아직 채택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럼여?”

“아하하, 군자 설레발~”

“난 앞으로도 군자 의견만 따를 거다. 그게 내 의지야.”

“어우 무서워. 얘 방 가면 막 군자 사진 도배돼 있는 거 아냐?”

“도배까진 아닌데.”

“미친, 아무튼 사진이 있긴 있다는 거 아냐?”

“아하하핫, 더 알고 싶지 않네~”

동료들의 말을 들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 군자였다. 문화재 광고는 꼭 하고 싶었지만, 동료들과 의견이 상충된다면 얼마든지 포기할 의향도 있었다.

새삼스러우나, 나는 참으로 좋은 동료들을 얻었구나.

“우선 모두의 의견은 잘 알겠습니다. 각자 원하는 품목이 있으나, 가장 선호하는 건 문화재 공익광고라고 생각하고 있어도 될까요.”

“넵!”

의견이 취합됐으니 이제 서은우 팀장이 일을 할 시간이었다.

아이돌을 데리고 찍는 첫 광고가 공익광고라니.

이번에도 생소한 경험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일단 선비라는 그룹 아이텐티티와 찰떡이다. 게다가 잘만 되면 이미지 상승에도 엄청난 효과가 있을 것 같고.

일감을 찾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국책사업을 수주하기 위한 온라인 플랫폼 나라장터에 들어가 보니, 문화재청에서 낸 공고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우리 문화재를 알리기 위한 영상 컨텐츠 제작 계획]

이게 좋겠군.

보수가 높진 않았지만, 수익성보다 다른 효과를 보고 가는 건인만큼 돈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벌써 앨범만 70만 장 이상 팔아치운 그룹이니, 돈 좀 못 벌어 온다고 윗선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다음 날 회의 시간, 서은우 팀장은 문화재청의 영상 컨텐츠 공고를 멤버들에게 공유했다.

“우와, 일감을 벌써 찾으신 거예요?”

“역시 우리 서 팀장님 일 너무 잘하심.”

“아닙니다. 본격적인 업무는 지금부터 시작이니까요. 일단은 제작사부터 찾아야 합니다.”

“제작사? 아, 영상 만들어 줄 회사요?”

“네. 솔라시스템도 자체 제작사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지금은 타 그룹 컨텐츠 제작 작업 중인데다가 이렇게 가벼운 제작을 맡기기엔 단가도 맞지 않아요. 가뿐하게 움직일 수 있는 중소규모의 창의적인 제작사를 찾아야 합니다.”

“아하.”

“우선 몇 군데 서칭해 보았습니다. 이게 해당 제작사의 포트폴리오고요.”

서은우 팀장이 리모콘을 누르자 스크린에서 영상이 재생됐다. 서은우 팀장이 찾은 영상 제작사들의 포트폴리오였다.

“오-.”

“우왕, 예쁘다···.”

중소 제작사의 작업물이라 하기엔 모두 트렌디하고 깔끔했기에, 멤버들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전 다 좋은데여?”

“그러게. 어디를 골라야 하지?”

“전 솔직히 알못이라 다 좋아 보입니다!”

딱 한 명, 현시우를 제외하면.

“으음.”

“시우가 웬일로 진지하냐.”

“난 좀 생각이 다른데~”

“뭐야, 왜 안 웃어. 이상해.”

“다 영상미는 좋은데, 이게 최선일까 싶어서~”

“그래? 대안 없이 태클만 거는 거 아냐?”

“대안 있어~”

평소와 달리 살짝 진지해진 모습의 현시우가, 웃음기 없는 말투로 말을 이어 갔다.

“우리가 직접 만들어 보는 건 어때~?”

“엥?”

“광고 영상을 직접 만들자고?”

“에이, 뭔 헛소리야. 우리가 그걸 어떻게 만드냐?”

“아하핫, 자신 없나 보구나~”

“당연하지. 해 본 적이 있어야···.”

“난 자신 있는데~”

“저건 또 뭔 근자감이야?”

태웅과 현수는 현시우의 자신감에 부정적이었지만 서은우 팀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흐음.”

멤버들이 직접 만드는 공익광고라.

어쩌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컨텐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빠르게 머릿속을 정리한 서은우 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영상을 멤버들이 직접 제작한다···.”

“팀장님, 헛소리 맞죠? 팀장님이 시우 좀 혼내 주세요.”

“내 생각엔 괜찮은 아이디어 같습니다.”

“예?”

“여러분들은 인지도 있는 가수입니다. 오만한 태도일지도 모르겠으나, 여러분들이 문화재청 공익광고에 참가한다는 것만으로도 문화재청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 그런가.”

“거기에 그룹이 직접 만든 광고라는 라벨이 붙으면, 아마 영상의 파급력은 더 올라갈 겁니다. 영상 퀄리티가 생각보다 낮다고 해도요.”

“그치만 그렇다고 똥퀄 영상을 광고라고 내보낼 순 없는 거잖아요.”

“네. 그렇기 때문에 퀄리티 컨트롤은 해야죠. 추가로 영상의 퀄리티를 잡아 줄 인력을 모집하면 됩니다. 그러나 영상 제작의 메인은 여러분이 담당하는 겁니다.”

“우왕, 팀장님 진심이시넹.”

“네. 저 지금 진심입니다.”

“근데 팀장님, 왜 갑자기 자체제작에 꽂히신 거예요?”

“이 공익광고를 제작하는 과정, 그 자체를 7IN의 리얼리티 예능으로 제작할 수 있겠다 싶어서요.”

“!”

서은우 팀장의 계획은 두 단계였다.

첫 번째, ‘국내 최초 아이돌 자체제작 공익광고’라는 타이틀로 광고 자체에 어그로를 끈다.

두 번째, 7IN이 광고를 제작하는 과정을 리얼리티 예능으로 만들어 팬들을 위한 컨텐츠를 추가한다.

이제 1집 활동도 끝나 가고 있었기에 팬들이 즐길 떡밥도 사그라드는 중이었다. 일반 광고를 찍는다면, 물론 팬들은 좋아하겠지만 씹고 듣고 맛보고 즐길 컨텐츠의 양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익광고를 제작하는 과정을 리얼리티 예능으로 만들어 내보낸다면?

팬들의 입장에서는 훨씬 더 혜자스러운 이벤트가 될 터.

서은우 팀장의 설명을 들은 멤버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들으니까 뭔가 엄청 그럴싸한데요?”

“아하하하, 그래~ 자체제작 좋다니까~”

“근데 문화재청에서 그걸 허가할까요?”

“그건 지금부터 교섭해 봐야죠. 우선 문화재청의 영상제작 업무 담당자와 미팅부터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와, 그럼 우리 진짜 영상 찍는 거임여?”

“···저, 저 뭔가 두근거려요···.”

“그러게. 막상 한다고 생각하니까 재미있을 것 같은데?”

기대감에 찬 멤버들의 모습을 보며 서은우 팀장도 뿌듯함을 느꼈다. 이렇게, 7IN의 공익광고 자체제작 프로젝트는 순식간에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문화재청 홍보부 영상제작 담당 공유민 주무관은 새롭게 들어온 컨택 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오늘도 별 거 없네···.”

확실히, ‘우리 문화재를 알리기 위한 영상 컨텐츠 계획’은 인기 없는 프로젝트였다.

일단 나라장터에 발주를 넣어 놓기는 했지만, 그것도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아마 이번에도 항상 문화재청과 일을 해 오던 기성 제작사들이 일을 따 가겠지.

회의 시간마다 ‘이번엔 트렌디하게 좀 해 봅시다!’ 라고 외치는 것도 벌써 1년 째. 그러나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공유민 주무관은 이제 큰 기대를 접기로 했다. 물론 올드한 홍보 영상을 보면 속이 상했지만, 그럴 땐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을 들으면 된다.

마침 점심시간도 아직 5분 남았다. 7IN의 무대 영상을 한 바퀴 반 정도는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I Got 10 New Virtues-.”

컴퓨터로 <십덕(十德)> 무대를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녀의 귀에 꽂혀 있던 무선 이어폰을 툭 건드려서 떨어뜨렸다.

“아.”

불쾌한 기분과 함께 뒤를 홱 돌아보니 그곳엔 상사인 정윤철 사무관이 서 있었다.

“공 주무관, 회사에서 이런 거 보지 말라고 했잖아~”

“점심 시간인데···.”

“밥 다 먹었으면 점심 끝이지, 뭘 꾸역꾸역 남은 시간까지 탱자탱자 놀라고.”

“···.”

“이런 영상이라 보라고, 어? 국민 여러분이 우리 문화재청에 세금 내는 줄 알아요?”

저도 세금 내는 국민인데요, 라는 말은 목구멍으로 꾹 삼켰다. 어차피 말이 안 통하는 꼰대 아저씨니까. 대신 7IN 멤버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꾹 참았다. 그 은혜로운 비주얼이 공유민 사무관에겐 참을 인(忍) 자와도 같았다.

그래, 나는 나랏녹을 먹는 선비야.

선비라면 인내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어.

군자의 말을 되새기며 공유민 주무관이 다시 메일함을 열었다. 그 사이에 새로운 컨택 메일이 하나 들어와 있었다.

“어라?”

제작사 이름이 칠린픽쳐스다. 일단 이름부터 마음에 드는군.

내용을 보니 이제 막 만들어진 신생 제작사인 것 같았다. 제작 역량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회사 이름이 마음에 쏙 든 공유민 주무관이었다.

어차피 일은 기존 제작사가 따 갈 것 같지만, 미팅은 한번쯤 해 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잠시 망설이던 공유민 주무관이 메일의 컨택 포인트로 전화를 걸었다.

미팅 약속은 빠르게 잡혔다. 연락한 바로 다음 날, 장소는 문화재청 내부 회의실. 공개적인 카페에선 미팅이 조금 곤란하다는 말이 살짝 의아했지만, 공유민 주무관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미팅 당일.

“!?”

“안녕하세요, 칠린픽쳐스입니다.”

“———!?!?!?”

드러난 칠린픽쳐스의 실체를 보며, 공유민 주무관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