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123화 (123/303)

#123

요망한 70세 소년들

올해로 48세인 택시기사 김한범은 경주에서만 10년 째 택시를 몰았다.

그간 참 다양한 손님들을 차에 태워 왔지만, 단언컨대 지금만큼 식은땀이 흐르는 순간은 없었다.

여느 때처럼 동료 기사 전중석과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호텔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던 참이었다.

관광도시인 경주는 호텔 부근에서 손님을 태울 확률이 가장 높았다. 지금 이 손님들 역시 호텔 주변에서 탑승한 손님들이었고.

이들은 멀리서부터 긴 머리를 찰랑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경주에 놀러온 여성 손님들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가까워질수록 뭔가가 이상했다.

···뭐가 이렇게 커?

손님들이 너무 크다. 게다가 우람하다.

롱스커트를 입은 손님의 치맛단 아래로 교량(橋梁)의 케이블 같은 아킬레스건이 보였다. 여성용 개량한복을 입은 손님들의 어깨는 하나같이 덤프트럭처럼 떡 벌어져 있었다.

“···오메···.”

김한범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대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손님들의 포스가 브레이크를 밟게 만들었다.

대체 어디로 가는 손님들일까?

김한범은 애써 영업용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나쁜 버릇이다. 의외로 수상하지 않은 사람들일지도 모른···.

“기사님.”

“예!”

“앞 차를 따라가 주십시오.”

“에—!?”

···수상하다.

“하하, 앞차라면 어떤···.”

“저기 저 차입니다.”

“이, 일행 분들이신가 봅니다, 하하.”

“예, 그렇습니다.”

손님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굵고 부드러웠다. 여자 목소리를 흉내낼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그 와중에 예의는 바른 것이 더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겨, 경주엔 놀러 오셨나, 하하하.”

“아닙니다, 일을 하러 왔습니다.”

“그렇구나. 무슨 일이요~?”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대화로 분위기를 풀어 보려 했지만, 예의바른 여장 청년은 더할 나위 없이 단호했다.

“안심하십시오, 위험한 일은 아닙니다.”

“하하, 그런가요?”

“무언가를 촬영하는 일이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수상하다, 누가 봐도 수상하다고!

수상함은 이미 치사량에 도달해 있었다. 마침 신호가 걸리는 바람에, 김한범은 그가 쫓아가던 택시의 바로 뒤에 멈춰서게 됐다. 김한범과 함께 식사를 했던 동료 기사 전중석의 차량이었다.

뒷유리로 앞차 승객들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장발의 승객이 세 명, 체구는 비교적 호리호리했지만 딱 봐도 키가 너무 크다. 게다가 여자라고 하기엔 어깨가 너무 떡 벌어져 있었다.

일행이 확실하구만.

당장 전중석에게 무전을 하고 싶었지만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핸들을 잡은 손이 계속해서 파들파들 떨렸다.

“후우-.”

애써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던 순간.

터억-.

“헙!”

그 중 가장 예의바르고 수상한 소년(녀)이 김한범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기사님.”

“예!?”

“걱정 마시지요, 저희 수상한 사람들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며 소년(녀)은 해사하게 웃었다. 성별조차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얼굴이 더 수상했다.

“그저 일 때문에 이런 복장을 입었을 뿐.”

···그러니까 그 일이 대체 뭐냐고요.

* * *

대혼란에 빠진 택시기사들의 속사정도 모른 채, 일곱 선비들은 택시에서 내려 놀이마당을 향해 걸었다.

“후후, 이 정도 변장이라면 아무도 알아볼 수 없겠구나. 정말 다들 가관이로다.”

“정말 다들 못 알아볼까여? 방금까지 여장 라방 했자나여. 그거 보신 팬 분들이 계시면···.”

“에이, 설마. 엄청 잠깐이었는데?”

“후으음, 그런가?”

“그래, 현수 말이 맞다.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여? 나 너무 자의식 과잉이었어?”

그러나 세상은 그들에게 관심이 아주 아주 많았다.

놀이마당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종종 하이톤의 고함 소리도 들려 왔다.

“하하, 뭐징?”

“그냥 여장이 신기해서 그러는 거겠지.”

“웅이랑 혁이 형 보고 놀라서 저러시는 것 같기도 하고···.”

“뭐? 날 보고 놀란다고? 왜?”

“놀라우니까 놀라지. 반스타킹은 왜 신었냐?”

“어라? 근데 저거 우리 응원봉 아님여?”

“하하, 저것은 서예 붓 아니더냐. 젊은이가 서예붓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거늘.”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 같은데?”

꺄아아아—.

놀이마당에 도착했을 때 즈음엔 이미 사방이 인산인해였다. 놀이마당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라고 하기엔, 사람들은 모두 그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징.”

“아니, 분장은 완벽했거늘···.”

“분장이 완벽해도 우릴 알아본 거져. 라방을 보셨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현재가 스마트폰을 열어 SNS를 켰다. SNS엔 이미 ‘7IN이 여장을 하고 나타났다’는 포스트가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었다.

[칠린이들 여장하고 경주 놀이마당 뜸!!!!!!!!!]

[헐 ㅅㅂ미친 대박받박바ㄷㅂ대박]

[(사진) (사진) (사진)]

[ㅋㅋㅋㅋㅋㅋ뭐야이겤ㅋㅋㅋㅋㅋㅋ]

[여장 라방했다더니 진짜였넼ㅋㅋㅋㅋㅋ]

[어제는 불국사 오늘은 여장콘]

[이제는 여장 퍼레이드까지?]

[칠린이들아 우리 대체 어디까지 혼란스러워져야 되니?]

[ㅋㅋㅋㅋ아근데 그와중에 여장 너무 예뻐]

[애들착장봐ㅠㅠㅠ오늘은 신라풍이네]

[경주 갔다고 맞춘건가? 진짜너무예쁘고]

[애들 메이크업 현재가 한거아냐? ㅁㅊ너무찰떡]

[(사진) (사진) (사진)]

[후 어제 불국사 떴다는거 보고 바로 월차내고 경주행 티켓 끊었는데 나 계 제대로 탔다^^]

[ㅠㅠㅠㅠ아졸라부러워퓨ㅠㅠㅠㅠㅠㅠㅠ]

[앞으로 진짜 유적지마다 가서 존버해야되나?]

[근데 인혁옵이랑 태웅이는ㅋㅋㅋㅋ어떡해]

[다리근육 절대지켜 제발]

[하 헬창즈 여장은^^ 수납 쉽지않네]

[인혁옵 개시크하게 생겨서 뭐든 너무 열심히 참여하는거 개 웃음벨임ㅋㅋㅋㅋㅋㅋ]

[여장도 개빡세게했넼ㅋㅋㅋㅋㅋ]

반응이 폭발 중인 SNS를 닫으며 현재가 중얼거렸다.

“···오늘 느낀건데여.”

“음? 무엇을?”

“우리는 좀 자의식과잉이어도 괜찮음여.”

“하하, 그렇구나.”

이렇게 된 이상 아이돌로서의 책무를 다한다.

“현수야, 반주는 다 가지고 있느냐.”

“어. 혹시 몰라서 미니 앰프도 챙겨 왔지.”

“훌륭하구나.”

먼저 인혁과 태웅이 인파를 진정시켰다. 평소에도 무서운 피지컬이었지만 그 우락부락한 몸에 여장을 얹으니 더욱 무서운 두 사람이었다.

팬들이 진정을 찾자 군자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팬들 앞에선 언제나 제대로 인사부터 드려야지.

그러나 군자는 변장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광대가 분장을 했다는 것은, 다른 인격을 입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단순히 용모만 바뀐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소개도 달라야 하지 않겠느냐.

“안녕하세요!”

“우와아-!”

“신인 걸그룹, 칠순입니다-!”

“우와아아아아—!!”

폭소와 환호성이 섞여서 터져 나왔다. 온라인 반응 역시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신인걸그룹 칠순.jpg]

[방금 군자가 자기들 칠순이라고소개함ㅁㅋㅋㅋㅋㅋ]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하필칠순인뎈ㅋㅋㅋㅋㅋㅋ]

[칠린 -> 순이 -> 칠순 인거임?]

[ㅋㅋㅋㅋㅋ칠순이들 정정하시네]

[미치게따진짴ㅋㅋㅋㅋㅋ]

[사람들 웃길라고 아이돌 하는것같아]

[이렇게 예쁜 칠순할머니들은 본적이 없음]

[근데 얘네 진짜 사람 몰릴줄 몰랐나바ㅠㅠ]

[당황한거 얼굴에 보임ㅋㅋㅋㅋ개귀욥]

[아니 라방을 그렇게 하고 그러고 돌아다니면 누가 몰라보냐고요]

[ㅋㅋㅋ사진좀 마니올려죠ㅋㅋㅋ]

‘칠순’이라는 새로운 그룹명에 당황한 멤버들도, 이내 본인들의 새로운 자아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았다.

“예에, 우리가 칠순이다!”

“우와아아아—.”

“그럼, 지금부터 칠순잔치 시작해 보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

지현수가 치맛자락 아래 숨겨온 앰프에 스마트폰을 연결하자 익숙한 MR이 흘러나왔다. 7IN의 첫 번째 히트곡 <예의없는 것들>이었다.

꺄아아아아아—.

거문고 인트로에 맞추어 시작된 퍼포먼스. 여장 때문인지 새로운 그룹 이름 때문인지, 안무 동작은 요망하기 그지없었다.

“아아악, 너무 귀여워—.”

“칠순! 칠순!”

실시간으로 움짤과 동영상이 양산되는 가운데 칠순이들의 퍼포먼스는 계속됐다. <예의없는 것들>을 시작으로 결승 곡인 , 1집 타이틀곡 <근본(Origin)>.

경연곡 <유교우먼>에서는 유찬이 유교우먼 영의정 역할을 맡았다.

퍼포먼스를 이어갈수록 관객들은 점점 많아졌다. 놀이마당 공연을 보러 온 이들까지 칠순이들의 공연장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군자가 이마를 탁 치며 아뿔싸를 내뱉었다.

“아뿔싸.”

“또 뭐가 아뿔싼데.”

“우리가 민폐를 끼치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저, 저도 아까부터 시, 신경 쓰였어요···.”

“놀이마당 때문에 그래? 이 쪽에 사람들 많이 모이면 저 분들한테도 좋은 거 아닌가?”

“하지만 우리 공연만 보고 가실 수도 있지.”

“흐음, 그런가.”

“공연을 하는 사람들에겐 관객의 함성이 최고의 보상이다. 우리 모두 공연을 해 보아서 알지 않느냐.”

“그건 그렇지.”

“우연히 이 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으나, 저 분들의 보람을 빼앗아선 안되지.”

군자의 의견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놀이마당에 온 것도 공연 때문이 아니라 군자의 액션 연기 능력을 검증하러 온 것이었으니, 공연이 어느 정도 끝난 지금은 놀이마당으로 가는 것이 합당했다.

“팬 여러분들, 저희는 지금부터 놀이마당 공연으로 보러 갈 겁니다.”

“네에-!”

“혹 저희와 함께하고 싶으시다면, 같이 놀이···.”

“네에! 네에! 네에에-!”

···괜한 질문이었군.

군자는 헛기침을 하며 놀이마당 쪽으로 향했다. 수많은 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약간은 언짢은 모습으로 칠순이들의 공연을 지켜보던 놀이마당 공연자들도, 우르르 몰려오는 인파를 보며 표정을 바꾸었다.

그들이 자리를 잡자 놀이마당 공연패가 공연을 시작했다. 줄타기, 풍물놀이, 부채춤, 검무 등으로 이루어진 놀이마당 공연은 칠순이들의 공연과는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우와아아아—.”

“멋져요!”

7IN 팬들의 목소리는 하늘을 찌를 듯 우렁찼다. 최애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나도 좋아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7IN 멤버들이 놀미마당 공연을 좋아하니, 그 팬들 역시 당연한 것처럼 공연에 호응을 보냈다.

처음으로 아이돌 팬들의 환호를 경험한 공연단은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쾌감을 느꼈다. 같은 동작을 취해도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펄쩍—.

덕분에 평소보다 더 높게 뛰어올랐고, 더 위태로운 동작도 깔끔하게 성공시켰다.

“다들 진정, 진정! 다치지 않게!”

“네 단장님!”

그러나 흥이 너무 넘쳤던 탓일까.

공연의 1부가 끝나는 시점, 줄타기를 하던 공연자가 착지 순간 발목을 삐끗해 버리고 말았다.

“아악-.”

“!”

하필이면 대체도 불가능한 줄타기 주자의 부상, 단장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러니까 흥분하지 말라고···!”

“···죄송해요 단장님.”

단장은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가 그렇게 신을 낸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았으니까.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셔서, 잘 하려다가···.”

“어휴, 진짜.”

줄타기 주자를 빠르게 병원으로 보낸 뒤, 단장은 고민에 빠졌다. 부상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 역대급으로 많은 관객 분들이 오셨으니까.

아무리 조그만 놀이마당 공연이라고 해도, 그에겐 관객들에게 최고의 공연을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하지만 줄타기 주자 없이 어떻게?

단장이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찰나.

“···저기.”

“?”

“혹시 줄타기 주자를 찾으시는지···.”

웬 하얗고 아름다운 소년(녀)이, 쭈뼛거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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