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1화 공개
7IN은 엄청난 숫자의 팬만큼 안티팬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팀이었다.
데뷔 직후부터 신기록을 죄다 갈아치우며 보이그룹 판도를 갈아치운 7IN인 만큼, 그 행보를 아니꼽게 바라보는 이들도 많았으니까.
7IN과 경쟁 구도에 있는 보이그룹 팬덤 중의 일부가 특히 그랬다.
그들은 어떻게든 7IN을 깎아내리겠다는 일념으로, 티끌만한 오점이라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안티팬들에게 7IN은 재미없는 그룹이었다.
일곱 멤버 중에는 그 흔한 춤 구멍, 보컬 구멍, 비주얼 구멍 하나 없었으며 딱히 인성에 문제가 있는 멤버도 없었으니까.
그나마 유군자가 종종 돌발행동으로 논란을 만들긴 했지만, 그 역시 모두 마지막엔 그에 대한 호감도를 올리는 사건이 되어 버리니 안티의 입장에선 미칠 노릇이었다.
결국 안티들이 선택한 것은 ‘억까’였다.
그들은 하찮을 정도로 사소한 트집을 잡아 악의적으로 7IN을 비방했다. 물론 대중들은 안티들의 억지에 동조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7IN의 팬덤을 열받게 하는 데엔 꽤나 효과적이었다.
이번 광고 건도 마찬가지였다.
성공한 아이돌이 광고를 찍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안티들은 ‘돈에 미친 7IN’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무지성 비방을 시작했다. ‘고작 모바일 게임 광고나 찍으려고 그 호들갑을 떨었냐’며 비아냥거렸다.
팬들의 입장에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광고가 나오고 나면 안티들의 억지는 더욱 심해질 거다. 퀄리티가 낮으면 구리다고 깔 테고, 퀄리티가 높으면 돈독이 아주 단단히 올랐다고 깔 테니까.
그러나 문화재청에 영상이 공개되는 순간, 팬들의 스트레스는 단 한 방에 날아가 버렸다.
[헐!!!!!!!]
[우오ㅓㅏㅋㅇㅋㅋ캉ㅋㅋㅋㅋ]
[아니잌ㅋㅋㅋㅋ광고라는겤ㅋㅋㅋ]
[문화재청 광고였ㅇ!?!?!?]
[것도 3부작짜리 드라마타이즈♥︎♥︎♥︎♥︎]
[무쳣다 와아아아아앙ㅇ아아ㅏ아 너무좋아]
[ㅠㅠㅠㅠㅠ믿고있었다구ㅠㅠㅠㅠㅠㅠ]
[기업 광고 찍는다고 문제될것도 없지만ㅋㅋㅋㅋㅋ막상 문화재청 홍보컨텐츠였다고 하니까 속이 다 뻥 뚫리네]
[돈길 걸을수 있었는데도 진짜 예쁜일만 하네ㅠㅠㅠ]
[와 문화재청 채널 첨 들어가봨ㅋㅋㅋㅋㅋㅋ]
[우리애들 진짜 선한영향력 미친거같아ㅠㅠㅠㅠ]
[돈독 올랐다고 지랄지랄하던 까들 다 어디갔쥬?ㅋㅋㅋㅋㅋㅋㅋ]
[억까 진짜 미친수준이었는뎈ㅋㅋㅋ]
[애초에 솔라시스템이 ㅈㄴ돈많은회산데 뭔 돈독이올랔ㅋㅋㅋㅋㅋ 망상도정도껏해야지]
[개뚜들겨맞으면서도 반박 한번 못하쥬ㅋㅋㅋ]
[하 영상 때깔봐 미쳣다진짜ㅠㅠㅠㅠㅠ]
[근데 제작사 칠린픽쳐스? 칠린이랑 이름이 똑같넹]
[솔라시스템에서 만든 자체제작사 아님?]
[아앙아아ㅏㅏ 현재 보따리장사꾼ㅠㅠㅠㅠ여기서 나온거구나]
영상은 보따리장사꾼으로 분장한 현재가 주막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됐다.
주변 상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넉살 좋게 국수를 먹는 현재의 모습 위로, 차분한 현재의 나레이션이 깔린다.
- 내 이름은 하현재, 가야의 보따리장사꾼··· 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삼한정보국 소속의 요원.
- 삼한의 균형과 안전, 평화 유지를 위해 정보를 사고 파는 게 내 일이지.
“계산패 놓고 갑니다~”
곧 주모가 나무로 된 계산패를 앞에 놓고 자리를 떴다. 그런데 음식의 종류와 가격이 쓰여진 종이 외에 다른 종이가 한 장 더 보였다.
종이의 정체는 은밀한 장소가 그려진 약도.
- 주모의 첩보. 이 땅, 신라에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는 그것을 순식간에 살펴본 뒤, 꼬깃꼬깃 구겨 보따리 뒤에 휙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영상 극초반부였음에도 팬들은 싱글벙글이었다. 오매불망 새로운 떡밥을 기다리던 유군자의 1호 팬 연지도 마찬가지였다.
“와아, 와아아— 퀄리티 미쳤어어어!”
국가기관에서 뽑아낸 웹드라마 치고는 화면 때깔이나 연출의 상태가 너무 좋았다. 보따리장사꾼으로 분장한 현재는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또 그 와중에 연기도 훌륭했다. 팬 커뮤니티의 반응 역시 비슷했다.
[와아아아아아ㅏㅏㅏㅠㅠㅠㅠㅠㅠ]
[뭐야 이 퀄리티ㅠㅠㅠ뭐임ㅇ밍ㅁㅇ무]
[와 웹드라고 해서 또 무슨 고등학교 남사친 두명이랑 동시에 썸탄 썰.avi 이런 걸줄 알았는데 이거 뭐임ㅋㅋㅋㅋㅋㅋㅋ]
[현재귀여워ㅠㅠㅠㅠㅠㅠ삼한정보국 소속 정보원이래]
[하토리 야물딱지게 국수 먹고 비장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는짤.gif]
[문화재청에서 이런걸 만들어준다고ㅋㅋㅋ]
[그래서 그 첩보 내용이 뭔데 뭔데에에ㅔㅔ]
[분명 병맛드라마일 것 같은데 왜 쓸데없이 긴장감 넘침ㅋㅋㅋㅋ]
[군자는 언제나어뮤ㅠㅠㅠㅠ]
[하아 그러니까 권태웅이 이 드라마에서 빡빡이로 나온다 그말이지? 기뻐해야 되니 슬퍼해야 되니ㅋㅋㅋㅋㅋㅋ]
아직 안 읽은 댓글이 수백, 수천 개였지만 댓글을 읽을 새도 없었다. 연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문화재청 영상에 더욱 집중했다.
이어지는 씬은 인적이 드문 공간. 커다란 팽나무 아래에서, 가면을 쓴 정보원과 현재가 비밀스레 접선했다.
때애앵—.
정보원이 소리굽쇠를 두들기자, 현재가 그 소리의 음을 정확하게 맞췄다.
“3옥타브 라 샵.”
절대음감을 가진 현재였기에 가능한 문답. 현재의 신원을 확인한 정보원이 품 안에서 첩보가 담긴 두루마리를 꺼냈다.
두루마리 속엔 덩치 크고 근육 빵빵한 헬창 주지스님의 그림, 그를 설명하는 듯한 문자들이 쓰여 있었다. 이윽고 정보원이 두루마리를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최근 신라의 가장 큰 사업이 무엇인지 아시오?”
“불국사 건립이겠지요.”
“그렇소. 재상 김대성이 불국사 건립 사업을 추진 중이지. 그러나 실무는 곧 불국사의 주지가 될 한 승려가 도맡아 하고 있소.”
“그렇군요.”
“그런데 최근 그 승려가 달라졌다지.”
“어떻게?”
“팔다리가 우람해지고, 골격이 장대해졌으며, 무엇보다 가슴이 풍만해졌다 하오.”
“?”
정보원은 근육빵빵 주지스님의 그림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팬들은 근육빵빵 주지스님의 정체를 누구보다 빨리 알아챘다.
[ㅋㅋㅋㅋ앜ㅋㅋㅋㅋㅋㅋㅋ미친]
[빡빡머리 근육빵빵 난 권태웅~]
[웅녀들의 친구 난 권태웅~]
[ㅋㅋㅋㅋㅋㅋ하아 왜 배역을 해도 이런ㅋㅋㅋㅋㅋ]
[아육시 3차때처럼 개까리한거 해줄수는 없는거냐고ㅠㅠㅠㅠㅠ]
[ㄴ웅녀야 포기햌ㅋㅋㅋㅋ웅이는 애 자체가 그냥 병맛을 사랑하는듯]
[그래도 매력있자낰ㅋㅋㅋㅋ무대위에선 갭모에 개쩜]
[그건맞지 무대때문에 또 태웅이 못놓겠다ㅠㅠㅜㅋㅋㅋㅋㅋ 이미 제대로 웅며들었다고]
[ㅋㅋㅋㅋㅋ아 그림 ㅈㄴ김계란같앜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김계란ㅋㅋㅋㅋㅋㅋㅋ]
[아제발 하얀수염은 붙이지마라 태웅앜ㅋㅋㅋㅋ]
[와우~ 칠링이들[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빡빡이 아이돌이야!!!]
[ㅋㅋㅋㅋㅋ놀리지좀말아봨ㅋㅋㅋㅋㅋㅋㅋ]
“근육이 비대해졌다라··· 누군가 바꿔치기를 한 거군요.”
“그렇다고 보아야겠지.”
“무슨 목적으로?”
“확실친 않소만··· 아마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목표가 아닐까 하오.”
“경서를 훔친다? 가능한 일입니까? 경서는 탑(塔) 안에 보관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신라의 탑 건축 기술은 최고 수준이라, 그 안의 물품을 빼돌리기는 만만찮을 텐데요.”
“하지만 탑을 만드는 석공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
정보원은 두 번째 두루마리를 건넸다. 그 곳엔 조각처럼 잘생긴 석공 아사달의 그림이 있었다.
“백제 석공 아사달이요. 석조(石造)에 있어서는 삼한 전체에서도 이 자의 기술을 따라갈 자가 없지.”
“나 역시 알고 있는 이름입니다.”
“불국사 내의 석가탑(釋迦塔)을 세우기 위해, 김대성이 아사달을 불러들였소.”
그림의 이목구비만 봐도 팬들은 그게 차인혁임을 금방 알아챘다.
[인혁옵 등자앙아아앚앙ㅇ]
[미쳣다미쳣어 인혁옵이 아사달인거임?]
[아사달이면 주인공이자나!!!!!!!?!?!?!!!]
[헐허헐ㅎ러헐헐 드디어 인혁옵 주인공 한번 하나ㅠㅠㅠㅠㅠ]
[맨날 덩치에 안맞게 쭈굴쭈굴 쭈구리만 해서 속상했다고ㅠㅠㅠㅠㅠㅠ]
[아 그래서 트위티에 돌 사진 올린거였구나]
[ㅋㅋㅋㅋㅋ갑자기 돌덩이 사진만 띡 올라와서 다같이 혼란이었자낰ㅋㅋㅋㅋㅋㅋ]
[차사달 빨리 보고싶다ㅠㅠㅠㅠㅠㅠ]
[차사달!! 차사달!! 차사달!! 차사달!!]
팬들의 기대를 읽었다는 듯, 화면은 불국사 내부의 공사현장으로 전환됐다. 그곳에선 가슴팍이 반쯤 벌어진 작업복을 입은 채, 땀을 흘리며 돌에 정을 치고 있는 아사달 차인혁이 있었다.
햇볓에 살짝 그을린 피부, 커다란 사이즈에도 선명하게 굴곡이 드러나는 팔 근육, 작업복 갈라진 틈 사이로 보이는 떡 벌어진 가슴근육.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돌을 조각하는 인혁의 모습은 팬들의 심장을 융단폭격하기에 충분했다.
[끄아아아아아ㅏㅏㅏㅏ]
[그림 미쳤다 와아ㅏㅏㅏ 와아ㅏ알앟ㅍㅇ퓨ㅏ]
[미친 미침ㅊㅁ미친 미쳣어]
[나 진심 코피날것같으뮤ㅠㅋㅋㅋㅋㅋ]
[세상에 세상에 ㅈㄴ섹시해진짜]
[석공 차인혁이래ㅠㅠㅠㅠㅠ진짜 개찰떡이다ㅠㅠㅠㅠㅠㅠ]
[조각하는거 왜케 안어색하고 멋지냐ㅠㅠㅠㅠㅠ]
[진짜 인혁옵 피지컬은 대한민국의 것이 아님]
[미국출신이자나 거기서도 비밀경찰 한 클래스임ㅋㅋㅋㅋ]
[그거 루머라몈ㅋㅋㅋㅋ인혁옵은 매번 부정중]
[근데 비밀경찰 아니었어도 애들은 그냥 다 ㅈㄴ쫄았을듯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인혁옵 세상 다정하고 순한사람인뎅]
[와 저 정으로 내 머리통 쪼개줬으면 좋겟다]
[미친ㅋㅋㅋㅋㅋㅋㅋ잔인한소리하지맠ㅋㅋㅋㅋㅋㅋㅋ]
석가탑을 조각하는 인혁의 모습, 그 위에 정보원의 나레이션이 흘렀다.
- 아사달은 꼬박 1년째 석가탑을 만들고 있소. 작업이 끝나려면 앞으로도 더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 놈들은 아사달을 흔들려 할 거요. 아사달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도록 말이오.
- 특히 아내인 아사녀와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아사달을 힘들게 할 거요. 아사달은 아내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니.
- 대놓고 탑의 건축을 방해할 수는 없겠지. 그러나 그렇게 조금씩 아사달의 정신을 좀먹게 한다면, 석가탑은 절대로 완벽하게 지어질 수 없을 것이오.
이제 다시 화면은 현재와 정보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으로 돌아왔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사달을 빼돌려야 할까요?”
“그건 불가능하오. 아사달은 재상 김대성이 직접 부른 인력이니까.”
“그럼 어떻게?”
“아내와 떨어져 있다는 것이 그의 정신을 좀먹는다면, 다시 아내를 만나게 해 주면 그만이겠지.”
“허나 건축 중인 불국사엔 여자가 출입할 수 없다는 금제가 있지 않습니까.”
“문제없소.”
“?”
“이 가슴 풍만한 주지스님은, 아직 아사달의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것 같으니.”
“···어떤···.”
순간, 화면은 아사달의 집으로 전환됐다. 악몽을 꾸는 듯 뒤척이던 한 여자가 이부자리를 박차고 벌쩍 일어났다.
카메라는 그녀의 뒷모습을 찍고 있었다. 그녀가 카메라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목구비가 보였다.
- 전직 삼한정보국 소속 특급요원. 지금은 손을 털고 석공의 아내가 되었지만, 아마 그녀가 거둔 목숨이 아사달이 깎은 돌덩이 만큼이나 많을 것이오.
그 위로 정보원의 나레이션이 흘렀으나 연지는 그저 군자를 보며 입을 틀어막을 뿐이었다.
미쳤다, 정말 미쳤어. 남자가 이렇게 예쁜 건 반칙 아니야?
- 그들은 사람을 잘못 건드린 겁니다.
아사녀로 변장한 군자가 무기를 챙기며 집을 떠날 채비를 하는 것으로 1화는 마무리됐다. 온갖 팬 커뮤니티와 SNS는 엄청난 반응으로 폭발 직전이었다.
그러나 아직 폭탄 하나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문화재청에 올라온 영상 <미션 임파서佛> 1화가 끝나자 마자, 이번엔 솔라시스템 채널에 <우리는 칠린픽쳐스!> 1화가 공개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