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139화 (139/303)

#139

큰 형아의 제안

“이여-크 성 형-묭?”

“What’s that?”

군자의 반색에 제레미 웨스트와 사라 오코너가 더욱 놀랐다.

‘홍시’ 캐릭터를 설명해 준다면 분명 좋아할 줄 알았다.

야망 있는 빌런 홍시는, 전도유망한 연기자라면 누구든 탐낼 만한 매력적인 역할이었으니까. 분명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여러 가지 질문들을 해 올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저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이 아니다. 빛난다기보단 활활 불타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질문들도 좀 이상했다.

“그··· 그 홍시라는 친구와 왕의 성씨가 다릅니까?”

“예? 아 예, 두 사람은 다른 패밀리 네임을 사용합니다.”

“역성혁명 맞구만—!!”

“Eh?”

“그렇다면 혹시 왕의 이름은 어떻게 되는지···.”

“어어··· 왕의 이름은 ‘이정’입니다.”

“하필이면 또 이씨야—!?”

‘이여-크 성 형-묭’이 뭔진 몰라도, 그것이 군자를 단단히 화나게 했음은 분명해 보였다. 당황한 제레미 웨스트가 통역사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속삭였다.

“미스터, 이여-크 성 형-묭이 대체 뭡니까?”

“아, 그것이···.”

통역사가 쩔쩔매며 역성혁명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동안, 군자는 군자대로 당황 중이었다.

애초에 연기엔 큰 뜻이 없었지만, 두 서양인들의 간곡한 설득에 마음이 조금씩 열려 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무슨 배역인지 들어나 보려고 했던 것인데, 세상에. 반역이라니, 역성혁명이라니!

게다가 하필 왕조도 이씨 가문이란다. 이씨 가문을 전복시키려는 반역자 역할이라. 안 그래도 연기가 어려운 군자였는데, 이 역할은 그냥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호달달 떨려 왔다.

그 와중에도 두 마벨 관계자들은 꽤나 필사적이었다.

“군자 씨.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홍시는 아주 쿨하고 멋진 빌런 캐릭터입니다.”

“그, 그럼요. 대사로 예를 들어 드리자면··· 아, 이런 대사가 있네요. 이정, 오늘 너의 모가지가 우리의 발 아래 구를 것이다.”

“그만, 그만, 그마아안—!!”

그러나 군자를 설득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역효과만 낳았다. 감정이 격해진 군자의 모습에, 서은우 팀장도 걱정스런 눈빛이었다.

“군자 씨, 괜찮습니까.”

“후우우—.”

“잠시 휴식이라도 취하는 게···.”

“아닙니다. 산수화를 보니 마음이 좀 가라앉았습니다.”

마침 회의실엔 군자가 그린 산수화가 걸려 있었다.

대체 저걸 보면서 마음이 가라앉는 원리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그림을 걸어 놓길 잘했다고 생각한 서은우 팀장이었다.

겨우 흥분을 가라앉힌 군자가 차분하게 질문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그··· 그 홍시라는 인물 말입니다.”

“아, 네. 무엇이든 물어보셔도 됩니다.”

“혹시 임금께 상소문은 올려 보았던 겁니까?”

“솽-소-무운-?”

이번에도 통역사의 부연설명이 필요했다. 단어를 이해한 사라 오코너가 군자의 질문에 답했다.

“아닙니다. 홍시는 그렇게 온건한 캐릭터가 아닙니다. 확실한 변화를 위해선 힘과 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지요.”

“저런, 저러언···.”

“또 다른 궁금하신 점 있으신지.”

“그렇다면, 혹시 임금이 그렇게 구제불능인 폭군인지요.”

“어어···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임금 이정은 폭군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다소 무능한 인물이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요.”

“어허어···.”

가면 갈수록 첩첩산중이었다. 임금이 무능하다면 그를 보필하여 군신(君臣) 간의 의를 다하지는 못할 망정, 상소문 하나 없이 역성혁명을 일으킨다라.

이것은 선비의 도리를 넘어도 너무 넘어선 것 아닌가.

“그렇다면···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홍시와 그의 부모 말씀이십니까?”

“네.”

“홍시는 부모가 없습니다.”

“아아··· 일찍이 사망하신 겁니까?”

“아니요.”

“엥?”

“하급 공무원으로서 나라의 뜻을 받들었던 부모와 이념이 맞지 않아, 스스로 연을 끊어 버린···.”

“허허어, 이 무슨 패륜아란 말인가아-.”

아무리 가상의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라 해도, 홍시라는 놈은 도무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한 군데도 없었다. 캐릭터 설명을 듣고 나니 비로소 군자의 입장은 명확해졌다.

“죄송합니다. 저는 홍시가 될 수 없겠습니다.”

“예?”

제레미 웨스트와 사라 오코너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당황한 모습이었다.

연기자로서 별다른 커리어도 없는 군자였기에 캐스팅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캐릭터 설명을 마친 순간 방방 뛰며 행복해 하는 군자의 모습을 상상했던 두 사람이었다.

물론 방방 뛰기는 했다. 기뻐서가 아니라 불충 불효에 화를 내며 방방 뛰기는 했지만.

그러나 두 사람은 묘하게도 그런 군자의 모습에 더욱 끌렸다. 무엇보다, 실물로 본 군자의 비주얼에 푹 빠져 버리고 말았다.

동서양을 완벽하게 아우를 수 있는 예술적인 비주얼이다. 거기에 피지컬 역시 길쭉길쭉 탄탄하고, 심지어 몸까지 일류 스턴트맨 뺨치게 잘 쓴다.

단언컨대 이런 배우는 그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그런 젊은 재능이 쉽게 넘어오지 않으니, 캐스팅 디렉터와 시나리오 작가의 애간장이 타는 것도 당연했다.

캐스팅 디렉터 제레미 웨스트의 시선이 군자에게서 서은우 팀장에게로 향했다. 그의 눈빛은 무언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이 친구가 우리 제안의 무게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데 당신이 설득 좀 해 주시오, 라는 메시지.

그러나 서은우 팀장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는 아티스트의 의사를 100% 존중합니다. 유군자 씨의 의견이 곧 우리의 의견입니다.”

“허어···.”

서은우 팀장은 군자를 설득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모습마저 마음에 든 제레미 웨스트였다. 이렇게 존중받으며 성장했기에, 군자의 재능이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것일 테다.

언젠가는 꼭 함께 일하고 싶구나!

“아쉽네요. 하지만 오늘 만남을 통해 확신을 가지게 됐습니다. 유군자 씨, 우리는 언젠가 함께 일하게 될 겁니다. 우리가 당신을 위한 완벽한 배역을 만들어 낼 테니까요.”

제레미 웨스트의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었다. 사라 오코너는 한술 더 떠서 아예 캐릭터 구상을 위한 브레인스토밍까지 함께했다.

“군자 씨, 홍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인물은 어떨까요?”

“다른 인물이라?”

“아직까지 마벨 시네마틱 유니버스엔 없는 인물이지만, 군자 씨에게 소중한 ‘선비’ 세계관을 잘 지키며 선비다운 물건으로 전투를 펼치는···.”

“오오, 그런 인물을 만들 수도 있는 겁니까?”

“물론이죠, 제가 원작자인데요. 갓을 원반처럼 날려서 싸운다거나, 포승줄을 통해 적을 포박한다거나. 얼마든지 가능한 디자인입니다.”

“오오오?”

“그러나 그 전투엔 언제나 충효라는 명분이 있는 겁니다. 마치 군자 씨처럼요.”

“오오오오! 그건 조금 탐이 납니다—!!”

“하하, 이름은 ‘Captain Chosun’이라고 지으면 되겠군요.”

그렇게, 배역 ‘홍시’를 위한 협상은 끝내 결렬되고 말았다.

그러나 군자는 또다른 귀인 두 명을 얻게 되었다.

* * *

군자와 마벨 스튜디오와의 협상이 끝난 뒤, 멤버들의 리액션은 제각각이었다.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은 마벨 광팬인 태웅.

“미친, 안 하겠다고 했다고!? 대체 왜—!?”

“내게 역성혁명을 일으키라고 하잖느냐.”

“뭔 개소리야 그게!”

“하하, 네가 모를 줄 알았다. 역성혁명이란···.”

“아니, 뭐 나쁜 짓이란 건 알겠어. 근데 그게 뭐? 너 여장 했다고 진짜 여자 된 것도 아니잖아!”

“여자가 되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다. 그러나 반역자가 되기는 싫다.”

“하아, 그냥 연기잖아 연기···.”

“게다가 너희와 떨어지기도 싫었단 말이다.”

“아니··· 치사하게 가불기 쓰네···.”

다른 멤버들 역시 아쉬움을 표현하긴 했지만, 그래도 군자와 떨어지지 않을 수 있음이 반가운 듯 했다.

“에잉, 선비 형아 마벨 영화에 나와도 엄청 멋질 것 같긴 했는뎅.”

“···그, 그래도 전 군자 형이 어디 안 가서 좋아요···.”

“맞아. 게다가 어차피 기회는 또 있을걸? 서 팀장님 말 들어 보니까, 그 분들이 군자 엄청 좋게 본 것 같다더라.”

“군자, 영어 공부 하자.”

“오오, 혁이 형님께서 시켜 주시는 겁니까.”

“그래. 내가 가르쳐 줄게.”

“혁이 형한테 배우면 막 무서운 영어 배우는 거 아님여?”

“맞아, 그 갱들이 쓰는 슬랭 같은 거 있잖아.”

“그런 거 안 쓴다···.”

“푸하학, 이 형 또 시무룩해졌네. 아니 어깨 좀 펴고 살아요.”

군자의 개인 활동이 결렬됐으니 다시 한번 팀으로 움직일 차례였다.

미니 1집 활동은 마무리됐고, <미션 임파서佛> 역시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이제는 정규 앨범을 준비할 시간.

서은우 팀장을 비롯한 기획팀 일원들은 이미 정규 앨범 준비를 시작한 상태였다.

“이제 개인 활동을 하는 멤버들도 없으니, 본격적으로 정규 앨범을 준비하려 합니다.”

“오오오-.”

“지난 미니 앨범처럼, 컨셉은 여러분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잡을 겁니다. 그렇다고 책임을 떠넘기려 하는 건 아니니 안심하세요. 좋은 의견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만약 의견이 없다면, 기획팀에서 여러분에게 맞는 컨셉을 구상해 보겠습니다.”

“넵.”

“앨범 수록곡은 10곡 안팎이 될 겁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절반 이상을 자작곡으로 채워 넣는 겁니다. 지현수 씨, 가능하겠습니까.”

“당연하죠. 저 쉴 때마다 스케치 엄청 해 뒀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리고 이번 앨범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 연출은 현시우 씨에게 맡겨 볼까 합니다.”

“아하하하, 제가 하라고요~?”

“네. 부담스럽다면 지난 번처럼 외주 제작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하하하핫, 아니에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앨범 준비 모드가 시작되며, 7IN은 잠시간의 공백기를 가져가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군자의 핸드폰이 울렸다. ‘루나틱’의 리온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였다.

“형님!”

- 유군자 씨.

“목소리 듣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어인 일이십니까.”

- 내가 7IN에게 제안할 게 하나 있는데.

“제안이요?”

- 혹시 내일, 솔라시스템 사무실로 찾아가도 될까요?

난데없이 솔라시스템 사무실로 찾아오겠다는 리온의 말에 군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놀러 오는 거라면 숙소로 오셨을 텐데, 어이하여 사무실로 찾아오시는 것일까.

다음 날, 리온은 약속대로 솔라시스템 사무실에 나타났다. 회의실엔 이미 서은우 팀장과 7IN 멤버들이 모두 앉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모두를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꾸벅 숙인 리온이 입을 열었다.

“저 군대 갑니다.”

“···?”

당황스런 선언, 모두의 표정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아직 기사조차 뜨지 않은 군 입대 소식이었기에, 서은우 팀장마저도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갑자기 군대를 간다니, 그걸 왜 여기서?

“···화, 화이탱···.”

“온이 형아, 언제여?”

“아마도 세 달쯤 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헐, 얼마 안 남았네여··· 그 전에 캠핑이라도 같이 가여.”

“예, 가야죠. 안 그래도 배산임수의 심산유곡을 몇 군데 알아 두었습니다.”

“근데 형님, 실례지만 그걸 왜 여기서 발표하시는···.”

“저와 루나틱 멤버 세 명은 3개월 후 동반입대할 예정입니다. 그로 인해, 현재 출연을 조율 중이었던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우리 대신 그 프로그램에 출연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리온의 눈이 광기로 희번득 빛났다.

“언제나 그렇지만, K-POP의 부흥을 위해.”

“후으음, 어떤 프로그램인데여?”

“아마도 여러분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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