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140화 (140/303)

#140

다이너스티

‘여러분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말에, 멤버들의 생각은 제각각 다른 곳으로 엇갈렸다.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요?”

“음, 서바이벌 같은 거예여?”

“가짜 사나이 같은 거 아님? 나랑 혁이 형 있잖아.”

“으으, 그런 거 진짜 싫다···.”

“지현수 넌 군대 한번 갔다 와야 돼.”

“넌 갔다 온 것처럼 말한다?”

“갔다 왔는데? 나 3년 연속 해병대 캠프 갔거덩.”

“대체 그걸 왜 세 번 씩이나? 부모님이 좀 엄격하셨니?”

“노노,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갔지.”

“뭐? 너 마조히스트냐?”

“후후, 나중엔 교관님들이 제발 그만 좀 오라더라.”

“진짜 이해가 안 가네.”

“···거, 검도라면 조금 자신 있는데···.”

“아하하하하, 먹방 같은 거 아닐까~ 우리 애들 다 복스럽게 잘 먹잖아~”

“흐음, 한시 짓기라면 어떨지?”

“임마, 그건 너 아니면 아무도 못 하는 거잖아.”

“하하, 괜찮다. 어차피 내가 모두를 이기면 되잖느냐.”

“혁이 형은 머 의견 없음여?”

“···범죄자 교화 프로그램.”

“예?”

“혁이 형님?”

“역시 이 형 비밀경찰 맞다니깐.”

“그, 그게 아니라··· 상담소에서 일을 잠깐 했는데···.”

“상담? 상담이 아니라 물리치료였던 거 아니에여?”

“푸하학, 범죄도시에 나온 진실의 방이 사실 혁이 형 꺼였넹.”

“···아닌데···.”

“으으, 온이 형님. 정답이 궁금합니다. 빨리 알려 주소서.”

빗발치는 멤버들의 의견을 가만히 듣고 있던 리온이 입을 열었다.

“정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현재 군의 의견이 가장 근접했습니다.”

“오오, 그럼 서바—!?”

“네.”

서바이벌이라는 말에 서은우 팀장이 살짝 놀라며 자세를 바꿔 앉았다. 루나틱이 출연 교섭 중인 서바이벌이라면 서은우 팀장 역시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온은 뜸 들이지 않으며 바로 본론을 이어 갔다.

“한중일 합작 아이돌 서바이벌 <다이너스티>. 루나틱과 교섭 중이었던 프로그램의 이름입니다.”

“다, 다이너스티요? 뭔가 엄청 거창한데···.”

“그게 어떤 프로그램이에여?”

“간단합니다. 한국, 중국, 일본, 미국까지 각 나라를 대표하는 아이돌들이 출연하여 경연으로 경쟁을 펼치는 프로그램입니다.”

리온의 설명에 멤버들의 입이 벌어졌다.

“···대박.”

“다른 나라 아이돌이랑 경연을 한다고여?”

“오오, 완전 올림픽 같은데요!”

“네. 하지만 올림픽과 다른 점도 있습니다. 올림픽에서는 언제나 미국과 중국이 최상위권을 차지하지만, 아이돌 시장에선 우리 대한민국이 항상 1위를 차지해 왔다는 점입니다.”

“!”

“한국의 아이돌은 당연히 타국 아이돌보다 수준이 높아야 합니다. 그게 대중의 인식이죠. 그러나 타국 아이돌들의 퀄리티는 매년 눈에 띄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동의한다는 듯 현재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맞아여. 저도 원래 소속사에서 월말평가 하면 중국, 일본 연생들이 꼭 상위권 차지했음여.”

“요즘 사클 보면 일본 애들도 좋은 노래 엄청 많이 올리더라.”

“···시, 실력이 엄청 올라온 것 같아요···.”

“하긴, 그 나라들은 애초에 우리보다 인구가 훨씬 많긴 하잖아.”

“그럼에도 현재까지는 한국 아이돌이 중국, 일본, 미국 아이돌에 비해 압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크으, 이게 다 루나틱 형님들 덕분 아니겠습니까.”

“크으으, 우리의 국뽕 충전기~”

“···부끄럽습니다.”

민망한 듯 잠깐 얼굴을 붉혔던 리온은, 다시 표정을 정돈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어쨌거나, <다이너스티>에 출연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전 세계의 아이돌들과 자웅을 겨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와아···.”

“그, 그걸 저희가 한다고여?”

“아하하하, 우리는 이제 데뷔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아무리 신예라고 해도, 퍼포먼스의 레벨은 이미 어떤 아이돌과 비교해 보아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경연과 활동을 직접 보고 내린 결론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리온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해 보였다.

“저 역시 <다이너스티> 출연 협상이 결렬된 이후 수많은 팀들을 고려했습니다. 국가 대항전 성격을 띈 프로그램인 만큼, 최상의 실력과 가능성을 가진 그룹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

“물론 연차 높고 안정적인 퍼포먼스 능력을 가진 그룹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눈엔, 칠린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진 팀은 없습니다.”

대선배의 칭찬에 멤버들은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몸을 꼬았다.

“과찬이십니다, 형님.”

군자 역시 머리를 긁적였으나 기분은 그 어떤 때보다도 좋았다.

가끔 엉뚱한 형님이기는 해도 결코 헛소리는 안 하시는 분이다. 이런 형님이 우리의 실력을 인정해 주셨다. 이 나라를 대표하여 경연에 나갈 만한 그룹으로 손꼽아 주셨다.

이 얼마나 가슴벅찬 일인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담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육시>와는 달랐다. 실수를 했다간 데뷔가 무산되는 것이 아니라 그룹 자체가 오명을 쓰게 된다. 더 나아가 나라 망신을 시키게 될지도 모르고.

그런 부담감을 인지하고 있다는 듯, 리온이 몇 마디를 덧붙였다.

“물론 부담이 될 겁니다. 나 역시 처음 이 제안을 받았을 때 같은 감정을 느꼈으니까요.”

“···.”

“거절해도 괜찮습니다. 갑작스런 제안이기도 했고, 여러분들이 느끼는 부담감 역시 이해하고 있습니다.”

“형님, 그럼 우리 나라에선 우리 한 팀만 나가는 건가요?”

“아닙니다. 우리 나라에선 총 두 팀이 참가합니다. 나머지 한 팀은 벨로체입니다.”

“!”

벨로체라면 파엘 형님이 리더로 계시는 그룹 아닌가.

<아육시> 3차 경연을 준비하며 눈알이 빠질 만큼 벨로체의 퍼포먼스를 반복 시청했던 멤버들이었다.

지겨울 만큼 보고 또 봤지만 신기하게도 벨로체의 퍼포먼스는 지겹지가 않았다. 인지도는 루나틱 쪽이 높았지만, 퍼포먼스의 레벨만 놓고 본다면 벨로체 역시 루나틱과 동급인 팀이었다.

그런 벨로체와 함께 경연에 나간다니.

만에 하나라도 그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는 경연을 펼친다면 분명 비교가 될 것이다.

든든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위험한 경쟁자인 벨로체였다. 나라를 대표한다는 부담에 또 하나의 부담이 더해진 셈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군자는 이 제안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흥미로웠다.

물론 솔라시스템과 얌전하게 정규 앨범을 준비하고 활동한다는 선택지도 있다. 그 쪽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덜 힘든 길이기도 할 테고.

허나 이런 기회가 또 언제 다시 오냔 말이다.

3개국의 합작으로 이런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것도 대단한데, 또 공교로운 타이밍에 리온 형님이 군대까지 가신다. 이런 일은 두 번 생기진 않을 것 같았다.

“리온 형님.”

“예, 군자 씨.”

“군대를 두 번 가진 않으시겠지요?”

“???”

순간 발끈할 뻔한 리온이었으나 간신히 이마를 짚으며 참았다. 리온도 이제 군자를 안다. 저 희한한 동생에겐 그 어떤 악의도 없었을 것이다.

“네. 군대 두 번 안 갑니다. 성실하게 복무하고 돌아올 생각이니까요.”

“그렇다면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라 보아도 되겠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군자가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군자야 벌써 호기심과 두근거림으로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으나 멤버들의 생각은 다를지도 모르니.

그러나 멤버들의 마음 역시 군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고. 난 무조건 고야.”

“쫌 무섭긴 한뎅··· 그래도 이런 기회가 맨날 오는 건 아니니까여!”

“중국이든 일본이든 밤 새는 건 내가 제일 잘할걸?”

“그래, 그건 인정. 지현수가 곡은 잘 만들지.”

“오, 웬일로 인정을 다 해 주냐.”

“내가 인정 안 해도 차트가 이미 인정했잖냐.”

“···저, 저도 나가고 싶어요··· 형들이랑 같이 있으면 안 무서워요···.”

“나도 안 무서워.”

“당연하지. 당신이 제일 무서운 존재라고.”

“···아니야···.”

“맞네, 생각해 보니까 우리가 무서워할 게 아니었네. 인간병기 차인혁이 있는데!”

의견이 모였음을 확인한 멤버들의 시선이 서은우 팀장에게로 향했다.

“팀장니임!”

멤버들의 의견이 아무리 하나로 통일됐다 해도, 결국 최종 결정은 회사에서 내린다. 리스크가 높은 프로그램이라는 판단이 선다면 회사에서 이 제안을 반려할지도 모른다.

턱을 괸 채 잠시 고민하던 서은우 팀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정규 1집 준비가 한창이었기에, 회사 입장에서는 정규 준비를 빠르게 진행시키는 것이 더 이득입니다만···.”

이득이 되는 길은 따로 있었다. 회사가 진행시키고 있던 프로젝트도 있었고.

그러나 서은우 팀장과 솔라시스템은 지금까지 항상 아티스트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존중해 왔다.

“쉽게 오지 않는 기회라는 데엔 동의합니다. 여러분들의 의지도 확인했고요.”

“!”

“다만, 작은 예능에 출연하는 수준의 결정이 아니기에 대표님부터 설득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서은우 팀장을 바라보는 멤버들의 눈이 존경으로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사무적인 얼굴을 유지하고 있던 서은우 팀장도, 그 초롱초롱 공격에는 못 당하겠다는 듯 살짝 웃고 말았다.

“걱정 마세요, 대표님은 제가 최선을 다해서 설득해 보겠습니다.”

“팀장니이임—.”

시골 똥개에 빙의한 멤버들이 서은우 팀장에게 달려가 와락 안겼다. 텐션 올라간 멤버들을 간신히 진정시킨 뒤, 아직 남아 있는 위험 요소에 대해 언급하는 서은우 팀장이었다.

“일단 진정하세요. 아직 출연이 확정된 건 아니니 좋아하기엔 이릅니다.”

“그런가아···.”

“우리가 리온 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해도, 제작진 측에서 이 교체를 탐탁치 않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엔 리온이 서은우 팀장의 우려를 불식시켜 주었다.

“그 점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팀장님.”

“리온 씨.”

“이미 프로그램 제작진 측과 이야기를 끝내 놓은 상태입니다. 일본과 중국, 미국 측에서도 이 교체에 긍정적이라고 들었고요.”

“중국 일본 미국 애들이 교체에 환영이래요?”

“허어-.”

“루나틱에서 칠린으로 교체된다니까 할만해졌다고 생각했나 본데여.”

“그러게. 이거 뭔가 승부욕 돋는데?”

“아하하, 킹받네~”

“지 선생, 아육시 때처럼 레전드 곡 쑥쑥 뽑아내기 가능하신가?”

“무조건 해내야지. 방금 쿠팡으로 핫식스 120캔 주문함.”

“아하하하, 죽진 말라구~ 6인조는 대칭이 안 맞아~”

“···웃으면서 그런 무서운 말 좀 하지 마 이 미친놈아···.”

“애정표현이야 애정표현~”

* * *

서은우 팀장이 솔라시스템 대표를 설득하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4개국의 자본이 모인 프로그램인 만큼 제안 역시 엄청난 규모였다. 회사 측에서도 정규앨범 발매를 늦추며 출연을 결정할 만큼의 메리트가 있었던 것.

출연이 잠정적으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에 멤버들은 환호했다.

“앗싸아-!”

“우리 팀장님 최고!”

“이기고 오십시오. 꼴찌는 절대로 안 됩니다.”

“당연하져, 무조건 1등 하고 와야지!”

“···그, 그런데 우리가 벨로체 형들도 이길 수 있을까요···.”

“야, 못 할 게 뭐냐. 벨로체가 뭐 도깨비 집단도 아니고 다 똑같은 사람인데.”

“아하하, 맞아 맞아~”

“파엘 형이 아무리 잘해도 옛날 사람···.”

“어라, 파엘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구나?”

“히익.”

때마침 군자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파엘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하하, 형님도 양반은 아니신가 봅니다.”

- 뭐 임마, 그럼 쌍놈이냐.

“꼭 쌍놈이 아니어도 중인도 있고, 상민도···.”

- 됐고, 너네들 <다이너스티> 나오기로 했다면서?

“아, 네. 그렇게 됐습니다.”

- 주소 하나 찍을 테니까, 시간 내서 와.

“예? 무슨 주소 말씀이신지···.”

- 지옥훈련장.

“예에에?”

- 국가대표로 경연 나가는데, 아무 준비도 없이 갈 거야?

“그, 그것은 아닙니다만.”

- 똑바로 준비해 가야지.

“하하, 하하하···.”

- 빨간모자 쓰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빨리 와라.

“혀, 형니-.”

군자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파엘은 전화를 띡 끊어 버렸다. 3초 뒤, 군자의 폰에 주소 하나가 전송되었다.

지도 앱으로 위치를 검색한 군자의 표정이 대번에 울상이 됐다.

“이런, 배산임수가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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