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이게 지옥훈련?
파엘이 보내 준 주소지는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별장이었다.
지옥훈련이라는 단어에 잔뜩 겁을 먹은 일곱 멤버들이었지만, 그렇다고 선배의 부름에 응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우리 정신교육 받으러 가는 거예여?”
“아마 그럴 걸! 다 이겨내 주겠어!”
“넌 뭐가 그렇게 신났냐···.”
“훈련소잖아! 유격훈련 같은 것도 했음 좋겠다!”
“으으, 난 싫음여··· 이런 악폐습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여···.”
“그러게 말이다, 하아···.”
“오, 군자가 웬일로 의욕 바닥이야.”
“의욕이 생기게 생겼느냐··· 배산임수도 아닌 곳에서 훈련이라니···.”
“아니 배산임수가 문제인 거야?”
“또 혼자만 포인트 희한하넹.”
“어, 얘들아. 도착한 것 같은데?”
밴에 설치된 네비게이션이 청량한 목소리로 도착을 알렸다. 이용중 실장의 목소리에 차창 밖을 내다본 멤버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잉?”
“실장님, 여기 맞아여?”
“응, 네비가 맛탱이 간 게 아니라면 여기 맞는데?”
지옥훈련이라고 하기에 폐교 같은 건물을 생각한 멤버들이었다. 그러나 도착한 곳엔 이국적인 디자인의 하얗고 깔끔한 4층 별장이 보일 뿐이었다.
“훈련장이라 하기엔 넘 예쁜뎅···.”
“아하하하, 촬영지로 딱인데~”
멤버들은 순간 주소를 착각한 줄 알았다. 그러나 빨간 모자를 쓴 채 천천히 다가오는 잘생긴 남자를 보니 금방 오해가 풀렸다.
“동작 봐라, 동작 봐!”
“파엘 형님!”
“차에서 내립니다, 실시!”
“시, 실시!”
허겁지겁 개인 짐을 챙겨 차에서 내리며, 멤버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머야, 시작부터 이런 컨셉인 거예여?”
“···그, 그런가 봐요··· 진짜 지옥훈련···.”
“앗싸아, 훈련이다!”
“미친놈아, 분위기 파악 좀 해!”
그 자리의 유일한 군필자인 이용중 실장만이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고 있는 가운데.
멤버들은 빨간 모자를 쓴 파엘 앞에 나란히 도열했다.
“그래도 아이돌이라고 대형은 잘 맞추는구만.”
“헤헤.”
“이빨 보이지 않습니다! 놀러 왔습니까!”
“헉-.”
“아닙니다—!!”
쩌렁쩌렁한 발성의 불호령에 모두의 어깨가 움찔했지만, 정작 호통을 친 파엘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그래? 난 놀러 왔는데.”
“?”
“푸하학, 너네 진짜 웃기다.”
“??”
“뭘 쫄고 그래에, 사람 민망하게!”
“형···?”
혼비백산한 멤버들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파엘은 배를 잡고 웃었다.
“휴우-.”
“아, 진짜 무서웠다거여!”
“미안 미안, 크크크.”
호탕하게 웃는 파엘을 보니 비로소 그의 성품이 떠오른 군자였다. 매사에 어른스럽고 다정한 리온 형님과 달리, 파엘 형님은 까칠한 데다가 짓궂은 장난도 자주 치시는 분이었지.
군자 본인이야 파엘과 자주 연락하니 알고 있었으나 동료들은 생소할 테다.
“친우들아, 너무 미워하진 마라. 아주 나쁜 분은 아니란다.”
“얌마, 이상하게 돌려 까는 것 같다?”
“하하, 형님. 호의를 꼬아 듣는 것은 소인··· 으읍—.”
이번엔 태웅이 재빨리 군자의 입을 막았다. 평소 워낙 소인배 드립에 폭격을 당해 왔던 터라, 타이밍을 정확히 읽을 수 있었다.
“음? 소인?”
잠깐 머리를 갸웃한 파엘은, 아무려면 어떻냐는 듯 쿨하게 돌아서며 멤버들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일단 들어가서 짐부터 풀자.”
“넹! 선배님, 근데 여긴 어디에여?”
“여기? 별장이지.”
“우와아—.”
“이, 이게 전부 다요?”
“아이돌 생활을 몇 년 했는데. 이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
“대박···.”
“선배님, 멋있어여!”
“아, 근데 내 거는 아니고.”
“에?”
“너네 루나틱의 오리온 알지? 걔 거야.”
“리온 선배님이요?”
“응. 저기 불판 세팅하는 샌님 보이니? 쟤가 리온이잖아.”
“헐, 헐—!!”
별장에서 멤버들을 맞이한 건 루나틱과 벨로체의 두 리더였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7IN은 이미 두 사람 모두에게 가장 아끼는 후배가 되어 있었다.
토치로 숯에 불을 붙이던 리온이 목장갑 낀 손을 흔들며 멤버들을 반갑게 맞았다.
“다들 잘 찾아왔네요.”
“형, 보고 싶었어요!”
“점심 안 먹었죠? 고기 구워 먹읍시다.”
곧 리온이 최상급의 돼지고기를 석쇠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멤버들은 지글지글 익는 고기를 보며 군침을 흘렸지만, 군자는 장유유서가 파괴된 이 현장이 몹시도 불편했다.
“형님, 집게를 주시면 제가-.”
“아닙니다. 오늘은 내가 대접하는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장유유서라는 것이 있는데···.”
“루나틱이 <다이너스티>에서 빠지게 되면서 걱정이 많았는데, 칠린 여러분들이 그 자리를 채워 준 덕분에 나도 마음 놓고 입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건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 와중에도 파엘은 구운 김치를 집어먹으며 리온에게 핀잔을 주었다.
“사랑하는 후배들을 그 전쟁통에 던져 놓고 고기 한 판으로 퉁칠라고? 넌 얘네한테 평생 잘해라.”
“안 그래도 그럴 거다. 아, 그리고 지옥훈련이네 뭐네 하는 장난질은 다 이 친구 아이디어였습니다.”
“하하, 두 선배님은 언제 봐도 친밀해 보이십니다.”
“···그럴 리가요···.”
“아냐, 안 친해~ 나 얘랑 되게 안 맞거든~”
“헤헤, 형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친해졌어여?”
“어허, 안 친하다니깐?”
말은 그렇게 했어도,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니 리온과 파엘의 히스토리는 술술 나왔다. 멤버들은 맛있는 고기를 양껏 먹으며 두 리더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근데 이런 얘기 하면 꼰대 같다고 싫어하는 거 아냐?”
“아님다! 완전 재밌는데요!”
“그래?”
“넹. 칠린에도 젊은 아재 한명 있어서 괜찮아여.”
“아하, 누구 말하는지 알 것 같구만.”
“쟤는 아재가 아니라··· 거의 뭐 조선시대부터 살던 사람 같거든요.”
조선시대부터 살던 사람 같다는 태웅의 말에 군자는 뜨끔하며 고기만 와구와구 집어 먹었다. 다행히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없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바베큐 파티로 실컷 배를 채운 뒤, 리온과 파엘은 멤버들을 별장 내부로 안내했다.
리온의 별장은 일반적인 호화 별장과 별다를 것 없는 구조였으나, 꼭대기 층만큼은 조금 특이한 구조였다.
“허··· 이 꼭대기 층이 전부 연습실이에요?”
“우와아—.”
별장의 꼭대기엔 최상급의 트레이닝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할 새도 없이, 파엘이 다시 한번 빨간 모자를 눌러 썼다.
“자, 실컷 먹었으니까 이제 먹은 것 소화 시켜야지.”
“네?”
“현수, 너네 음원들 다 가지고 있지?”
“네? 아, 네.”
“MR도?”
“넵, 가지고 있습니다.”
“좋아, 앰프에 연결해서 처음부터 싹 한번 돌리자.”
엉겁결에 퍼포먼스를 시작한 7IN이었지만 파엘과 리온의 눈빛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지옥훈련은 100% 장난은 아니었던 모양. 내심 훈련을 기대했던 태웅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 순간을 기다려 왔슴다!”
최초의 창작곡 <예의없는 것들>부터 시작하여 영의정과 함께한 <노래해 듀오> 경연곡들까지.
7IN은 마치 콘서트라도 하듯 두 명의 선배에게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쿠웅, 쿠우웅—.
멤버들의 발 구르는 소리가 꼭대기층을 쩌렁쩌렁 울렸다. 한껏 진지한 표정의 리온과 파엘이었지만, 아름답게 합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엔 흐뭇한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진짜 너무 잘하네.”
“맞아, 최고야.”
“루나틱이 나가는 것보다 낫겠는데?”
“···그건 좀···.”
아빠 미소로 퍼포먼스를 지켜보다가도, 한 곡이 끝나면 피드백을 아끼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이 구간 끝나는 시점에선 앞발을 이 각도로 맞추는 게 더 임팩트 있어.”
“아, 넵!”
“이렇게요, 형?”
“어. 이게 맞추는 사람 입장에선 안 보이는데, 촬영본을 보면 확실히 티가 나는 부분이거든. 촬영본도 같이 볼까?”
모든 안무를 다양한 구도로 촬영해 주는 시스템 덕에 멤버들은 퍼포먼스 영상을 바로바로 확인하며 디테일을 수정할 수 있었다.
“오오, 이렇게 하니까 훨씬 더 느낌 사는데요?”
“그치? 다음 8카운트 지나고도 볼까? 여기서 가슴 여는 부분 말인데. 타이밍은 잘 맞는데, 멤버들마다 가슴 여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거든?”
단체 동작을 세심하게 짚어 준 다음엔 개별 트레이닝이 진행됐다. 가장 먼저 파엘의 손에 이끌려 나온 것은 막내 유찬.
“유찬이는 춤선이 참 예쁘고 보컬도 여리여리해서 좋네. 벌스 1 들어가기에 딱 좋은 몸선이랑 목소리야.”
“···아, 그, 넵, 감사합니다···.”
“그런데 시선 처리가 조금 더 자신 있었으면 좋겠어.”
“···아아···.”
“갸냘픈 매력남이랑 자신감 없는 찐따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백번 양보해서, 시선은 떨궈도 고개는 떨구면 안 돼. 시선을 떨구고 싶을 땐 고개를 살짝 들어올리면서. 네 그 오똑한 콧대를 보여줘야 처연미가 살아난단다.”
“···자, 잠깐만요···.”
“응? 왜?”
“···그, 노, 녹음··· 좀 해도 될까요···.”
“푸하학, 여기 다 자동녹음 되니까 나중에 이 부자놈한테 파일 달라고 해.”
“···아, 넵!”
개별 피드백은 유찬을 시작으로 현재, 태웅, 현수, 인혁, 시우, 군자 순으로 이어졌다.
딱히 피드백할 것이 없는 천재 아이돌 하현재였지만, 그 와중에도 파엘은 개선점을 짚어 주었다.
“현재는 다 좋아. 특히 그 기갈이 아주 기가 막히더라. 남자인 나도 반할 것 같다니깐.”
“헤헤, 감사합니당.”
“근데 노래 시작부터 끝까지 기갈기갈기갈이면? 중국 일본 애들한테 갈기갈기갈기 찢길 수도 있다 이거야.”
“아앗.”
“현재는 가사 해석에 조금 더 집중해야 돼. 사랑스러움을 어필할 때엔 막 애교를 부려도 되지만, 또 그런 가사만 있는 건 아니잖아?”
“넵, 맞아여.”
“그런 부분에선 네 장점을 조금 빼고, 조금 더 진지하고 드라이한 표정을 주면 다이나믹이 살아서 기갈도 훨씬 더 임팩트가 생길 걸.”
“오오, 해 볼게여!”
그 다음은 태웅의 차례.
“태웅이 넌 힘이 좋은데. 힘이 너무 좋은데···.”
“그럼 힘을 좀 빼면 되겠슴까!”
“아냐, 그게 네 최대 장점인데 오히려 살려야지. 다만 가끔 힘 있게 춤 잘 추는 아이돌 멤버보다 그냥 긴팔고릴라 같을 때가 있거든?”
“푸하하학—.”
“웃지 마 이것들아! 그럼 형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일단 그 회전 동작 할 때 어깨 관절 빠질 것처럼 견갑골 많이 쓰는 습관부터 고쳐 보자.”
현수는 퍼포먼스보다 가사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현수는 솔직히 원래도 안무가 센 멤버는 아니잖아?”
“앗, 아시는군요···.”
“아냐, 시무룩해 할 거 없어. 그래도 1인분 몫은 충분히 해 내니까. 내 말은 단점을 보완하는 것보다 장점을 더 부각시켜 보자는 뜻이었어.”
“네 선배님. 무슨 피드백이든 새겨 듣겠습니다!”
“현수 가사가 위트 있어서 좋은데, 가끔 너무 음절이 많을 때가 있더라. 너희 노래 대부분 네가 만드는 거지?”
“아, 네. 맞습니다.”
“그렇게 깔쌈한 비트 뽑아 놓고, 음절 폭풍으로 비트를 다 묻어 버리면 아쉽잖아. 음절을 조금 비우면서, 비트가 조금 더 잘 들릴 수 있도록 랩 디자인을 해 봐.”
“아하··· 그런 방향으로는 생각해 본 적 없었습니다.”
“시도해 봐. 막상 비우는 게 더 어려울 수도 있다?”
“넵 선배님!”
인혁은 주로 표정에 대해 피드백을 받았는데, 의외로 깜찍하고 과즙미 넘치는 표정도 잘 소화하며 모두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아니 인혁이 형! 뭐에요! 왜 이렇게 상큼해!”
“그, 제가 동생인···.”
“우와, 형 지금 무슨 자두 같아요! 근데 수박 만한 자두!”
“파엘 선배님, 말씀을 낮추시···.”
“이 형 진짜 과즙미 미쳤네! 그 동안은 왜 이런 거 안 보여줬어!”
“선배님, 제가 동생이니 반말 하셔도 괜찮습···.”
“그럴 리가 없어!”
완성형 아이돌로 평가 받는 시우 역시 딱히 큰 피드백은 없었다.
“시우는 진짜 다 잘하네. 힘 줄 때 줄 줄 알고, 뺄 때 뺄 줄 알고. 몸은 여리여리한데 무대 할 땐 또 훨훨 날아다니고.”
“아하하하, 감사합니다~”
“근데 말야, 그 말할때 마다 웃는 거··· 꼭 필요한 거야?”
“아하핫, 넵?”
“이제 방송도 자주 나올 텐데, 조금 산만해 보일 수 있을 것 같은데에···.”
“아하하하, 안 웃을 수 있죠~”
“그래, 그럼 웃음만 조금 줄여 보자. 그래, 시우 너 웹소설 좋아한다며?”
“아하하, 넵~ 좋아요~”
“만약 네가 좋아하는 웹소설에 이렇게 대사마다 웃는 캐릭터가 나온다고 생각해 봐. 그럼 뭐라고 생각하겠니?”
“아하하, 작가가 설정을 잘못했네~”
“그치?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교정하면 돼.”
“네엡~”
모든 멤버들의 피드백이 끝난 가운데, 마지막은 군자의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