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시너지
“군자는··· 흐음-.”
턱을 괴고 고민하는 파엘의 모습에 지현수가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크크, 형님도 우리 군자는 피드백 할 게 없으신 것 같군요.”
“아니, 그게 아니라. 뭐부터 말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지.”
“헉, 그럼 교정해야 할 것이 많다는···.”
“응.”
파엘의 쿨한 대답에 지현수와 군자가 동시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지난 몇 개월 간 아이돌로서 소양을 쌓아 왔다고 생각했는데, 형님들이 보시기엔 아직도 많이 모자란 모양이구나···.
파엘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은 군자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형니임···.”
“뭐야, 왜 이래?”
“가르침을 주십시오오··· 춤이든 노래든 최선을 다하여···.”
“뭔가 착각을 하고 있구만.”
“···예?”
“군자 네게 부족한 건 춤이나 노래가 아냐. 퍼포먼스의 기술적인 측면만 놓고 본다면, 오리온이나 나나 군자 너한테 조언해 줄 건 없어. 솔직히, 너 진짜 잘 하긴 한단 말이지.”
“그, 그렇습니까?”
군자의 얼굴이 단박에 밝아졌으나 아직 파엘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기계처럼 공연만 하는 퍼포먼스 로봇이 아니야. 우리를 보는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여야 한다고.”
“···.”
“물론 지금까지는 군자의 어색하고 독특한 모습도 팬들이 하나의 캐릭터로 받아들여 줬지만, 앞으로는 군자 너도 표현력에 대해서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해. 특히 표정 쓰는 방법, 다양한 컨셉에 몰입하는 방법.”
“···네 형님.”
“언제까지 공손하고 예의바른 선비 역할만 할 수는 없잖아?”
“맞습니다.”
군자는 겸허히 수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박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정확한 지적이었다. <미션 임파서佛>에서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하며 깨달았다. 자신에겐 다양한 인격을 표현해 낼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한 표현력이 없다는 것을.
꼭 맞는 옷을 입었을 때엔 훨훨 날아다닐 수 있지만, 아이돌 활동을 하며 그렇게 마음에 드는 컨셉만 골라 잡을 수는 없을 테다.
팬들께 더욱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더욱 정진해야 한다.
입술을 앙다물고 고개를 끄덕이는 군자를 보며 파엘도 흐뭇한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움찔거리는 입꼬리를 애써 숨기며, 파엘이 피드백을 이어 나갔다.
“다른 친구들은 다 연습생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훈련이 돼 있어. 하지만 군자는 아니잖아. 그러니까 이런 부분은 너희들끼리 서로 도와야 해. 특히 표정 좋은 현재, 시우가 많이 도와 줘.”
“넵!”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 주는 것도 좋지만, 부족한 부분이 보일 때엔 잡아 줘야 진짜 좋은 동료지.”
“넵!”
새로운 과제를 얻은 군자는 의욕이 충만한 모습이었다.
“파엘 형님, 그럼 제가 무엇부터 연습하면 되겠습니까!”
“으음··· 일단 넌 무대 위에서 너무 겸손해.”
“그, 그렇습니까···.”
“겸손한 거 좋지. 그런데 가끔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인 것처럼 행동해야 될 때도 있거든. 막 뽐을 내야 된단 말이야.”
“뽀. 뽀옴···.”
“막 버르장머리 없이, 어? 싸가지 없는 눈빛도 한번 날려 주고.”
“싸, 싸가지···.”
잠시 삼강오륜을 중얼거리며 자괴감에 빠져 있던 군자는, 이내 뺨을 찰싹 때리며 마음을 다잡은 듯 다시 한번 눈에 힘을 주었다.
“조, 좋습니다. 버르장머리! 제 표정 한 번 봐 주시겠습니까!”
“오오? 그러지 뭐.”
“소생은 아주 못되먹은 놈이오!”
자기최면과 함께 군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잘못된 독기를 발사했다. 한없이 진지한 모습에 모두가 애써 웃음을 참았다. 만약 파엘이 군자를 만류하지 않았다면 리온조차 빵 터져 버렸을 거다.
“푸하학, 군자야! 시트콤 찍니?”
“이것이 아닙니까?”
“이게 어느 날 갑자기 되는 게 아니에요. 계속 거울 보면서 연습해야지. 나중엔 네 안의 다른 인격을 꺼내는 게 양말 뒤집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질 거야.”
“오호라···.”
파엘의 말을 들으며 군자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부터 내 안에 아주 못돼먹은 놈을 하나 키워야겠구나.
물론 쉽진 않을 것 같으나, 이 또한 최고의 아이돌이 되기 위해선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일 터.
“좋아, 지금 얘기했던 거 잘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단체 퍼포 해 볼까?”
“넵!”
그 뒤로도 연습은 한참을 더 이어졌다. 마지막엔 멤버들은 물론 선생님 파엘마저 땀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늘어지고 말았다.
“푸하악—.”
“혀엉, 이제 잠깐 쉬어요.”
“잠깐은 뭔 잠깐이야. 그냥 쭉 쉬어. 이제 끝!”
“으아아,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남은 힘까지 끌어 모아 파엘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 순간, 군자의 눈앞에 상태창이 파앗 하고 떠올랐다.
“!”
더 놀라운 건, 군자를 포함한 일곱 멤버들의 머리 위에 동시에 반투명한 상태창이 떠올랐다는 사실이었다.
[멤버 간 시너지 발동.]
[1단계 시너지가 활성화됩니다.]
[단체 퍼포먼스 시, 능력이 소폭 향상됩니다.]
“오오!”
“뭐야, 군자 넌 아직 기운 남았냐···.”
모두가 빈사 상태였으나 군자만큼은 땀이 송골송골 맺힌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모처럼 나타난 상태창은 이번에도 군자에게 멋진 선물을 주고 갔다.
창아, 넌 정말로 한계가 없는 녀석이구나!
* * *
3개국의 자본이 모인 초대형 프로젝트 <다이너스티>는 총괄 PD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가장 많은 돈을 댄 것은 중국이었으나, 중국 측엔 하이퀄리티의 아이돌 서바이벌을 제작해 본 인력이 전무했다.
일본은 아이돌 서바이벌 제작의 원조라 할 수 있었으나, 갈라파고스처럼 발달한 일본의 미디어 색채는 세계적인 방송을 만들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결국 답은 한국이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컨텐츠를 양산하고 있는 한국은 아이돌 서바이벌 제작에서도 강세를 보였다.
마침 MP 산하 미디어 그룹인 뮤직플래닛에서 퇴사하여 프리랜서가 된 김석훈 PD가 <다이너스티>의 총괄 PD 자리에 올랐다.
“이제 프리로 조용히 지내려고 했는데, 난 아무래도 어그로를 끌어야 할 운명인가 보구만.”
김석훈 PD는 기획의 근간부터 다시 잡았다.
자본가들의 요구는 오직 하나, 최고의 화제성과 시청률을 가진 프로그램을 제작하라.
돈은 차고 넘치게 많았다. <다이너스티>는 <아육시>보다 열 배는 더 큰 스케일의 프로그램이 될 터였다.
“난 내가 잘하는 거 해야지 뭐.”
그런 큰 판 위에서, 김석훈 PD는 자신의 방식대로 그림을 그려 나갔다. 더 자극적인 것, 더 어그로 끌 만한 것. ‘다이너스티(왕조)’라는 프로그램 이름이 김석훈 PD의 입맛을 확 사로잡았다.
제작팀과 함께 프로그램 기획을 리빌딩한 김석훈 PD가 <다이너스티>에 참여한 일곱 아이돌을 한국에 소집시켰다. 월드와이드 아이돌 서바이벌 <다이너스티>의 첫 제작 회의였다.
7IN을 비롯한 참가 팀들에게도 처음 주어진 대면 기회였다. 한 자리에 모인 수십 명의 아이돌들은 서로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십니까.”
“곤니찌와-.”
군자는 인사하는 기계라도 된 듯 사방에 고개를 숙이며 주위를 관찰했다.
이 분들이 다른 나라의 아이돌이구나. 이제 곧 각국의 아이돌 문화를 교류하게 될 터이니, 사절단이나 다름없으렷다.
예로부터 타국의 사절단에겐 예를 갖추어 행동하는 것이 법도였다. 그것이 자국의 긍지와 품격을 높이는 행위였으니.
군자의 공손한 인사에, 각국 아이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일본의 아이돌들은 더 호들갑을 떠는 편이었다. 군자가 90도로 인사를 하면 그들은 100도로 허리를 꺾었다.
게다가 눈빛만 마주쳐도 헤에~ 호오~ 하는 소리를 내며 눈웃음을 짓는 통에 오히려 군자가 시선 둘 곳이 없었다.
“야 군자야, 확실히 일본 분들이 리액션이 좋으시다.”
“그, 그런 것 같구나···.”
“좀 부담스럽지 않냐?”
“내 말이 그 말이다···.”
그러나 암초는 다른 곳에도 있었다. 일본 아이돌들의 시선을 피해 시선을 돌린 곳엔 벽안의 미국 아이돌들이 있었다.
“Hey, What’s Up!”
“와, 왔어? 으응, 왔어···.”
“I see your clip at YouTube!”
“하, 하하, 그래 그래.”
다짜고짜 왔어? 라고 반말을 하는 것을 보니 이게 벽안 사내들의 문화인가 싶었다. 초면에 반말을 하는 것이 어색했으나, 어쨌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기로 한 군자였다.
이렇듯 일본과 미국 아이돌들은 사교적인 모습이었으나, 중국 아이돌들의 모습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딱히 타국의 아이돌들과 대화하거나 인사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 같았다. 회의실에 입장한 순간부터 그들은 오직 본인들끼리만 대화를 나누었다.
뭐 그렇다면 군자의 입장에서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그만이었으나, 그것이 쉽지 않았다. 워낙 괄괄한 목소리로 뭐라뭐라 떠들어 대는 통에, 목소리를 무시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으으, 귀에서 피가 날 것 같구나···.”
마지막으로 들어온 김석훈 PD가 정숙을 요청해 준 덕분에 괄괄한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물론 요청을 세 번이나 해야 겨우 조용해지긴 했지만, 어쨌든 군자와 멤버들의 고막도 그렇게 간신히 평온을 찾았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다이너스티> 연출을 맡게 된 김석훈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7IN 멤버들에겐 익숙한 얼굴이었다. 김석훈 PD의 얼굴을 보니 아육시 때의 기억이 살아났는지, 멤버 몇몇이 몸서리를 쳤다.
“으으, 아육시 때 진짜 힘들었는데.”
“고마운 프로그램이긴 한데, 힘들었던 건 팩트긴 하져.”
“이건 아육시보단 덜 힘들겠지? 제발.”
그러나 김석훈 PD가 발표한 내용은 지현수의 기대와는 상반된 것이었다.
“<다이너스티> 참가 팀들은 한 달 동안 숙소에서 합숙하며 총 네 번의 경연을 치르게 됩니다.”
“허업-.”
“하, 한 달 합숙?”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촬영 세트장의 시설은 최상급입니다. 오히려 지금 여러분들이 생활하는 공간보다도 훨씬 더 아늑하고 편안할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김석훈 PD가 장난스런 표정으로 7IN 멤버들 쪽을 바라보았다.
“물론 아육시 때 시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을 거고요.”
“휴우—.”
“지금 보시는 이게 바로 여러분들이 한 달 동안 생활할 장소, ‘다이너스티 캐슬’입니다.”
곧 커다란 화면에 세트장의 조감도와 내부 예상도가 떠올랐다. 김석훈 PD의 말처럼, 최고급 호텔을 방불케 할 만한 시설이었다.
“우와아—!!”
“하지만, 모두가 이 시설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
슬라이드가 넘어가자 이번엔 음침하고 어두운 숙소 사진들이 떠올랐다. 마치 슬리데린 기숙사를 연상케 하는, 어두운 곳마다 거미가 줄을 치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의 숙소가.
“다이너스티 캐슬엔 이렇게 생긴 숙소도 있습니다.”
“그러면 숙소 배분은 어떻게···.”
“다이너스티, ‘왕조’라는 뜻을 가진 단어죠. 왕조가 있다면 귀족도 있을 것이고, 귀족이 있다면 평민과 노예도 있을 것입니다.”
“!?”
“<다이너스티>에는 신분 제도가 존재합니다.”
“—!?”
“매 주마다 펼쳐지는 경연을 통해 여러분들의 신분이 결정됩니다.”
“——!?!?”
“왕은 다이너스티 캐슬의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예는 그 어떤 것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당황스런 기획에 멤버들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군자 역시 낭패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역성혁명을 일으키라기에 거절하고 왔더니, 여기서는 또 왕조를 세우라고 하는구나!”
하지만 이젠 물러설 수도 없었다. 왕조를 세우지 못한다면 동료들을 저 뒤주 같은 곳에서 재워야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