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143화 (143/303)

#143

사랑해 군자야

첫 제작회의가 끝난 뒤, 숙소로 돌아온 멤버들은 오늘 만난 아이돌 팀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 친구들은 되게 싹싹하더라.”

“맞아여. 좀 과하게 싹싹해서 살짝 무섭던뎅.”

“아하하, 중국 사람들은 되게 금방 적응하더라~”

“그치? 들어오자마자 겁나 편하게 행동하는 것 같긴 했어.”

“난 무슨 자기 안방인 줄 알았잖아.”

“···치, 친해질 수 있을까요···.”

“뭐 굳이 친해져야 되냐. 어차피 이제 치고박고 싸울 팀들인데.”

“걔네들도 다 군자 보고 놀라는 것 같더라.”

“지현수 군뽕 언제 나오나 했다.”

“아냐, 진짜야. 일본이 놀라고 중국이 시기하며 미국은 술렁술렁거렸다니까?”

“요즘 유튜브 하니?”

“근데 진짜 좀 놀라는 것 같긴 했어여. 울 형아가 좀 잘생겼어야지.”

“으허헛, 부끄럽구나.”

동료들의 칭찬에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경쟁 상대들을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엄숙해지는 군자였다.

모든 것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진행되어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막상 한 곳에 모인 다국적의 아이돌들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물론 정식 국가대표로 선발된 것은 아니지만, 소년들의 마음 속엔 나라를 대표하여 이 자리에 섰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이 샘솟고 있었다.

“막상 다른 나라 아이돌들 보니까 되게 묘하더라.”

“그러니까여. 첨엔 솔직히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배울 것도 많을 것 같아서 가벼운 마음이었는뎅···.”

“···지, 지고 싶지는 않아요···.”

“내 말이. 난 특히 중국 애들한텐 꼭 이기고 싶음.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암튼 기분이 그래.”

“으으, 그리고 지면 그 개똥 같은 숙소 써야 되는 거 아냐?”

“그쳐, 노예 계급 되면 거기서 먹고 자고 해야 할 듯.”

화면으로 본 음습한 숙소를 생각하니 일곱 멤버들이 동시에 몸서리를 쳤다.

“김석훈 피디님 오신다 했을 때부터 만만치 않을 것 같긴 했는뎅···.”

그 피디님은 평양냉면에도 마라소스 넣어 먹을 것 같지 않냐.”

“···자, 자극에 미치신 분···.”

“푸하학, 공손하게 팩폭하네 유찬이.”

군자 역시 그 어둡고 폐쇄적인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사실 마음에 들지 않는 수준이 아니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흘렀다.

“나, 나도 그 장소는 싫구나.”

“어, 그러냐? 되게 의외네.”

“무엇이 의외라는 말이냐.”

“넌 분명 선비의 자질은 청빈 어쩌고 하면서 개똥 같은 숙소에도 만족할 줄 알았거든.”

“모르는 소리. 청빈한 것과 음습한 것은 다르다. 과거 선비들은 소박한 집에서 청빈하게 살면서도 항상 탁 트인 공간에서 자연을 만끽했단다.”

“그, 그랬니?”

“하지만··· 하지만 그 숙소는 어떻더냐. 빛줄기 하나 통하지 않고, 사방이 어두컴컴한 것이 꼭 곡식을 저장하던 커다란 광이나 뒤주 속 같지 않더냐···.”

쓰레기 숙소에 이어 뒤주 생각이 또 나자 군자의 양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어둡고 폐쇄적인 공간만큼은 정말로 피하고 싶은 군자였다.

“광이나 뒤주라니, 딱히 공감이 가는 비유는 아니지만···.”

“무튼 선비 형아도 개똥 같은 숙소는 절대 싫다는 말이네여.”

“그럼 이겨야겠네~”

“맞아. 경연 결과로 숙소를 결정한다고 했으니까.”

“당장 연습부터 시작해야겠는데여.”

현재의 말에 나머지 멤버들도 모두 동의했다. 무슨 과제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퍼포먼스의 퀄리티일 테다.

날씨는 어느새 싸늘해져 있었지만 소년들의 이마엔 금새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쿠웅, 쿠우웅—!!

베이스 리듬에 맞춰 일제히 플로어를 찍는 발자국 소리.

끼긱, 끼기긱—.

스텝이 미끄러지며 나는 마찰음까지 칼 같은 박자에 맞아 떨어졌다.

파엘, 리온과의 하드 트레이닝은 분명한 효과가 있었다. 연습 촬영본을 본 멤버들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와아···.”

“뭐야 뭐야, 우리 원래 이렇게 잘했어?”

“리온 형아네 다녀온 뒤로 확실히 더 좋아진 것 같아여.”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효과가 금방 나타난다고?”

“혹시 우리··· 천재?”

갑작스런 실력의 급상승에 멤버들은 놀라면서도 즐거워 했다. 그러나 군자는 놀라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멤버들의 머리 위에 둥둥 떠 있는 푸르스름한 문구가 보였으니까.

[시너지 1단계 발동 중입니다.]

형님들과의 훈련이 끝난 뒤 얻은 새로운 효과, ‘시너지’.

팀 단위로 경연을 펼치는 <다이너스티>에서, 이보다 좋은 보상은 없을 것이다.

창아, 다시 한번 고맙구나.

그 푸르스름한 문구를 향해 군자가 또 한번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 상태창 역시 군자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공명했다.

“좋아, 한 번 더 해 보자!”

“오케이—!!”

* * *

제작회의 후 몇 주 동안은 잠잠하게 흘러갔다. 7IN 역시 조용히 트레이닝을 하며, 또 새로운 앨범인 정규 1집을 준비하며 조용히 보냈다.

미니 1집 활동이 끝나고, 꽤 큰 컨텐츠였던 <미션 임파서佛> 프로젝트가 끝나자 팬들도 슬슬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혜자 중의 대혜자였던 <미션 임파서佛>이지만, 원래 덕심이란 채우면 채울수록 갈증을 느끼는 법.

그 와중에 정규 1집 준비 소식이 들리자, 팬들 사이에서도 기대감이 천천히 상승했다.

[칠린이들 1집 정규1집 준비 시작한듯?]

[미니1집 활동 끝난지 얼마나 됐다고ㅠㅠ너무 혹사 아냐?]

[걱정되긴 하는데 기대되는것도 사실임;; 헤헤]

[이번 활동땐 군자 머리염색 한번 해줬음 좋겠다ㅠㅠ]

[마자마자 제발 금발한번만]

[또 신체발부 수지부모라고 주거도 염색은 안하는거 아님?ㅋㅋㅋㅋㅋㅋ]

[그런것 치고는 여장을 너무 즐기셨어]

[이제 선비에서 아이돌이 되어 가는 중이라구~]

[으으 근데 정규1집 나올때까지 언제 기다려ㅠㅠㅠ]

그 와중, 몇몇 팬들은 <다이너스티>를 언급하며 7IN과 연관짓기도 했다.

[한중일미 합작 아이돌 서바 근황.jpg]

[국내에선 루나틱 벨로체 일케 두 팀 나간다는듯]

[재미있긴 하겠다ㅋㅋㅋ]

[근데 중국이랑 일본에도 아이돌이 있어?]

[아라시 같은 아재들 나오는 거 아님?ㅋㅋㅋ]

[요즘은 중국 일본에서도 케이돌들 레퍼런스로 자체 아이돌 많이 제작함]

[개 짜칠것 같은데;;]

[ㄴㄴ나도 그럴줄 알았는데 은근 퀄리티 있더랑]

[하긴 요즘 한국 아이돌팀도 메댄 일본인인 경우 많자나]

[근데 루나틱 출연가능해? 멤버들 군대가지 않음?]

[찍고 바로 입대하든가 아니면 대타 구하지않았을깡]

[대타로 울 칠린이들은 어떰?]

[퍼포 쩔고 비주얼 미쳣고 국뽕어필도 가능하자나]

[노노노노노 난 반대 그거 피디가 서쿠니래;;;;]

[또 우리 애들 얼마나 갈릴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야]

[그렇긴 한데··· 또 칠린이들 경연은 보고 싶고··· 하]

[울 애들 퍼포 맛집이긴 함]

[다이너스티 나가서 중국 일본 미국 돌들 다 뚜드려패고 1등 하는 그림 생각하면 뽕 차긴 할듯]

[ㄴ칠린은 니 국뽕충전기가 아냐 정신차려]

[ㄴ누가 머라함? ㅈㄴ 엄근진하네;; 그냥 그러면 좋을것같다고]

[혼자 세상 칠린이들 걱정은 다하고있넼ㅋㅋㅋ짜증]

[싸우지마 어차피 다 망상임]

갖은 망상이 취미인 팬들조차 7IN의 다이너스티 출연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력이야 이미 충분했지만, 인지도나 연차 면에서 아직은 루나틱을 대체하기엔 부족한 팀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기에, 갑작스레 뜬 7IN의 다이너스티 합류 소식이 팬들을 놀라게 했음은 너무도 당연했다.

[월드와이드 아이돌 서바이벌 <다이너스티>, 참가 그룹 최종 확정··· 오는 11월부터 촬영 예정.]

[신인 보이그룹 7IN, <다이너스티> 합류. 군 입대 예정 루나틱 대체로 최종 선정돼.]

[“이기고 오겠습니다!” 신인의 당찬 패기, 7IN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팬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다시 한번 김석훈 PD의 서바이벌에 참여한 멤버들을 향한 걱정과 우려. 한술 더 떠 소속사 솔라시스템을 비방하는 팬들도 있었다.

[아ㅏㅏ 뭔 서바야 또 ㅠㅠㅠㅠ]

[김석훈 + 서바 = 생지옥]

[이번엔 한달 내내 합숙이라던데]

[ㅁㅊ 무슨 훈련소임?]

[하 진짜 이러다가 번아웃 오는거 아니냐고ㅠㅠ]

[그냥 오래오래 건강하게 행복했음 좋겠는데]

[솔시 일 잘하다가 왜 이렇게 오바함]

[글게 이런 프로그램 안 나가도 어차피 신기록 다 깨면서 미친 커리어 기록중인뎅··· 그냥 정규에 집중하는게 낫지 않았을까ㅠㅠ]

그러나 정규앨범보다 더 빠르게 공개될 신곡과 새로운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보이는 팬들도 많았다.

[ㅋㅋㅋ에바야 솔시가 독단적으로 결정했겠음?]

[다 멤들이 하고 싶다고 해서 내보낸거겟지]

[솔시 일처리 방식 아직도 몰름?]

[신인아이돌이 명품진품 나가고 싶다고 하니까 내보내준 곳임]

[신인아이돌이 쇼케에서 유두잔치 하고 싶다고 하니까 유두잔치 열어준 곳임]

[신인아이돌 여장 대머리 다 허락해 준 곳임ㅋㅋㅋㅋ슈발]

[갑자기 현타오넼ㅋㅋㅋㅋㅋ하 웅아]

[암튼 머든간에 그게 멤버들 의지랑 반대일리가 없음]

[애들이 하고싶다는데 왜 니들이 호들갑이얔ㅋㅋㅋ]

[난 솔직히 기대돼 우리애들 무대 잘하는거 이미 전국민이 다 알잔음]

[이제 지구전체가 알 때가 됐다구]

[후 난 무대보고 물개박수 쳐야 돼서 오늘 동물원 다녀옴]

[난 무대보고 공중제비 돌아야 돼서 오늘 트램펄린 주문함]

[또또또 호들갑떤닼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불안감과 기대감이 동시에 상승 중인 가운데, 마침내 <다이너스티> 첫 촬영 준비가 마무리됐다.

넘치는 긴장감 속에서 이번에도 일곱 팀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돔형 천장을 가진 중앙 대극장에 각국의 아이돌들이 한 팀, 한 팀씩 입장하기 시작했다.

제작회의 때 만났으니 구면인 아이돌들이었지만 그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메이크업도, 착장도 모두 달랐다. 표정은 이미 임전 태세에 들어간 듯, 긴장감과 투쟁심이 어려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놀라운 규모의 다이너스티 캐슬을 보며 마냥 눈이 휘둥그레진 이들도 있었다. 7IN의 막내 라인과 군자가 그랬다.

“세상에, 이 곳이 근정전이더냐.”

“···우, 우와, 소리가 막 울려요···.”

“임금의 집무실로 부족함이 없구나!”

“우왕, 저 모니터 스피커 엄청 좋은 건뎅? 돈 엄청 썼나 봐여.”

그러나 미친 규모의 ‘다이너스티 캐슬’에 감탄할 새도 없이, MC 정해진의 목소리가 거대한 돔형 천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안녕하십니까! 세계 최고의 아이돌 팀, 그리고 전 세계의 아이돌 팬 여러분들. 다이너스티 캐슬의 집사, MC 정해진입니다.”

“우와아아—.”

이제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진행에 도가 튼 MC 정해진이 능숙하게 오늘의 일정을 설명해 나갔다.

오늘부터 5주 동안, 일곱 개의 아이돌 팀은 이 곳 다이너스티 캐슬에서 합숙을 시작한다.

본 경연은 총 네 번. 다만, 본 경연에 앞서 각 팀들의 ‘신분’을 결정할 사전 경연을 바로 오늘 펼치게 된다.

사전 경연은 각 팀이 가진 기존 곡으로 진행된다.

“오늘의 경연 결과에 따라 캐슬의 왕족과 노예가 결정됩니다. 사전 경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팀은 왕족이 되어 모든 것을 누리겠지만, 노예가 된 팀은 힘든 시작을 해야겠지요.”

“···.”

“자, 그러면 사전 경연에 앞서 각 팀에게 묻겠습니다.”

“?”

“오늘, 이 자리에서 노예가 될 것 같은 팀은 어디입니까!”

MC 정해진의 독한 질문에 모두의 입이 떡 벌어졌다. 미국 아이돌들은 웃기는 질문이라는 듯 연신 낄낄댔으며, 일본 아이돌들은 혼비백산에 빠진 것 같았다.

다만 중국에서 온 두 팀만큼은 딱히 어려운 질문이 아니라는 듯 거만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먼저 대답해도 되겠습니까?”

통역을 통해 의사가 전달되자 정해진이 중국 팀들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낚아채듯 마이크를 잡은 ‘테이보’의 리더, 피호우캄이 다짜고짜 7IN 쪽으로 삿대질을 했다.

“저 팀이 노예가 될 겁니다.”

“!”

“칠리? 칠린? 그런 이름이라고 했나요?”

“···어, 네. 칠린이라는 팀입니다. 그러면 중국 팀 ‘테이보’는 칠린을 노예로 예상···.”

정해진이 말을 받으려 했으나 ‘테이보’의 리더 피호우캄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어이, 너희.”

“?”

“급하게 대타로 들어왔다면서. 그럼 노예부터 시작해야지?”

조롱 섞인 억양이 끝나자 테이보의 멤버들이 함께 낄낄거렸다. 통역사는 별다른 순화 없이 피호우캄의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너희, 학교에서 역사는 배웠지?”

“···.”

“원래부터 조선은 명나라의 조공국이었다고. 그러니 너희가 노예가 되는 게 이치에 맞겠지. 심지어 선비 아이돌이라면서?”

“···.”

“선비면 그 시절에 대해서도 잘 알 거 아냐, 응?”

“···.”

“우리가 명의 후손이란 말이야.”

테이보 멤버들의 낄낄거림이 멎자 이번엔 군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다른 멤버들은 이미 살짝 이성을 잃은 것 같았지만 군자만큼은 한없이 침착하며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명의 후손들을 이렇게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래, 그래.”

“선비로서 명나라의 문화를 오랫동안 존경해 왔습니다. 정말 엄청난 문화를 가진 나라입니다.”

“알 건 다 아는구만, 헤헤헤.”

“하지만 여러분들이 명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것은 조금 의아하군요.”

“뭐?”

“저 역시 역사를 공부했습니다만··· 1966년 중국은 스스로 그 찬란한 문화를 스스로 부정하지 않았습니까?”

“!?”

“문화재를 폐기하고, 서적을 불태우고, 심지어 공자님의 묘까지 부수었지요.”

“—!?”

“그렇게 과거를 부정한 지 한 세기도 되지 않아, 이제 와서 명의 후손임을 주장한다라···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너, 너···.”

“역사가 임금님 마음대로 골라 먹는 수랏상도 아닐진대, 편식이 심하십니다들. 허허—.”

피호우캄을 비롯한 테이보 일동의 안면이 시뻘개진 가운데.

“···사랑해, 사랑해 군자야···.”

연출 모니터 앞의 김석훈 PD는 또 한번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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