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145화 (145/303)

#145

동장군

<다이너스티>의 사전 경연은 기존 곡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7IN은 매번 해 왔던 퍼포먼스를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현수야, 지현수야.”

“왜에.”

“우리 처음으로 국제 무대 서는 거잖아.”

“그치.”

“게다가 루나틱 형들 대타로 들어간 거고.”

“맞지.”

“그런데 했던 무대를 똑같이 또 할 수는 없잖냐?”

“인정하는 부분이고.”

“그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태웅과 현재가 은근히 현수에게 다가가며 그의 말라빠진 양쪽 어깨를 조물조물 주물렀다.

“왜들 이러세요, 근육 안 뭉쳤어요.”

“당연하지. 근육이 있어야 뭉치지.”

“어? 시비 거시는?”

“아이, 무슨 소리세요 형니임.”

가냘픈 어깨뼈가 부서지지 않도록 최대한 섬세하게 어깨를 안마하며, 태웅과 현재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예의없는 것들>을 좀 편곡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편곡? 지금 나 편곡 셔틀 시키려고 이렇게 안마 해 주는 거니?”

“꼭 그렇다기보다는···.”

“그럼 굳이 이러실 필요 없으신데.”

“엥?”

“편곡 당연히 해야지. 너네들이 안 이랬어도 할 거였어.”

“뭐야? 괜히 알량댔잖아!”

“야, 그래도 시원했는데 좀 더 주물러 봐라.”

“넵! 어뜨케, 기립근 쪽도 좀 해 드릴까요?”

“음? 기립근이 뭔데?”

“됐다! 그냥 내가 알아서 해 줄게!”

태웅이 열심히 현수의 기립근을 찾는 사이, 현수는 나머지 멤버들과 함께 편곡 방향성에 대해 토론했다.

“다이너스티··· 왕조··· 흐음, 어떤 편곡 방향이 좋을까? 아이디어 좀 주라.”

“브레인스토밍 한번 갈까여?”

“4개국 아이돌들이 모여서 진짜 왕조를 가려 내는 프로그램···.”

“전쟁 같은 경연에서 지면 노예가 될 수 도 있다···.”

“우리 컨셉은 선비돌···.”

“이제 곧 겨울···.”

“겨울엔 붕어빵···.”

“붕어빵 좋지···.”

“난 슈붕···.”

“슈붕···?”

“어휴 근본없는···.”

“아니, 아니, 잠깐만. 너무 의식의 흐름대로 가지 말아 봐.”

멤버들의 의식이 식욕을 따라 흐르는 사이에도 유찬과 인혁만큼은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왕좌의 게임.”

“어? 왕좌의 게임이여?”

“곧 겨울이 온다. 우리는 왕조를 만들어야 하고.”

“···저, 저도 왕좌의 게임 생각했어요···.”

“어라, 괜찮은 것 같은데?”

“···와, 왕좌의 게임을 도, 동양적으로 해석해 보면···.”

아이디어를 들은 현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미 현수의 머릿속에선 편곡 방향성이 그려지고 있는 듯 했다.

“크으, 이래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니까. 난 왜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 못 했지?”

“평소에 슈붕 같은 거나 먹으니까 그렇지.”

“왜 이 자식아, 슈붕이 뭐 어때서.”

태웅과 티격태격 하면서도 현수는 순식간에 <예의없는 것들>의 악기 샘플들을 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겨울··· 겨울에 어울리는 소리가 뭐가 있을까.”

“겨울 하면 캐롤인데.”

“이 미친놈아, 왕좌의 게임 컨셉인데 캐롤을 넣자고?”

“아니, 그냥 겨울 하면 캐롤이라고. 종소리 예쁘잖아.”

“···종소리?”

이번엔 ‘종소리’라는 단어에 군자가 반응했다.

“종 소리라면··· 편종(編鐘) 소리를 사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편종? 아아, 그 종묘제례악 할 때 쓰는 거 말하는 거지? 종 줄줄이 매달린 거?”

현수의 말에 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존의 음율에 편종 소리를 추가하고, 거기에 대취타(大吹打)를 얹는 건 어떨까.”

“오, 대취타가 그거지? 임금님 행차할 때 쓰는 음악?”

“그래. 왕좌를 표현하기에 대취타 만한 음악이 없지.”

“좋아 좋아, 역시 군자라니깐.”

“뭐야, 왜 내 의견은 기각하고 군자 의견은 다 들어 주냐?”

현수는 태웅의 투정을 가볍게 무시하며 소스를 쌓아 나갔다.

실제 편종 소리를 녹음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나, 현수는 기어이 종묘제례악 연주를 듣고 또 들으며 비슷한 가상악기를 찾아 내고야 말았다.

“좋아, 편종은 이걸로 대체하면 되고.”

데엥—. 데에엥—.

멜로디컬하면서도 웅장한 편종 소리는 동양의 겨울 분위기와 완벽하게 잘 어울렸다.

묵직한 편종 소리 위엔 태평소를 중심으로 한 대취타 멜로디가 얹히니 곡의 완성도는 한층 올라갔다.

“느낌 좋은데?”

“편종 짱인데영. 꼭 <탑건> 음악 맨 처음에 나오는 데에엥— 하는 종소리 같지 않아요?”

“오오! 탑건! 탐구루주 성님!”

곡 스케치가 끝난 뒤엔 각자 벌스를 다시 썼다.

오리지널 <예의없는 것들>이 무례한 자들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면, 이번엔 내용을 조금 틀어 감히 왕위를 찬탈하려는 무뢰배들을 향한 메시지로.

“근데 이런 가사 괜찮을까?”

“왜여?”

“이렇게 쓰면 꼭 우리가 왕이라고 하는 것 같잖아. 벨로체 형들도 있는데···.”

“아이, 파엘이 형아 말 기억 안 나여? 무대 위에서는 싸가지 없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거여.”

“에라 모르겠다, 그래! 그냥 가산데 뭐!”

7IN은 완벽히 다른 무드의 <예의없는 것들>을 만들어 냈다. 기존의 퍼포먼스를 완벽하게 답습한 앞 팀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모습이었다.

후우우웅—.

무대가 시작되자, 사방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살을 에는 듯한 북풍 소리가 들려 왔다.

바람과 바람의 틈, 저 멀리서부터 천천히 커져 오는 편종 소리.

데에엥, 데에에엥—.

그 박자에 맞추어, 눈밭 위를 걷는 소리와 함께 일곱 선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대를 지켜보던 아이돌들 중 몇몇이 실제로 오한을 느낀 듯 양 팔을 감싸안았다. 그러나 현장의 기온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후방의 조명이 밝혀지자 소년들의 의상에 붙은 철편(鐵片)들이 빛을 반사하여 반짝였다.

눈보라 속의 동장군을 모티브로 한 의상은, 곳곳에 조선 장수의 갑옷을 상징하는 물고기 비늘 모양의 철편이 장식되어 있었다.

마침내 걸음을 멈춘 일곱 명의 동장군이 무대 중앙에 도열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완벽하게 늘어선 V자 대형. 그 중앙엔 병졸 천 명이 달려들어도 능히 물리칠 것 같은 거구의 차인혁이 섰다.

부우우우우우—.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낮고 긴 나각 소리. 그 위에 차인혁이 동굴 같은 목소리로 랩을 얹었다.

Winter is Coming,

이건 왕좌의 게임.

서릿발 위에 선 거인,

이곳에 어명을 새긴.

Winter is Coming-.

이제 숙청의 시간.

Winter is Coming-.

Winter is Coming—.

쿠우우우웅—!!

선전포고 같은 인트로 벌스가 끝나자, 심장이 떨어질 듯한 큰북 소리와 함께 대취타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거문고로 구성됐던 <예의없는 것들>의 메인 멜로디가 대취타 구성으로 바뀌었으나 멤버들의 칼 같은 군무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한층 더 깔끔하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진화한 것 같았다.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멤버들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곁눈으로 보아도 동료들과의 합이 체감됐다.

잘게 쪼개지는 비트에도 움직임은 누군가 동시에 조작이라도 하는 듯 척척 들어맞았다. 만난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사이였음에도 일곱 동장군은 마치 한 배에서 난 형제 같은 유대를 느꼈다.

왜 이리 버르장머리 가-!

예끼! 이 버르장머리 가-!

그 와중에도 훅을 부르는 군자의 라이브엔 흔들림 하나 없었다. AR 하나 없이 쭉쭉 뻗는 군자의 보컬이 메인 홀의 돔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 모습을 보며 파엘은 흐뭇한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피드백 해 준 거 하나도 안 까먹었나 보네.”

멤버들은 파엘이 교정해 준 내용 이상을 소화해 냈다. 당연한 일이었다. 숨 쉴 틈도 없이 춤을 추는 지금도 군자의 눈엔 보였다.

···우우웅···.

멤버들 사이를 감도는 푸르스름한 기운. 그들의 머리 위에 뜬 ‘시너지’라는 문구. 우리는 더욱 더 굳건히 단결하게 된 것이다.

무엄하구나, 어명이다.

물러서거라, 칙령이다-.

수그리거라, 어전이다.

떠받들거라, 칙명이다-.

이어진 태웅의 벌스에선 추가된 동선으로 기계처럼 움직이는 멤버들이었다.

태웅을 중심으로 학익진처럼 도열한 멤버들이, 벌스가 끝남과 동시에 공중으로 몸을 날리며 아크로바틱한 동작을 취했다.

휘리릭—!!

비스듬하게 공중회전을 했다가 슈퍼히어로처럼 착지하며 한 점에 모인 멤버들은.

데에에에엥—.

다시 한번 울려퍼지는 편종 소리에 맞추어, 마치 폭탄이 터지듯 탄력적으로 점프하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스, 스고이···.”

일본 아이돌들은 그저 떡 벌어진 입으로 물개박수만 칠 뿐이었다. 7IN을 고깝게 보던 중국 아이돌들은 심기가 불편한 듯 미간만 찌푸리고 있었다.

미국 멤버들은 죄다 카메라를 들고 무대를 촬영하며 아이돌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홀리 쒯’ 같은 문장만 연신 내뱉어 댔다.

그러나 곡의 하이라이트는 아직 나오기도 전이었다.

다시 한번 훅이 지나간 뒤, 마침내 무대 중앙에 선 군자가 등에 걸려 있던 가면을 휙 뒤집어썼다.

기존 버전에선 탈이었으나, 이번엔 치우천황을 모티브로 만든 검붉은 가면이 군자의 얼굴을 덮었다.

동장군, 그것도 치우천황이 된 군자가 한 팔을 앞으로 쭉 뻗으며 신기전 같은 속사포 판소리 랩을 쏟아 부었다.

처음 터졌던 아육시 2차 경연 무대에서 지금까지, 매번 모든 사람들을 전율케 했던 그 파트. 한층 더 좋아진 박자감과 쩌렁쩌렁한 발성, 통통 튀는 댐핑이 모든 이들의 고막을 푹푹 찔렀다.

모두를 오싹하게 만든 군자가 치우천황 가면을 벗자, 다시 한번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얼굴이 드러났다. 이번엔 중국 아이돌 멤버들도 감탄사를 터뜨리고야 말았다.

이어진 마지막 훅, 그리고 일곱 동장군이 일제히 치우천황 가면을 쓰며 엄숙하게 일렬로 도열하는 것으로 소름 돋는 무대가 끝났다.

저벅, 저벅, 저벅—.

마지막은 다시 한번 눈 위를 밟는 장군의 발걸음 소리.

그리고 멀어지는 편종 소리가 공간을 아득히 메웠다.

“스고이이이이—!!”

“홀리 쒜엣—!!”

각국의 감탄사가 돔을 쩌렁쩌렁 울렸다. 미국 친구들이 하도 비속어를 외치는 바람에, 어그로 왕 김석훈 PD마저 비속어를 자제시키고 환호성 리액션 부분만 재촬영을 해야 했다.

그러나 두 번째 환호성에도 진심이 담겨 있었다.

“멋-지므니다!”

“So Cool—!!”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군자는 확신했다.

훌륭한 무대였다. 게다가 미국, 일본 동료들이 모두 환호성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이 무대로 노예가 될 일은 없을 것이야.

확신과 함께 무대를 내려가자, 백스테이지엔 선배 그룹 벨로체 멤버들이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형님들, 화이팅입니다!”

“야, 너네 장난 아니던데!?”

“크크, 감사합니다!”

“편곡을 해? 왕 하려고 아주 이를 갈았구만!”

“이따가 보자! 수고했어!”

장난스런 인사를 주고 받은 뒤, 벨로체 멤버들은 마치 본인들의 집 계단을 오르듯 편안하게 층계를 터덜터덜 올라 무대에 섰다.

긴장감이라고는 손톱 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 수많은 연습과 수천 번의 실전 경험이 만들어 낸 여유이리라.

그 여유가 허세가 아님을 증명하듯, 벨로체는 완벽한 무대를 선보였다.

편곡도, 새로운 안무도, 동선도 없는 무대였으나 안무의 퀄리티가 달랐다. 라이브의 차원이 달랐다. 퍼포먼스의 모든 순간에, 모든 멤버들이 표정을 컨트롤했다.

“···와아···.”

“미치긴 했다···.”

실로 감탄사가 튀어나올 만큼 예술적인 무대. 현 시점에서 벨로체는 분명 나머지 여섯 팀에 비해 압도적인 기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주자인 벨로체의 무대까지 끝난 뒤.

MC 정해진의 안내에 따라, 드디어 첫 신분을 결정지을 ‘신분 투표’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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