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146화 (146/303)

#146

그 보상

모든 사전경연 무대가 끝난 뒤, 다시 한번 쉬는 시간.

7IN 멤버들은 여전히 벨로체가 보여준 퍼포먼스의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크으, 역시 슨배임들이더라.”

“벨로체 형님들 말이더냐.”

“어. 군자 너도 엄청 입 벌리고 보던데?”

“턱이 빠질 뻔 했단다.”

“다른 나라 친구들도 전부 멘탈 나간 것 같더라구여.”

“···뭐, 뭔가 제 기분이 뿌듯했어요···.”

“우리도 그렇게 되자.”

“그럼요, 당연히 그렇게 돼야죠 형. 일단은 제발 노예만 안 됐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말하며 지현수가 조심스럽게 사방에 시선을 뿌렸다. 짧은 쉬는 시간 동안, 아이돌들은 서로를 만나 간단한 인사를 나누며 소통하고 있었다.

벨로체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던 7IN이었으나 이미 미국의 가디언즈가 벨로체를 포위하고 있었다. 가디언즈는 이미 벨로체의 엄청난 팬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저 친구들, 우리 경연 끝난 다음엔 우리한테 저렇게 해 주더니···.”

“그러게여. 뭔가 배신감 드는데여.”

벨로체가 뜻밖의 팬미팅을 개최한 사이, 테이보와 SHINO를 비롯한 중국 - 일본 팀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통역사까지 데리고 있는 걸 보면, 뭔가 긴히 할 이야기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저 친구들은 무슨 얘기 하고 있을까여?”

“글쎄, 이렇게 들어서는 모르겠는데.”

수상하다는 듯 중국 - 일본 팀 집단 쪽을 쳐다보고 있던 중, 일본 팀 SHINO의 한 멤버와 현재의 시선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 마자 현재를 향해 사근사근 미소를 지으며 총총총 걸어 온 일본인 멤버가, 짧은 영어와 한국말을 섞어 가며 인사를 건넸다.

“칠린! 너무 멋져요!”

“아··· 음, 감사합니당. 아리가또오.”

“히이! 카와이잇—!!”

“아하하하, 부끄럽넹···.”

“우리, 친구. 프렌즈, 원해요!”

“그, 그래요 뭐.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토모다찌.”

“하이! 토모다찌!”

그 뒤로도 SHINO의 몇몇 멤버들이 7IN에게 다가왔다. 일본 아이돌들은 하나같이 격앙된 텐션과 과한 몸짓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현수는 이것이 수상하다는 듯 실눈을 떴다.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너무 과하다고 해야 하나··· 뭔가 어색하잖아.”

“그러냐? 그냥 니가 안 좋게 받아들이는 거 아니야?”

“뭐 그럴 수도 있기는 한데.”

“하하, 괜한 의심은 하지 말자꾸나.”

현수는 의심했지만 군자는 걱정 말라는 듯 껄껄 웃었다.

“물론 저들의 억양이 기묘한 것은 사실이나, 악의는 없을 것이다.”

“그런가···.”

“모두 같은 꿈을 향해 달려 나가는 동료들 아니더냐.”

“그렇게 따지면··· 주하성 같은 인간도 같은 꿈을 향해 달려가는 동료긴 했잖아.”

지현수의 반박에 군자의 입술이 조개처럼 꽉 닫혔다. 확실히 아이돌이라고 해서 모두 인품이 훌륭한 것은 아니다. 주하성은 물론, 박영제 같은 사례도 있었으니.

하지만 그런 몇몇 사례 때문에 인간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싶진 않은 군자였다. 나쁜 사람이 한 명이라면, 좋은 사람은 그 수십 수백 배만큼이나 많을 것이다.

살짝 어두워진 군자의 표정을 보며 현수가 달래듯 말했다.

“그래. 뭐 그렇다고 전부 다 의심할 수는 없긴 해. 게다가 지금 상황에선 의심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고.”

현수의 말에 군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곧 투표가 시작될 것이고, 머지않아 모두의 신분이 공개되겠지.

잠시 후, MC 정해진이 다시 한번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부터 모든 아이돌 멤버들은 오른쪽에 마련된 기표소에 들어가 평가표를 작성해 주시면 됩니다. 1등부터 7등까지, 본인이 생각하는 사전경연 순위를 기록해 주세요. 각 팀의 경연에 대한 짤막한 코멘트도 함께 부탁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경연을 펼친 일본 아이돌들부터 차례로 기표소에 들어갔다. 1위부터 7위까지 순위를 정하고, 거기에 코멘트까지 해야 했기에 시간은 꽤나 늘어졌다. 유찬과 현수는 불안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되게 오래 하네···.”

“···괘, 괜찮을까요···.”

“내 말이. 이러다가 우리 노예 되는 거 아냐?”

“···허, 헉, 노예···.”

마침 파엘이 그들의 근처로 다가왔다. 현수, 유찬과 달리 파엘은 세상 편안한 표정이었다.

“뭐가 그렇게 불안해, 무대 잘 해 놓고.”

“···노, 노예 되면 어쩌나··· 걱정돼서요···.”

“걱정하지 마. 쟤네도 다 눈이 있는데, 설마 그 무대 보고 너네한테 꼴찌 줬겠어? 게다가 아까 SHINO랑 아키라는 너희랑 친목질 하더만.”

“저희 괜찮을까요?”

“야,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 만약 노예 되면 뭐 어떠냐, 농민봉기라도 확 일으키면 되지.”

“푸하학, 농민봉기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파엘의 태도에 다시 안정감을 찾은 두 사람이었다. 덕분에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모든 7IN 멤버들의 표정은 꽤나 평온했다.

괜찮을 거다. 경연을 잘 했으니까.

비록 중국 팀 테이보와 마찰이 있긴 했지만, 일본 친구들은 호의적인 태도이기도 했고.

문제 없다. 왕이나 귀족은 몰라도, 노예만큼은 되지 않을 것이다.

MC 정해진이 결과표를 공개하기 전까지는, 모든 7IN 멤버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사전 경연을 통해 결정된 <다이너스티>의 첫 신분을, 지금 공개하겠습니다!”

[왕 : 벨로체]

[귀족 : SHINO, 테이보]

[평민 : QUAN, AKIRA]

[노예 : 가디언즈, 7IN]

“—!?”

* * *

결과가 공개된 뒤,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였다.

“WHAT—!?”

“What the FXX—.”

미국의 가디언즈는 화가 많이 난 것 같았지만, 사실 이 결과는 놀랍지 않았다.

아무리 연주가 좋았다 해도, 가디언즈의 경연은 아이돌로서 갖춰야 할 요소가 거의 없었으니까.

그러나 7IN의 노예행은 당황스러운 결과였다. 선배 팀 벨로체는 도저히 이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는 듯 MC 정해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엠씨··· 아니, 집사님, 이거 제대로 집계된 것 맞아요?”

“네, 맞습니다.”

“정말로요? 정말 칠린이 노예 계급이라고요? 확실해요?”

“···네.”

정해진 역시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으나 애써 말을 아끼며 담담하게 팩트만을 전달했다.

“세 번의 검수를 통해 집계된 정확한 결과입니다.”

모두가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틀어막거나 머리를 감싸쥐고 있었다.

그러나 7IN 멤버들은 알고 있었다. 이들 중 꽤나 많은 인원이 7IN을 최하위로 선정했다. 그렇기에 7IN이 노예 계급으로 떨어진 것이고.

“이건 말이 안 돼.”

벨로체의 리더 파엘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며 중국 - 일본 팀 쪽을 노려보았다. 그는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아.”

물론, 가장 큰 충격에 빠진 것은 7IN 멤버들이었다.

자만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예가 될 만한 무대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들의 생각과 달랐다.

“···진짜 소름돋네.”

MC 정해진은 냉혹하게 진행을 이어 나갔다.

“평가를 통해 첫 번째 신분이 결정되었습니다. 신분은 지금 이 순간부터 적용됩니다.”

“···.”

“자, 이제 각자 신분에 해당하는 숙소로 이동하겠습니다.”

왕은 왕의 거처로, 노예는 노예의 골방으로.

신분이 결정된 모든 팀들은 각자의 공간을 향해 이동했다. 그때까지도 7IN 멤버들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우, 우리가 노예···.”

“와, 이건 진짜··· 와아.”

“말도 안 돼. 우리가 그렇게 못했냐고여.”

“···.”

그 때, 왕의 거처로 향하던 파엘이 7IN 쪽으로 후다닥 달려와 말을 걸었다.

“야, 어깨랑 가슴 쫙 펴.”

“형아···.”

“뭐 진짜 노예라도 됐어? 너네 부끄러울 거 없어. 부끄러운 건 중국 일본 애들이지.”

노예가 된 건 7IN인데, 어째 파엘이 더 화가 난 것 같아 보였다.

“내가 너무 순진했나 보다. 그 자식들, 아까 작당모의 한 게 틀림없어. 너네가 잘하니까, 견제하려고 전부 7위로 찍은 거야. 그거 아니고선 설명이 안 돼.”

“···.”

“어이가 없네 진짜.”

파엘의 말에 납득한다는 듯 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순진했다. 중국과 일본 아이돌들이 한 곳에 모인 것을 보긴 했지만, 설마 그런 계략을 세우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무튼 가슴 펴. 힘 내라고. 아까 내가 얘기했지? 여차하면 농민봉기···.”

“아니, 형아들은 왕이잖아여. 세상에 농민봉기 권장하는 왕이 어딨어여.”

“뭐 어떠냐, 어차피 우리는 안 질 건데. 확 다 뒤집어 버려. 알았지?”

곧 스태프가 파엘을 제지하며 왕의 거처로 인도했다. 스태프의 말을 얼핏 들으니, 왕과 노예는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금지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압송당하듯 한참을 걸어 내려가니 노예용 숙소가 나왔다.

“···와아···.”

“여기서 지내야 된다고?”

실제로 본 노예용 숙소는 화면으로 본 것보다 더 음산하고 폐쇄적이었다. 철제로 된 침대 헤드는 죄다 녹이 슬어 있었고, 캐비닛은 문도 제대로 열리지 않았으며, 연습용 거울은 먼지 투성이어서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거 좀 봐. 진짜 옛날 물건 같지 않냐?”

“진짜 골동품 같진 않은데··· 그냥 이렇게 꾸며 놓은 거네여.”

“와아, 굳이 이렇게까지···.”

멤버들은 모두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러나 군자는 불안했다.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던 때부터 군자의 심장은 유독 빨리 뛰기 시작했다.

“군자, 괜찮아?”

“···으음, 괜찮다. 걱정 말거라.”

애써 식은땀을 훔치며 괜찮은 척 해 보였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다.

노예 숙소는 폐쇄적이고 음습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군자는 그런 공간에 대한 공포가 있었고. 창문 하나라도 있었다면 조금 나았으련만, 이 망할 숙소엔 빛줄기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군자는 애써 스스로를 달래 보았다.

나는 이제 조선 사람이 아니다. 뒤주에 갇혀 울먹이던 것도 다 옛날 일이다. 언제까지 그 기억에 사로잡혀, 어둡고 폐쇄적인 곳만 오면 숨이 가빠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나 몸은 마음을 따라가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도 적응이 되기는커녕 더욱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밤 10시만 되면 칼 같이 잠에 드는 군자였으나, 베개에 머리를 괴어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으으···.”

갑갑하다. 저 멀리서 숙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구나!

애써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았지만, 어둠 속에서 숙부의 얼굴이 퍼뜩 떠올랐다.

“!”

화들짝 놀라며 눈을 뜨니 이번엔 숙부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이 고얀 놈이, 또 가무를···!’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가위에 눌린 듯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허억, 하는 소리와 함께 숨통이 턱 막혀 버렸다.

순간 뒤주 속 풍경과 노예 숙소의 풍경이 겹쳐 보였다. 동시에 시퍼런 상태창 수십, 수백 개가 떠오르며 군자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

[···············.]

[······.]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자들로 이루어진 수많은 상태창들. 어쩌면 혼란한 정신상태를 반영한 것일 터. 그러나 연유를 알아도 대처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다시 그 지옥 같은 곳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뒤주 속 풍경은 갈수록 뚜렷해지며 공간을 덮어 왔다.

안 된다, 이럴 수는 없다!

다아앙—.

순간, 캐비닛 옆에 두었던 향비파에서 현 퉁기는 소리가 났다. 나우리에게서 받은 영물, 나유선의 향비파였다.

그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군자가 어금니를 빠득 악물었다.

상태창은 이미 수천 개로 늘어나 시야를 덮고 있었다. 실로 폭주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증식, 그러나 이제 군자는 그가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았다.

전에 받았던 ‘그 보상’은 아마 이런 순간을 위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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