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149화 (149/303)

#149

노예 부려먹는 법

도발적인 군자의 첫 소절에, 한껏 업되어 있던 가디언즈 멤버들마저 당황을 금치 못했다.

“What?”

“What the fxx···.”

당연한 일이었다. 군자는 법규를 외쳤으나 가디언즈 멤버들에겐 그것이 다른 의미의 문장으로 들렸으니까.

아무리 발랄한 가디언즈 멤버들이라 해도 대뜸 면전에 법규를 날리는 군자의 행동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 노예가 된 것만으로도 이미 화가 나 있던 가디언즈 멤버들이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다고, 일단 신나게 웃고 떠들고 있긴 했지만 속이 쓰리지 않을 리 만무했다.

그런데 갑자기 와서 법규라니, 이 새끼는 또 뭐야?

지금 우리한테 욕 한 거 맞지?

그러나 가디언즈 멤버들의 오해가 풀리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이곳의 법-규!

다이너스티의 법-규!

다음으로 이어진 군자의 프리스타일 벌스를 듣자, 가디언즈 멤버들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걸렸다.

“Dynasty··· Fxxk you?”

갑작스런 법규는 가디언즈 멤버들이 아닌 <다이너스티> 프로그램을 향한 것이었다. 군자의 의중이 어찌 되었든, 가디언즈 멤버들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그래, 욕을 먹어야 할 건 망할 주최자들이라고.

역시 같은 노예들끼리 통하는 게 있구만?

가디언즈 멤버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며 군자가 한 번 더 목청을 키웠다.

역시 음악은 만국의 공통어나 다름없구나!

본인의 만국공통어가 잘못 번역되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군자가 주최측에 신나게 법규를 퍼부었다.

우리가 이곳의 법-규!

다이너스티의 법-규!

“Yeah, That’s Right!”

“Dynasty Fxxk You!”

이제 가디언즈 멤버들도 군자와 함께 덩실거리기 시작했다. 흐르는 물에 담궈 놓은 수삼 같은 군자의 요염한 바이브는 본토 미국인들의 엉덩이마저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가사가 직설적이고 호쾌하다.

‘Dynasty Fxxk You!’라니. 가디언즈 멤버들 역시 다이너스티의 신분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참가자로 온 것이니 참고 즐기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미친자는 달랐다. 물론 카메라가 꺼져 있긴 했지만, 촬영자의 중심인 메인 홀에서 ‘주최측 엿먹어’라는 내용의 프리스타일 랩을 하고 있었다.

···존나 멋지군!

가디언즈 멤버들의 마음이 동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군자의 프리스타일 랩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 왕궁의 법-도!

다이너스티 캐슬의 법-도!

이번엔 법규가 아닌 법도. 라임을 맞추기 위해 ‘법-도우’라고 발음했으나, 이번에도 가디언즈 멤버들의 번역기는 오작동을 일으켰다.

“Yeah, Dynasty Castle Fxxk TOO!”

“Fxxk Dynasty, and Fxxk this Castle!”

흥이 오른 가디언즈 멤버들을 보며 군자 역시 신이 나기 시작했다.

영문은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 분들께서 법규와 법도를 함께 외쳐 주신다.

겉보기엔 미친 분들 같았으나, 사실은 참으로 다정하고 상냥한 분들 아닌가!

가디언즈와 소통하기 위해, 군자는 계속해서 프리스타일 벌스를 뱉었다.

머리 위에는 언제나 쓰지 갓!

“God!”

“We believe in god!”

허나 태도는 매순간 즐길 락!

“Rock!”

“We love Rock too!”

비록 지금은 다이너스티의 노예!

“Dynasty No, Yeah!”

허나 중요한 것은 사람의 됨됨이!

“Damn, damn it!”

비록 오역으로 가득한 무대였으나, 군자와 가디언즈 멤버들은 마치 원래 하나의 팀이었던 것처럼 하나의 리듬에 맞춰 어우러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다른 7IN 멤버들도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구, 군자 형이 길을 터 줬으니까···.”

“우리도 가자! 가사도 졸라 간단하잖아!”

“그럽시다! 자, 다이너스티의 법-규!”

카메라도 꺼진 메인 홀에서, 그렇게 노예 두 팀은 독특한 첫 친목을 쌓아 나가고 있었다.

* * *

광란의 법규파티가 끝난 뒤, 다이너스티 캐슬 메인 홀.

어질러진 공간을 정리하며, 가디언즈와 7IN 멤버들은 질문을 던지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 정도 영어를 할 줄 알았던 멤버들은 짦은 영어로 대화를 했고, 영어에 서툰 멤버들은 인혁의 통역에 의존했다.

덕분에 군자는 가디언즈에 대한 다양한 사실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먼저 가장 놀라운 것은 가디언즈가 사실은 혼성 그룹이었다는 사실.

“오오···.”

“크크, 왜 그렇게 놀라? 내가 여자라서?”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여자라서 놀란다면, 생의 절반은 놀라면서 보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 그럼 왜 놀랐는데.”

“당신의 머리를 주의깊게 본 것은 처음이라서.”

“으음? 내 머리가 어떻길래.”

“반쪽은 다람쥐가 먹고 간 밤송이 같고, 반쪽은 흑산도에서 난 미역줄기 같군요.”

“푸하하하핫, 너 말 되게 재미있게 한다.”

“하핫, 당신 머리가 더 재미있습니다.”

여성 베이시스트 제시는 이질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꽤나 말이 잘 통하는 쾌활한 인물이었다. 그 호방한 성격과 미역밤송이 헤어 때문인지, 딱히 제시의 성별이 신경쓰이진 않았다.

보컬 채드는 몸의 절반이 그림이었다. 특히 쇄골 아래 가슴팍엔 대나무 문신과 함께 석심철장(石心鐵腸, 돌로 만든 심장과 쇠로 만든 창자. 절대 굽히지 않는 지조를 뜻함)이라는 사자성어가 한자로 새겨져 있었는데, 이것이 군자의 마음을 아주 쏙 사로잡았다.

이토록 멋진 산수화와 훌륭한 고사를 몸에 새겨 넣은 분들이라니.

예도에 있어서는 다소 야만인 같긴 하나, 본질적으로는 분명 훌륭한 분들이실 테다.

기타리스트 마이클은 스물 한 살의 나이에 벌써 슬하에 자녀가 두 명이나 있다고 했다. 빗자루를 들고 돌아다닐 때는 웬 미친놈인가 했는데, 스마트폰으로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줄 때에는 세상 스윗한 아버지의 모습 그 자체였다.

“어때, 우리 애기들이야.”

“세상에, 눈이 꼭 보석 같습니다.”

“오우, 서윗한데. 아까 뻑큐 외칠 땐 세상 야만인이 따로 없었는데 말야.”

“내 비록 법규를 사랑하긴 하나, 아이는 그보다 더 사랑합니다.”

“그럼 너도 빨리 아기 만드는 게 어때?”

“아기를··· 말입니까?”

“그래! 아기는 신이 주신 축복이라고.”

마이클의 말에 설득당한 군자는 메인 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나는 아기를 만들기로 했단다!’라고 외치다가 현수와 현재에게 겨우 저지당했다.

“휴우, 카메라 꺼져 있는 게 진짜 다행이었넹···.”

드러머 네이선과 키보디스트 패트릭은 모두 흑인이었는데, 얼굴을 분간하기 힘들어 모두가 애를 먹었다. 눈썰미 좋은 현재도 두 사람을 제대로 구분하진 못하는 것 같았다.

“웅이 형아, 저 둘 중 누가 패트릭이에여?”

“어··· 야, 나도 모르겠는데.”

“으으, 넘 헷갈리는—.”

현재와 태웅이 두 사람을 놓고 헷갈려 하고 있을 때, 네이선과 패트릭이 동시에 그들에게 다가왔다.

“잠깐만, 친구들. 설마 흑인 얼굴은 구별도 제대로 못 하는 거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좋은 친구들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식이면 레이시스트들이랑 다를 것도 없잖아?”

“아니 아니, 미안해여! 이건 순전히 내가 바보라서!”

“흑인 분들을 볼 기회가 없다 보니까···.”

“아하, 그래? 넌 태웅, 넌 현재! 저기 저 쪽의 세 사람이 현수, 시우, 유찬. 그리고 이 커다란 친구가 인혁, 마지막으로 저 곱상한 돌아이가 군자! 맞지?”

“헙-.”

“대박···.”

“우리도 동양인 볼 기회 자주 없다고.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구분을 잘 하지? 눈이 좋아서? 레이시스트가 아니라서?”

현재와 태웅이 거의 눈물을 흘리기 직전, 보컬 채드가 다가와 사실 네이선과 패트릭은 쌍둥이임을 알려 주었다.

“네이선, 이 미친놈아. 너네 얼굴은 나도 아직 잘 구분 못한다고.”

“어? 난 패트릭인데?”

“그러냐? 그래, 패트릭.”

“흐흐, 사실 네이선이었지.”

“3년째 그 지랄이 재밌냐? 어?”

두 사람이 사실 쌍둥이었으며, 초면의 외국인을 인종차별자로 몰아가는 것이 그들의 개그 패턴임을 알고 난 뒤에야 태웅과 현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 하하, 하···.”

“난 얘네들 개그코드 마음에 드는데.”

“그러게여. 형이랑 잘 맞을 것 같았음여.”

같은 노예 계급이라는 동질감 때문인지, 알고 보니 좋은 사람이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가디언즈와 7IN, 두 팀은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비록 바닥에서 만났지만, 이렇게 된 거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 보는 겁니다.”

“오오!”

“언제까지 노예일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Hell Yeah!”

“Fxxk Dynasty!”

의기투합은 끝났다. 이제 두 팀의 재능을 모아 좋은 무대를 만들어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노예들의 진짜 문제는 경연 준비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그 날 오후, 첫 번째 식사 시간.

식사 역시 왕족과 귀족들이 먼저 시작했으며, 노예들은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여 가장 질 나쁜 음식을 배식 받아야 했다.

“와, 나 이거 <설국열차>에서 본 것 같은데.”

“잠깐만, 이거 해물비빔소스 아냐?”

“해물비빔소스? 그게 뭔데?”

“군대에서 나오는 거 있어.”

“대체 웅이 형아는 군대 식단을 어떻게 아는 건데여.”

“나 해병대 캠프 3회차 수료자라니깐?”

개똥 같은 음식도 화딱지가 나는데, 꾸역꾸역 식사를 마치고 나니 더 황당한 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피호우캄을 비롯한 테이보 멤버들과 SHINO 멤버들이 7IN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식사를 마친 다음이었으나, 그들의 손에는 식판이나 식기류가 들려 있지 않았다.

“어이, 노예 친구들!”

“···?”

“우리가 먹은 식탁 좀 치워라.”

“!”

“어때, 이 정도면 비인도적인 노역은 아니잖아?”

“···.”

“밥이 너무 맛있어서, 잔반도 없이 깔끔하게 먹었다구~”

피호우캄의 농담에 테이보 멤버들이 꺄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SHINO 멤버들은 짐짓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도, 테이보가 웃자 또 따라 웃으며 비열한 모습을 보였고.

“이게 뭔···.”

억울한 표정의 태웅이 스태프 쪽을 바라보았으나 개입은 없었다. 이 정도 노역은 문제없다는 의미.

“와아, 그럼 진짜 치워야 된다고?”

“···이거 아육시랑은 완전 다르네여···.”

“그러게 말이다.”

확실히 아육시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이미지 관리가 매우 중요했던 아육시와 달리, <다이너스티>에서는 이미지 관리를 하려는 팀이 딱히 없었다.

특히 한국 시장이 딱히 중요하지 않은 중국 아이돌의 경우가 더욱 그랬다. 그들은 진심으로 7IN에게 엿을 먹이려 하는 것 같았다.

“하아, 진짜 이 놈의 신분제···.”

깊은 한숨을 쉬며 태웅이 움직이려던 순간이었다.

“잠깐만.”

익숙한 목소리가 7IN 멤버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이 노예들은 우리가 조금 부려먹어야겠는데.”

“!”

<다이너스티>의 유일한 왕족 팀, 벨로체의 리더 파엘이었다.

“···무, 뭘 어떻게 부려먹겠다는 건지.”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가 나왔는데··· 아, 귀족 식단엔 디저트가 없나?”

“!”

“아무튼, 디저트 색깔이 알록달록한 게··· 영 의심이 가서.”

“의심이라?”

“모르냐? 왕은 언제나 독살의 위협에 시달리는 법이라고.”

그렇게 말하며 파엘이 7IN 멤버들을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러니까 얘네들, 내가 데려가서 기미상궁으로 좀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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