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156화 (156/303)

#156

우리의 차이

‘신분제’라는 자극적인 제도, 거기에 말도 안 되는 사전경연 결과 덕분에 <다이너스티>는 시작부터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1화로 인해 활활 타오른 온라인 반응은 2화 방영 직전까지 사그라들지 않았다. 덕분에, <다이너스티> 2화는 공개와 동시에 미친 스트리밍 조회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현지를 비롯한 대부분의 7IN 팬들도 삼삼오오 TV, 스마트폰, 모니터 앞에 모여 <다이너스티> 2화 본방을 사수했다. 다이너스티 캐슬의 7IN 멤버들 역시 평민 숙소의 TV 앞에 모였다.

“노예 숙소엔 TV도 없었는데, 확실히 다르긴 다르네.”

“그러게. 아직도 노예였으면 타블렛 앞에 모여서 봤겠지?”

“지하는 데이터랑 와파도 잘 안 터지잖아여. 아마 480P 똥 화질로 봐도 끊겼을걸여.”

“사백팔십피? 영상 하나 보는데 그렇게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려야 한단 말이더냐?”

“응 군자야. 참고로 지금 이 TV는 1080P란다.”

“허억, 난 안 보겠다!”

“푸하하하하핫—.”

멤버들의 군자 놀려먹기가 끝날 즈음, 광고가 끝나고 마침내 2화 본방송이 시작됐다. 군자가 폐쇄공포증으로 고생하는 장면은 다행히 편집이 되어 있었다.

“휴우—.”

군자의 입장에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장면이 방영되었다가는 분명 팬들의 걱정을 살 테니까.

물론 모든 장면이 편집된 것은 아니었다. 한번의 발작 이후, 멤버들이 군자를 지키기 위해 침대를 붙여 놓고 자는 모습은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으으, 부끄럽구나···.”

“엥? 머가여?”

“팬분들께 약한 모습을 보인 셈 아니더냐.”

“뭐어··· 그런가? 근데 그게 왜여.”

“항상 좋은 모습만 보여 드려야 하는데, 비호감을 살까 걱정이구나.”

“에이, 뭔 비호감이에여. 진짜 말도 안 되는 걱정 하고 있넹.”

“그래도 걱정이 된다···.”

“걱정하지 말아여. 팬분들 그렇게 생각 안 하실 걸여.”

그렇게 말하며 현재가 군자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현재의 말은 사실이었다. 팬들은 약해진 군자의 모습을 보며 걱정할 뿐이었다.

[ㅠㅠㅠ진짜 군자 어떡해ㅠㅠㅠㅠㅠ]

[어둡고 밀폐된 공간이 진짜 싫은가봐]

[지하 들어갈때부터 표정 계속 안좋아]

[어딜 가든 방글방글 허허허 웃는앤데ㅠㅠㅠㅠ]

[진짜 김석훈 족같다]

[난 서쿠니 서쿠니 하면서 밈으로 소비되는것도 진짜 짜증나 솔직히 그냥 개노답 악질PD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ㄴ완전 개 공감··· 피디새끼 어그로 욕심때문에 군자만 고생중이잖아]

[ㅅㅂ연습실 하나 제대로 없는거 실화냐고]

[그래도 울 멤버들은 넘 귀엽당]

[ㅋㅋㅋ맞아 침대 옹기종기 붙여서 자는거봐]

[그 해달 잘때 손잡고 자는것같웈ㅋㅋㅋㅋㅋ]

[ㅁㅈㅁㅈ졸커ㅋㅋㅋㅋㅋㅋ]

[32:54 유찬이가 군자 팔목 잡고 잠든거 맞지?]

[형아 지켜주고 싶었나봐ㅠㅠㅠㅠ진짜 갓기임]

[어쩜 이렇게 일곱 멤버가 다 착해빠졌냐 설레게]

[하 나도 군자랑 손만잡고 자고싶다]

[ㄴ졸라터무니없이 큰 꿈 꾸면서 소박한척하지맠ㅋㅋㅋㅋㅋ]

[앗 들킴ㅎ]

7IN 멤버들이 함께 지하 생활을 이겨 나가는 소소한 분량이 지나가고, 본격적으로 경연 준비가 시작됐다.

노예 조인 7IN - 가디언즈는 초반부터 삐걱댔다. 가디언즈 멤버들의 비속어 파티 덕분에 오디오는 절반 이상이 묵음이었고, 설상가상으로 가디언즈 멤버들은 거의 춤을 출 줄 모르는 수준이었으니까.

국내산 스포일러를 철썩 같이 믿고 있던 한국 팬들도, 좋지 않은 연습 분위기를 보며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가짜 스포일러에 낚인 중국 팬들은 기고만장하기 그지없었고.

그러나 2화를 지켜보던 7IN 멤버들, 현장에 있었던 방청객들은 그저 무대 공개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7IN - 가디언즈 조합이 1차 경연에서 가장 좋은 무대를 펼쳤다는 사실을.

마침내 무대가 공개되자, <다이너스티> 2화 본방송을 시청하던 시청자들도 모두 그 사실을 알게 됐다.

무대 내용은 스포일러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아니, 실제로 구현된 무대는 스포일러의 호들갑 그 이상이었다. 주황색 점프수트를 입은 멤버들의 비주얼은 화염 속에서도 빛났다. 얼음에서 대염(大炎)으로 이어지는 무대 구성은 버릴 것 하나 없이 알뜰살뜰 완벽했다.

안도감은 순식간에 감동으로 전환됐다. 저 꾸질꾸질한 노예 숙소에서 이렇게 멋진 무대를 만들어 내다니. 다닥다닥 붙은 침대 위에서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잠들던 군자를 생각하니 팬들의 눈시울엔 눈물이 맺혔다.

“너무 잘했다, 진짜 너무 너무···.”

몇 번을 보아도 질리지 않는 무대였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락 밴드 - 아이돌의 조합이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 냈다. 심사위원들의 극찬이 쏟아지는 동안, 방구석 1열의 팬들도 야무지게 박수를 치며 칭찬을 감상했다.

[ㅠㅠㅠ믿고있었다구ㅠㅠㅠㅠㅠ]

[하 진짜 인혁옵 등장하는 순간부터 심멎]

[어뜨케 시작부터 끝까지 킬포킬포킬포]

[극락파트 넘 많아서 ㄹㅇ극락왕생할것같아]

[역시 코리안 스포가 다 정답이었넼ㅋㅋㅋ]

[중국스포 뭔뎈ㅋㅋㅋㅋ대체 왜그랬대]

[역시 가짜의 나라라 그런가 스포마저도···]

[ㄴ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근데 에바야진짴ㅋㅋㅋㅋ가짜스포 이런거 왜뿌리는데]

[본방 공개되기 전까지만이라도 즐기고 싶었나봄]

[테이보 노예행 신난다신낰ㅋㅋㅋㅋ]

[그래도 중국 두팀중엔 QUAN이 그나마 호감이야]

[걔네는 시비는 안걸잖움]

[그리고 콴에 소림사옵 좀 잘생김ㅋㅋㅋㅋ]

[아 그 변발? 그 헤어스타일 용납가능해?]

[무튼 테이보 보다보면 어떤 팀이든 걍 선녀임]

[하 마지막 크럼프 부분 다시 돌려봐야지]

[ 거문고 치는 군자 위주로 짤쪄옴.gif]

[ㄴ금손추]

[ㄴ사랑해ㅠㅠㅠㅠ복많이받아]

당연하게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완벽한 무대에 이어 쏟아지는 심사평, 마지막엔 중국 심사위원단의 내분까지. 재미와 감동, 유머까지 모두 챙긴 2화에, 시청자들의 극찬이 쏟아졌다.

[오늘부로 김석훈 -> 갓갓갓]

[ㅅㅂ인정할수밖에없다니깐]

[존나 맛있게 만드는건 킹정이야]

[근데 제발 애들 고생좀 안시켰으면 좋겠어 제발진짜···]

[인성 터진거 떠나서 서쿠니가 칠린이들 좋아하긴 하는듯]

[프로그램 할때마다 주인공 롤 주자너]

[이번에도 노예에서 왕까지 가는 칠린이들 서사가 메인일것 같지않움?]

[노예 생활 했다는게 개같긴한데]

[존나 악마의 피디야 진짴ㅋㅋㅋㅋ볼수밖에 없게 만듬]

[아 2차경연은 뭘깤ㅋㅋㅋ벌써부터 기대됨]

시청률과 화제성이 날로 상승곡선을 그리는 가운데, <다이너스티>의 다음 경연에도 대중들의 관심이 모이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다이너스티 캐슬에선 이미 다음 경연이 준비되고 있었다.

2차 경연은 콜라보레이션 미션이 아닌 개별 팀 미션이었다. 미션의 이름은 ‘인스턴트 미션’. 말 그대로, 짧은 시간 안에 경연곡을 만들어 퍼포먼스를 꾸며야 하는 미션이다.

워낙 작업량이 많고 작업 시간이 빠른 지현수가 있었기에 7IN에게 꽤나 유리한 미션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인스턴트 미션에 걸린 특별한 룰이었다.

“인스턴트 미션을 위해, 각 팀은 ‘제시어’ 하나를 제출해 주십시오. 모든 팀은 이 제시어 중 하나를 무작위로 배정받게 됩니다. 각 팀은 배당 받은 제시어, 혹은 그와 유사한 단어를 반드시 곡에 삽입해야 합니다!”

‘인스턴트 미션’의 핵심은 ‘제시어’였다.

좋은 제시어를 뽑은 팀은 미션을 수월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안 좋은 제시어를 뽑은 팀은 미션을 그르칠 수도 있을 테니까.

7IN 멤버들이 제출한 제시어는 ‘선비’. 이 제시어는 선배 그룹인 벨로체에게 돌아갔다.

‘선비’ 제시어를 뽑은 벨로체는 7IN 멤버들에게 장난 섞인 불평을 늘어놓았다.

“야, 이거 너네가 뽑으려고 넣었지!”

“아, 선비면 얘네가 제일 잘 하는 거잖아.”

“비교될 것 같은데···.”

“이거 완전 여우 같은 놈들이네!”

투덜대면서도 벨로체 멤버들은 제시어에 맞는 무대를 구상하기 위해 머리를 모았다. 이미 동양풍의 무대를 꾸며 본 경험도 많았기에, 벨로체 멤버들이 ‘선비’ 제시어에 맞는 무대를 꾸미는 것은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형님들이 우리의 제시어를 과히 싫어하시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구나.”

“그렇지. 선비 정도면 뭐··· 무난하니까.”

“···우, 우린 어떤 제시어를··· 뽑게 될까요···.”

“글쎄. 무난한 거 나왔으면 좋겠는데.”

부디 좋은 제시어가 나오기를.

기도하며 플라스틱 공을 뽑은 군자였으나, 멤버들과 함께 열어 본 플라스틱 공엔 암담한 단어가 들어 있었다.

[우리의 파오차이]

“파, 파오··· 아니 잠깐만.”

“이게 뭔···.”

이번에도 테이보의 장난질이 7IN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 * *

노예가 된 테이보 멤버들과 피호우캄의 눈에는 더 이상 뵈는 것이 없었다.

호화롭고 편안한 귀족 숙소를 이용하다가 노예 숙소로 떨어진 테이보 멤버들은 엄청난 역체감을 느껴야 했다.

노예 숙소에선 모든 것이 불편했다. 게다가 집결이 있을 때마다 사전 준비와 뒷정리까지 해야 했다. 모두 7IN과 가디언즈가 도맡아 하던 일이었다.

“젠장, 젠장—!!”

카메라가 있든 없든, 테이보와 피호우캄은 이제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기로 한 것 같았다. 이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판을 흔들고 7IN에게 엿을 먹여야 했다. 7IN이 귀족으로 올라가기 전까지는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의 파오차이’라는 제시어를 생각해 냈다.

파오차이, 자칭 ‘원조 김치’. 중국인들이 밀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 공정 중 하나였다.

피호우캄은 알고 있었다, 한국인들이 ‘파오차이’라는 단어에 얼마나 심하게 발작하는지를. 낮은 확률이긴 하지만, 만약 7IN이 이 제시어를 뽑아 주기만 한다면 그들을 확실히 흔들 수 있을 테다.

테이보의 도박은 성공했다. 7IN이 정말로 ‘파오차이’를 뽑아 주었으니까. 이제 그들은 좋든 싫든 파오차이를 가사에 넣어야 했다.

“자국인들에게 아주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던데, 반응이 기대되네.”

도박에 성공한 테이보와 피호우캄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가사에 파오차이가 들어간 노래를 부르는 7IN 멤버들의 모습만 떠올려도 절로 미소가 나왔다.

아마 제시어를 뽑고 난 다음부터는 멘탈 잡기도 쉽지 않았을 터.

시간은 다시 흘러 2차 경연 녹화의 시간이 다가왔다. 1차 경연보다 훨씬 많은 관중이 자리를 메운 가운데, 참가자들 역시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최종 점검을 하고 있었다.

테이보가 뽑은 제시어는 ‘번개’, SHINO가 써 낸 제시어였다.

제시어에 걸맞은 무난한 일렉트로 팝 넘버를 준비한 테이보의 표정엔 여유가 흘러 넘쳤다. 단언컨대, 그들보다 더 무난하고 좋은 제시어를 뽑은 팀은 없었다. 물론, 파오차이 지뢰를 밟은 7IN이 최악일 것이고.

그렇게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기실에서 목을 풀고 있는데, 스태프가 테이보의 대기실로 들어와 큐시트를 붙이고 갔다.

어디, 제목은 어떻게 썼는지 한번 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큐시트를 스윽 훑어본 순간, 테이보 멤버들과 피호우캄의 표정에 당황이 어렸다.

“···어?”

[<우리의 파워 차이> 7IN]

이번에도 7IN의 선택은 테이보의 예상을 완전히 웃도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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