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예의엔 예의, 무례엔 무례
“파오차이···?”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땐 바로바로 찾아 공부한다. 그것이 군자가 현대 사회에 적응한 방식이었다.
처음엔 공부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나, 스마트폰의 도움을 통해 이 사회에도 천천히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줄임말 같은 것은 쉽지 않아,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킨 적도 있었지만.
새로운 단어를 배울 때엔 항상 희열이 뒤따랐다. 어린 나이에도 높은 학문적 성취를 이룬 군자였으나 현대엔 또 배울 것 투성이였다. 새로운 것이라면 뭐든 좋았다. 심지어 비속어마저도 재미가 있었다.
“시벌탱, 시벌탱!”
“얘가 미쳤나, 왜 갑자기 욕질이야?”
“태웅아, 이거 어감이 참으로 재미있다. 시벌탱!”
“쓰지 마 임마! 그거 욕이야!”
“옛부터 그래 왔다. 비속어는 언제나 입에 촥촥 감기는 매력이 있구나!”
그러나 ‘파오차이’는 달랐다.
스마트폰에 단어를 검색하여 오픈사전을 읽어 내려가며 군자의 표정은 차츰 굳어 갔다.
“···이런 뜻을 가진 단어였구나.”
단어 자체의 의미는 중국식의 야채 절임을 의미했으나, 한국인들에게는 그 의미가 조금 달랐다. 중국이 추진 중인 대표적인 문화공정 아이템 중 하나가 파오차이였으니까.
쉽게 말해, 중국은 파오차이를 ‘진짜 김치’라 주장하고 있었다. 한국 팀이 두 팀이나 있는 경연에서 이런 제시어를 냈다는 것은, 결국 싸우자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해, 군자?”
“이 친구들, 아무래도 한 번 얻어맞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모양이구나.”
“그러게. 난 그냥 넘어가고 싶진 않은데.”
“물론이지.”
제시어가 적힌 종이를 구겨 버리며 군자 역시 어금니를 악물었다.
다이너스티 캐슬에 오기 전, 리온과 파엘을 만나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물론 국가대표 선발전을 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나라의 대표나 다름없다.
이런 무례를 당하고도 허허 웃으며 넘어간다면 우리의 체면만 구겨지는 것이 아니다. 팬들은 속이 상할 것이고, 더 나아가 한국의 모든 아이돌 팬들이 실망할 테지.
예(禮)에는 예로 대하는 게 맞다.
그러나 무례(無禮)한 자가 있다면 예의를 주입시켜 주는 것이 맞지 않은가.
“아무래도 이 친구들은 공맹(孔孟)의 역사를 모두 잊은 것 같구나.”
“그럴걸. 자기네들 손으로 다 부쉈다면서.”
“그래. 그런 것 같다.”
그렇게 ‘파오차이’는 ‘파워 차이’가 됐다.
‘인스턴트 미션’의 특성에 맞게, <우리의 파워 차이>는 심플한 스케치로 시작했다. 1차 경연 때처럼 다양한 악기를 쓰거나, 구성을 바꾸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강력한 타격감의 808 드럼에, 단조풍 멜로디 라인을 가진 신디사이저를 얹은 중독성 강한 힙합 비트. 신곡 스케치엔 채 반나절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남은 시간동안 멤버들은 가사 집필과 의상 컨셉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
그 동안은 대부분의 무대에서 동양풍의 의상을 입어 온 7IN이지만, <다이너스티>를 기점으로 의상에도 새로운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1차 경연에서는 소방관이나 죄수를 연상시키는 점프수트를 입었다면, 이번 무대에선 힙합 무대답게 오버사이즈의 화이트 후디와 통 넓은 청바지를 준비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디테일을 통해 그룹의 정체성은 야무지게 챙겼다.
일곱 멤버들 중 군자, 유찬, 현재는 하얀색 도포를 후디 위에 걸쳐 동양적인 분위기를 냈으며, 나머지 멤버들은 동양풍의 커다란 팔찌와 귀걸이, 사군자 문양이 들어간 스냅백을 착용했다.
경연곡 준비가 끝나고, 가사가 완성되었으며, 의상 컨셉까지 정해진 다음부터는 연습, 연습, 연습의 반복이었다.
노예 시절보다 훨씬 나아진 평민의 시설에서, 남은 시간을 오롯이 연습에 투자했으니 무대의 퀄리티는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테이보는 7IN에게 똥을 던졌지만, 7IN은 그 똥으로 폭탄을 만들어 다시금 테이보에게 던질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지난번엔 경연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7IN이었지만 이번엔 첫 번째로 무대에 올랐다. 모두가 기피하는, 심지어 벨로체조차 꺼려하는 1번 무대였으나 멤버들의 발걸음엔 거침이 없었다.
두웅, 두우우웅—.
굵직한 신디사이저 소리가 인트로를 알리며, 동시에 커다란 후디를 입은 소년들이 자유로운 동작으로 무대 위에 나타났다.
소년들의 동선은 무대 중앙의 군자를 향했다. 하얀 후디 위에 하얀 도포를 걸친 군자는 후디 모자를 뒤집어 쓴 채 관객들을 등지고 있었다.
지이잉, 지이이잉—!!
보자보자 하니—.
한 톤 높은 신디사이저 소리와 함께, 군자의 낭창한 목소리가 무대 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동시에 정면을 향해 돌아서는 군자와 소년들. 군자를 제외한 소년들의 얼굴에는 잡귀를 쫓는다는 방상시(方相氏) 탈이 씌워져 있었다.
지이잉, 지이이이잉—!!
예의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번, 신디사이저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군자의 목소리. 이번엔 군자를 중심으로 여섯 소년들의 팔다리가 스무스하게 움직이며 힙합 스타일의 안무가 전개됐다.
부드러운 움직임, 그러나 마무리만큼은 감전된 듯한 타격감이 느껴지는 깔끔한 동작. 군무는 없었으나 동작이 끝나는 타이밍만큼은 기계처럼 일정했다. 연습량이 느껴지는 인트로 파트에 심사위원들의 심장은 벌써부터 뻐렁치기 시작했다.
지이잉, 지이이잉—!!
악의(惡意)는 반드시 돌아갈 터—.
Yeah—!!
인트로 파트가 끝나자 군자가 후디 모자를 벗어젖혔다. 동시에 여섯 개의 방상시 탈도 함께 떨어지며, 일곱 소년들의 모습이 방청객들 앞에 드러냈다.
개소리 논파, Oh, 차이나 수준, 우리의 파워 차이.
적진을 폭파, Oh, 차이나 레벨, 너희의 Pao-Cai-!
태웅의 돌직구 같은 발성이 첫 훅(Hook)을 이끌었다. 태웅의 주도로 만들어진 훅의 가사는 지극히 직설적이며 공격적이었다.
쿠우웅, 쿠우우우웅—!!
폭탄처럼 울리는 808 드럼 위에서 줄타기를 하듯 점프하며, 태웅은 테이보 멤버들을 향해 폭력 같은 가사를 쏘아 보냈다.
우리는 올라, Oh, Next Level, 칼이나 갑옷도 없이.
주제를 몰라, Oh! 차이나 현실, 이것이 파워 차이-!
경연이 시작된지 30초도 채 지나지 않아 무대의 열기는 치솟아 올랐다. 또박또박 정직한 딕션 덕분에 모두가 그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헐, 헐, 디스곡인가봐—!!”
“미쳤다, 근데 넘 멋져—!!”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관객석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파오차이’라는 제시어를 본 순간부터 한국 방청석의 분위기는 최악이었으니까. 그러나 7IN은 기죽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들의 선택은 정면돌파로 무례(無禮)를 박살내는 것이었다.
심사위원들조차 서로의 얼굴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김석훈 PD마저 7IN이 이런 곡을 준비해 올 줄 몰랐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뭐야, 뭐야, 또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 건데에에에—!!”
다음으로 무대 앞에 나선 것은 7IN의 메인 래퍼이자 프로듀서 지현수.
Fake Gucci, Fake Prada, 이제는 Fake 김치를 담그니.
근데 솔직히 고마워 Pao-Cai, 가짜는 명품의 증거니.
벌스에 접어들었지만 가사의 농도는 전혀 낮아지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지리멸렬한 무대를 기대한 테이보였지만, 도리어 에너지와 흥이 넘치는 무대를 보며 입술을 짓씹을 수밖에 없었다.
“저 자식들이 뭐라고 하는 거야!”
정신 없는 와중에도 한국인 동시통역사는 단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며 가사를 통역해 주었다.
“···이, 이런 미친···.”
통역사의 찰진 통역으로 옮겨진 가사를 들으며, 테이보 멤버들의 안면은 순식간에 관우처럼 달아올랐다.
But You can’t take the original, 또 흑역사 만드네.
But you can’t make the original, 너네가 내 웃음벨.
But You can’t take the original, 또 흑역사 만드네.
But you can’t make the original, 너네가 내 웃음벨.
벌스의 마지막 부분은 지현수와 차인혁, 기유찬까지 셋이 목소리를 모았다. 간단한 군무까지 곁들인 3인 파트가 끝난 뒤, 이번엔 현재와 시우가 전면에 나서며 원색적인 가사를 주고받았다.
지뢰밭 쇼핑 내 분노의 원동력,
Thanks to 타오바오 & 알리.
한푸는 열등감이 한 푸는 소리,
근데 그런다고 풀리겠냐 한이.
이번엔 싱잉랩이 아닌 음가 없는 강렬한 랩을 준비한 현재였다. 현재의 파트가 끝나자, 그에 질세라 이번에는 시우가 웃음기 사라진 얼굴로 독한 가사를 뱉었다.
열등감은 질병, 흉내 중독은 지병.
당당한 정신병, 문화 공정은 염병.
온갖 병마와 싸우다 주화입마,
강호의 도리는 어디로 갔는가.
가사의 수위는 끝을 모르고 올라갔다. 관객들은 거의 무대 위로 뛰어오를 듯 열광하고 있었으나, 그 와중에도 7IN 멤버들은 한 차례의 실수도 하지 않으며 무대를 이끌어 나갔다.
개소리 논파, Oh, 차이나 수준, 우리의 파워 차이.
적진을 폭파, Oh, 차이나 레벨, 너희의 Pao-Cai-!
우리는 올라, Oh, Next Level, 칼이나 갑옷도 없이.
주제를 몰라, Oh! 차이나 현실, 이것이 파워 차이-!
어느덧 세 번째 후렴. 무대 위에서 뛰놀던 군자의 몸도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먼 발치의 중국인들을 보니 표정이 가관이었다. 살짝 미소를 지어 주니 그들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진다.
그러게, 처음부터 예법을 갖추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에는 취미가 없다 생각한 군자였으나, 할 말을 잃은 테이보 멤버들을 보니 어쩐지 더욱 흥이 올랐다. 원래대로라면 무대 중앙에서 마지막 벌스를 마칠 계획이었으나, 군자의 몸은 즉흥적으로 관객들이 있는 쪽을 향했다.
쿠우웅, 쿠우우우웅—.
예정에 없던 동선이었지만 멤버들은 당황한 모습 하나 없이 방상시 탈을 챙기며 군자의 주위에 모였다. 이 또한 수많은 연습의 결과물이었다.
군자를 제외한 여섯 멤버들이 방상시 탈을 착용한 순간.
지이이이이이잉—.
이윽고 비트가 미니멀하게 바뀌며 군자의 벌스가 시작됐다.
예의를 예의로 대하려 했으나
예의가 없으니 방도가 없구나.
공맹의 가르침 스스로 태우고,
무례의 땅에서 무례를 배우니.
강호의 도리는 어디로 갔는가,
송명의 예법은 어디로 갔는가.
찬란한 역사는 어디로 갔는가,
올바른 심성은 어디로 갔는가.
맹자왈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맹자의 후손이 반례가 되었네.
순자왈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순자의 후손이 증명해 버렸네.
예의엔 예의, 무례엔 무례.
예의엔 예의, 무례엔 무례!
마디 하나 하나, 글자 하나 하나가 테이보 멤버들의 뼈를 부러뜨리는 촌철살인.
벌스가 끝날 즈음, 피호우캄은 거의 눈물마저 글썽거리고 있었다.
군자의 벌스까지 완벽하게 끝난 뒤, 멤버들은 마지막 훅을 제창하며 무대 위에서 방방 뛰었고.
개소리 논파, Oh, 차이나 수준, 우리의 파워 차이.
적진을 폭파, Oh, 차이나 레벨, 너희의 Pao-Cai-!
우리는 올라, Oh, Next Level, 칼이나 갑옷도 없이.
주제를 몰라, Oh! 차이나 현실, 이것이 파워 차이-!
관객석은 이미 한중일미 모두 하나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