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이걸 알아 주시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무대는 끝났지만 팬들의 환호성은 멈출 줄 몰랐다. ‘파오차이’라는 제시어에 잡쳤던 기분은 벌써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너네가 최고야—!!”
“사랑해에에에에—.”
리얼리티나 SNS 라이브 속 7IN 멤버들의 모습은 언제나 순둥함 그 자체였다.
성격 모난 멤버 하나 없이 언제나 둥글둥글 지내던 7IN이었기에, 전쟁터 같은 자극적인 예능 포맷에서 기를 못 펴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데뷔 연차도 7IN이 가장 늦었으니, 더욱 기가 죽을 것 같았고.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7IN은 팬들의 걱정이 괜한 것이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7IN은 참지 않았다. 그게 이 나라의 문화에 대한 도발이라면 더더욱. 메세지는 물론 퀄리티, 에너지까지 야무지게 챙긴 무대에 환호성은 끊이질 않았다.
겨우 박수와 환호성 소리가 멎자 그제야 심사위원석으로 마이크가 넘어갔다. 이번에도 한국 심사위원단이 가장 먼저 앞다투어 마이크를 챙겼다.
그들도 ‘파오차이’라는 무례한 제시어에 화가 나 있던 참이었다. 이 같잖은 도발에 제대로 카운터펀치를 먹여 준 7IN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와우··· 이거 인스턴트 미션 맞나요? 짧은 시간 안에 준비한 무대라고요? 정말 에너제틱한 무대였어요. 일단 평소와 다르게 힙한 의상이나 자유로운 무대 컨셉이 너무 좋았어요. 칠린 하면 칼군무, 칼각으로 유명한 팀이잖아요? 그런데 오늘 동선은 정해진 것이 없어 보이면서도 또 함께하는 파트에선 기가 막히게 동선이 맞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칼각 맞추는 것보다 이렇게 자유로움과 절도를 오가는 구성이 훠어어어얼씬 더 힘든 거거든요.”
“감사합니다!”
“연습량이 느껴졌습니다. 칠린은 정말 연습을 많이 하는 팀이네요. 이번에 다시 한번 확실히 알았어요.”
댄스를 주로 본 심사위원의 평이 끝나자 마자, 바로 옆의 래퍼 출신 심사위원이 기다렸다는 듯 마이크를 낚아챘다.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어, 일단 ‘파오차이’라는 제시어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그게 궁금하네요. 조금 자극적인 질문일 수도 있지만요.”
7IN 쪽에서는 프로듀서 지현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무대를 마친 소년들의 표정엔 환희와 즐거움만이 가득할 뿐, 분노 같은 것은 이미 없었다.
“많은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파오차이라는 단어를 받았으니까, 그 단어가 들어간 노래를 만들자. 그냥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테이보 분들이 만족하셨을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곤, 지현수는 테이보 쪽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언제나 퀭한 얼굴의 지현수였지만 오늘은 유독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테이보 멤버들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으나, 질문을 던진 심사위원은 만족한 모습이었다.
“정말 멋진 애티튜드네요. 나도 디스전을 해 본 적이 있지만, 어린 아이돌 친구들이 이렇게 침착하고 멋지게 도발에 대응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감사합니다!”
“아이돌 트레이너로서도, 한 명의 래퍼로서도 감명깊게 본 무대였습니다. 이 친구들 데려다가 진짜 찐한 힙합 앨범 하나 만들어 보고 싶을 정도예요, 하하하.”
그 뒤로도 심사위원들의 극찬은 한참을 이어졌다.
“방상시 가면을 쓴 건 누구 아이디어였나요? 저도 무대연출을 하면서 다양한 장치들에 대해 연구하면서 한국의 탈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요. 방상시 가면은 잡귀를 쫓는다는 의미를 가진 물건이죠? 저는 이 선택도 참 탁월했다고 느낀 게, 전체적인 분위기가 ‘디스’였잖아요. 누군가에게 공격적인 메지시를 쏘아 보내는 무대 위에서, 이렇게 공격적인 의미를 가진 아이템을 선택했다는 게 참 센스 있다고 느꼈습니다.”
무대 위에서 사용한 아이템에 대한 칭찬.
“멤버들 모두 랩 발성이 좋아진 것 같아요. 그리고 하현재 군, 현시우 군은 그 동안 항상 보컬 파트만 맡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빡센 랩을 보여줬는데 그것도 너무 자연스러웠고. 저는 이 팀의 퍼포먼스 스펙트럼이 넓다는 게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처음엔 선비 아이돌이라 해서 동양풍 무대밖에 못 할 줄 알았는데.”
멤버들의 새로운 시도에 대한 칭찬.
“와, 유군자 씨 너무 잘생겼네요. 솔직히 다른 것보다 군자 씨 얼굴이 너무 너무 잘생겨서··· 하얀 후드가 너무 잘 받는데요? 진짜 어떤 느낌이냐면, 군자 씨가 원샷을 받는데 우리 국격이 상승하는 느낌이었어.”
그냥 군자의 얼굴에 대한 무지성 극찬까지.
모두가 마이크를 돌려 가며 심사평을 가장한 감상평을 늘어놓고 있는 동안, 유독 중국 측 심사위원 몇 명만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들의 심산은 뻔했다.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7IN의 무대를 깎아내리려는 의도.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중국 측 심사위원들은, 겨우 답을 찾았다는 듯 마이크를 잡았다.
“음, 뭐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무대였는데요.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
“테이보의 제시어는 ‘파오차이’였죠. 하지만 곡 제목은 <우리의 파워 차이>. 말장난으로 경연의 주제를 회피해 갔네요.”
“···.”
“뿐만 아니라 가사에서도 ‘파오차이’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주제를 지키지 않으면서 비난만 늘어놓는 경연이라니, 이런 무대에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중국 심사위원들은 의기양양하게 심사평을 늘어놓았으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한번 한국의 래퍼 출신 심사위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럴 줄 알았지.”
“?”
“내 그 말 왜 안 하나 했습니다.”
“그게 무슨···.”
“다시 태웅 군에게 묻겠습니다. 후렴 부분에 ‘개소리 논파, Oh, 차이나 수준’이라는 가사가 있었죠?”
“넵, 맞습니다.”
“1절부터 마지막까지 계속 반복된 가사였죠. 이 부분을 잘 들으시면 테이보가 낸 제시어가 숨어 있는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논파, Oh, 차이나’. 더 잘라서 보면 ‘파,Oh, 차이’. ‘파오차이’가 들립니다. 바로 다음 가사인 ‘적진을 폭파, Oh, 차이나 레벨’에도 똑같은 트릭이 숨어 있고요. 단어의 연결과 소리를 통해 만든 위트죠.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숨어 있던 제시어를 발견하지 못했던 심사위원들이 웅성이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싸비(후렴)에 제시어를 숨겨 놨네.”
“와, 나 이건 또 몰랐는데···.”
“얘네 진짜 징글징글하다.”
“어쩐지, 가사지엔 파오차이가 많이 없었는데 막상 노래 들을 땐 계속 맴돌더라고.”
그 모습을 보며 태웅이 뿌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알아 주셔서 감사함다!”
“당연히 알아봐야죠, 래펀데. 개인적으로 ‘한푸는 열등감이 한 푸는 소리’ 라인도 좋았습니다. 이건 ‘한푸’를 이용한 펀치라인이었죠?”
이번엔 ‘한푸’ 라인을 쓴 현재가 야무지게 고개를 끄덕였다. 7IN의 인스턴트 미션 곡 <우리의 파워 차이>에는 곳곳에 테이보를 야무지게 때리는 요소들이 오목조목 들어가 있었다.
“랩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돌 분들이,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재미있는 반격을 준비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그것도 안무, 의상까지 준비하면서 이런 무대를 만들어 줬다는 게 너무 멋집니다. 한국인으로서 뿌듯하기도 했고요.”
“감사합니다!”
“자, 이제 제시어가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지적은 틀린 지적이 됐네요. 맞죠?”
숨어 있던 ‘파오차이’들 덕에, 중국 심사위원단의 말문은 콱 막혀 버렸다.
이제 그들의 희망은 하나, 테이보의 무대 뿐이었다. 그래도 테이보가 괜찮은 무대를 준비했다면 경쟁은 해 볼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어진 테이보의 무대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안무는 실수 연발이었으며, 메인보컬 피호우캄은 무리한 고음 애드립을 치다가 대형 음이탈을 세 번이나 내고 말았다.
마치 요들송처럼 정음과 삑사리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피호우캄의 저세상 창법에,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 심사위원단의 표정이 카메라 원샷에 잡혔다.
“이거 완전 개판이구만.”
김석훈 PD의 짧은 감상평이 테이보의 무대를 완벽하게 요약했다. 애초에 테이보는 무대에 오를 만한 정신상태가 아니었다.
운 좋게 7IN에게 제시어 공격을 날릴 수 있었지만, 오히려 운이 좋은 것은 7IN 쪽이었다. 반대로 회심의 공격을 날렸다며 좋아하던 테이보는 멘탈이 가루가 되어 버리고 말았고.
군자(君子)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배(小人輩)는 사소한 일에도 일희일비할지니.
나란히 붙은 7IN과 테이보의 무대는 군자와 소인배의 차이를 극명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처참한 테이보의 무대가 끝나고, 이어진 무대들도 별 볼 일 없긴 마찬가지였다.
AKIRA는 자신들이 2008년에 냈던 메가히트곡을 다시 어레인지하여 준비했으나 ‘인스턴트 미션’이라는 주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혹평을 받았고.
가디언즈는 그나마 괜찮은 라이브 연주를 선보였지만 몇몇 멤버들이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텐션이 너무 높다’는 지적을 받았다.
QUAN은 본인들의 장기인 무예를 다시 한번 살리는 무대를 꾸몄지만 메인 래퍼가 가사를 저는 바람에 열여섯 마디를 통으로 프리스타일 랩을 해 버리고 말았다.
“이 얼 싼~ 이 얼 싼~ 얍 얍 얍—.”
프리스타일이랍시고 이얼싼만 내뱉는 그를 보며, 7IN 멤버들은 다시 한번 군자의 무시무시한 프리스타일 랩 능력에 감탄했다.
“군자, 너는 어떻게 그렇게 프리스타일을 잘 하냐.”
“후후, 선비라면 항상 가슴에 글월을 품고 살아야 하는 법이지.”
“아무리 그래도 그게 그렇게 찌르면 툭툭 나오냐고. 희한한 놈이야 진짜.”
“누가 언제 어디서 언문으로서 시비를 걸어 올 지 모르는 것 아니더냐.”
“···넌 진짜 어떤 세상에서 살아 온 거니?”
그나마 벨로체의 차례가 오자 무대의 수준이 올라가기는 했다. 그러나 벨로체 역시 즉흥으로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하는 ‘인스턴트 미션’에선 약한 모습을 보였다.
미친 퀄리티의 안무와 완벽한 표정, 흔들림 없는 라이브는 보이지 않았으며, 몇 차례의 사소한 실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심사평은 훌륭했으나, 심사위원들 역시 벨로체의 실수를 인지한 상태.
“자, 일곱 팀이 경연을 모두 마쳤습니다! 이젠 심사위원 점수와 방청객 점수를 집계하여 무대 순위를 낼 차례인데요!”
기대의 크기만큼 실망도 커진다지만, 이번만큼은 7IN 멤버들도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형아들, 이번엔 우리 1등 한번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여?”
“야, 그런 소리 하지 마. 어차피 한 계단씩 밖에 못 올라가잖아.”
“그래도 이번엔 느낌이 좋은뎅···.”
“태웅이 말이 맞다, 현재야. 언제나 겸손해야 하는 법이야.”
부드러운 말로 현재를 타이르긴 했지만, 군자의 가슴 속에도 작은 기대감이 싹트고 있었다.
어쩌면 처음으로 벨로체 형님들을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소년들의 기대감이 커지는 동안, 마침내 집계를 마친 제작진이 MC 정해진에게 큐 카드를 넘겼다.
“이제 2차 경연의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