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마침내 결승
결승전을 위한 컨셉 아이디어를 취합한 멤버들은, 한 곳에 모인 일곱 개의 아이디어를 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디테일 차이는 있었지만, 일곱 개의 아이디어는 모두 하나의 큰 주제에 근간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 뭐야. 나 좀 소름돋는데?”
“웅이 형아, 솔직히 말해 봐여. 내꺼 보고 따라했져?”
“뭔 소리야, 절대 아니거든?”
“헐, 그럼 우리가 이렇게 닮게 됐다는 건가.”
“왜에? 기분 나쁘냐? 흐흐, 받아들이라고.”
“아니여? 기분 좋은데여? 나 형 좋아함여.”
“그래? 근데 표정은 왜 그래?”
“뭔가 젤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싶었단 말이에여···.”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일곱 명 아이디어가 다 비슷비슷하지?”
“후후, 근묵자흑이라는 말도 있다. 안 그래도 요즘 우리가 닮아 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 않았더냐. 이제 외모뿐만 아니라 머릿속까지 닮아 가는 것이겠지.”
소년들은 서로 비슷한 아이디어를 냈다는 것에 뿌듯해 했다. 아무런 상의 없이도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것은, 이제 그들이 진짜 한 팀이 되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좋아, 그럼 디테일만 좀 정리하고 메인 컨셉은 이거로 잡을까?”
“난 찬성! 어차피 우리 다 같은 생각인 거잖아.”
“아하하, 좋아~ 그럼 이번엔 무대 장치도 완전 많이 쓰자~”
“그래. 컨셉 회의 할 시간이 굳었으니까, 그만큼 다양하게 준비해야지.”
“으으으, 이 애증의 경연 같으니라고. 끝날 때 되니까 또 좀 아쉽냐 왜.”
“···마, 맞아요··· 돌이켜 보니까 재, 재미있었어요···.”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자꾸나. 화룡점정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여정도 그 의미가 퇴색될 테니 말이다.”
“크으, 역시 이야기 마무리엔 군자님 훈화말씀이야.”
그렇게 소년들은 그 어떤 갈등도 없이 빠르게 의견을 취합할 수 있었다. 7IN을 제외한 다른 참가팀들 역시 최종 경연 준비에 돌입했다.
그 동안 사사건건 7IN과 대립했던 테이보, SHINO도 이제는 더 이상 다른 팀들을 견제하지 않으며, 오로지 최종 무대 준비에만 힘을 쏟는 모습이었다.
공교롭게도 두 팀 모두 최종 경연을 앞둔 시점에 노예가 되어 있었다. 그 동안 테이보와 SHINO에게 다방면으로 엿을 먹은 7IN이었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그들을 괴롭힐 수도 있었다.
김석훈 PD의 시선은 자연스레 군자에게 향했다.
“이번에도 우리 군자가 분량 낭낭하게 뽑아줘야 하는데에~”
<다이너스티> 중반부의 어그로를 담당한 것은 한국 vs 중국의 대립 구도였다.
패기 좋게 7IN에게 선도발을 시도한 테이보였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경연은 완패, 신분도 강등. 심지어 노예 다루는 데에 너무나도 익숙한 군자가 테이보 멤버들을 데굴데굴 굴리기까지 했다. 테이보로서는 치욕적은 순간이었겠지만, 김석훈 PD에게는 크나큰 행복이었다.
김석훈 PD의 기대는 간단했다. 군자가 다시 한번 테이보, SHINO 멤버들을 굴려 주었으면 했다. 벨로체나 7IN의 나머지 멤버들은 군자만큼 찰지게 노예를 굴릴 줄 몰랐다. 게다가 가디언즈는···.
“We are the GREAT Lincoln’s offspring!”
(우리는 졸라 대단한 링컨의 후예들이다!)
“We’ll not abuse slaves!”
(우리는 노예를 못살게 굴지 않는다!)
“Slaves are freed in our land!”
(우리 나와바리에서 노예는 해방됐다구!)
···노예 부려먹는 것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으니까.
그런 김석훈 PD의 기대감을 읽었다는 듯, 테이보와 SHINO는 겁을 먹고 있었다. 특히 이미 군자의 공포를 체험한 테이보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했다.
“이번엔 어떻게든 노예를 벗어나야 했어···.”
“피호우캄, 어떡하지? 유군자 저 자식이 또 그 지랄을 시작하면 어떡하냐고!”
“젠장, 이번엔 뭘 시키든 그냥 고분고분 따르자고. 어차피 대립해 봐야 손해 보는 건 우리 쪽이니까.”
테이보도 이제 본인들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았다. 뒤늦은 깨달음이었지만 그들의 생각은 옳았다. <다이너스티>의 신분제는 마지막까지 공고했다. 노예 계급에 속한 팀들이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상위 계급의 팀들에게 잘 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석훈 PD의 기대, 테이보의 우려와 달리 군자는 더 이상 노비를 부려먹지 않았다.
“이리 오너라—.”
오히려 노비들을 불러모아 뜻밖의 포상까지 내렸다.
“여기, 고급 초콜렛이다. 내가 아끼던 것인데, 너희가 각각 한 상자씩 가져가거라.”
“이, 이런 귀한 것을···.”
“됐다. 나는 많이 먹었으니.”
“···감사합니다···.”
노역을 예상했던 테이보와 SHINO는 뜻밖의 선물에 절로 고개를 조아렸다. 그런 노비들의 모습을 보며 군자는 흐뭇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동안 많은 감정 다툼이 있었으나 이제는 다 잊자꾸나. 모두 최종 경연을 준비해야 할 시기 아니더냐.”
“···.”
“단, 지킬 것은 지키자. 서로에게 예법만 지킨다면, 경연을 준비하는 데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야.”
노비들은 감동에 젖은 표정으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들어가 보아라.”
능숙하게 노비들을 돌려보내는 군자의 모습을 보며, 다른 7IN 멤버들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오, 이번엔 웬일이래?”
“음? 무엇이?”
“난 이번에도 노비들 화끈하게 굴리려나 했지.”
“하하, 무조건 데굴데굴 굴린다고 만사형통이 아니다. 지난 주 내내 본때를 보여주었으니, 이제는 곤장보다는 달콤한 경단을 내밀 때지. 계속해서 곤장만 친다면 마음 속에 악만 쌓이지 않겠느냐.”
“그런가?”
“원래 노비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태생이 낮은 신분이니, 사는 내내 억울할 테지. 그렇기에 한 뼘 쉴 곳도 없다면 결국 갈 곳 없는 분노는 위로 폭발하게 된다.”
“아니, 대체 노비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거냐고.”
“하하, 게다가 이제 정말 마지막 경연 아니더냐. 마지막에는 모두가 좋은 모습을 보이며 마무리했으면 좋겠구나. 마지막까지 노비들을 괴롭히는 것은 나로서도 내키지 않는다.”
“후음, 그건 맞아여. 그래도 마지막은 다들 100% 실력 보여줬음 좋겠긴 해여.”
“일본 팀 SHINO는 이제 막 노비 됐는데, 군자 매운맛 체험 못 시켜 준 게 조금 아쉽기는 하네.”
“일본 친구들도 밉긴 하지만, 그래도 미움의 경중을 따졌을 때는 테이보 친구들이 훨씬 더하지 않았느냐.”
“하긴, 그건 그래여.”
“게다가, 일본 친구들은 이미 부라자 부라자로 스스로 벌을 받았다.”
“푸하하학, 그것도 맞네.”
“그런고로, 이 시점에서는 노비들을 함부로 부려먹지 않는 것이 좋다.”
모두가 군자의 지론에 고개를 끄덕였다. 군자의 방법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노예 계급의 테이보와 SHINO는 날이 갈수록 한결 온순해졌다.
“후후, 보아라. 어느새 노비들이 온순해지지 않았더냐.”
“그러네··· 이젠 무섭다 무서워···.”
“진짜 선비 형아는 적으로 돌리기 싫어여···.”
“내가 이 자식 친구라서 다행이라니까.”
“어제 파엘형도 그러더라, 유군자가 내 후배라 다행이라고.”
“뭐, 이제 갈등도 없으니까 연습에 집중할 수 있어서 그건 좋긴 하다.”
결승 생방송 무대를 위한 준비는 일주일 내내 이어졌다.
상큼하고 발랄했던 지난 무대와 달리, 이번에는 7IN 역시 많은 무대장치를 사용했으며 리스크 높은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그렇기에 연습은 그 어떤 때보다 치열했다. 부상의 위험 속에서도 소년들은 용감하게 연습량을 늘려 나가며 무대의 퀄리티를 높였다.
“끄아아—.”
“우아, 힘들어 죽겠다!”
“한 번 더 가자! 진심 100%로 한 바퀴만 더 하고 쉬자!”
“아하하하, 나 토 할 것 같은데~”
“시우, 조금만 더 힘 내!”
그렇게 연습에 연습을 쌓아 올린 결과, 무대의 퀄리티는 조금씩 나아졌다.
리스크 많은 동작이었기에 처음엔 그 동작을 수행하는 데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 멤버들이었으나, 이제는 동작을 수행하면서도 여유로운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좋아 좋아, 현재 표정 좋다!”
“헤헷, 난 표정 빼면 평범돌 된다구여!”
생방송까지 남은 시간 동안, 소년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무대 준비에 쏟아 부었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팬들을 실시간으로 만난다는 기쁨.
한국을 대표하는 아이돌로서, 최고의 무대를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
한번쯤은 벨로체를 완벽하게 이겨 보고 싶다는 승부욕.
가장 소중한 멤버들을 위해, 120%의 역량을 발휘하고 싶다는 동료애.
모든 복합적인 감정이 소년들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덕분에, 생방송 경연 바로 전날에는 거의 완벽한 수준까지 무대 퀄리티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기간이 끝나고, 마침내 생방송 경연일의 아침이 밝았다.
생방송 경연은 다이너스티 캐슬이 아닌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진행됐다. 총 1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실내체육관엔, 벨로체와 7IN을 비롯한 일곱 팀의 팬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메웠다.
아육시 결승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관객이었다. 1만 명이 넘는 관객의 물결 앞에 선 소년들은, 그 기운에 압도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진짜 엄청 많다아···.”
“후우, 후우, 막상 보니까 진짜 미친 듯이 긴장되는데.”
“떨지 마여. 긴장하면 실수하고 실수하면 다침여.”
“괜찮다. 모두 리허설 때는 완벽하게 해내지 않았느냐.”
“그 때는 관객이 없었잖아. 막상 이렇게 관객 분들 보니까 심장 터질 것 같은데.”
“다 괜찮을 거다.”
애써 동료들을 진정시켰으나 군자 역시 이 어마어마한 인파를 보며 계속해서 전율을 느꼈다.
저잣거리의 수십 명 구경꾼으로 시작하여, 어느덧 이 많은 관객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구나.
무대 직전의 기분 좋은 떨림을 살짝 넘어선 수준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 동안 다양한 서바이벌로 다져 온 내공이 있었지만, 이렇게 압도적으로 많은 관객 앞에서 공연을 하는 것은 군자 역시 처음이었다.
“후우, 후우—.”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호흡을 조절했다.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게 흘렀다. 아직 긴장이 다 잡히지도 않았는데, 어느덧 첫 순서인 SHINO가 백스테이지로 향하며 7IN 멤버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간바레!”
“힘 내, SHINO!”
토막으로 배운 일본어로 그들을 응원하며, 군자와 7IN은 계속해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무대 위에 오른 SHINO는 자신들의 오리지널 컨셉인 ‘시노비’를 살려 멋진 경연을 펼쳤다. 일본풍의 전통 의상과 벚꽃의 조합, 단언컨대 지금까지 SHINO가 보여준 퍼포먼스 중 가장 훌륭한 무대였다.
다음으로 무대에 오른 것은 마찬가지로 노예 계급인 테이보.
계속해서 한국 아이돌을 레퍼런스 삼은 무대를 보여주었던 테이보도, 마지막 무대만큼은 중국적인 모티브 ‘황룡’을 살려 멋진 무대를 펼쳤다.
앞선 팀들이 모두 좋은 무대를 펼치는 가운데, 7IN의 차례는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1만여 명이 내는 거대한 함성 소리 역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