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172화 (172/303)

#172

곡예사

두 번째 후렴과 동시에 무대에 들어온 것은 두 개의 거대한 트램폴린이었다.

사람의 몸을 최대 4m 높이까지 쏘아 보내는, 강한 장력을 가진 트램폴린.

‘도술’이라는 컨셉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준비한 무대장치였다. 트램폴린이 자리를 잡자, 훈련된 백업댄서들이 그 위에서 공중곡예를 선보이며 무대를 현란하게 꾸몄다.

파아앙, 파아아아앙—.

지속적으로 곡예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QUAN마저 트램폴린에는 감탄하며 박수를 보냈다. 수평적인 움직임에 수직적인 움직임까지 더한 7IN의 무대는, 다른 어떤 무대보다 다채롭고 화려해 보였다.

“트램폴린을 쓸 줄은 몰랐네···.”

“그래도 아마 백업댄서들만 쓰는 거겠지?”

그러나 이번엔 소년들이 두 명씩 트램폴린에 오르며 곡예를 시작했다.

파아앙—.

물론 훈련된 전문 곡예사만큼 원숙한 실력은 아니었으나, 소년들은 충분한 높이로 날아오르며 다시 한번 모두를 감탄케 했다.

파바바밧—!!

소년들의 점프와 동시에 강한 조명이 연속으로 점멸했다. 그 덕에 시야가 어두워졌다 밝아지며, 순간 소년들이 허공에 멈춰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컨셉을 살리기 위해 현수가 제안한 아이디어였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도술을 부리는 듯한 포즈로 허공에 멈춰 선 멤버들을 보며 관객들은 또 한번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태웅은 여의봉을 휘두르는 듯한 포즈를 취했으며, 현재는 돈을 뿌리듯 사방에 부적을 뿌렸다. 군자는 아예 트램폴린에서 공중회전까지 선보이며 전문 백업댄서 못지 않은 묘기를 펼쳤다.

[우와아아아ㅏㅏㅏ]

[이거 머야 개멋지다ㅠㅠㅠㅠ]

[진짜 도술같아]

[이런 아이디어는 또 누가낸거야ㅠㅠ]

[우리애들 또 언제 트램폴린까지 연습한거야]

[진짜 이번 결승전에 뼈를 갈아넣은 듯]

[점프 타이밍이랑 베이스 떨어지는 타이밍 맞는거봐 쾌감 진짜 미쳣슴]

[진짜 넘 대단하지않아?ㅠㅠㅠ나보다 어린 애들이라는 게 믿겨지지가 않아]

[우리애들은 어떻게 이렇게 열심히 살 수있는걸까]

[진짜 너무 너무 멋져··· 사랑스러워]

[저 클럽 눈뽕조명 속에서도 빛나는 와꾸 대체 뭐냐고;;]

[와 현시우 저 와중에도 웃고있는거봐]

[쟤는 진짜 웃친놈임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웃친놈 딱이넼ㅋㅋㅋ]

모든 멤버가 트램폴린 곡예를 펼친 뒤, 이제 다음 벌스 주자인 지현수가 트램폴린에 올랐다.

많은 연습을 했다지만, 멤버 중 가장 신체능력이 부족한 지현수였다. 군자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 역시 지현수가 몸 쓰는 데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쿠우웅—.

그 순간 베이스가 떨어지며 지현수의 몸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수없이 연습했으며, 또 수없이 성공해 낸 곡예였다.

그러나 눈부신 조명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긴장감 때문이었을까.

점프를 한 순간, 지현수의 몸이 살짝 균형을 잃었다.

트램폴린 위에서는 아주 작은 무게중심의 변화도 큰 사고를 낳는다. 점프 각도가 1도만 잘못돼도 착지 위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

하늘로 뛰어오르자 마자 지현수는 문제를 눈치챘다. 망했다, 망했다, 무대 망치면 안되는데. 뼈 몇 개 부러지는 것보다 그게 더 큰 걱정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지현수는 팔다리를 몸통 쪽으로 모았다. 그의 신체 능력으로 낙법 같은 것은 불가능할 테지만, 적어도 티 안 나게 떨어진 뒤 무대를 이어갈 가능성은 만들어 놓아야 했기에.

부디 생각만큼 아프지 않기만을 바라며, 눈을 질끈 감은 지현수였지만.

사뿐—.

쿵 하고 떨어질 줄 알았던 그의 몸은, 단단하고 두꺼운 여섯 개의 팔 위에 안착했다.

“!”

지현수가 잘못된 점프를 인지했듯, 군자와 태웅, 인혁도 그의 점프가 잘못됐음을 순식간에 눈치챘다. 정해진 대열에서 벗어나야 했지만, 그들에겐 떨어지는 지현수를 받아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덕분에 지현수가 딱딱한 무대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일은 없었다. 이미 정해진 동선은 꼬여 버린 상태였지만 무대는 멈추지 않았다. 마침, 지현수의 벌스가 시작될 차례였다.

지현수를 받아 낸 세 명의 멤버들은 태연하게 그를 들고 무대 앞쪽으로 향했다. 마치 그것이 애초의 무대 구성인 양. 지현수 역시 마치 구름 위에 옆으로 누운 신선처럼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벌스를 이어 나갔다.

괴력난신, 괴력난신,

괴력을 가진 자, 난신을 품은 자.

괴력난신, 매력 많지.

패도를 떠난 자, 일곱의 전우치.

현장의 그 누구도 그것이 우발적인 사고였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 군자 - 태웅 - 인혁의 완벽한 캐치, 이어지는 현수의 완벽한 대처였다. 오히려 ‘자유’라는 주제에 걸맞은 새롭고 귀여운 구성이 탄생해 버렸다.

[아앜ㅋㅋㅋ저거뭐야 셋이서 현수안고있넼ㅋㅋㅋ]

[이정현같앜ㅋㅋㅋㅋ]

[헐 언니 이정현이요? 혹시 나이가;;;]

[이,,,좌식들아,,,우리땐,,저렇게 옆으로,,안으면,,,다 이정현이었다,,,!]

[모든걸 다줄래 너에게 다줄래~]

[ㄴ오 맞아 이거!]

[역시 칠린이들 팬 연령층 참 폭넓어그치^^]

[대중픽이라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구~]

[ㅇㅏ 근데 나도 쟤네한테 안겨 보고 싶다]

[하필 또 다 근육근육한 멤버들만있네]

[현수 쟤네품에 안겨서 벌스 하는거 왜케 하찮냨ㅋㅋㅋㅋ]

순간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한 지현수의 표정은 어느새 다시 밝게 돌아와 있었다.

괴력난신, 괴력난신,

괴력을 가진 자, 난신을 품은 자.

괴력난신, 매력 많지.

패도를 떠난 자, 일곱의 전우치.

나래를 펼쳐 도술을 부리지.

저잣거리 셀럽, 모두에게 Hello.

담장은 무의미, 그 위를 다니니.

기왓장 길 위, 자유롭게 누비지!

구름이 내 발판, 초승달은 찻잔.

한잔 기울여 보자, 재미있구나—.

안정을 찾은 지현수는 비트 위를 펄펄 날아다니며 완벽한 랩핑을 선보였다. 지현수가 벌스를 소화하는 동안, 비트는 점점 더 화려해지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어느새 흰 도포를 입은 백업댄서 열다섯 명이 추가로 무대 위로 올라와, 흑백의 대열을 만들며 무대 위를 현란하게 수놓았다. 아크로바틱 전문 백업댄서들은 쉴 새 없이 트램폴린 위에서 공중제비를 돌며 무대에 수직적 움직임을 더했다.

그렇게 무대의 중앙에서 난장이 벌어지는 동안, 마지막 벌스를 맡은 군자는 도술처럼 대열에서 사라져 있었다. 모든 시선이 무대 중앙에 집중된 사이, 군자는 밧줄이 설치된 무대 오른편으로 몸을 옮겼다.

지현수의 벌스가 마무리되는 동안, 오른편의 스테이지 바닥이 천천히 중앙으로 움직였다. 이제 밧줄은 무대의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동시에, 비트가 다시 한번 변주됐다.

순간적인 뮤트, 이어지는 향피리 소리. 초중반부가 힙한 이펙터를 씌운 국악기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후반부는 조금 더 원색에 가까운 국악기 소리를 삽입했다.

둥둥둥, 두웅, 두둥—.

북 소리가 합류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얼—쑤—!!

일순, 군자가 뱃심으로 발성을 쏘아 보내며 작은 트램폴린 위를 굴렀다.

파아앙—.

가볍게 튀어오른 몸이 밧줄 위를 향했다. 마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인간처럼, 군자의 발이 사뿐하게 밧줄을 밟으며 그 위에 안착했다. 현장에서 봐도, TV로 봐도 정말 도술 같은 움직임이었다.

줄타기는 이미 경주에서의 라이브 방송을 통해 보인 바 있지만, 무대 위에서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번엔 단순한 줄타기가 아니다. 수평적인 줄타기의 움직임에 수직적인 트램폴린의 움직임을 더했다.

줄 위를 자유롭게 오가며, 군자가 자신의 벌스를 내뱉기 시작했다.

해동성국 이래의 세력난립.

문무대신이 권력을 탐하니,

옥좌는 가시, 옥새는 마귀.

좌불안석이 일상이로구나.

나는 법을 잊은 수탉 같은 몸놀림으로 밧줄 위를 총총 걷던 군자는, 어느새 그 위를 겅중겅중 뛰며 모습을 바꿔 나갔다.

부산스런 닭에서 우아하고 고고한 학처럼. 군자는 온 몸으로 새를 묘사하고 있었다.

여기에 올라 훠이- 굽어보니,

자유로운 것은 새들 뿐이라.

여기에 올라 훠이- 살펴보니,

자유로운 것은 새들 뿐이라.

북 소리가 긴박해질수록 군자 역시 텐션을 끌어올렸다. 힙합 곡에서 템포를 바꾸는 일은 거의 없지만, <괴력난신>의 후반부는 국악의 산조처럼 점점 템포가 올라가는 방식으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비트는 겉잡을 수 없이 빨라졌지만, 군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박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폭포수 같은 가사를 내뱉었다.

포르르르- 날갯짓에 바람을 싣고,

구름을 자맥질, 공기를 가르노니.

하늘로 오르락, 땅으로 내리락,

삼림을 꿰뚫고, 산천을 스치고,

겨드랑지 뻐근하니 기와에 앉아

멋대로 날다가 뜻대로 쉬다가.

암놈이 앉으니 부리를 비비다,

금슬이 좋으니 가약을 맺다가.

이제는 둘이서 하늘로 날아가,

앞서니 뒤서니 경주를 펼치다.

자유로운 것은 너희들 뿐이라.

자유로운 것은 너희들 뿐이라.

쉴 새 없이 가사를 내뱉으면서도 정신없이 밧줄을 오갔다. 밧줄을 오갈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모든 무대 장치를 활용하여 새의 자유로움을 표현했다.

뜀박질을 하고, 발을 바꾸고, 아래로 떨어졌다가 트램폴린을 밟으며 다시 올라오고, 트램폴린에서 트램폴린으로, 밧줄에서 트램폴린으로. 밧줄을 넘어 공중제비를 돌고, 공중제비를 돌았다가 다시 가랑이 사이에 밧줄을 끼우고.

떨어질 듯 위태롭다가도 다시 균형을 잡고, 관객들을 바라보며 말을 걸듯 가사를 던지다가 이번에는 하늘을 바라보며 목청을 높이고. 오직 발가락의 힘만으로 밧줄을 잡았다가, 무릎에 밧줄을 건 채로 한 바퀴를 홰액 돌고. 다시 한번 트램폴린, 또 다시 한번 밧줄 위.

이번엔 그 얇은 밧줄 위에서 2회 연속 옆돌기, 마지막엔 발을 헛디딘 듯 모두를 속였다가 다시 한번 한 쪽 다리를 건 채 밧줄 위를 기어 올라간다. 팬들의 심장은 얼어붙는 것 같았으나, 정작 군자는 즐겁다는 듯 웃고 있었다.

행복하구나,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구나!

군자의 신들린 듯한 움직임은 정말 커다랗고 아름다운 새를 보는 것 같았다. 끝내는 밧줄의 지지대까지 뛰어올라간 군자가 관객들을 굽어 내려다 보며 가사를 던졌다.

도술로 변신해 그 뒤를 따르니,

자유로운 것은 우리들 뿐이라.

속세를 등지고 하늘 벗삼으니,

옥좌도 옥새도 한낱 물건이라.

이리 오너라, 어여 이리 오너라—.

너도 이리 오너라, 함께 날자—.

이리 오너라, 어여 이리 오너라—.

이젠 이리 오너라, 함께 날자—.

숨도 쉬지 못할 만큼, 채팅도 칠 수 없을 만큼 위태롭고 아름다운 퍼포먼스가 끝난 뒤.

군자가 밧줄 아래로 뛰어내림과 동시에, 이펙터 씌운 거문고 소리가 다시 한번 우웅 하고 울려 퍼졌다. 이젠 팬들에게도 익숙한 <괴력난신>의 후렴 파트였다.

우리는 괴이(怪異)한 존재,

용력(勇力)이 잠재된 몸에!

난세(亂世)를 뒤집는 고래,

귀신(鬼神)을 부르는 영매!

이제 무대는 끝나 가고 있었지만, 이 순간 이 무대가 끝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7IN을 거의 혐오했던 테이보 멤버들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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