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포상휴가
7위부터 3위까지의 발표도 끝났다.
어그로성 짙은 ‘광고 보고 오시겠습니다’ 멘트까지 모두 지나간 뒤.
이제 정말 1위 발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온갖 멘트로 관객들과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태운 MC 정해진도 이제는 정말 발표를 하겠다는 듯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글로벌 아이돌 서바이벌 <다이너스티>, 영광스런 최종 왕좌를 차지하게 될 그룹은···!”
장내의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운 순간.
‘순위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주제의 노래를 불러 놓고서도 정작 이 순간엔 긴장하게 되는 자신이 싫어지는 군자였다.
허나 어쩔 수 없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2등보단 1등이 기분이 좋은 것은 당연했으니까.
멤버들 역시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두우우우웅—···.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요란한 북 소리가 멎고, 마침내 정해진이 우렁찬 발성으로 1등 팀의 이름을 발표했다.
“축하합니다! 칠린!”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악—!!”
“마지막 왕좌를 차지한 것은 대한민국의 칠린입니다!”
세상에, 세상에, 해냈다! 우리가 해냈구나!
결과 발표를 듣자 마자 멤버들은 서로를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우와아아아악, 얘들아, 얘들아아아아—!!”
“해, 해, 해냈어요! 우리가 1등이에요!”
“흐어어엉——.”
“와하하하학, 혁이 형 또 운다~”
“와 씨, 나 너무 행복한데 어떡하지? 이렇게 좋아도 되는 거야?”
폭죽과 꽃가루가 터지고, 팬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의 환호성을 보냈다.
“놀라운 결과입니다! 사전 경연 결과 ‘노예’ 신분으로 다이너스티 캐슬에 입주한 칠린이, 마지막엔 왕좌에 앉았습니다! 놀라운 반전이네요! 하지만 칠린, 충분히 왕이 될 만한 무대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매 경연마다, 왕좌에 앉을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 냈습니다!”
가장 먼저 다가와 축하해준 것은 선배인 벨로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왕좌를 놓치지 않다가 막판에 역전당했으니, 그들의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벨로체는 아쉬운 기색 하나 없이 7IN 멤버들에게 다가와 그들을 안아 주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야, 축하한다! 너네가 1등 할 만 했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도 고맙다. 덕분에 오랜만에 진짜 무대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아, 근데 한번은 이기고 싶었는데 그게 좀 아쉽네~”
“에이, 형들이 한 번 이기셨잖아여!”
“글쎄 우리는 그거 이긴 걸로 안 친다니깐. 무튼 고마워. 진짜 진심이다. 다른 팀이 1등 했으면 솔직히 좀 열받았을 것 같은데, 너네가 1등 하니까 우리도 후련하네.”
“형들, 나중에 또 같이 놀러 가요.”
“그래. 같이 리온이 면회 가자. 빡빡이 놀리러 가야지.”
“푸하하학, 그거 재밌겠는데여.”
벨로체의 축하가 끝난 뒤엔 시끌벅적한 가디언즈 멤버들이 다가와 소란을 떨었다.
“Yeah—!!”
“Man, You deserve it—!!”
“Hell YEAH—!!”
“하하, 그래요. 굿 굿~”
솔직히 가디언즈 멤버들이 뭐라고 하는지 10%도 못 알아들은 군자였으나, 그래도 그들의 의도는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표정엔 거짓 가식 같은 것은 쌀알 한 톨 만큼도 없었으니.
두 그룹의 축하가 끝난 뒤엔 나머지 팀들이 한 번에 몰려와 포옹과 악수를 나눴다. QUAN, AKIRA, SHINO, 테이보까지. 중국 - 일본 팀들은 앞선 두 팀만큼 진심으로 기쁜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7IN을 인정한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중에서도 테이보와 SHINO는 통역까지 대동하여 7IN 멤버들에게 사과를 전달했다.
그 동안 못되게 굴어서 미안했다, 우리도 많이 반성했다는 내용의 짤막한 사과.
사과를 받았다고 감정이 모두 풀린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7IN 멤버들은 그들을 안아 주며 지난 과오를 용서했다.
“그래, 이제 좀 착하게 살아라.”
“뭐, 어차피 이제 다시 볼 것 같지도 않지만!”
그 중에서도 군자가 가장 많은 공격과 음해를 받았지만, 군자는 이미 후련해진 표정이었다.
딱히 저들이 갱생했을 것 같진 않다. 언젠가는 또 똑같은 짓거리를 하며 누군가를 괴롭게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제 <다이너스티>는 끝났다. 안 좋은 감정의 파편을 가지고 가 보아야 자신만 손해임을, 군자는 잘 알고 있었다.
다행히, 멤버들도 그걸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뭐, 잘들 사시오~”
중국 - 일본 멤버들에게 쿨하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한 뒤, 멤버들은 팬들에게 다가가 착실한 인사를 건넸다.
목청이 터져라 7IN을 응원하느라 이미 목이 나가 버린 팬들이었지만, 멤버들이 가까운 곳으로 다가오자 지친 기색도 없이 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이 구름 같은 관중들 속에서도 팬들의 목소리는 신기할 정도로 귀에 쏙쏙 들어왔다. 끝까지 힘을 내서 무대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팬들이었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일곱 멤버가 일렬로 도열하여 큰절.
“우리가 더 고마워어어—!!”
“나도 절! 절 할래—!!”
그 큰절 인사에, 팬들 역시 호들갑을 떨며 맞절을 보냈다.
멈추지 않는 환호성을 들으며, 군자와 멤버들은 지난 한 달 간의 여정을 돌이켜 보았다.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노예 숙소에선 군자가 발작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낡은 침대 일곱 개를 이어 붙인 뒤에야, 군자와 멤버들은 겨우 편안한 잠에 들 수 있었다.
“다들 수고했다. 정말 정말 수고했다.”
“고마워. 나 너네들이 너무 고맙네.”
“···저. 저두요··· 다들 사랑해요···.”
“아하하하하, 오글거려~ 근데 나도 사랑해~”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멤버들은 서로에게도 감사와 사랑을 전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엔딩이었다.
* * *
<다이너스티> 종영 후 일주일, 모든 미디어는 7IN과 벨로체의 활약을 보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음엔 루나틱 대신 7IN이 들어간 것에 의구심을 품은 이들도 많았다. 루나틱의 위상과 역사에 비해, 7IN은 인기는 많았지만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아이돌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7IN이 연달아 레전드 무대를 만들어 내고, 그것도 모자라 우승까지 차지해 버리자 여론은 완전히 반전되어 버렸다.
[ㅠㅠㅠ아직도 여운때매 미치겟어ㅠㅠㅠ]
[너두? 나두···ㅋㅋㅋㅋㅋ]
[최종 우승팀 부를때 진짜 온몸에 소름돋음]
[진짜 서사 미쳤지않아? 어뜨케 노예서부터 이렇게 위로 하나하나 올라가서 우승까지 하냐구]
[첨에 중일 극혐연합 애들 때매 노예간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졸라 드라마야]
[결국 걔네 다 패고 1등했자낰ㅋㅋㅋ]
[진짜 서쿠니는 칠린이들 사랑할수밖에 없을듯]
[사실상 칠린이들 매니저나 다름없음ㅋㅋㅋㅋ]
[앜ㅋㅋㅋ하긴 아육시때부터 계속 붙어다녔지]
[난 경연무대 하루종일 개같이 반복재생중]
[나둨ㅋㅋㅋㅋ음원도 개좋아진심]
[아니 어뜨케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런 무대 막 만듦? 진짜 우리애들이 최고 천재인것 같아]
[그렇다고 무대경험이 막 엄청 많은것도 아니자너ㅋㅋㅋ진짜 어떻게 이러냐구]
[다이너스티 때매 먼가 칠린이들 위상 더 올라간것 같아서 괜히 내가 더 뽕참ㅋㅋㅋㅋㅋ]
[ㄴㄷㄴㄷㅋㅋㅋㅋㅋ위상같은거 신경 안쓰고 그냥 소소하게 덕질하는 타입이었는데 뭔가 뽕차는건 어쩔수가없더랔ㅋㅋㅋㅋㅋ]
[이게 다 우리애들이 너무 잘난탓임]
[탓ㄴㄴ 덕ㅇㅋ]
[맞짘ㅋㅋㅋㅋㅋㅋㅋ]
[뽕이 너무 차서 오늘 점심시간에 다 짜장면 시키는데 나혼자 차돌짬뽕곱빼기시킴]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환상적인 경연 무대와 드라마 같은 최종 결과로 세상은 시끌벅적했지만, 7IN 멤버들은 조용한 휴식기를 가졌다.
한 달 동안 다이너스티 캐슬에서 모든 것을 쏟아냈기 때문일까, 일주일 동안은 숙소에서 죽은 듯 잠수하며 지냈다.
그 와중에도 현재는 틈틈이 라이브 방송와 라이브 채팅 어플을 통해 팬들에게 생존 신고를 했다. 군자는 제이라이브 방송으로 팬들의 한자숙제를 검사하기도 했다.
일주일 간의 휴식이 끝난 뒤, 오랜만에 서은우 팀장이 멤버들을 회의실로 불러들였다.
“오늘은 여러분들께 다음 일정을 전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휴우, 벌써 일정 잡혔나 보네요.”
일주일은 쏜살같이 흘렀다. 다시 달려야 할 때임을 알고 있지만, 꿀 같은 휴식이 지나가는 것이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복귀 스케쥴은 무엇인가여! 예능? 음방? 이제 저희 뭐든 다 잘한다구여.”
그러나 서은우 팀장의 입에선 멤버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여러분들의 다음 일정은··· 여행입니다.”
“에?”
“<다이너스티> 우승 포상으로, 사장님께서 미국 여행을 보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에에—!?”
“물론, <다이너스티> 우승 상금과는 별개로요.”
“우와아아아악—!!”
미국 여행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던 포상에 멤버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리온의 별장에 놀러간 것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한 번도 다함께 여행을 가 본 적은 없는 멤버들이었다.
“우와, 우와아, 미국! 나 한 번도 못 가 봤어여!”
“진짜요? 저희 일 하는 거 아니고 진짜 그냥 놀러 가는 거예요?”
“우리가 서방으로 가는 것입니까? 이번에도 사절단으로 공연을 하러?”
“하하, 아니요. 이번엔 정말 놀러 가는 겁니다. 맛있는 것도 먹고, 멋진 것도 보고. 미국엔 아마 여러분들을 알아보는 분들이 많진 않을 테니, 한결 편하게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우와아아! 이거 진짜 아부 아닌데, 우리 소속사 진짜 개 좋은것 같아여!”
서은우 팀장 역시 기뻐하는 멤버들을 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포상휴가는 서은우 팀장이 강력하게 주장한 바였다. 한 달 동안 누구보다 고생했으니, 응당 그에 걸맞은 포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덕분에 멤버들은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이미 제주도를 가며 비행기를 타 본 멤버들이었지만, 하늘을 나는 것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태웅아, 태웅아, 나 좀 살려 다오.”
“어? 왜?”
“귀가··· 귀가 멍멍하구나. 선비가 조선을 벗어나려고 하니 벌을 받는 모양이다···.”
“뭔 헛소리야. 침 삼켜 봐, 꿀꺽 하고.”
“음?”
“어때?”
“오오오! 너 이 녀석, 어의가 따로 없구나!”
“···조용히 좀 해 임마···.”
군자와 태웅이 시답잖은 것으로 떠드는 동안, 나머지 멤버들도 창가 쪽 자리에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미국 가면 아마 다들 우리 몰라보겠져?”
“그렇지 않을까? 한국 분들은 알아보실 수도 있고.”
“···외, 외국 팬 분들도 계시다고는 하는데···.”
“그렇긴 해도, 막 돌아다니기 힘들 정도는 절대 아닐 거야.”
“아하하, 공항에서부터 막 난리나는 건 아니겠지~”
“절대 아닐 걸? 시우야, 우리 아직 그 정도 아니다.”
“농담이야 농담~”
모든 멤버들이 신이 난 가운데, 유독 인혁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
“혁이 형, 표정이 왜 그래여. 형 동네 가는 거잖아여!”
“···그게···.”
“아하하하, 이제 정체 들킬까 봐 그런다~”
“맞다, 혁이 형 갱단이었지!”
“아니야···.”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인혁의 표정은 여전히 불안했다.
“아이, 괜찮아여. 미국이 얼마나 넓은데, 설마 형 친구들 만나겠어여?”
“그게 맞지. 설마 그런 일이 생기겠어?”
그 때까지만 해도 멤버들은 예상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정말로 인혁의 ‘지인들’을 만나게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