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176화 (176/303)

#176

형제여

<다이너스티> 출연을 계기로 군자는 다시 한번 성장했다.

가디언즈 멤버들은 참으로 유쾌하고 솔직한 이들이었다. 물론 외관이 조금 다르긴 했으나, 인간의 됨됨이가 어디 외관을 따라가는 것이던가.

물론 원래도 편견 없는 실학자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군자가 보고 듣고 알아 온 세계는 조선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 군자가 <다이너스티>를 통해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을 만나며, 시야와 식견을 한층 더 넓힐 수 있었다.

그래,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어떠한 인격이 깃들어 있느냐, 바로 그것이지.

미국 땅을 밟은 순간에도 그 생각을 버리지 않은 군자였다. 맥주 페스티벌에서 ‘그 남자들’을 만나기 전까진, 군자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러나 190cm이 넘는 살벌한 가죽자켓 패거리를 마주하니, 군자의 이마에서도 진땀이 흘렀다.

180cm 중반대에 근육질 체형의 군자도 어디 가서 피지컬로 밀리는 일은 잘 없었다. 그러나 상하의 풀 가죽 세트를 입은 그 남자들은, 모두 군자보다도 한 뼘 정도가 큰 피지컬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해골 문양이 그려진 두건,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 우락부락한 양 팔을 뒤덮은 문신까지 보이니··· 이건 뭐, 군자의 입장에서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TV 드라마에서 분명 저런 형님들을 본 적이 있다. 집채만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가시 박힌 몽둥이를 휘두르고 다니셨지.

그 살벌한 영상을 지우기 위해 군자는 애써 고개를 가로저었다.

침착하자, 침착해. 외관은 중요치 않다. 일단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거다.

애써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으나 상황은 점점 안 좋은 쪽으로 흘렀다. 현재가 그들에게 어깨를 잡힌 것이다.

“우릴 찾아온 거 아냐?”

“예에에—!?”

“이렇게 그냥 가면 섭섭한데. 잠깐 우리 좀···.”

결국 싸워야 하는 건가! 남의 나라 잔치에서!?

군자가 침을 꿀꺽 삼키며 주먹을 불끈 쥔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인혁이 그들과 대치했다. 그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인혁의 덩치를 보며, 군자와 멤버들은 왠지 모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헌데, 인혁과 그 남자들 사이의 낌새가 조금 이상했다.

색안경까지 내려 쓴 채 인혁을 한참 보던 우락부락 남자는, 충격 받은 표정으로 인혁을 향해 한 발짝 다가섰다.

“아니··· 잠깐만.”

“···.”

“너, 설마 혁이냐?”

인혁은 대답 대신 항상 걸고 있던 목걸이를 꺼내 보여주었다. 목걸이 걸려 있던 펜던트는, 우락부락 남자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와 같은 모양이었다.

“오랜만입니다, 보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건강해 보이네요.”

“인혁, 내 형제!”

거대한 두 남자가 서로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곧이어 부스 안의 시커먼 가죽맨들이 우르르 나오며 스크럼을 짜듯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마약 사건 이후로 종적을 감췄었잖아.”

“우린 네가 죽었다고 생각했다고!”

“도스 산토스, 그 자식은 어떻게 됐어? 감옥에 갔나?”

가죽맨들과 인혁 사이에선 살벌한 대화가 오고 갔다. 시우의 통역을 통해 그 대화를 전해 들은 멤버들은 온 몸을 호달달 떨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아니, 그럼 그 소문이 사실이었던 거예요?”

“혀, 혁이 형이 진짜 갱단이었다고?”

“···서, 설마요···.”

“그럼 저 대화는 대체 뭔데! 마약이라니, 감옥이라니!”

“아하하하~ 혁이 형, 갱단으로 복귀한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미친, 절대 안 돼!”

“어, 어떡하지? 갱단이랑 싸워야 하나?”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멤버들이 공포에 사로잡혀 있을 때 쯤.

가죽맨들의 보스, 타이리스 잭슨은 어느새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인혁, 내 형제여. 이렇게 널 만난 건 운명이나 다름없어.”

“···.”

“우리가 가장 어려울 때, 이렇게 운명처럼 형제를 만나다니.”

“타이리스, 무슨 일 있어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우리에겐 네가 필요하다, 인혁.”

“전쟁입니까?”

“전쟁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야. 우리는 지금 반드시 무언가를 살려 내야 하거든.”

타이리스 잭슨이 인혁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듣자 하니, 모종의 구출 작전에 인혁을 동원하려는 것 같았다.

설마, 설마 인혁이 다시 갱단으로 넘어가는 건가!

모든 7IN 멤버들이 극도로 긴장한 순간.

거대한 덩치의 보스, 타이리스 잭슨의 입에서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부탁이 튀어나왔다.

“요리를···.”

“?”

“우리 요리를··· 제발 살려 줘···.”

“???”

* * *

그 후로 한 시간은 오해를 푸는 해명의 시간이었다.

먼저, 타이리스 잭슨을 필두로 한 가죽잠바 패밀리는 ‘The Bulls’라는 이름의 라이더 클랜이 맞았다.

그러나 살벌한 비주얼과는 달리, ‘The Bulls’는 범죄와는 거리가 먼 팀이었다. 오히려 강한 이들을 모아 지역 자경단 활동을 하고, 미 서부 각지를 돌아다니며 동물 관련 봉사활동을 하는 가슴 따뜻한 남자들이었다.

인혁 역시 ‘더 불스’의 명예 회원으로서, 그들과 다양한 활동을 함께했다.

“그럼 아까 마약 어쩌고 하던 건 뭐예요?”

“미국에서 불스 형들이랑 마지막으로 했던 일이 마약사범 쫓는 일이었거든.”

“세상에··· 비밀경찰 맞았네 역시.”

“비밀경찰은 아니고, 그냥 마약 거래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게 돼서 추격했을 뿐이야.”

“아니이, 보통은 마약 거래 현장을 보면 도망치거나 신고한다고여!”

“하지만 누군가는 그 사람들을 잡아야 하잖아. 신고했다간 늦을 수도 있고.”

그제야 모든 오해가 풀린 멤버들은 ‘더 불스’ 형님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가죽자켓 형님들은 뭐 그런 일로 고개를 숙이느냐며 껄껄 웃었다.

색안경을 벗은 모습을 보니 눈동자가 초롱초롱 총명한 것이 참으로 보석처럼 예뻤다. 이렇게 송아지 같은 눈망울을 가진 분들을 의심하다니. 아무래도 서양인을 위한 관상학을 다시 정립해야겠다 싶은 군자였다.

“헌데, 아까 요리를 살려달라던 건 무슨 의미셨는지···.”

“아, 그거.”

‘The Bulls’의 보스 타이리스 잭슨이 멤버들을 부스 내부로 안내했다. 부스 안쪽엔 새카맣게 타 버린 소고기 덩어리들이 석쇠 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어어··· 석탄을 만들고 계셨던 건가요?”

“석탄이 아니고 소고기 스테이크야. 빡세게 굽는 미군부대 스타일이지.”

“아하하, 부대는 몰라도 일단 조리병은 아니셨던 것 같네요~”

“맞아··· 사실 우린 요리에 재능이 없어···.”

“그런데 어쩌다가 맥주 페스티벌에서 부스를 하고 계신 거예요?”

“이번에 새로 자선사업에 참여하게 됐거든. 축제 부스에 참여해서, 수익금을 모두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할 거야. 캘리포니아 바닷가의 멸종위기 생물들을 우리 손으로 도울 수 있는 기회지. 멋지지 않아?”

동물 이야기를 할 때, 가죽자켓 형님들의 눈동자는 초롱초롱 빛났다. 이렇게 사랑하는 것에 전념하는 인생을 사는 분들이라니, 참으로 바람직하고 멋진 모습이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 요리실력으로는 이 축제에서 매출을 올릴 수 없을 것 같아···.”

“인혁, 우리 좀 도와줘. 넌 어렸을 때부터 항상 반짝이는 발상으로 우리의 길잡이가 돼 주었잖아.”

도움 요청을 받은 인혁이 멤버들을 슬그머니 돌아보았다. 그러나 인혁은 굳이 멤버들에게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모든 멤버들이 의기투합한 것 같았으니까.

“난 찬성! 난 불스 형아들 완전 돕고 싶어여!”

“이거 재밌겠는데? 축제 부스를 운영한다는 거, 진짜 흔치 않은 경험이잖아.”

“아하하하, 좋은 식재료는 이미 많아~ 이 소고기들을 이용하면 멋진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도 찬성이다. 무엇보다 동물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드는구나. 동물과 식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군자(君子)의 도리이지.”

“나도 찬성! 군자 3인칭은 반대!”

7IN 멤버들의 흔쾌한 동의에, 불스의 가죽자켓 사나이들은 우락부락한 두 팔을 들어올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만세! 역시 인혁이야!”

“널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된 것도 꿈 같은데, 이렇게 도움까지 받다니··· 정말 고맙다.”

“당연히 도와야죠, 타이리스. 당신은 영원한 내 보스예요.”

“혁···!”

거대한 타이리스는 다시 인혁을 끌어안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를 끌어안으며 인혁 역시 시큰해진 콧잔등을 매만졌고.

“나 혁이 형이 왜 이렇게 눈물 많은지 이제 좀 알것 같음여.”

“나도. 여기 형들이 전체적으로 다 눈물이 좀 많으시구만.”

“외모는 무서운데, 뭔가 되게 귀여우신 것 같지 않아여?”

“···치, 친해지고 싶어요···.”

“좋아,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군자와 시우를 중심으로, 멤버들은 재빨리 아이디어 회의를 열었다.

“일단 부드러운 소고기가 많은데, 이걸 어떤 식으로 살려 볼까.”

“근처에 작은 마트가 있더라. 타이리스 형님이 오토바이 태워 주실 수 있다고 하셨어.”

“후으음, 맥주 안주로는 조금 느끼한 게 좋지 않아여? 살짝 기름기 있는 것들이 맥주랑 잘 어울리던뎅.”

“야 하현재, 니가 그걸 어떻게 아냐?”

“아니이, 그냥 그렇게 들었다는 거지이.”

“쓰읍, 이상한데. 뭐 아무튼, 맞는 말이긴 하니까.”

“기름진 음식, 맥주랑 궁합, 그러면서 식재료를 살릴 수 있는··· 흐으음···.”

잠시 고민하던 군자가 아이디어를 냈다.

“육전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오, 육전?”

“맥주에 느끼한 음식이 잘 어울린다면, 지금 보유한 소고기를 얇게 저며 전으로 부쳐 보는 거다.”

“오, 괜찮은데?”

“육전에 매콤한 사이드 메뉴도 곁들이면 어떨까? 아까 보니까 텍사스 쪽 분들도 많이 오신 것 같더라고. 그리고 LA에도 멕시코 쪽 분들이 워낙 많잖아.”

“아하하, 내가 고추장아찌 만들 줄 아는데~”

“육전에 고추장아찌, 거기에 맥주 한 모금? 생각만 해도 미쳤는데?”

“좋아 좋아, 이건 무조건 히트다.”

“형아들, 웅이 형이랑 제가 재료 사 올게여~”

“오케이, 그럼 칼 잘 쓰는 군자랑 유찬이가 고기 좀 얇게 저며 줘. 혁이 형, 형은 나랑 석쇠 정리하고 스테이션 세팅 다시 할까요?”

“좋아.”

“크으으, 이게 다이너스티로 다져진 팀워크인가?”

할 일이 정해지자 소년들은 모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마냥 흐뭇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용중 실장은, 무언가가 퍼뜩 떠올랐다는 듯 멤버들을 불러모았다.

“얘들아, 얘들아아!”

“넵, 실장님?”

“허얼, 설마 우리 이거 하면 안되는 거예요?”

“아니이, 그럴 리가 있냐. 놀러 온 건데 하면 안되는 게 어딨어? 여자 만나서 노는 거 빼면 다 되지.”

그렇게 말하며 이용중 실장이 품에서 작은 미러리스 카메라를 꺼냈다.

“이거, 유튜브용 영상으로 찍어 놓는 게 어때?”

“오, 팬분들한테 보여드리게요?”

“불스 형님들만 괜찮으시다 하면 저희는 당연히 좋죠!”

“오케이, 내가 허락 받아볼게.”

망해 가던 부스에 슬슬 활력이 돌았다. 반짝이는 소년들의 에너지에, 관광객들도 하나 둘 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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