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반포
군자가 그려 온 설계도는, 사실 탑로더라기보다는 일종의 초소형 액자 같은 것이었다.
세로로 긴 포토카드를 수납할 수 있는, 작고 얇은 목재 액자. 하지만 일반적인 액자와 다른 점은, 측면에 액자와 액자를 연결할 수 있는 연결부가 있다는 점이었다.
“이 틀에 사진을 넣고, 이렇게 연결하여 이런 식으로 세우면···.”
군자는 그림을 넘기며 설명을 이어 갔다. 처음엔 액자에 포토카드를 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서은우 팀장이었지만, 액자가 연결된 모습을 보고 나니 감이 잡혔다.
“이건··· 병풍이군요!”
멤버들의 아이디어는 포토카드를 병풍처럼 연결하여,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목재로 만든 틀을 이어서 세운 모습은, 그림으로만 봐도 꽤나 그럴싸해 보였다. 거기에 동양풍의 느낌을 낸 포토카드를 넣는다면 병풍의 느낌은 훨씬 더 제대로 살아날 것이다.
“그냥 평범하게 보관하고 싶은 팬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런 식으로 병풍을 만들면 우리 그룹의 색깔도 살리면서 팬 분들께도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모으는 재미도 더 있을 것 같아여. 병풍에 어떤 포토카드를 넣고 조합하느냐에 따라 다른 병풍이 나올 테니까여.”
포토카드로 병풍을 만든다니.
멤버들이 들고 온 참신한 아이디어에, 솔라시스템의 모든 팀원들이 찬사를 보냈다.
“전 이 아이디어 너무 귀여운 것 같은데요?”
“액자 퀄리티만 짜치지 않게 나오면 좋을 것 같아요.”
“단가가 확 올라갈 것 같다는 게 문제긴 한데··· 그래도 이렇게 독보적인 구성품이 있으면 근거 있는 단가 상승이고요.”
“단가가 그렇게 엄청 뛰진 않을 것 같은데요. 나무가 얇게 들어가니까, 제조사만 잘 찾으면 가격 자체는 합리적으로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아이디어가 너무 좋아서, 전 진행시켜 보고 싶어요. 이런 굿즈가 있다면 팬 분들은 돈 주고서라도 사고 싶어 하시지 않을까요?”
“전 살 거예요. 웃돈 주고서라도 삽니다!”
서은우 팀장 역시 팀원들과 같은 의견이었다. 물론 그만큼 일은 많아지겠지만, 제대로 구현해 낼 수만 있다면 팬들은 틀림없이 좋아할 아이디어였으니까.
“팀장님! 혹시 다른 아이디어도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 물론입니다.”
“제가 요즘 조향에 좀 꽂혀서요. 각 멤버마다 특별한 향을 만들어서, 포토카드 뒷면에서 그 향이 은은하게 나도록 할 수도 있을까요?”
“으음, 실험해 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잠깐, 난 그건 좀 반댄데.”
“엥? 왜? 향기 좋지 않음?”
“그걸로 병풍 만들면 우리 팬 분들이 병풍 뒤에서 향 냄새 맡게 되는 거잖아 임마···.”
“···아, 아앗···.”
“아하하하핫, 맞네~”
“그, 그래도 향기 나는 포토카드는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또 있어요! 이건 포토북 아이디어인데···.”
* * *
<맛집메이커> 촬영 전까지, 7IN 멤버들과 소속사 솔라시스템은 정규앨범 준비에 전념했다.
스케쥴을 최대한 줄이고, 정규앨범에 채워 넣을 트랙과 뮤직비디오 컨셉에 대해 회의하며, 최고의 코레오그래피 팀과 함께 퍼포먼스를 기획해 나갔다.
그러나 성실하게 앨범을 준비하면서도 팬과의 소통만큼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특히 크리스마스 같은 중요한 이벤트를 앞두고는 더더욱.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2022년 12월 18일, 7IN 멤버들은 각각 팬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과 소소한 이벤트를 준비했음을 암시하는 SNS 게시물을 업로드했다.
[크리스마스 D-7! 올해 크리스마스는 칠린이들이랑 함께해요 :) 우리가 준비한 선물은 뭘까~요? (사진) (사진)]
루돌프 복장을 입은 멤버들의 사진과 함께 올라온 SNS 포스트에 팬들은 격렬하게 반응했다.
[으잌ㅋㅋㅋㅋㅋ다들 넘귀여워ㅠㅠㅠㅠㅠㅠㅠ]
[순록이 아니라 꽃사슴이자나ㅠㅠㅠㅠㅠㅠ]
[아니 이거 또 인혁옵이 기카로 대충 찍은것같은뎈ㅋㅋㅋㅋㅋ]
[맞음 칠린이들 공식 셀카봉 인혁옵 오른팔이자나]
[근데 기카로 찍었는데 이렇게 눈빛 초롱초롱할 일임?]
[후우 루돌프 뿔이 내 심장 찌르는 기분임······]
[난 콧구멍 찔렸나바 아까부터 계속 콧구멍이 벌름거령]
[ㅋㅋㅋㅋㅋ또또또 주접들ㅋㅋㅋㅋ]
[근데 선물은 또 멀까? 헤헷ㅎㅎㅎㅎ]
[아뉘 조공도 다 막아놓고 맨날 역조공만 날리기 있기야?]
[아이돌 팬질 하면서 이렇게 황송해 보기는 또 처음이다]
[후우 나 그 원앙 목조각도 진짜 갖고싶었는데ㅠㅠㅠ]
[이번엔 어떤 선물일까? 역조공이면 많이는 준비 못했을텐뎅]
[그래두 우리 애들이 꼬물꼬물 선물 준비했다는 거 자체가 귀엽구 뿌듯하구 사랑스럽구 너무 성은이 망극해ㅠㅠㅜㅜㅜㅠㅠ]
[ㄴ갑자기 성은망극 급발진뭔뎈ㅋㅋㅋㅋㅋㅋ]
[ㄴ잉? 나만 망극해? 그런거얌?]
[ㄴ사실 나도 솔라시스템 사옥쪽으로 절하는중ㅎㅎ]
[선물 넘 기대된다ㅠㅠㅠ나두 받을 수 있는거면 좋겠어,,, 너무 큰 바람이겠지만,,,]
한껏 올라간 팬들의 기대감 속에서, 멤버들은 한 사람씩 크리스마스 선물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선물을 공개한 것은 현재와 현수였다.
두 사람이 준비한 선물은 30분짜리 방구석 크리스마스 콘서트. 현수가 직접 캐롤들을 편곡하고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했으며, 현재가 그 위에 노래를 불렀다.
“It’s beginning to look a lot like Christmas—.”
무대 위에서는 대부분 댄스 팝 장르의 음악에 라이브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7IN이었으나, 현재의 깔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어쿠스틱한 편곡에서도 반짝반짝 빛났다.
빨간 니트와 루돌프 머리띠를 쓰고, 카메라와 계속해서 아이컨택을 하며 한 음 한 음을 정성스레 꼭꼭 눌러 노래하는 현재의 모습은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선물이었다.
[하 목소리 미쳤다 증말]
[진짜 넘모 달달한거아냐?]
[저 루돌프 머리띠가 으뜨케 저렇게 착붙이냐고ㅠㅠㅠㅠ]
[앞으로 올해지날때까지 이것만 보고보고계속볼거야ㅠㅠ]
[난 그와중에 현수 수염붙이고 있는게 왜 이렇게 웃기냨ㅋㅋㅋㅋ]
[저거 분명 권태웅이 하라고 시킨거임]
[현수야 근묵자흑이니라···]
[현수태웅 티격태격하면서 서로 물들어가는거 너무웃김ㅋㅋㅋㅋ]
[지현수 : 근묵자흑 권태웅 : 근육흑자]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
[현재 노래하는데 개드립 치는 소리좀 안나게해라]
[ㅁㅈㅁㅈ 내 집중력을 깨지 말란말이얔ㅋㅋㅋㅋ]
[현재도 자꾸 채팅창 보면서 웃참하잖앜ㅋㅋㅋㅋㅋㅋ]
[아 근데 현재 웃참하는거 뭔가 현장감 느껴져서 더조음··· 드립 더쳐도됨?]
[안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은 태웅의 차례. 선물 같은 것에 서투를 것 같은 태웅이었으나, 의외로 태웅은 아기자기하게 역조공 세트까지 준비하여 라이브 방송을 켰다.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그런데 크리스마스는 겨울이죠? 겨울엔 뭐다? 감기에 잘 걸리고 살도 잘 찐다. 이 계절이야말로 우리가 건강을 챙기고 운동을 해야 하는 계절이라 이 말씀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위해 영양제와 프로틴, 그리고 집에서 할 수 있는 홈 트레이닝 루틴을 이렇게 짜 봤는데요. 초록색 카드가 초보자용, 금색 카드가 중급자용, 빨간색이 고급자용인데, 이제 고급자용은 물구나무부터 서야 해서 조금 어려울 수는 있는데···.”
[???????]
[태웅아?????]
[아니 크리스마스 선물로 운동을 하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가 아직도 우리를 파악을 못했넼ㅋㅋㅋㅋ]
[운동할 시간이 어딨어! 침대에 누워서 너네 영상 보기도 바쁘다고]
[아니 근데 저 역조공세트는 가지고싶다ㅠㅠㅠㅠ]
[태웅이 집에 프린터 없어서 저 운동루틴 카드 전부 손으로 쓴듯?]
[헐 손편지]
“아 맞아요. 색깔 있는 종이에 인쇄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운동 루틴은 전부 손으로 썼습니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바보야!!!!!!]
[우리한텐 그게 중요하다곸ㅋㅋㅋㅋ]
[내 최애의 손편지를 받아볼 수 있다? 이거 못참지]
[영양제랑 보충제도 은근 뽀짝하게 포장했는뎈ㅋㅋㅋㅋ]
[웅이 최애 된 이후로 어딜 가든지 운동 조금씩 하게됐어]
[처음엔 힘들고 짱났는데 점점 건강해지는거 느껴지니까 진짜 좋다 ㅋㅋㅋㅋ웅녀들 다 운동해봐 진짜 인생이 달라진다구]
[ㅋㅋㅋㅋ채팅창에도 헬스 전도사 등장ㅋㅋㅋㅋㅋ]
“그래요 여러분, 운동이 인생을 바꾼다구요오. 안되겠다, 아무래도 개인 면담을 해야 될 것 같아요. 딱 다섯 분만 뽑아서 전화 상담 들어갑니다잉. 운동 하기 싫으신 분?”
[나!!!!나!!!!!!!!!!]
[ㄴ나나나ㅏㄴㄴ난나나나나]
[저요!!!!!!!!!!!!!!!!!!!!]
[나!! 나!!!! 나 평생 운동 비슷한것도 한적없어!!!!!]
[나는 걸어다니기도 싫어서 허리로 굴러다녀!!!!!!]
[이동을 한단말이야? 난 통 속의 뇌야!!!!!!!!!]
[제발 웅아 나 나나난나나나ㅏ난ㄴ]
물음표로 시작했던 권태웅의 운동교실이었지만, 태웅을 가장 좋아하는 팬들에겐 이만한 선물도 없었다. 추첨을 통해 주어진 역조공 또한 모든 팬들을 기쁘게 했고.
그 뒤로도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어졌다.
유찬은 동생들과 만나서 유기견 봉사를 가는 브이로그 영상을 남겼다. 유찬이 동생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보고 싶다는 팬들의 니즈를 완벽하게 저격하는 영상이었다.
그룹 안에서는 막내 포지션이었지만, 집에서는 세 남매 중 첫째로 의젓하고 똑부러지는 유찬의 모습을 보며 모든 팬들이 심장을 부여잡았다.
[ㅠㅠㅠㅠ유찬이 집에선 으른이네으른]
[얘네 재작년부터 매년 겨울마다 유기견 봉사한대 너무 마음 따뜻하지않니]
[아니 이런 미성년자 삼남매가 세상에 어딨냐구]
[동생들도 다 유찬이 닮아서 너무 예뿌게 생겼다ㅠㅠㅠㅠ]
[유찬이 동생들이랑 있을 땐 말 똑 부러지게 잘한다]
[그러게 아주 또박또박 똑부러지넼ㅋㅋㅋㅋㅋ동생들이 형 오빠 잘 따르는 이유가 있네]
[멍멍이들도 넘 귀여다ㅠㅠㅠㅠ나도 내년 크리스마스부턴 유기견 봉사 다녀야겠어]
[그냥 팬질하는것 뿐인데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달라지는 기분임]
[ㅁㅈㅁㅈ 나도 좀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게돼]
시우와 인혁은 사진 위주의 선물을 준비했다. 7IN 최고의 나르시스트 답게, 시우는 팬들에게 수백 장의 셀카 폭탄을 선물했다.
그냥 성의없는 셀카 몇 장이 아닌, 미성년자 시절부터 엄선한 300장 이상의 셀카에 팬들은 행복의 비명을 질렀다.
[아닠ㅋㅋㅋㅋㅋ미쳤엌ㅋㅋㅋㅋㅋㅋ]
[이게 다 몇장이야]
[넘겨도 넘겨도 끝이 없어ㅋㅋㅋㅋ]
[하아ㅏㅏ 진짜 어뜨케 이렇게 재미있는 얼굴이 다 있지]
[봐도 봐도 안질림 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
[셀카선물이라구 해서 좀 실망할뻔 했는데 이정도면 혜자 오브 혜자잖아]
[아니 기카로 찍은것 같은데 어떻게 얼굴에서 저렇게 빛이 나는거냐구]
[프랑스 시절 사진들 봐바ㅠㅠㅠ백인들보다 울 시우가 더 하얌]
인혁은 팬들이 궁금해 했던 미국 거주 시절의 사진과 영상들을 공개했다. 그 중엔 아기 인혁이 루돌프 전신 인형옷을 입고 영어로 캐롤을 부르는 영상도 있었다.
[흐아앟아하아ㅏㅏ 아기인혁]
[개졸라귀여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아이는 훗날 188kg 87cm의 건장한 근육돌이 됩니다]
[ㄴ아무리 흥분했어도 kg이랑 cm을 헷갈리진 말아달라궄ㅋㅋㅋㅋ]
[아 근데 진짜 인혁옵 애기때 너무 귀엽넼ㅋㅋㅋㅋㅋㅋ]
[인혁이 입술은 어렸을 때부터 앵두같았구나]
[미국시절 사진들 다 너무 좋음ㅠㅠㅠ후드입은거 진짜 존잘유학생스트야]
[혁옵은 안꾸며도 피지컬이 워낙 좋아서 어딜 가든 눈에 띄는듯]
[앜ㅋㅋㅋㅋ그 가죽자켓아재들이랑 찍은 사진도있엌ㅋㅋㅋㅋㅋ]
[나중에 머리 저렇게 헐랭헐랭하게 하고 후드입고 하는 무대도 보구싶다]
[ㅁㅈㅁㅈ 울 혁이옵 사실 누구보다 청량하고 애교도 많다곸ㅋㅋ]
그렇게 모든 멤버들의 선물이 공개되는 가운데, 이제 군자만이 선물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마침내 라이브 방송을 켠 군자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을 맞아, 여러분께 저의 선물을 반포하겠습니다.”
[반포??????]
[단어 뭔데 이렇게 거창해?]
[뭔데뭔데뭔데ㄴ뭔ㄷ메뭔ㄷ뭔ㄷㅔ]
[반포라니?? 설마 반포자이야????]
[ㄴ미친ㅋㅋㅋㅋㅋ군자가 재벌이니]
[반포?? 설마 훈민정음이니???]
[아 궁금하다 빨리ㅃ라릷ㄹ빨리]
“칠린의 공식 홈페이지에 선물을 올려 놓았습니다. 여러분은 자유롭게 선물을 받아 가시면 됩니다.”
군자의 말에 팬들은 허겁지겁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몇 분 간의 서버 폭주 현상을 겪고 나서야, 팬들은 군자가 올려 놓은 선물의 제목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