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184화 (184/303)

#184

군자의 선물

크리스마스, 한자로는 성탄절(聖誕節).

겨울이면 입동(入冬), 대설(大雪), 동지(冬至) 같은 절기만 알았던 군자에게 성탄절은 참으로 생소한 명절이었다.

“대체 성탄절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세상이 다 호들갑스러워지는 것이더냐?”

“헐, 설마 크리스마스도 까먹은 거예여? 대박이다 진짜.”

“야,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몰라! 산타할아버지 오시는 날이잖아.”

“산타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 산을 탄다고? 노익장이 대단하시구나.”

“···뭐래 진짜···.”

동료들은 크리스마스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지만, 솔직히 그 설명이 군자에게 와 닿진 않았다.

그러나 12월 25일에 가까워질수록 세상이 모두 적(赤), 록(綠), 그리고 황금색으로 물들어 가는 모습은 그냥 보기만 해도 재미있었다.

이렇게 세상이 알록달록 따뜻해지는 것도 바람직한데, 심지어 곳곳에 커다란 소나무까지 세워졌다.

“오오, 여기도 소나무! 저기도 소나무구나!”

소나무라면 십장생(十長生)이자 세한삼우(歲寒三友)의 하나로, 추운 겨울에도 독야청청 푸르른 지조와 절개를 가진 멋진 나무 아니던가.

군자 역시 그 누구보다 소나무를 사랑했기에, 이곳저곳에 소나무가 세워지는 것이 만족스럽기 그지없었다.

“태웅아, 소나무가 많으니 참으로 보기 좋지 않느냐.”

“소나무? 아, 트리 말하는 거야?”

“투리(鬪利)? 이로움을 위해 싸운다라! 거 이름까지 마음에 드는구나.”

“···그으래, 뭐 좋을대로 생각하렴.”

“다만 소나무에 너무 주렁주렁 장식을 많이 달아 놓은 것이 다소 안타깝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푸르게 두는 것이 가장 아름답거늘···.”

“어쩔 수 없어. 요게 크리스마스 문화라고.”

“맞아여. 형도 트리 꾸미기 한 번 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여? 엄청 재미있는데.”

“후후, 아마 내가 꾸민다면 저 휘황찬란한 투리들보다는 훨씬 정갈하고 우아한 작품이 될 것이야.”

이렇게 세상이 소나무 천국이 되는 것도 바람직했으며, 듣기만 해도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는 ‘캐롤’이라는 음악도 좋았다.

“오오, 현재야. 이 마음 따뜻해지는 노래는 누가 부른 노래더냐?”

“이거여? 마이클 부블레! 캐롤 완전 좋져?”

“오오오, 지금 바뀐 이 노래도 너무 좋다!”

“이건 머라이어 캐리 노래예여. 완전 국밥 같은 캐롤이라구여.”

“마익굴 부불래? 모라이어 괴리? 아무튼 좋구나,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구나!”

군자로서는 처음 듣는 음악 장르였으나 캐롤을 들을 때는 어쩐지 포근하고 안락한 느낌을 받곤 했다.

“성탄절이라··· 솔직히 어떤 날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날이 마음에 든다.”

“그럼여. 1년 중에 가장 사랑이 넘실넘실거리는 날이니까여!”

“사랑이 넘실거린다라··· 그것 참 좋은 말이다, 현재야.”

사랑이 넘치는 절기, 성탄절.

시상이 떠오른 순간 군자는 어김없이 붓을 들고 백지에 한시를 써내려갔다.

절거운성탄절(節巨運聖誕節)

커다란 운수가 함께할 이 성탄절에.

산타할배오심(産妥轄配娛心)

온당함으로 배필과 함께하노니 마음이 즐겁구나.

누가착한앵지(累佳着悍鸚之)

아름다움을 쌓고 정성을 보태니 한 쌍 앵무와 같고.

납부운애인지(納婦雲愛仁之)

서로 구름 같은 사랑을 건네니 인자하기 그지없다.

마익굴부불래(魔翼屈府佛來)

그 사랑에 마귀는 날개가 꺾이고, 마을엔 부처가 내려오니.

모라이어괴리(摸喇以語魁利)

나팔을 찾아 이 말씀으로 커다란 이로움을 전하네.

매리구리수마수(埋異求利愁磨綏)

다름은 묻어두고 이로움만을 구하니, 근심은 닳아 없어지고 마음은 편해지는구나.

“후후, 역시 시를 쓸 때면 마음이 편해지는구나.”

그러나 마냥 마음 편하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조만간 군자 역시 팬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해야 했으니.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준비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드시 모두를 만족시키고 싶은 군자였다.

나무로 깎아 만든 원앙은 모두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문제는 생산성이었다. 수백만 개의 목조각을 만들 수는 없었기에, 결국 선물을 받지 못하는 팬들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군자는 선물을 미처 받지 못한 팬들의 아쉬움을 잘 알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이번엔 모든 팬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선물을 준비하고 싶었다.

현수와 현재처럼 온라인 미니 콘서트를 준비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어쩐지 친구들이 했던 방식을 똑같이 따라하긴 싫은 군자였다.

“으으,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할지···.”

“군자, 너도 현재랑 나랑 셋이 콘서트 할래? 팬 분들도 분명 좋아하실 것 같은데.”

“그건 좀···.”

“엥? 왜여? 우리 싫어여?”

“그건 아니다만, 뭔가 너희의 기획에 내가 끼어드는 모양새 같지 않느냐.”

“에이, 그런 게 어디 있냐! 너가 와서 캐리해 주면 되지.”

“그렇게 하면 또 너희의 존재감이 묻힐 것이 걱정되는구나···.”

“헐 뭐야, 재수 없어!”

그러나 재수가 없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아이돌 2년차에 접어든 군자는 이제 자신의 캐릭터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괜히 친구들이 준비한 컨텐츠에 자신의 색깔을 묻히고 싶진 않은 군자였다. 현수와 현재 역시 분명 생각해 둔 그림이 있을 테니까.

“···끄으응···.”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 보니 귀에서 뜨거운 김이 나오는 기분이었다.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품에서 조그만 붓펜을 꺼내 글씨를 쓰고 있던 중이었다.

“이야, 군자 글씨 쓰는 거 봐라.”

“아니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기계처럼 글씨를 잘 쓰지?”

“말도 마라, 지금은 칭찬을 들어도 심란하구나···.”

“푸하학, 군자 너 아직도 크리스마스 선물 못 정했냐?”

그 때, 군자의 필체를 유심히 보던 인혁이 짧은 한 마디를 던졌다.

“군자 글씨체.”

“예 형님?”

“저 예쁜 글씨체를 선물로 드리는 건 어떨까.”

“···필체를 말입니까?”

“에이, 필체를 어떻게··· 가 아니지? 폰트 파일로 만들면 되잖아?”

“우왕, 혁이 형 아이디어 완전 좋은데여!”

“포, 폰투? 그건 또 무엇이냐?”

어리둥절한 군자에게 멤버들이 폰트 파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군자에겐 어려운 개념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군자는 폰트의 개념을 간단하게 이해했다.

“쉽게 말해 고유한 서체(書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니더냐.”

“오오, 맞아 맞아. 바로 그거임.”

“나도 서체라는 개념은 알고 있다.”

“올, 그래? 의왼데?”

“후후, 한석봉 선생님이 창조하신 사자관체(寫字官體)는 곧 조선 외교문서의 기준이 되었더랬지.”

“어어, 굉장히 고전적인 개념으로 이해한 것 같지만··· 아무튼 그거 맞아.”

“폰트 파일을 만들면 팬들도 선비 형아 서체를 사용할 수 있다구여!”

“그건··· 그건 정말로 뜻깊은 일이겠구나.”

나의 서체를 세상에 배포할 수 있다니!

조금 건방진 일인 듯 싶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팬들은 언제나 군자의 서체를 흉내내려 하곤 했으니까.

“좋다, 나만의 서체를 만들어 보아야겠다.”

결심을 굳히고 이용중 실장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솔라시스템은 친히 모든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군자의 폰트 만들기를 도왔다.

그렇게, 군자의 한글 서체와 알파벳 서체를 모티브로 한 새로운 폰트가 탄생했고.

[휴먼군자체.ttf]

[휴먼군자체.otf]

그것은 군자가 팬들을 위해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군자의 선물을 확인한 팬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와앙라ㅏㅏ허어ㅓㄹ]

[우왘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휴먼군자체랰ㅋㅋㅋㅋㅋ]

[앜ㅋㅋㅋㅋ넘귀여워ㅋㅋㅋㅋㅋㅋ]

[와 근데 대박이다ㅠㅠㅠㅠ군자가 직접 폰트 만든거임?]

[빨리 파일 열어서 아무 문서나 써바ㅠㅠㅠㅠ폰트진짜 개이쁘다]

[헐ㄹ그러게!!! 뭔가 레트로한 경필체 느낌 나는데 또 귀야ㅕ워서 여기저기 다 어울릴것같아]

[이거 만든다구 하루종일 글자 꾹꾹 눌러썼을 생각 하니까 넘 사랑스럽다ㅠㅠㅠㅠ]

[딱 내가 아는 군자 글씨체라서 넘조음······]

[진짜 어뚜케 이런 선물을 만들 생각을 하냐ㅠㅠㅠ]

[라방에서 선물 얘기 할대마다 선물 못 받는 팬들한테 미안하다 그러더니 진짜로 모든 팬이 다 받을 수 있는 선물을 만들었어]

[졸귀다 진짴ㅋㅋㅋㅋㅋㅋㅋ]

선물 공개 10분도 되지 않아, SNS에서는 휴먼군자체를 활용하는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후우우 나 지금 휴먼군자체로 나 자신한테 편지쓰는중]

[ㄴ편지? 갑자기? 머라썼는뎈ㅋㅋㅋㅋ]

[칠링아 안녕? 나 군자야 사실 널 오랫동안 사랑해 왔어 우리 몰래 둘이서만 도망치자 널 위해 배산임수 요충지에 암자도 지어 놓았단다 후후 너만오면돼 나의 작은 규수~★]

[ㅋㅋㅋㅋㅋㅋ뭔뎈ㅋㅋㅋㅋㅋㅋㅋ]

[미친놈아냨ㅋㅋㅋ시밬ㅋㅋㅋㅋㅋㅋㅋㅋ]

[규수 이지랄ㅋㅋㅋㅋ진짜 꿀밤때리고싶다]

[아니근데;;; 휴먼군자체로 썼더니 진짜 군자가 보낸것같아서 존나 설렘;;;;;]

[이런 식으로 쓰라고 만든건 아닐것 같은뎈ㅋㅋㅋㅋㅋㅋㅋ]

[나 평범 회사원인데 방금 역대급 일탈함]

[ㄴ헐 먼데먼데]

[방금 사내 게시하는 문서들 폰트 전부 휴먼군자체로 바꿔놓음]

[ㅋㅋㅋㅋㅋㅋㅋ미친 그런짓 하지맠ㅋㅋㅋㅋㅋ]

[근데 의외로 반응 좋아서 당황;;;]

[다들 폰트 너무 예쁘다고 뭐냐고 묻는데 내가 다 뿌듯]

[이렇게 다들 군둥이 돼 가는 거라곸ㅋㅋㅋㅋㅋ]

[언니들 저 대학생인데 ppt에 휴먼군자체 쓰면 씹덕인거 들통날까요?]

[이 풋사과야··· 군둥이인게 부끄러워? 어?]

[일단 폰트가 예쁘니까 그냥 써보자 친구야^^]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만든 폰트였으나, 팬들이 즐거워 하는 모습에 군자 역시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폰트 공개 후, 추가로 공개한 폰트 메이킹 필름 역시 팬들을 행복하게 했다.

그렇게 군자까지 성공적으로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마친 뒤, 멤버들은 완전히 ‘앨범 모드’에 돌입했다.

앨범에 트랙 하나씩을 추가하며, 타이틀곡의 안무 퍼포먼스를 완성시켜 나가며.

정규 1집 앨범을 완성하기 위한 인고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맛집메이커> 촬영일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제 정규앨범 작업 진행도는 90%에 달했다. 믹싱 & 마스터링 엔지니어들이 음원을 최종적으로 수정하고, 소속사 솔라시스템이 뮤직비디오 제작을 준비하는 동안 멤버들은 <맛집메이커> 촬영에 돌입했다.

촬영 컨셉은 멤버들의 의견대로 ‘등산로 입구 식당’으로 정해졌다. 촬영 현장인 북한산 등산로 입구로 향하며, 멤버들은 약간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번에도 경쟁 같은 거 있겠지?”

“그 동안 서바이벌 예능만 했잖아. 이번에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럼 오늘도 뭔가 필살기 같은 걸 준비해야겠구만.”

“후으으, 경연이 재미있긴 한데 가끔 좀 지치는 것 같아여.”

“그러게 말야. 이러다가 진짜 경연만 하다가 은퇴하는 건 아니겠지이···.”

“얘들아, 이기면 되지 이기면!”

“아하하하핫, 실장님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하기~”

“그러게여. 실장님 미워···.”

살짝 긴장된 분위기 속에, 마침내 7IN 멤버들을 실은 차가 촬영 로케이션 현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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