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개시!
7IN과 백중헌 선생이 함께 운영하는 등산로 식당의 이름은 <북한산 둘레집>이었다.
젊은 층을 저격하여 트렌디한 인테리어와 그럴싸한 영어 간판을 달 수도 있었지만, <맛집메이커> 제작진들은 등산로 식당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며 깔끔함만 가져갔다.
건물 외부의 카메라나 촬영 장비도 최소화했기에, <북한산 둘레집>은 밖에서 보면 영락없는 평범한 식당의 모습이었다.
그 식당 안에서, 7IN 멤버들과 백중헌은 부지런히 첫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촬영은 총 5일로 계획되어 있었다. 첫 날을 제외한 나머지 나흘은 모두 사전신청을 통해 당첨된 손님들만 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첫 날은 말 그대로 게릴라 장사로 진행된다. 아직 7IN이 <맛집메이커>에 출연한다는 정보가 퍼지지 않았기에 가능한 이벤트.
“후우, 우리 잘 할 수 있겠져?”
“해 봐야지. 라방에서도 쿡방 엄청 많이 했잖아.”
“그래도 그 땐 우리끼리 만들어서 우리끼리 먹었으니까 좀 긴장감이 덜했는데, 누군가한테 음식 만들어 준다는 게 엄청 긴장되는 일이었네여.”
“허허, 그럼유. 하지만 또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 주는 모습만큼 뿌듯한 것도 없어유.”
“···마, 맛있게 먹어 주시면 진짜 감사할 것 같아요···.”
“자신감 가져유. 맛은 이미 다 합격점이니께.”
긴장감 속에 드디어 첫 번째 손님이 가게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아침식사 되죠?”
반갑게 인사를 하며 식당에 들어온 것은 50대의 부부 두 쌍. 이른 아침 시간인 만큼, 등산로를 찾은 사람들은 대부분 40대 이상의 등산객들이었다.
“새로 오픈했나 봐, 지난주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되게 깔끔하다~”
중년의 손님들은 등산복까지 커플룩으로 맞춰 입고 있었다. 주방 멤버인 군자, 태웅, 현수도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다는 듯 웃었다.
“되게 좋아 보인다, 그쵸 형.”
“맞아.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후후, 벌써 결혼이 하고 싶어진 것이더냐. 팬들께서 좋아하시지 않을 텐데?”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오··· 후우, 요리 하려니까 좀 긴장되네.”
군자 역시 현수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명의 손님들은 누구보다 행복하고 사이가 좋아 보였다. 맛있는 음식으로, 그들의 분위기를 더욱 좋게 만들어 주고 싶은 소년들이었다.
“네 분 손님, 이 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두 쌍의 부부 커플이 자리를 잡고 앉자 마자, 서빙 담당 현재가 포르르 달려가 환한 미소와 함께 메뉴판을 건넸다.
“안녕하세여!”
이른 아침이었지만 현재의 인사에는 에너지가 넘쳤다. 그 밝고 싱그러운 인사에, 50대 부부 네 명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어머, 너무 꽃미남이시다.”
“어떻게 아침부터 이렇게 기운이 넘친대요?”
“헤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이 집은 메뉴가 되게 단조롭네. 고민 안 해도 돼서 좋다.”
“음, 난 감자전 먹고 싶은데.”
“난 도토리묵 할래.”
“저기, 사진에 콩나물국은 사이드로 나오는 거죠?”
질문을 던지며 현재의 얼굴을 바라보던 여자 손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쓰읍,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은데에.”
“네에?”
“혹시 TV 나온 적 있지 않아요?”
“제가요? 헤헤.”
현재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으며 강아지 같은 미소만 지어 보였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50대의 여성 손님이 갑자기 무릎을 탁 치며 두 톤쯤은 높은 목소리를 냈다.
“아, 아아아—!!”
“아이 깜짝아, 갑자기 왜 그래?”
“아이돌! 그 아이돌이잖아!”
“아이돌? 갑자기 뭔 돌아이 같은 소리래?”
“그 왜, 판소리 같은 노래 하던 아이돌! 기억 안 나?”
“아아, 그 예끼 이 싸가지 없는 놈들아! 하던?”
“싸가지 없는 놈들? 그런 노래가 있었나?”
“헤헤, 싸가지가 아니라 예의없는 것들이여.”
소란을 지켜보던 현재가 작게 웃으며 노래 제목을 정정해 주었다. 그제야
“역시 맞았네! 세상에, 어쩜 이렇게 예쁘게 생겼어요?”
“헤헷.”
“탈렌트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데, 진짜 너무 너무 잘생기셨다아. 내가 저기 뭐야, 아이돌 육상대회? 그거 투표도 다 했다구요.”
“아이돌 육상대회가 아니라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히히.”
“그래, 맞아 그거! 재현이 맞죠 재현이?”
“현재입니당, 헤헷.”
“아이고, 맞네 맞네 현재! 근데 어떻게 여기서 이렇게 만나? 잠깐만, 그럼 여기에 다른 멤바들도 다 있는 거야?”
“아, 넵. 다른 멤버들은 주방 쪽에 있어여.”
“그래에? 어머 어머, 너무 신기하다. 저 쪽에 저 키 큰 친구가 차인표 맞지?”
“헤헤, 혁이여 어머님.”
“맞다 맞다, 차혁표! 내 정신 좀 봐, 호호호홋—.”
비록 이름을 전부 틀리긴 했지만 50대 어머님의 애정은 진짜인 것 같았다. 어쨌거나 멤버들의 캐릭터와 그룹의 컨셉만큼은 정확히 알고 있었으니까.
“진짜, 등산 왔다가 아이돌을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네. 어디 테레비 촬영이에요?”
“넵, 예능 촬영이에여 어머님.”
“아이고, 어머님 소리 듣기 좋다. 잠깐만, 나 이거 꼬끼오스토리에 올려도 되남?”
“어어··· 저희가 지금 여기에 온 걸 비밀로 하고 있어서여. SNS는 잠시만 참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헤헷.”
“아, 몰래 온 거구나? 하긴 알려지면 사람들 엄청 몰리고 완전 개판 되겠네. 그럼 큰일 나지! 알았어요, 내가 비밀 꼭 지켜 줄게.”
50대 어머님들과 현재가 화기애애하게 다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50대 아버님들의 표정은 천천히 굳어 갔다.
“···거 되게 호들갑 떠는구만.”
“아이, 왜 그래에. 신기하잖아~”
“신기한 거 맞아? 그냥 좋은 거 아니고?”
“아니 여보, 뭐야? 지금 질투하는 거야?”
“···질투는 개뿔···.”
50대 아버님은 질투를 부인했지만, 불퉁한 두 눈과 툭 튀어나온 입술은 누가 봐도 질투하는 이모티콘 그 자체였다. 주방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방 멤버들도 재미있다는 듯 이야기꽃을 피웠다.
“유찬아, 아버님들 너무 귀여우시지 않냐?”
“···그러게요. 마, 만난 지 오래 되셨어도··· 아직 사랑하시나 봐요···.”
“아하핫, 꼭 프랑스 남자들 같네~”
“하지만 아버님들이 우리를 못마땅해 하시는 것 같아 걱정이구나.”
“괜찮아 괜찮아, 맛있는 요리로 마음을 확 뺏어 버리면 된다구.”
메뉴 선정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돌이 얼마나 요리 잘하나 봐야겠다’며, 아버님들이 네 가지 메뉴를 전부 다 시켜 버리셨으니까. 이제 주방 멤버들이 활약할 시간이었다.
보글보글—···.
치이이이익—.
백중헌 선생이 주방을 지키고 있긴 했지만 실질적인 오더는 현수의 몫이었다. 평소엔 약골이었지만 스튜디오에만 들어가면 엄격해지는 현수는, 주방에서도 그 기질을 발휘하며 조리사들을 진두지휘했다.
군자와 유찬은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칼질을 하며 요리를 만들어 나갔고.
“웅아, 여기 재료 좀!”
“오케이 오케이.”
“···우, 웅이 형, 여기도 필요해요···.”
“알았어, 곧 간다잉.”
손재주는 부족했지만 3대 운동 500을 돌파할 만큼의 힘을 가진 태웅은 주방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다.
완성된 음식을 서빙하는 것은 인혁의 몫이었다. 놀랍게도 멤버들 중 가장 눈썰미가 좋고 미적 감각이 뛰어난 인혁은, 작은 흠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한 플레이팅을 완성시켜 홀로 가져갔다.
“현재야! 감자전, 도토리묵 먼저 나왔어!”
“네엥—.”
그렇게 완성된 음식은, 서빙 담당 현재의 손에 의해 테이블로 전해졌다.
“주문하신 감자전, 도토리묵, 닭도리탕, 그리고 콩국수 나왔습니다!”
아내의 외도 아닌 외도 때문에 뿌루퉁해 있던 남편 손님들도, 막상 먹음직스런 음식이 눈앞에 펼쳐지니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남자 손님들은 애써 흥분된 표정을 숨기며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했다.
“어, 어디서 본 것 같은 메뉴만 내 왔구만.”
“아유. 그럼 등산로 식당이 다 비슷비슷하지 뭐.”
“내가 이래봬도 등산 경력만 30년이라고. 등산로 식당도 어디 한두 군데 다녀 본 줄 알아? 일단 도토리묵만 먹어 봐도 솜씨를 알 수 있다고.”
“그럼 한번 먹어 보면 되겠네.”
가장 먼저 젓가락이 향한 곳은 도토리묵이었다. 새콤달콤한 소스와 신선한 야채, 직접 쑨 묵을 함께 즐기는 도토리묵은 식욕을 돋궈 주는 훌륭한 애피타이저였다.
“모양은 그럴싸하게 내긴 했다만···.”
한껏 부정적인 자세로 도토리묵을 입에 넣은 남자 손님들이었으나, 맛을 느낀 순간엔 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아삭아삭 씹히는 채소의 질감, 그 사이사이로 적절히 스며든 양념의 새콤함, 거기에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부드러운 묵의 식감까지.
맛있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어머, 어머, 너무 맛있다!”
“···으음···.”
“이거 소스를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대? 나 배우고 싶네 진짜로.”
“···끄흐으으음···.”
어머님들이 칭찬을 늘어놓는 동안, 아버님들은 말 없이 젓가락만 연신 움직였다. 전국의 산이란 산은 다 다니며 온갖 도토리묵을 먹어 본 아버님들이었지만, 이 도토리묵은 그 어느 산중 식당의 음식과 비교해 보아도 떨어지지 않는 맛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입맛이 돋기 시작하자 젓가락은 순식간에 식탁을 활보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노릇노릇 바삭하게 구워진 감자전의 차례였다.
와그작—.
입에 넣자마자 씹히는 크리스피한 겉면, 그 안에는 포슬포슬하고 쫀득한 햇감자의 식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전을 찍어먹는 간장 하나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지나치게 짜지 않으며, 입맛이 계속 살아날 수 있도록 새콤한 맛을 은근히 추가한 간장이었다.
도토리묵에 이어 감자전 역시 순식간에 동이 나 버리고 말았다.
“어때? 맛있지? 맛있잖아아~”
“···뭐, 나쁘진 않네···.”
“그치? 그렇게 맛있게 먹어 놓고, 맛없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지~ 어쩜, 이렇게 잘생기고 예쁜 애들이 요리도 잘한대. 안 그래 여보?”
“허이고, 아이돌이 그렇게 좋으면 아이돌한테 시집가지 그러셨어요.”
“아유, 알았어 알았어. 아이돌 좋아하는 거랑 내 사람 좋아하는 게 똑같냐? 뭔 아들뻘 애기들한테 질투를 하고 그러실까.”
“···내 사람?”
“그래 내 사람! 어이고, 웃는 거 봐라. 입술에 닭도리탕 국물이나 좀 닦어!”
“여보야, 닭도리탕 이거 기가 막힌다.”
“그치? 맛있다니까.”
“어우, 소주라도 한 병 시키고 싶네.”
“에이 무슨 소주야! 산 올라갈 거면서.”
“내가 술을 안 찾게 생겼어? 이 닭도리탕 국물 좀 보라고. 이렇게 칼칼한 걸 만들어 놓고, 술 찾지 말라고 하면 그건 범죄지 범죄.”
뚱했던 남자 손님들의 표정은 어느새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음식을 만들고 서빙한 7IN 멤버들도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당. 맛있으셨나 봐요.”
“어때유? 내 말이 맞쥬?”
“네 선생님. 손님들이 맛있게 먹어 주시니까 기분 진짜 좋은데요.”
“앞으로 더 느끼게 될 거예유. 여러분들 요리 잘한다니께.”
“흐흐, 열심히 하겠슴다.”
성공적이었던 개시 손님 이후로, 두 번째로 가게에 들어온 것은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었다.
40대의 부모님은 꽤나 밝은 표정이었으나, 그들을 따라온 10대의 딸 손님은 어쩐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연지, 오늘은 등산 따라오기로 약속했었잖아. 왜 표정이 그래?”
“아니 이렇게 일찍 출발할 줄 몰랐다고···.”
“원래 등산은 아침 공기 마시면서 해야 되는 거야.”
“그리고 뭔 도토리묵이야, 아재 같아.”
“얘가 아직 뭘 모르네. 원래 도토리묵이랑 감자전은 먹어 줘야 산에 온 느낌이 나는 거란다.”
“으으, 몰라. 난 유튜브나 볼래.”
“아니, 또 군자인지 뭔지 걔 보는 거야? 하루종일 질리지도 않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