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192화 (192/303)

#192

다시 한번 말해봐

‘7IN 폭행 폭로’ 글이 뜬 순간부터, 연지를 비롯한 팬들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다행히, 소속사의 반응 속도는 광속에 가까웠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대처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빠른 대응과 깔끔한 사과에 팬들은 한숨 돌렸지만, 그럼에도 걱정은 끝나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안티팬들이 SNS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었다. ‘폭행 아이돌’이라는 키워드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아 진짜, 왜 이러고 사는 건데···.”

무대응이 최선의 대응임을 알면서도 팬들의 수심은 깊어져 갔다.

소속사의 빠른 대처 덕에 무지성 폭력 아이돌로 낙인 찍히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지속적인 여론몰이 시도는 다시금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었으니까.

아이돌은 타 연예인보다 사건사고에 예민하다. 게다가 데뷔한 지 아직 만으로 1년도 채 되지 않은 7IN이었기에, 팬들의 걱정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중이 군자와 7IN에게 등을 돌리는 일은 없었다.

[아오 폭력무새들 진짜 지겹다 지겨워]

[폭행은 저 양아치들이 아무 개연성도 없이 사람 치고 군자 목덜미 잡은게 폭행이고]

[업어치기는 참교육인데?ㅋㅋㅋㅋ]

[증거자료가 없었으면 모를까 영상도 다 남아있는데 뭘 그렇게 비호감몰이 하려는거임?]

[솔직히 너네가 저 상황에 있었다고 생각해봐;; 난 박수치고 싶었을걸]

[아이돌은 왜 부당한 상황에서도 처맞기만 해야됨? 머 연예인은 감정도 없음?ㅋㅋㅋ]

[아이돌도 휴먼이야 휴먼]

[솔직히 연애만 안하면 뭔들]

[근데 내 돌은 연애도 하더라 ㅅㅂ]

[ㄴ아··· 윗댓 힘내;;]

[유군자 까는 놈들 특징 = 평소엔 참교육 참교육 아주 노래를 부름]

[니들은 그냥 욕할거리가 필요한거잖아 ㅋㅋㅋ]

[평소엔 사이다 썰만 찾아다니는 놈들이 이럴때만 머법관 빙의해서 엄근진 하는거 진짜 역겨움 제발 일관성좀 가져;;;]

[아 모르겠고 난 암튼 유군자랑 칠린 호감임~]

[패악질 부리는 양아치 업어치기 했는데 왜 욕을 먹음? 것도 먼저 시비깐것도 아니고]

[욕먹는이유 = 인기 많은 아이돌이라서]

[여론몰이 하는놈들 니들 존나 투명하다는것만 알아둬 ㅋㅋㅋㅋ]

[나 진짜 아이돌 1도 모르는 남잔데 형광바지 양아치들 훅훅 업어치는 거 보고 칠린인가 뭔가 개호감됨. 이제부터 여동생이랑 같이 씹덕후 하기로 했다]

이제 아이돌이 폭력과 연루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매장을 당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확실하게 남은 증거자료가 주효했다.

술 취한 양아치들의 전형적인 패악질을 보고도 그 양아치들을 옹호할 이들은 많지 않았다. 죽지도 않고 또 나타난 안티 세력과, 그에 놀아난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한다면. 포털의 댓글과 그 댓글에 찍힌 찬성/반대의 비율이 여론을 나타내 주고 있었다.

[무고한 시민 폭행이라더니 현실은 정의구현이었고]

[찬성 4856 / 반대 24]

[오히려 이미지 신경 안 쓰고 호쾌하게 업어치기 하는게 더 쌉호감ㅋㅋ]

[찬성 : 2915 / 반대 21]

[폭로글 맞춤법 박살난것부터 쌔했는데 역시 못배운놈들이었네]

[찬성 3551 / 반대 19]

[이레즈미 + 형광바지 + 쫄티 + 일수가방 + ㄱㄷㄱㅅ 스니커즈 + 스뎅 목걸이 + 롤렉스(짭) + 주머니에 BMW 차키 ㅋㅋㅋ 믿거라는 말 안좋아하는데 이 정도면 솔직힠ㅋㅋㅋㅋ]

[찬성 3121 / 반대 43]

[난 솔직히 칠린 애들 믿었다. 아이돌 별로 관심 없는데 얘네는 인성 괜찮은 것 같았음]

[찬성 6419 / 반대 87]

[아 모르겠고 그래서 칠린이들 맛집메이커 나온다는 거지? 개꿀잼 예약]

[찬성 5521 / 반대 10]

형광바지 패거리는 군자와 7IN을 나락으로 보내려 했으나, 그들이 만든 창조논란은 오히려 <맛집메이커> 방송을 홍보해 주는 노이즈마케팅의 역할까지 수행했다.

[오 근데 맛집메이커 이번엔 게스트에 힘좀줬네]

[그러게ㅋㅋㅋㅋ칠린 완전체 출연이라니ㄷㄷㄷ]

[나 맨날 SSS급 괴식만 봤는데 저거 방영하는 주엔 맛집메이커 볼거임 ㅋㅋㅋㅋ오히려 더 기대감 생겨버림]

[형광바지 애들 나온거는 분량 다 자르겠지?]

[ㅇㅇ그렇긴 하겠지 ㅋㅋㅋㅋ근데 그냥 얘네들이 어떻게 가게 운영하고 장사하는지 궁금해짐]

[ㅋㅋㅋ양아치들 지금쯤 배아파 죽어가고 있을듯ㅋㅋㅋㅋㅋ]

[여론조작도 똑똑한 사람들이 하는거짘ㅋㅋㅋ으이구]

[형광바지들아 노이즈마케팅 고맙다~]

이렇게 7IN과 군자에게 호의적으로 돌아가는 여론을 보며 팬들도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휴우···.”

평소에도 차곡차곡 좋은 이미지를 쌓아 놓은 것도 주효했다.

“히히, 우리 팀 멤버들이 착하긴 하지.”

대중의 반응을 보며 연지는 가슴 가득 차오르는 뿌듯함을 느꼈다. 군자가 누명을 벗은 것도 좋았고, 사람들이 7IN을 ‘선한 그룹’이라고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좋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군자와 멤버들이 걱정되기도 했다.

데뷔한 지 만으로 1년이 채 되지 않은 7IN이었지만, 군자에겐 유독 사건사고가 많이 생겼다.

<노래해 듀오>에서 과거 자신을 괴롭혀 왔던 박영제를 만난 것, <다이너스티> 촬영에서 폐쇄공포증으로 고생한 것, 게다가 이번에는 하마터면 ‘깡패돌’이라는 수식어를 얻을 뻔 했다.

안티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고 말하며 군자의 인성을 끊임없이 깎아 내리려 했다. 그러나 연지를 비롯한 팬들은 군자가 누구보다 선한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걱정이 됐다. 착하고 순수한 만큼 더 쉽게 상처받고 어두운 사람이 될 것 같아서.

그러나 제이라이브를 통해 팬들을 만난 군자는 꽤나 담담한 모습이었다.

“심려를 끼쳐 드려 정말로 죄송합니다.”

폴더 인사로 라이브 방송을 시작한 군자는, 다시는 같은 일로 팬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겠다고 다짐해 보였다.

[ㅠㅠㅠㅠ아냐ㅠㅠㅠㅠ]

[우리한테 미안하다고 하지마ㅠㅠㅠㅠ]

[미안하긴머가미안해······그놈들이 미친놈들이었지]

[이렇게 얼굴 볼 수 있어서 넘 좋아]

[그냥 건강하기만 해주라]

[라이브 켜줘서 고마워군자야]

[사람들이 나쁜말 하는거 듣지마ㅠㅠㅠ]

[우리가 더 미안해··· 못 지켜줘서 미안해군자야]

[넌 너무 순수하고 착한 사람인데 자꾸 안좋은일만 생겨서 내가 다 속상하다ㅠㅠㅠ]

의연한 군자의 표정을 보며 연지는 어쩐지 괜히 눈물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히잉···.”

차라리 슬픈 표정으로 속상하다고 투정이라도 부렸으면 더 괜찮았을 텐데. 이런 상황에서도 은은한 미소를 짓는 군자의 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이 더 뭉클해진 연지였다.

“언제나 저를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저는 금방 괜찮아진답니다.”

[우리가 힘이 된다니 너무 좋다]

[정말? 진짜야? 헤헿헿헤ㅔㅎ헤]

[Gunja makes me happy :)]

[진짜 군자때문에 웃는당]

[어···? 근데 ㄴr··· 왜 눈물ㅇi···★]

[왜 자꾸 울리고 웃기고 하냐구ㅠㅠ]

[궁댕이들 아마 다 엉덩이에 털 났을듯]

[진짜 평생 사랑할거야 평생]

[사람들 반응같은 거 보지 마 군자야! 제이라이브 채팅만 봐]

“저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한때는 온 세상이 다 저를 미워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그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도 행복하답니다.”

온 세상이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는 군자의 말은 팬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아까부터 울먹거리던 연지는 결국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채팅을 입력했다.

워낙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 덕분에 무슨 말을 하든 금방 묻혀 버렸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지금은 그저 위로와 사랑을 전달하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아진짜ㅠㅠㅠㅠㅠ]

[맞아ㅠㅠㅠ우리가 널 사랑해]

[세상이 널 다 미워한다니 말도 안돼]

[이제는 그럴 일 없어ㅠㅠㅠ널 미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널 사랑하고 있다구]

[담담하게 웃으면서 저런 말 하는게 너무 대견하고 슬프다]

[우리가 항상 옆에 있어줄게]

[You’ll never walk alone KUNJA!]

[사랑해에에에ㅔㅔ엥]

[나지금계속울고있으뮤ㅠㅠ]

그렇게 소중한 소통 시간을 마무리한 뒤, 군자는 바로 잠자리에 드는 대신 연습실로 향했다. 멤버들이 연습실에서 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광바지 패거리 사건 때문에 뒤숭숭한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7IN 멤버들은 컴백 앨범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가는 중이었다.

“오옹, 군자 형아 왔당.”

“라이브 잘 하고 왔냐? 지현수 이쉑은 연습실에서 너 라이브 보면서 찔찔 울더라.”

“누, 누가 울었다고.”

“아하하핫, 현수는 군자가 그렇게 좋아? 질투 나는데~”

“아 됐고, 타이틀곡 회의 하기로 했잖아.”

이번에도 멤버들이 앨범의 서사를 주도적으로 꾸려 나갈 계획이었다. 부지런한 프로듀서 현수와 최상의 편곡 스태프들 덕분에 트랙은 넘쳐났지만, 그럼에도 문제는 있었다.

타이틀곡으로 쓸 만한 트랙이 아직 마땅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트랙이 80점 이상, 수록곡으로는 합격점을 줄 만 했지만 임팩트를 줄 수 있을 만한 타이틀곡이 없었다.

팀원들의 의견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현수, 시우, 유찬은 지금까지 완성된 트랙의 퀄리티도 충분히 좋으니 이것들을 더 발전시켜서 타이틀곡으로 만들어 보자는 입장이었다.

“그냥 지금까지 완성된 트랙을 조금 더 다듬어 볼까? 사실 완성도 좋은 트랙들이 좀 있긴 하거든.”

“맞아 맞아~ 이미 좋은 노래는 충분히 많다구~”

“···너, 너무 많이 들어서··· 오히려 안 좋게 들리는 거 아닐까요···.”

그러나 현재, 태웅, 인혁, 군자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근데 또 막상 이거다! 싶은 건 없지 않음?”

“끄으응··· 그것도 그렇긴 하지···.”

“형아들, 유찬아, 우리 조금 더 고민해 보면 안될까여?”

“나도 더 고민해 보고 싶다.”

“근데 그렇다고 한도 끝도 없이 고민만 할 순 없잖아. 팀장님도 이제 더 이상 시간 끌면 안된다고 하셨는데.”

“그것도 맞는 말이다만··· 이대로라면 아쉬움이 남을 것 같구나. 무엇보다 정규 1집의 첫 대문을 장식할 곡 아니더냐.”

“시간을 투자하면 더 좋은 게 나온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렇게 하겠는데에··· 후으음—.”

“뭔가 획기적인 컨셉 없을까여? 듣자마자 팍 꽂혀서 탑라인 멜로디가 술술 나올 것 같은 그런 컨셉!”

“후우, 그러게. 그런 게 있으면 나도 작업하기 조금 편할 것 같은데.”

프로듀서 지현수에겐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그러나 멤버들 중 누구도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몇 달 간 앨범을 준비하며 아이디어를 쥐어 짜 낸 덕분에, 멤버들의 뇌는 이미 건어물처럼 바짝 말라 버린 뒤였다.

“우와아, 나 이제 진짜 뇌정지 온 것 같아.”

“군자야, 뭐 좋은 아이디어 없냐? 이럴 때 너가 항상 뭔가 뿅 떠올려 줬잖아.”

“흐으음—.”

“야, 군자 괴롭히지 마. 안 그래도 악플러들한테 마녀사냥 당할 뻔한 애한테.”

“마녀사냥? 군자가 마녀냐?”

“뭐?”

“마남사냥이어야 맞는 거 아냐?”

“에라이···.”

티격태격 말장난을 주고받는 태웅과 현수를 바라보던 군자의 머릿속에 갑자기 섬광이 퍼뜩 스쳐 지나갔다.

“!”

“왜? 왜? 뭐 생각났어?”

“태웅아, 방금 뭐라고 했느냐?”

“뭐? 마남?”

“아니, 그거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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