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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은 선비님-203화 (203/303)

#203

혹시 몇 위?

콘서트가 끝난 날 밤, 실신하듯 잠든 군자는 꿈 속에서 누군가를 만났다.

현대로 넘어온 다음부터는 도통 꿈을 잘 꾸지 않았던 군자였다. 그러나 그 날 밤만큼은 조금 달랐다. 평소보다 훨씬 깊은 잠에 든 날이었음에도 꿈이 군자를 찾았다.

눈 앞에 펼쳐진 건 관객들이 만든 거대한 빛의 파도.

그 장엄한 25,000개의 빛망울이 하나로 모여드는 듯 하더니, 이내 어슴푸레한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다. 군자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형광의 빛깔. 평생 군자와 함께 해 온 병증이자 축복, 상태창이었다.

···군자야···.

···군자야, 정말 고마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고맙다’라는 말의 의미를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박영제 사건을 거치며 군자는 상태창의 정체를 어렴풋이 깨달아 갔다. 300년 전부터 군자와 함께해 온 이 벗은, 아마도 이 몸의 원 주인인 ‘유군자’의 얼일 것이다.

그 역시 아이돌을 꿈꾸었다. 타고난 재능은 없었으나, 방구석에서 부단히 노력하며 언젠가는 빛을 보기를 바랐던 지망생이었다.

그렇기에 상태창은 군자를 도왔다.

군자가 아이돌이 될 수 있도록 그를 현대에 데려왔고, <아육시>에 나가게 했으며, 실력이 발전할 수 있도록 보좌했고, 최고의 동료들을 만나게 해 주었다.

그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성공적으로 데뷔한 군자는 승승장구하며 최고의 유망주가 되었고, 바로 어젠믄 25,000명의 관객 앞에서 가무를 선보였으니까.

조선에서 온 군자에게도, 이 몸의 원 주인인 군자에게도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비록 영혼뿐인 신세가 되었지만, 그 역시 군자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꿈을 이룰 수 있었어···.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할 수 있다니···.

···평생 바라 왔던 일이었거든···.

상태창, 즉 이 몸의 원 주인과 이만큼 길게 이야기를 나눠 본 것은 처음이었다. 꿈 속이었지만 군자 역시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

“아니다. 오히려 내가 더 고맙지. 그 오랜 시간 동안, 네가 나를 지켜 주고 성장시켰지 않느냐.”

하지만 오늘만큼은 감사 인사 외에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다이너스티> 때 겪었던 상태창의 ‘폭주’.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며, 과거의 풍경과 소리가 겹쳐 들렸던 그 현상.

그것은 분명 상태창과 관련이 있는 증상일 것이다. 꿈 속에서밖에 만날 수 없는 존재라면, 그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시간 역시 지금밖에 없을 터였다.

“창이야,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군자가 질문을 꺼내기도 전에, 상태창은 군자의 궁금증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대답을 시작했다.

···네가 궁금해 하고 있을 줄 알았어···.

···사실 그 이야기를 하러 온 거기도 하고···.

···나는 시간을 거슬러 널 만나는 데에 성공했지만, 널 데려오기 위해 시공의 제약을 비틀어야 했어···.

···그렇게 하기 위해선 초자연적인 힘이 필요하지만···.

···내겐 충분한 힘이 없었어···.

솔직히 100%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몸의 원 주인인 유군자가 어떤 말을 하려는지는 알 것 같았다.

“요컨대, 내가 현대에 머무는 것에 일종의 불안정성이 있다는 말 아닌가.”

상태창은 군자의 말이 맞다는 듯 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공명했다.

“···그렇구나···.”

순간 불안감에 휩싸인 군자였다.

현대에 온 뒤로 꿈을 꾸지 않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현실이 하루하루 달콤한 꿈 같았으니까. 이곳에서의 삶은 그만큼이나 행복했다.

하지만 완전무결한 행복이 그렇게 간단할 리 없다. 군자의 현대 생활엔 불안요소가 있었다. 어쩌면 상태창이 말한 그 ‘시공의 제약’이라는 것이 다시 돌아와, 군자가 다시 조선시대로 돌아가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 행복이 끝나고, 다시 암흑 같은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으나, 군자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알았다, 창이야.”

상태창도 그런 군자의 모습에 놀란 듯 환한 빛을 냈다. 그러나 군자의 미소는 허세가 아니었다.

상황이 불안하다고 주저앉아 징징대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불안 요소가 있다면 그것을 빠르게 파악하고, 대처 방안을 연구하여 불안(不安)을 안정(安定)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다이너스티> 때 겪었던 상태창의 ‘폭주’가 불안정성의 신호일 테지. 그것이 지속된다면 내가 현대에 있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고.”

그렇게 말하며 군자는 생각했다. <다이너스티> 때의 폭주, <맛집메이커> 때, 형광바지 패거리의 행패에 갑자기 흥분했던 순간. 모두 군자의 과거와 연관이 있었다.

<다이너스티> 때는 폐쇄된 공간에 대한 공포가 폭주를 유발했다. <맛집메이커> 때엔 상태창이 폭주하진 않았으나, 양아치들이 군자의 뒷덜미를 잡은 순간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며 군자가 난폭한 행동을 보였다.

즉 군자의 안엔 아직도 트라우마가 남아 있으며.

이 트라우마가 발현되는 순간이 불안정성을 만드는 것이다.

“창이야, 아무래도 나는 아직 내 과거를 완벽하게 떨쳐 내진 못한 모양이구나.”

“···.”

“그 과거를 잊고 나아갈 수 있어야, 네가 말한 불안정성도 해결될 수 있을 터.”

“···.”

상태창은 군자가 걱정된다는 듯 우울한 푸른 빛을 내며 공명했지만, 군자는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

“괜찮다, 창이야.”

“···.”

“오직 힘든 일로만 가득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에 비한다면, 기쁜 일들로 힘든 시간을 지워내는 것은 오히려 행복 아니겠느냐.”

“···.”

“나는 가급적 오랫동안 이 세계에 머물고 싶다. 너와 조금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싶구나.”

“···.”

“그러니 울적해 하지 말거라. 그럴 시간이 없다. 당장 어제의 일만 떠올려 보아도 가슴이 벅차 오르지 않느냐.”

군자가 말을 맺자 마자, 두 사람의 발 아래에 거대한 별바다가 펼쳐졌다. 콘서트장의 팬들이 만들어 낸 응원의 별무리였다.

방금 전까지 고민 투성이였던 상태창도 그 풍경을 보자 모든 것을 잊은 듯 했다.

그렇게, 두 명의 군자는 별의 바다 위에서 뱃놀이를 하며 한참 동안이나 풍류를 즐겼다.

* * *

콘서트 다음 날, 기절하듯 곯아 떨어진 멤버들을 깨운 것은 향긋한 커피 향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시우가 멤버들을 위해 핸드 드립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으음, 웬 커피 향이···.”

“아하핫, 현재 일어났구나~”

“허얼, 시우 형? 어뜨케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여!?”

“난 2등이야~ 1등은 따로 있다구~”

마침 커피를 마시며 붓글씨를 쓰던 군자가 현재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해가 중천이다 현재야. 글공부를 하는 유생이었다면 아마 혼쭐이 났을 게야.”

“아니, 어제 그렇게 힘을 빼고 오늘도 아침 기상하는 사람들이 미친 거 아니에여?”

“피곤해도 아침의 정기를 놓칠 수는 없지. 현재 너도 아침 붓글씨의 즐거움을 안다면 하루도 게으름 피울 수 없을 거다.”

“···그게 즐겁다니 대단한데여··· 그나저나 군자 형은 이제 커피도 잘 마시네여.”

“후후, 내 가배차의 매력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렸음이야.”

그렇게 말하며 군자가 따뜻한 커피를 홀짝였다. 처음 시우가 내려 준 커피를 먹었을 땐 시우가 자신을 암살하려 하는 줄 알았다.

“푸으으읍, 시, 시우야! 어찌 내게 사약을 권한단 말이냐!”

“아하하하핫~”

“웃지만 말고 말을 해 보거라!”

“아하하하하하핫~”

하지만 그렇게 두어 번 커피를 마시다 보니 어느새 그 쌉싸름한 맛과 독특한 향에 중독되어 버린 군자였다.

게다가 커피를 마시고 난 다음엔 머릿속이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맑아지는 느낌도 들었다.

“이렇게 가배차 한 잔과 함께 서예(書藝)를 즐기고 있노라면, 이 세상 모든 물욕과 한껏 멀어질 수 있단다.”

“아 맞다, 음원 차트 봐야 되는데!?”

음원 차트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군자가 현재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다.

“후후, 국내 전 차트 1위란다 현재야.”

“에?”

“15분 전에 확인한 내용이니 확실할 것이야.”

군자의 말을 들은 현재는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반문했다.

“아니, 방금 가배차 한잔에 서예를 하면 세상 물욕과 멀어지네 어쩌네 하지 않으심?”

“앗.”

“그렇게 속세 물욕과 멀어지신 분이 15분 간격으로 차트를 확인하셨떠여?”

“그, 그것은··· 딱히 물욕이라기보단 우리 모두가 고생했으니···.”

“푸하하학, 이 형 진짜 자낳괴 다 됐다니까.”

“자낙괴(資樂怪)? 재물을 즐기는 괴이한 자라!?”

“그··· 어··· 발음이 좀 다르긴 한데 뜻은 통했으니 됐네여.”

좌절한 군자가 ‘내가 자낙괴라니’를 되뇌며 의기소침해 있는 동안, 다른 멤버들 역시 하나 둘 씩 일어나 주방으로 나왔다.

“다들 커피 마셔~”

“오, 시우 땡큐.”

“크으, 내가 이 향에 깼다고.”

“근데 현시우 넌 대체 어떻게 아침에 일어난 거냐? 군자야 뭐 미친놈이니까 그렇다 쳐도···.”

“아하하핫, 다른 데에 에너지를 안 쓰면 돼~”

커피 한 잔과 함께 식탁에 모인 멤버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일곱 명 모두, 아직 어제의 감동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후우, 어젠 진짜···.”

“평생 절대로 잊지 못할 하루였음여.”

“···마, 맞아요··· 절대로 못 잊을 거예요···.”

“앵콜 때 다같이 몽중화 부를 때 나 진짜 쫌 울었잖아.”

“혁이 형은 또 오열했잖아여. 그거 보니까 괜히 나도 눈물나서 삑사리 낼 뻔 했음여.”

“미안···.”

“근데 솔직히 그 땐 다 찔끔하지 않았냐? 나도 솔직히 좀 눈물 나더라고. 앞엔 무슨 은하수가 펼쳐져 있고, 관객 분들은 다같이 우리 노래 따라해 주고, 또 앞에 팬 분들은 막 우리 보면서 울고 있었단 말이야.”

태웅의 이야기를 들으며 일곱 소년들은 눈을 감았다. 너무나도 강렬한 기억이었기에, 눈만 감아도 다시 그 순간이 머릿속에 펼쳐지는 듯 했다.

“후우, 또 생각해도 눈물 날 것 같네.”

그렇게 잠시 동안 기억을 되새김질하던 멤버들은, 현재의 말과 함께 다시 현실 세계로 내려와 스마트폰을 잡았다.

“근데 우리 신곡 차트 올킬이래여!”

“헉, 맞다 차트!”

“아침에 이실장님한테 전화 엄청 와 있던데, 차트 때문이었구나?”

“맞네, 현수 넌 작곡가잖아.”

멤버들은 스마트폰으로 차트를 확인하며 다시 한번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콘서트를 떠올린 순간엔 감동의 미소였지만, 이번엔 그 미소에 자본주의적 만족감이 섞였다.

“우와아···.”

“진짜 전 차트 1위네··· 세상에.”

“이거 지난번보다 훨씬 더 빠른 추이 아님여?”

“맞아. 실장님이 그러시는데, 진입 순위도 지난번보다 훨씬 높았다더라. 우리 옛날 경연곡들도 같이 버프 받고 있는 중이고.”

멤버들이 차트를 보고 있는 동안, 이용중 실장이 현관문을 쾅 열며 숙소로 들어왔다.

“어이, 1위 아이도오올!”

“실장니임!”

“축하한다, 이 천재 아이돌들아!”

“감사합니다, SSS급 천재 매니저님!”

“푸하하학, 뭔 웹소설 제목이냐?”

이용중 실장의 손엔 전 차트 1위를 기념하는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우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만드셨어요? 1위 올라간 지 몇 시간 안 됐을 텐데?”

“그러게여. 실장님이 직접 만드셨어여?”

“에이, 그게 아니라 미리 주문한 거지. 전 차트 1위는 당연히 할 거라고 예상했거든.”

“오올, 패기~”

“그러다가 못 했음 어쩌시려구···.”

“그, 그러면 뭐··· 여친이랑 둘이 쓸쓸하게 먹었겠지?”

“어엇? 실장님 여자친구 생기셨어여!?”

“데헤헷, 말 안 했니? 그렇게 됐다!”

“헐, 헐헐, 대박 대박—!!”

“누굽니까? 숙소로 데리고 오세요!”

“엥?”

“저희가 검증 좀 해야겠습니다. 우리 이실장님 데려갈 만한 분이신지.”

“푸하하핫, 그래 그래. 나중에 밥 한번 같이 먹자.”

“아하하하핫, 축하드려요~ 드디어 솔로 탈출 하시네요~”

“그래, 고맙다 고마워. 근데 사실 축하받을 건 내가 아니라 너네야.”

“음? 또 축하받을 게 있어요?”

현수의 질문에, 이용중 실장은 북을 두들기는 듯한 손 모양을 취하다가 별안간 목청을 높였다.

“너네 빌보드 들어갔어어어—!!”

“예!?”

“이번 앨범 타이틀곡 두 개,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했다구우우—!!”

“예에에에에에에—!?!?”

대경실색한 소년들 사이에서, 자낙괴(資樂怪) 군자가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그, 호, 혹시 몇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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