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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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드 1위 곡, 이거 조작이라는 말이 있던데.”
“엥? 조작?”
현 빌보드 HOT 100 차트 1위 곡은 신예 힙합 가수 ‘릴 핌프’의 . 발매와 동시에 가파르게 차트 최상단으로 올라간 이 곡은, ‘Hype 챌린지’의 인기에 힘입어 고공 행진을 기록중이었다.
“노래 제목이 히프?”
“예?”
“흐음, 히프란 둔부를 뜻하는 단어 아니던가.”
“아니 군자야, 히프가 아니라 하이프.”
“아하···.”
“근데 이게 조작이라고? 근거 있는 얘기야?”
“여기, 이거 봐 봐요.”
양정무는 대답 대신 웹 페이지 하나를 열어 멤버들에게 보여주었다. 의 조작 정황 증거를 모아 놓은 페이지였다.
군자의 입장에선 마치 암호문 같은 페이지였으나, 나머지 여섯 멤버들은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문서를 정독해 나갔다.
심증은 꽤나 많았다. 우선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산마리노와 같은 소규모 국가에서 의 스트리밍 횟수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한 것이 첫 번째 정황이었다.
“이건 확실히 좀 이상하긴 하넹.”
“그렇다니깐. 형, 이게 말이 돼? 리투아니아에서 갑자기 스트리밍이 수십만 건씩 올라가는 게···.”
“흐음,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에서 이 노래가 갑자기 엄청 유행한 거 아냐?”
“에이··· 그건 너무 어색하잖아요. 태웅이 형, 생각보다 되게 순진한 사람이었네.”
“확증도 없는데 의심하는 건 좀 그렇잖냐. 게다가 이 노래 챌린지도 엄청 흥했다며. 그럼 막 챌린지 한다고 스트리밍 숫자 폭발한 거 아냐? 그것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 같은데.”
“그렇긴 한데, 그 챌린지가 만들어진 배경도 좀 의심스러워요.”
그렇게 말하며 양정무는 스크롤을 내렸다.
두 번째 의혹은 ‘Hype 챌린지’가 시작될 무렵 게시된 영상의 댓글들이었다.
SNS ‘픽톡’은 기본적으로 댓글이 많은 영상이 자주 노출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가 발표되고 처음 여러 개의 챌린지가 올라온 시점, 해당 영상에 수많은 가계정들이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이 있었다.
순식간에 불어난 가계정 댓글 덕에, ‘Hype 챌린지’ 영상은 SNS ‘픽톡’을 잠식해 버렸다. 사실 가계정 댓글 의혹은 진작부터 있었지만, 최초 영상들이 진작 삭제되어 버렸기 때문에 가계정의 흔적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쉽게 말해서, 가짜 계정을 막 엄청 만들어서 노래를 초반에 빵 띄웠단 말이구만.”
“맞아요. 그렇게 빵 띄운 다음엔 증거인멸을 한 거고.”
“아니 노래는 기깔나게 뽑아 놓고 왜 이런··· 이거 처음 듣고 진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노래가 아무리 좋아도, 잘못된 방법으로 순위를 점령한 것이라면 지탄 받아 마땅하지. 좋은 노래를 만들고도 빛을 보지 못한 자들도 많지 않더냐.”
군자의 말에 모두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빌보드도 조작을 할 수 있구나···.”
“차트 점수라는 게 결국 스트리밍 횟수, 다운 수, 리포스팅 수, 이런 수치로 나오는 거니까.”
“이런 식이면 아무리 노래가 흥해도 조작하는 사람들은 못 막는 거 아냐?”
“그럴 수도 있겠네.”
“후으음··· 뭔가 씁쓸한데여.”
자신이 꺼낸 화제 때문에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정무가 어쩔 줄 모르며 초조해 했다. 군자가 그런 정무의 표정을 살폈다. 이젠 정무를 위해서 분위기를 바꿔 줄 때다.
“너무 심각해질 필요 있느냐. 부정행위 정황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확정적인 것도 아닌 것을.”
“뭐 그것도 맞는 말이지.”
“게다가 우리가 차트를 위해 노래를 하는 것도 아니지.”
“맞아. 차트는 부가적인 거고, 지금은 그냥 노래하고 춤추는 것만으로도 즐겁잖아?”
“아하하핫, 맞아~ 1등 못 하면 어때~”
모두가 군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정무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다른 멤버들도 정무의 표정 변화를 캐치한 듯, 장난스런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쩡무, 괜히 분위기 조진 것 같아서 불안했냐?”
“엥? 그게 뭔—.”
“넌 진짜 예전이나 지금이나 츤데레구나.”
“···아닌데요. 빌보드 1위가 조작이라니, 너무 재미있는 떡밥이잖아요. 그래서 말해 준 건데···.”
“우웅~ 그래쪄여?”
“진짜 아니라고! 으으!”
“됐어 임마, 피자나 먹자. 내가 하와이안 피자라면 아주 학을 떼는데, 너 온대서 시켰다.”
고양이 같은 눈으로 태웅을 째려보면서도 정무는 하와이안 피자 한 조각을 야무지게 베어물었다. 삐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파인애플 과육이 입에서 터지자 행복해 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양정무였다.
“정무야. 넌 캐릭터 좀 다시 잡아라. 도도 시크 이런 거 안 어울린다고.”
“···몰라요. 나 이제 여기 안 올래.”
“뻥 치지 마 이 자식아~ 너도 재미있잖아~”
온갖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정무는 그 날 저녁까지 숙소에서 멤버들과 시간을 보냈다. 소속사 매니저의 픽업 전화를 받을 땐 거의 눈물이라도 흘릴 듯 울적한 표정이었다.
“네 실장님, 네. 지금 내려갈게요, 네에···.”
“쩡무! 울지 마! 또 놀러오면 된다니깐!”
“···몰라요, 다음엔 형 없을 때 올래.”
“푸하하학, 진짜로? 이거 섭섭한데에~?”
그렇게 정무를 보낸 뒤, 멤버들은 다시 한번 타블렛 PC 앞에 모였다. 시간이 꽤나 지났지만 아직도 국내 차트에선 7IN의 타이틀곡이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아, 이건 봐도 봐도 뽕이 안 빠지네.”
“빌보드 차트는 어때? 아직 그대로임?”
“빌보드는 실시간 갱신이 아니라, 아직 그대로야. 아마 다음주나 돼야 순위 변동 있을 걸?”
“크으, 다시 생각해 봐도 대단하긴 하다. 빌보드 차트 인이라니···.”
“그니까여. 1위가 조작이든 뭐든, 난 그냥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해여.”
“맞는 말이다. 솔라시스템 분들도, 우리의 부모님들도 모두 자랑스러워 하실 게야.”
멤버들은 이 순위에도 충분히 만족한다는 듯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일주일 뒤.
7IN의 빌보드 순위는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은 곳까지 올라가 있었다.
* * *
7IN 정규 1집은 발매하자 마자 미친 듯한 페이스로 팔려 나갔다.
선주문 물량은 당연하게도 진작에 바닥났다. 재미있는 것은 발매 직후 앨범 언박싱이 공개되며 판매량이 다시 한번 급증했다는 점이었다.
연지 역시 7IN의 정규 1집 [七巧 : 7 Pieces]를 진작에 예약해 두었다. 앨범은 정확히 콘서트가 끝난 다다음 날 연지의 품에 들어왔다.
“후우, 후우, 정규 1집···.”
마치 성물을 개봉하듯, 연지는 조심스레 앨범 포장을 뜯었다. 미리 준비해 둔 스마트폰으로 개봉기를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커버도, 내지도, 포스터도, 포토카드도 하나하나 만족스러웠다. 수많은 사진들이 들어 있었지만 한 장도 대충 찍은 것이 없었다. 포토카드 몇 장은 일부러 ‘남친짤’ 느낌으로 찍은 셀카여서 더욱 만족스러웠다.
“아악, 군자 셀카아—!!”
이번에도 천운을 타고난 연지는 군자의 셀카모드 포카를 뽑고야 말았다. 아직 셀카에 서툰 듯 어색한 표정이 오히려 더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분명 높은 시세에 거래될 것이 확실해 보이는 카드였다. 물론 연지는 그 카드를 판매할 생각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방이었지만 주변의 눈치를 스윽 본 연지가 포토카드를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흐읍—.”
누가 보면 분명 변태새끼라고 욕할 것 같지만, 절대로 변태 짓이 아니었다. 이번 정규 1집 앨범의 포토카드엔 멤버들이 직접 조향한 시그니쳐 향이 배어 있기에 그 향기를 맡아 보았을 뿐.
“···하아, 좋다아···.”
군자의 카드엔 은은한 등나무 향이 베어 있었다. 향기를 맡자 마자 보랏빛의 등나무 숲 사이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군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좋다, 너무 좋다. 할 수만 있다면 이걸 향수로 만들어서 매일 그 원액으로 샤워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하이퀄리티의 사진과 등나무 향기 뿐만이 아니었다.
“오잉? 이게 뭐지···?”
앨범 패키지의 가장 안쪽엔 자개로 장식된 작은 액자 열 개가 들어 있었다. 병풍처럼 연결하여 사용할 수 있는 소형 액자는, 멤버들이 직접 낸 아이디어로 솔라시스템이 만들어 낸 작품이었다.
그 액자에 포토카드를 끼워 연결하며, 연지는 이미 눈물을 글썽이는 중이었다.
“미쳤어··· 진짜 아이디어 미쳤다구···.”
어쩜 이렇게 깜찍한 생각을 하지? 포토카드로 병풍이라니, 너무 귀여운 거 아냐?
그렇게 군자 위주의 포토카드로 5첩 병풍 두 개를 만든 연지였다. 완성된 병풍을 책상 위에 놓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비록 인테리어와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자개 장식이었지만 괜찮다. 이건 기존 가구들이 잘못한 거지, 병풍의 잘못이 아니다.
이제 이 병풍 뒤에서 향냄새를 맡으며 잠들어도 될 것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았지만 연지는 애써 정신을 부여잡으며 SNS를 열었다. 이미 앨범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병풍 포토카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칠린 정규앨범 병풍 포카 아이디어 진짜 미친거아님?ㅠㅠㅠ]
[액자도 쪼꼬만한게 진짜 퀄리티 엄청 잘뽑았어]
[첨엔 앨범 가격보고 쪼꼼 선넘네? 생각했는데 이 정도 구성이면 진짜 너무 인정 아니냐구요ㅠㅠㅠㅠ]
[내 7첩병풍 공개함 헤헿헿헤ㅔ헤 유찬이랑 현재 위주임ㅎㅎㅎㅎ]
[나두 나두 공갷ㅎㅎㅎ근육즈 위주로 만들어 봤눈데 어떰? 부제 : 근육의 장벽]
[ㄴ미친ㅋㅋㅋ근육즈로 만드니까 병풍 아니라 진격의거인 월 마리아 같다곸ㅋㅋㅋ]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으어으어어ㅓ 하루종일 조합 바꾸면서 최상의 병풍조합 만드는중]
[칠링이들아 공홈 인터뷰 봤어? 이거 아이디어도 울 애들이 다 낸거래ㅠㅠㅠㅠ]
[ㄴ당연히봤지ㅠㅠㅠ 진짜 내가 살다살다 병풍 덕질 하게 될줄은 몰랐다구]
[포카에 멤버들 시그니쳐 향 들어가게 한것도 진짜 미친것같음]
[ㅁㅈㅁㅈ그거 넘 좋음퓨ㅠㅠㅠㅠㅠㅠ]
[어떻게 포카에 향이 나게 한거지? 졸신기해]
[울 칠린이들 덕분에 이모가 병풍 뒤에서 향을 다 맡아요^^]
[ㅋㅋㅋㅋㅋ누나면 몰라도 이모면 좀 위험한거 아니냐곸ㅋㅋㅋㅋㅋ]
발매 첫 날 판매량은 총 58만 장.
이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성과였지만, 초동 판매량 100만 장을 돌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변수는 추가 주문량이었다.
빠르게 앨범을 받은 팬들의 호평이 이어지자 추가 주문이 쇄도했다. 특히 병풍처럼 이어붙일 수 있는 액자의 임팩트가 컸다.
평소 아이돌 음반을 구매하지 않던 팬들도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 병풍엔 탐을 냈다. 덕분에 앨범 발매 후에도 주문량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누적 앨범 판매량은 100만 장을 향해 차분하게 달려갔다. 그렇게 일주일이 모두 지나고, 초동 판매량 공개의 날이 다가왔다.
7IN의 팬들, 안티 팬들 모두 ‘초동 밀리언셀러(발매 첫 주 판매량 100만 장 돌파)’를 이룰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