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챌린지
래퍼 릴 핌프는 북미 음악시장에서도 가장 강력한 SNS 파급력을 가진 아티스트다.
2023년 5월 현재 그의 SNS 팔로워는 총 2800만 명. 비슷한 체급 가수들의 팔로워 수가 대부분 1000만 명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릴 핌프는 기형적이라 할 만큼 많은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 셈이었다.
그가 이토록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게 된 것은, 물론 키치하고 중독성 있는 음악 덕분이기도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상상의 범주를 뛰어넘는 기행 때문이었다.
그가 SNS에 업로드하는 게시물들은 하나같이 화제거리를 만들어 왔다. 사파리에서 본 캥거루의 근육에 매료되어 자신도 캥거루 같은 몸을 만들겠다며 시작한 ‘캥거루 점프 챌린지’는 전세계인들의 조롱거리가 됐다.
[핌프 인스타에 또 병신 같은 릴스 올라옴]
[(빵 터지는 이모티콘)]
[시벌, 캥거루 점프 챌린지가 대체 뭔데?]
[저 티라노처럼 앞다리 팔랑대면서 점프하는 동작이 너무 열받음]
[점프만 하면 그래도 애니멀플로우 운동 같은 거라고 생각하겠는데 식습관까지 캥거루 따라하는게 진짜 개킹받는 포인트다]
[옆에 트레이너도 돈으로 고용된 인간이라 아무말도 못하고 박수만 치는거 봐라]
[아니 저런 빡대가리가 왜 이렇게 유명하고 왜 이렇게 돈을 많이 버는건데]
[니 말에 정답이 있음. 핌프는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골때리는 빡대가리라서 돈을 많이 버는거임. 돈을 벌기 위해서 꼭 똑똑할 필요는 없다고]
[후 더 열받는건 우리동네 급식이들이 캥거루 점프 시작했다는 것임]
[진짜 온 세상이 핌프다 아주]
작년에는 술에 취한 채 코로 하모니카를 부는 영상을 업로드했다가, 하모니카 언저리에 묻은 하얀 가루 때문에 경찰 조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
[핌프가 코로 하모니카 부는 영상은 아직도 본다]
[그거는 진짜 언제 봐도 저항없이 빵터짐]
[경찰 조사받았는데 그 하얀거 코카인이 아니라 슈가도넛 가루였다며]
[병신이지만 은근히 선은 안 넘는 새끼]
[그쉑 경찰차 안 탈라고 깝치다가 테이저건도 맞았다며]
[하긴 테이저건 한번쯤은 맞아야 어디 가서 래퍼라고 할수 있지]
[오 한국에도 테이저건을 맞은 래퍼가 있는데 한번 볼래?]
[ㄴ나 그거 뭔지 알아. 엄지손가락처럼 생긴 한국인이 테이저건을 맞으면서 쓰러지는 영상임]
물론 귀여운 짓만 한 것은 아니다. 플라스틱 절감 캠페인이 불만이었는지, ‘난 앞으로도 플라스틱 졸라 쓸 거임’이라는 내용의 릴스를 업로드한 적도 있었다.
[Yo, 들어봐. 플라스틱 플라스틱 자꾸 오두방정들 떠는데 난 내가 사고 싶은 거 사고 쓰고 싶은 거 쓸 거임. 플라스틱 못 쓰게 하고 싶으면 플라스틱을 팔지 말라고. 세상 어딜 가든 다 플라스틱이 있는데 왜 나한테만 지랄인데? 그리고 따지고 보면 이 책 커버도 플라스틱 아님? 플라스틱으로 된 책은 읽으라고 하고, 플라스틱 그릇은 쓰지 말라? 존나 싫은데?]
물론, 이 영상은 업로드 하루 만에 전 세계인들의 조롱 폭격을 받았다.
[핌프가 핌프했다]
[쟤네 집엔 진짜 플라스틱으로 만든 북 커버가 있는 거야?]
[핌프야 딱딱하다고 전부 다 플라스틱이 아니란다. 그건 재생지로 만든 하드 커버라고.]
[어떻게 저 책 표지를 플라스틱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펑펑펑펑펑펑 (핌프 어머니 속 터지는 소리)]
[릴 핌프가 전세계에 주는 교훈 : 멍청한 소리를 당당하게 하면 얼마나 없어 보이나 알게 해 줌]
[쟤가 저 지랄 하니까 든 생각 : 나라도 플라스틱 사용량 줄여야겠다]
[원래는 플라스틱 소비에 대해서 별 생각 없었는데 릴 핌프를 보면서 생각이 바뀜. 난 릴 핌프처럼 되고 싶지 않아···]
[세계 최고의 반면교사, 스스로를 불살라 환경운동을 실천하시는 열사 릴 핌프]
의도야 어찌 됐든, 릴 핌프는 종종 SNS로 긍정적인 영향을 만들기도 했다. 플라스틱에 대해 이야기한 포스트는 엄청난 수의 ‘싫어요’를 받았으나, 그 멍청한 모습을 반면교사 삼아 플라스틱 절약 캠페인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도 많았으니.
이렇게 한달이 멀다 하고 SNS로 온갖 창조논란을 만드는 캐릭터였으니 팔로워 수가 많은 것이 당연했다.
그 창조논란의 요람에서 릴 핌프가 7IN을 직설적으로 언급했다. 2800만의 팔로워들이 7IN의 이름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칠린? 얘네는 또 뭐임?]
[핌프를 저격했다고? 뭐 때문에?]
[아마 빌보드 조작 사태 때문인 것 같은데]
[누군진 몰라도 시원하긴 하네. 북미 아티스트들 평상시엔 깨시민인 척 계몽된 척 다 하는데 정작 CB뮤직 앞에서는 조용한거 졸라 황당했는데]
[근데 진짜 저격한 거 맞음? 어디서 볼 수 있는데?]
[(URL 주소) 이 링크 타고 들어가면 정리된 자료 볼 수 있음.]
[나 얘네 <다이너스티>에서 봤음. 실력 있고 재능 있는 애들이야. 근데 딱히 호전적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릴 핌프랑 맞짱을 떠? 이건 재미있는데]
[뮤비 조회수 올라가는 속도 보소]
[핌프의 펌프질]
[핌프야 너 혹시 얘네 팬인 거 아님?]
[언급하자마자 음원 떡상중인데?]
라디오를 중심으로 천천히 올라가던 인지도에 릴 핌프의 SNS가 불을 붙였다.
7IN을 역저격하기 위해 SNS에 영상을 올린 릴 핌프였지만, 언제나처럼 그의 SNS는 원래의 목적과는 다른 결과물을 만들었다.
릴 핌프의 SNS에 언급된 뒤, <사냥의 시간>의 빌보드 차트 순위는 무려 17위까지 뛰어올랐다.
또 한번의 예상치 못한 반등, 솔라시스템과 7IN 멤버들의 숙소가 축제 분위기가 된 것도 당연했다.
“형들, 형들, 형들아—!! 우리 지금 빌보드 17위에여—!!”
“미친 거 아냐? 왜 이렇게 오르는 건데?”
“그 릴 핌프라는 래퍼가 인스타에서 우리 언급하고 또 이렇게 떡상한 것 같아.”
“이러다가 우리 진짜 10위권 안으로 들어가는 거 아니냐?”
“···에, 에이··· 서, 설마요···.”
“아하하하핫, 이왕 노릴 거면 1위를 노리자구~”
“진입한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는데 벌써 17위··· 진짜 이건 너무 꿈 같은데··· 내가 작곡한 노래가 빌보드 17위라니···.”
모두가 기뻐해 마지않았지만 유찬만큼은 걱정이 되는 듯한 눈치였다.
“···그, 그런데 괜찮을까요···.”
“음? 뭐가?”
“···그, 그 릴 핌프라는 사람··· 화 많이 난 것 같던데···.”
“아, 그런 것 같긴 하더라.”
“···지, 지금이라도 제대로 해명 안 하면···.”
그러나 멤버들과 솔라시스템 기획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여기서 해명하면 이 떡밥이 너무 재미없게 식을 것 같은데. 좀 더 일을 벌려 볼 수 없을까? 팀장님, 괜찮을까요?”
“흐음··· 아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의 행적으로 미루어 보건대, 릴 핌프는 확실히 이상한 자이긴 하지만 여러분에게 위해를 끼칠 만한 인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제 생각도 그래여. 뭔가 이상하게 빙구 같은 게 호감 간단 말이져.”
“저 손에 들고 있는 총도 자세히 보면 플라스틱 모델 건이더라.”
“난 아직 판단 보류야. 아무튼 차트 조작 가수잖아. 작곡하는 사람으로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간이라고.”
“어쩌면 가수 몰래 이루어진 조작일 수도 있습니다. CB뮤직은 이미 전과가 있는 소속사더군요. 비슷한 방법으로 차트 조작을 시도했다가 소속 가수와의 마찰로 계약 해지 소송을 벌인 케이스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 떡밥을 여기서 종결하기엔 아쉽다는 데엔 모두가 동의하는 거죠? 유찬이 빼고?”
“···저, 저도 형들이 그렇게 생각하시면···.”
“그래 유찬아! 쫄 거 뭐 있냐! 이왕 이렇게 된 거, 진짜 빌보드 10위권 노려 봐야지.”
그렇게 의견을 모은 멤버들은 릴 핌프의 SNS 영상에 대한 대응을 계획했다.
작곡가 지현수는 릴 핌프의 에 <사냥의 시간>을 메쉬업한 짧은 음원을 준비했다. 의 시그니쳐인 강렬한 808 드럼과 베이스라인에 <사냥의 시간>의 메인 멜로디가 얹히자, 중독성 강한 메쉬업 음원이 뚝딱 하고 만들어졌다.
“진짜 지현수 이럴 때 보면 천재 같다니까. 나도 좀 가르쳐 주라.”
“너가 벤치프레스 120kg 드는 방법 가르쳐 주면 나도 가르쳐 줌.”
“가르쳐 주기 싫단 말을 그렇게 하냐···.”
음원이 만들어진 이후엔 군자가 나설 차례였다.
“군자 형, 검술은 자신있져?”
“두말 하면 잔소리다. 내 소싯적부터 검법이라면 무과의 수재들과 대련을 해도···.”
“그러면 형은 총알도 자를 수 있어여?”
“음? 무엇을 자르라고?”
“예전에 유튜브에서 봤는데, 어떤 검술의 달인이 날아오는 BB탄 총알을 칼로 잘라 버리더라구여. 혹시 형도 가능한가 싶어서여.”
“후후, 나의 검이 가르지 못하는 것이 있을 성 싶더냐.”
현재의 아이디어는 장난스러웠지만 꽤나 그럴싸했다. BB탄 총알을 칼로 양단하는 퍼포먼스로 챌린지를 만들자는 것.
챌린지 자체만으로도 임팩트 있고 한번쯤 따라해 보고 싶은 내용인데, BB탄 총알을 자르는 행위에는 릴 핌프의 장난감 총을 위트 있게 디스하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난 이 아이디어 재미있는 것 같아.”
“나도. 군자가 총알 자르기에 성공만 한다면 말이지.”
“그럼 일단 총부터 사 와야겠네요?”
“나 총 있어.”
“?”
“인혁이 형···?”
“멕시칸 갱 의혹에 다시 불 붙나요?”
“···에어건 모으는 취미가 있을 뿐이야···.”
“그거 BB탄 총은 확실하죠?”
“당연하지. 맞아 볼래?”
“아니··· 그런 동굴 목소리로 그런 무서운 말 하지 말라고요···.”
BB탄 총알이 발사되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멤버들은 안심하며 군자를 인혁 앞에 세웠다. 조준을 마친 인혁이 군자에게 신호를 보냈다.
“군자, 이제 쏜다.”
“예 형님. 얼마든지 쏘십시오.”
칼로 무언가를 자른다는 것엔 자신이 있는 군자였다. BB탄이란 것은 제법 작았으나, 어찌 됐든 칼날에 걸리기만 하면 분명 양단될 터.
파아앙—.
그러나, 군자는 BB탄 총알이 얼마나 빠른지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앗, 따갑구나—!!”
“헉, 군자야!”
결국 첫 발은 자르지 못하며 손등에 총알을 맞아 버린 군자였다. 허둥지둥 군자에게 달려간 인혁이 어쩔 줄 모르며 군자의 손등에 입김을 불었다.
“호오, 호오—.”
“형님···.”
“미, 미안···.”
“푸하하학, 군자 운다.”
“우는 것이 아니라 눈물이 맺힌 것이다. 정말로 따갑단 말이다···.”
“후으음, 아무래도 이 챌린지는 넘 무리수인 것 같아여. 다른 걸 생각해 보는 게—.”
“아니, 아니다.”
현재는 다른 아이디어를 떠올려 보겠다고 했지만 군자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첫 시도는 실패했지만, 날아오는 총알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빠른 총알의 속도에 당황했으나 적응만 한다면 자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었다.
“한번 더 시도해 보자꾸나.”
“괜찮겠어여?”
“물론이지. 군자(君子)에게 인내란 당연한 덕목이다.”
오랜만의 3인칭 화법을 날리며, 군자가 다시 한번 발도 자세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