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213화 (213/303)

#213

NCN 방송국에서

미국 시장 진출, 한때는 모든 아이돌들에게 꿈 같은 일이었다.

시대가 달라지고 K-POP의 위상이 치솟으며 이제는 예전보다 미국 시장 진출이 한결 쉬워졌다지만, 그럼에도 세계 대중음악의 중심지인 북미에 진출한다는 것은 커다란 상징성이 있었다.

빌보드 HOT 100 차트 1위를 차지한 루나틱처럼, 전미 투어를 돌며 모든 회차 콘서트를 매진시켰던 벨로체처럼.

7IN 역시 언젠가는 미국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 있었다. 국내에서 보다 확실한 입지를 다진 뒤, 중소규모의 공연 투어부터 시작하여 북미 지역에서의 인지도를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물론 <다이너스티>를 통해 이미 많은 외국 팬을 확보한 7IN이었지만, 현지에서 팬들과 직접 만나며 쌓아 올린 팬덤은 파괴력이 다르다. 루나틱의 빌보드 차트 1위 기록 역시 북미 현지에서 꽤 여러 번의 공연과 방송 출연을 통해 인지도를 쌓은 결과였다.

그렇게 북미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확보한 다음에야 출연 가능한 것이 <데이빗 펠런 쇼>다.

그러나 7IN은 달랐다. 미국 활동이라곤 휴가철에 놀러가 맥주 축제를 즐긴 기억밖에 없는데, 최고의 토크쇼라는 <데이빗 펠런 쇼>에 초대받았다. 모든 빌드업을 끝낸 뒤에야 받을 줄 알았던 초대장이,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날아든 거다.

그 누구보다 7IN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던 소속사 솔라시스템 임직원들조차 이 제의에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사칭범은 아닌지, 섭외 연락이 잘못 들어온 것은 아닌지, ‘고려 중’이 아닌 확실한 ‘섭외 요청’인지.

몇 번이고 미국 측 실무자를 피곤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일관적이었다.

<데이빗 펠런 쇼>는 7IN을 원하고 있다. 특히, 호스트이자 미국 방송업계에서도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인물 중 하나인 데이빗 펠런이 7IN에게 강력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솔라시스템은 빠르게 멤버들을 소집하여 의견을 물었다.

“여러분들, 모두 데이빗 펠런 씨의 SNS는 보셨을 겁니다.”

“넵, 봤습니다.”

“근데 그거 그냥 농담 아니었어여? 그 분 원래 SNS로 장난 많이 치시던데···.”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미국 NCN <데이빗 펠런 쇼> 제작진 측에서 공식으로 섭외 요청을 보내 왔습니다.”

“!”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북미 최고의 토크쇼에 출연할 기회를 얻은 겁니다.”

서은우 팀장이 말을 맺기 무섭게 소년들은 서로를 얼싸안으며 무언의 환호성을 질렀다. 특히 미국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생활한 인혁의 얼굴에 꽃이 피었다.

“혁이 형! 오늘 너무 방글방글인데여?”

“내가 정말 좋아하던 토크쇼야.”

“그럼 좀 더 기뻐해 봐여! 막 소리도 지르고!”

“야호.”

“좀 더 크게! 진짜 신나는 만큼!”

“야, 야호—!!”

격한 감정표현에 인색한 인혁조차 그 굵은 목소리로 함성을 지르며 기쁨을 표현했다. 한국 아이돌이 <데이빗 펠런 쇼>에 출연한다는 것은 그만큼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7IN의 출연엔 두 가지의 조건이 붙었다.

“펠런 쇼 출연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정규 1집 타이틀곡인 <사냥의 시간>을 포함한 총 세 개의 넘버를 직접 공연해야 합니다.”

“그거야 뭐, 오히려 땡큐죠!”

첫 번째 조건은 오히려 소년들이 반길 만한 내용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토크쇼에서 7IN의 퍼포먼스를 펼쳐 보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북미 지역에서의 인지도는 수직상승할 터였다.

하지만 문제는 두 번째 조건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조건입니다. 여러분들은 래퍼 릴 핌프와 함께 토크쇼에 출연해야 합니다.”

“···으으, 역시···.”

서은우 팀장이 조심스레 밝힌 두 번째 조건에, 소년들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쩝, 좋긴 좋은데··· 역시 SNS 어그로 때문에 섭외된 건가 보네여.”

“그런 건 아닙니다. 데이빗 펠런 씨는 전부터 7IN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데이빗 펠런 쇼는 출연자 섭외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물론 릴 핌프와의 비프가 주된 이유이긴 하겠으나, 단순히 그 이유 하나만으로 섭외된 것은 결코 아닐 겁니다.”

이어진 서은우 팀장의 설명에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무슨 유튜브 컨텐츠도 아닌데 SNS에서 어그로 좀 끌었다고 섭외하진 않았겠져!”

“맞아. 그리고 어그로 때문이면 어떠냐? 나가서 실력 제대로 보여주고, 전부 다 우리 팬으로 만들어 버리면 되지.”

패기 넘치는 태웅의 발언, 소년들은 모두 동의한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오늘은 태웅이가 참으로 옳은 소리를 하는구나.”

“뭐야, 뭐 언제는 옳지 않은 소리만 한다는 듯이 말하냐.”

“거 사람 참 소인배 같기는. 칭찬이다, 칭찬.”

“아오, 저 놈의 소인배··· 한 중인배 까지만 승급시켜 주면 안 되니?”

어쨌거나, 멤버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릴 핌프와 함께 방송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그런 부담감 때문에 이 좋은 기회를 마다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럼 저희 다 같이 미국 가는 건가여!?”

“그래야죠. 이번엔 동부로 갑니다. NCN 방송국이 보스턴에 있거든요.”

“우왕, 동부는 또 서부랑 완전 다른 분위기라던데!”

“그럼 촬영 일정은 어떻게—.”

“내일 모레입니다.”

“예에에—!?”

“SNS 트렌드는 하루가 다르게 바뀝니다. <데이빗 펠런 쇼> 측에서도 이슈가 식기 전에 방송을 내보내고 싶은 모양이에요.”

“내일 모레면··· 그래도 방송 일정은 없는 날이네요.”

“근데 군자 형아, 표정이 왜 그렇게 안 좋아여?”

“끄응··· 그 날은 나우리 선배님과 낚시를 가기로 한 날이거늘···.”

“아이, 한 번만 미룹시다. 나우리 선배님도 이해해 주실 거예여!”

뜻밖의 미국행은 그렇게 순식간에 성사됐다.

그 때까지만 해도, 소년들은 <데이빗 펠런 쇼> 출연이 그들에게 어떠한 선물을 가져다 줄 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보스턴에 위치한 NCN 방송국 스튜디오는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했다.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진 방송사답게 메인 스튜디오 건물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구축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석조로 건축한 다소 비효율적인 양식의 새하얀 건물이 오히려 더 큰 위압감을 자아냈다.

이역만리 타지를 밟은 순간부터 우리는 문화 사절단이다. 우리의 행동이 K-POP을, 그리고 우리 나라를 대표함이야. 비행기에서부터 백 번도 넘게 다짐한 군자였으나, 처음 보는 스케일의 방송국에는 정신없이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오오, 이건 마치 방송의 신을 모시는 사당 같구나!”

연신 감탄사를 터뜨리며 이곳저곳을 돌아보다 보니, 어느새 발걸음은 <데이빗 펠런 쇼>를 녹화하는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기본적으로는 컴팩트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토크 예능이지만, 공연을 펼치는 가수들을 위해 꽤나 넓은 스테이지까지 갖춘 최신식의 스튜디오였다.

소년들이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호스트 데이빗 펠런이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정말 보고 싶었어요!”

이 분이 서방 방송계의 대표적인 벼슬아치렷다.

현재와 현수의 말을 들으니, 대략 좌의정 정도는 되는 분 같았다.

군자 역시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데이빗 펠런에게 인사를 건넸다. 꽤나 자연스러운 억양의 영어 인삿말은 덤이었다.

“반갑습니다. 유군자라고 합니다.”

자신의 약점이 영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부터 군자는 꾸준히 영어를 공부해 왔다. 워낙 언어 감각과 암기력이 뛰어난 군자였기에, 이제 간단한 회화와 의사 전달 정도는 문제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하는 군자를 보며 데이빗 펠런은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Oh···.”

평소에는 위트 있고 장난기 많은 모습이지만, 촬영 전에는 항상 게스트에 대한 공부를 철저히 하는 데이빗 팰런이었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이 그룹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를 가진 멤버가 바로 유군자였다. 가장 ‘한국적인’ 모습으로 팬들에게 사랑받은 유군자인 만큼, 서구 문화에 대한 이해도는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군자는 영어로 의사소통 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음성과 몸가짐, 표정에선 고급스러운 분위기마저 풍겼다.

그 기품 있는 모습에, 오히려 호스트인 데이빗 팰런이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참 묘한 친구구나.

이 장소가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듯 눈빛엔 호기심이 가득하지만, 또 몸을 움직이는 모습과 미소를 짓는 방법, 풍부한 공명의 부드러운 음성과 어조는 영락없는 귀족의 방식 아닌가.

보통 데이빗 팰런 쇼에 출연한다고 하면 어떻게든 협찬이라도 받아서 명품을 몸에 걸치고 나온다. 하지만 군자를 비롯한 소년들의 옷차림은 단정하고 수수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깔끔하고 정제된 복장을 갖춰 입으니, 포인트로 착용한 한국적인 악세사리가 더욱 눈에 잘 들어왔다.

한편, 그런 유군자의 맞은편에 앉은 또다른 게스트인 릴 핌프 역시 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손가락 마디마다 금붙이가 번쩍였다. 목에는 다이아몬드가 주렁주렁 달린 커다란 목걸이 여러 개를 겹쳐 찼고, 실내였음에도 커다란 선글라스를 썼으며, 치아에도 휘황찬란한 그릴즈를 끼워 앞니가 전부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온 몸을 비싼 장신구로 치장한 릴 핌프는 적대적인 자세로 7IN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이 새끼들이 날 저격한 그 새끼들이란 말이지?

그 중에서도 그의 시선이 가장 많이 집중된 곳은 군자였다.

딱 봐도 저 놈이 대장이구만.

게토 출신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저 유군자라는 놈이 저 망할 집단의 수장이라고. 아직 녹화는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릴 핌프는 먼저 군자의 기를 죽여 놓을 생각이었다.

“헤이.”

“?”

넌지시 군자를 부른 릴 핌프가 양손의 금반지를 보이며 씨익 웃었다.

“어떠냐? 멋지지?”

“···.”

“이게 다 랩 머니로 벌어서 산 거라고. 저 바닥에서부터 바득바득 기어 올라왔지. 아마 넌 상상도 못할 걸?”

“···.”

군자 역시 릴 핌프의 손이 멋지다는 듯, 꽤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확실히 멋집니다.”

“후후, 보는 눈은 있구만.”

“과거 우리 나라엔 논개라는 훌륭한 기생이 있었지요. 적의 장수를 끌어안고 투신하여 보국(保國)에 힘쓴 훌륭한 분입니다.”

“···갑자기 뭔···.”

“그 분께서도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우셨습니다. 적장을 끌어안은 손이 풀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지요.”

“?”

“당신도 두 손에 가락지가 가득한 것을 보니 아마 기생이신가 봅니다.”

“??”

“반갑습니다, 서방의 기생이여. 저는 예로부터 기생들과 깊은 관계를 맺어 왔답니다.”

“What the Fxxx···.”

군자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지만, 데이빗 팰런은 그 순간 직감했다.

결코 쉽지 않은 하루가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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