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뭐 이런 멋진
Ki-saeng?
What the fxxk is that?
생전 처음 듣는 단어 기생, 릴 핌프의 고개가 통역사 쪽으로 휙 돌아갔다.
“지금 쟤가 나한테 ‘기생’이라고 한겨?”
“그, 그게···.”
“기생이 뭔데?”
통역사는 그 단어의 뜻을 알고 있었지만 차마 번역할 수 없었다.
통역의 기본은 어렵지 않고 친근한 단어를 사용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것. 하지만 릴 핌프가 잘 아는 단어 중에 ‘기생’과 비슷한 의미의 단어는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Bxxch, 한때 미국 래퍼들이 사랑해 마지않던 그 나쁜말. 단어가 떠오르자 식은땀은 두 배가 됐다.
그러니까 ‘당신은 Bxxch 같습니다’ 라고 번역하라는 거잖아···.
통역사가 필사적으로 대체 단어를 생각하는 와중에도 군자와 릴 핌프 사이의 대화는 이어졌다.
“하하, 논개는 조선 역사에서도 가장 유명한 기생이지요.”
“유명한··· 키-쎄엉?”
“키-쎄엉이 아니라 기생입니다, 기생.”
“젠장, 그러니까 그게 뭔데. 유명한 기생이라고? 좋은 건가?”
다시 한번 자신을 향해 꽂히는 릴 핌프의 시선에, 통역사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척 눈을 감았다.
유명한 기생이라고? 그럼 이건 Famous Bxxch라고 번역해야 하나?
아니지, 절대 안되지. 여기는 데이빗 펠런 쇼라고.
눈을 질끈 감은 통역사는 자신의 통역 인생을 걸고 머릿속을 뒤졌다. 끝내 완벽한 답은 찾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적어도 Bxxch보다는 온건하며 보다 ‘기생’의 원 의미에 가까운 단어 조합을 떠올리는 데엔 성공했다.
“기생 means Korean geisha.”
“What the···.”
Bxxch보다는 한결 순화된 번역이었음에도 릴 핌프의 미간은 일그러졌다.
게이샤라고? 이 블링블링한 금붙이들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이 새끼, 너 완전 돌아이였구나?”
“하하, 활동 초창기에 참 많이 듣던 소리네요.”
“그래 자식아, 그럴 만 했네! 푸하핫.”
그러나 릴 핌프는 어느새 군자를 보며 웃고 있었다.
사나운 놈들 천지라는 애틀랜타 힙합씬에서 데뷔한 릴 핌프였다. 이제는 빌보드 차트 최상단에서 놀 만큼 인지도 있는 래퍼가 됐지만, 언더그라운드 활동을 하면서부터 온갖 양아치들을 만나 왔기에 그들의 속성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가사에서는 꼭 누구를 잡아 죽일 것처럼 어금니를 드러내다가 막상 얼굴을 맞대면 세상 순한 양이 되는 놈들도 많았다. 욕보다도 그 이중적인 태도가 더 역겹고 멋이 없었다.
그러나 이 7IN과 유군자라는 놈은 달랐다. 디스도 디스지만, 만나자 마자 면전에 게이샤 같다고 선빵을 갈기다니. 또라이 같긴 하지만 확실히 앞뒤 다른 뱀새끼들보다는 훨씬 나은 또라이잖아?
순간 호감이 싹틀 뻔한 릴 핌프였지만 이내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도리질을 하자 머리에 달린 충무김밥 같은 드레드 헤어가 함께 흔들리며 7IN 멤버들을 당황케 했다.
“어이쿠, 핌프 공. 괜찮으십니까?”
“몰라 이 새끼야, 나한테 말 걸지 마.”
고개를 휘저으며, 릴 핌프는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호감은 지랄, 이 자식들은 날 디스한 쓰레기들이다. 오늘은 그 가짜 챌린지의 실체를 까발리기 위해서 여기 나온 거고.
그러나 군자는 릴 핌프가 은근히 마음에 든 눈치였다.
“핌프 공, 핌프 공.”
“···.”
“핌프 고옹—!!”
“뭐 임마.”
“그 길쭉하고 묘한 상투는 어디서 틀으셨소?”
“Sang-tu? 그건 또 뭔데?”
“그 머리를 질끈 묶은 모양새 말이오. 형형색색의 상투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그려.”
그렇게 말하며 군자는 흐뭇하게 웃었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도 이젠 상투 하는 관습이 사라졌는데, 이역만리 타국에서 상투를 한 외국인이 있다니.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이렇게 여러 개를.
“내 핌프 공에 대한 첫인상이 과히 좋진 않았소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이렇게 직접 면대면으로 만나니 꽤 괜찮은 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그건 나도···.”
“오, 핌프 공도?”
“아니! 닥쳐 새꺄, 말 좀 걸지 마!”
그렇게 말하곤 릴 핌프는 아예 7IN과 등을 져 버렸다. 데이빗 펠런이 쇼를 진행하기 전까진, 더 이상 7IN과 대화를 하지 않기로 한 릴 핌프였다.
그런 두 팀을 보며 데이빗 펠런은 알게 모르게 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애초에 이 두 팀을 섭외하기로 한 것은 데이빗 펠런의 아이디어였다. 두 팀을 한 스튜디오에 부르면 어떤 그림이 나올지 궁금했으니까.
세간엔 릴 핌프의 이미지가 딱히 좋지 않았지만, 이미 <데이빗 펠런 쇼>에서 릴 핌프를 세 번이나 만난 데이빗 펠런은 알고 있었다. 그는 악인이라기보단 그냥 순수하고 백치미 넘치는 음악인이라는 것을.
이제 아이스브레이킹은 어느 정도 된 것 같았으니, 데이빗 펠런이 본격적으로 쇼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데이빗 펠런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SNS를 달구고 있는 가장 뜨거운 스타 두 팀을 모셨습니다.”
미국인들에겐 너무나도 친숙한 중저음의 인삿말과 함께 데이빗 펠런이 인터뷰를 시작했다.
초반의 뻔한 질문들이 무난하게 지나가고, 마침내 데이빗 펠런이 이 곳에 7IN과 릴 핌프를 동시에 섭외한 이유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거두절미하고, 여러분들이 가장 궁금해 하실 만한 주제를 꺼내 보겠습니다. 최근 SNS에서 칠린과 릴 핌프 사이의 비프가 화제였죠. 칠린의 유군자 씨가 시작한 ‘총알 가르기 챌린지’는 전세계적인 유행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 릴 핌프 씨도 그 챌린지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는데요.”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릴 핌프에게로 돌리자, 릴 핌프는 다리를 반대 방향으로 꼬며 거만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당연히 할 말 많지. 아마 모두가 다 알 텐데?”
“무슨—.”
“그 챌린지는 조작된 거야. 사람이 칼로 총알을 가를 수 있다고? 닌자 무비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님?”
“하하, 릴 핌프 씨는 역시 그 챌린지가 조작된 것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당연하지! 그런 개주작 챌린지에 전세계가 동조하다니,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릴 핌프의 어조는 강했지만, 그럼에도 군자는 맑게 가라앉은 호수 같은 표정으로 빙그레 웃으며 대응했다.
“핑프 공, 안타깝지만 그 영상은 조작이 아니오.”
“뭐 임마?”
“애초에 할 수 없다고 단정지어 버린다면 세상 모든 것이 거짓처럼 보이는 법이지요. 내가 어렸을 땐 사람이 하늘을 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하루에도 수백, 수천의 항공기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수송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너 어렸을 때 비행기 없었냐?”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십시오, 핑프 공. 끊임없이 수련한다면, 총알이 아니라 그보다 작은 빗방울도 가를 수 있답니다.”
“근데 이 자식이, 왜 아까부터 핑프래? 핑프가 아니라 핌프 임마!”
데이빗 펠런이 다시 마이크를 잡으며, 실랑이를 벌이는 두 사람 사이에 능숙하게 끼어들었다.
“자아, 이 갈등을 끝내기 위해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사회자 데이빗 펠런이 손짓을 보내자 스태프들이 준비된 소품을 들고 세트 위로 올라왔다. 날이 시퍼렇게 선 환도 한 자루, 그리고 릴 핌프가 평소에 가지고 놀던 에어건.
“이 칼은 조선의 검인 ‘환도’를 정교하게 재현한 레플리카입니다. 얼핏 ‘일본도’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엄밀히 따져 보면 디테일부터 다른 조선의 무기지요. 그리고 이건 릴 핌프의 에어건입니다. 티셔츠에 숨기기 좋은 사이즈의 ‘글록’ 모델로, 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경찰에게 네 번이나 조사받은 경력이 있다고 했죠.”
“그래. 하지만 경찰도 날 잡을 수 없지.”
“후후, 맞습니다 핑프 공.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귀여운 분을 누가 의금부로 데리고 가겠습니까.”
“귀, 귀엽다니 새끼야! 말 조심 안 하냐!?”
릴 핌프가 다시 한번 급발진하며 군자에게 에어건을 겨눴다. 군자 역시 당황하지 않으며 허리에 찬 환도를 꺼내 총알을 가를 준비를 마쳤다.
“자연스럽게 세팅이 된 것 같은데요, 그럼 지금부터 ‘총알 가르기 챌린지’를 재현해 봅시다!”
데이빗 펠런의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릴 핌프가 글록을 장전했다. 철컥, 하는 금속성의 장전음과 동시에 군자 역시 임전 태세에 돌입했다.
“푸하핫, 존나게 따가울 거다 새꺄—!!”
퍼어엉—.
유압기를 개조한 덕분에 릴 핌프의 에어건은 일반적인 에어건보다 훨씬 더 강한 힘으로 총알을 밀어냈다.
총알의 속도 역시 더 빨랐지만, 군자는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움직이는 총알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목표물인 유백색의 총알이 환도의 간격에 들어온 순간.
휘이익—!!
환도를 들고 있던 군자의 오른손이 섬광 같은 가로줄을 만들었고.
빠가각—.
군자를 향해 날아오던 총알은, 희끄무레한 두 개의 파편이 되어 불규칙한 방향으로 흩어졌다.
“···!”
“우오오—.”
“놀랍군요! 정말 놀랍습니다!”
마이크를 잡고 있던 사회자 데이빗 펠런부터 시작하여 청중, 스태프, 심지어 7IN의 동료 멤버들까지 모두 놀라는 반응이었다.
“···서, 성공했어요···!”
“우와 씨, 여기서도 해낸 거임?”
“총알 훨씬 빠르던뎅, 그게 보였어여?”
“아하하핫, 진짜 아이돌이 뭐 이래~”
방청석의 웅성임은 어느새 박수 갈채로 변해 가고 있었다. 쏟아지는 박수 소리를 향해 군자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곧 대형 모니터에 초고속 카메라 영상이 떠올랐다. 정밀하고 깔끔한 화질의 초고속 촬영이 가능한 고급 장비를 사용했기에, 영상이 조작인지 아닌지는 단번에 판별할 수 있었다.
“여러분, 이 영상은 방금 촬영한 겁니다. 그 어떤 편집도 없이, 원본 그대로를 플레이백 재생했습니다. 여기 이 시점에서, 유군자 씨의 칼날이 총알을 두 개로 쪼개 버리는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놀라운 재주입니다! 유군자 씨가 단 한 번의 시도 만에 ‘총알 가르기 챌린지’의 진위를 증명해 냅니다!”
박수 갈채는 멈추지 않았다. 모든 스태프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사실 이번엔 데이빗 펠런의 아이디어에 반대한 스태프들도 많았다. 아무리 화제가 되고 있다지만, 결국 그 내용은 장난감 총알을 가르는 기술이 진짜냐 가짜냐를 두고 벌인 논쟁이다. 세계 최고의 토크쇼에서 다루기엔 지나치게 유치하지 않냐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군자의 분위기와 눈빛, 그리고 그 놀라운 기술은 7IN의 섭외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스태프들마저 설득해 버렸다. 이제 군자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는 사람은 이 스튜디오에 딱 한 명, 릴 핌프 뿐이었다.
“···뭐 이런···.”
그러나 그는 분한 마음에 굳어 버린 것이 아니었다.
방금 총알을 두동강 낸 군자를 바라보며, 릴 핌프의 두 눈은 동경과 선망으로 빛나고 있었다.
“뭐 이런 존나 멋진 새끼가 다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