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216화 (216/303)

#216

이젠 나도 선비라고

<데이빗 펠런 쇼> 녹화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마지막에 주어진 퍼포먼스 시간엔 모두의 환호까지 이끌어 냈다. 거물 데이빗 펠런을 비롯하여 수많은 북미 방송 관계자들을 7IN의 팬으로 만든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끝난 듯 했으나, 군자에겐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무슨?”

“이곳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고, 장소를 옮길 수 있겠습니까.”

자못 심각한 군자의 표정에 릴 핌프도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혹시 나한테 총 같은 걸 팔려는 건 아니겠지? 미안하지만 난 그런 거엔···.”

“하하, 그런 것은 아니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웃으며 말한 군자였으나 표정은 여전히 진지했다. 분위기를 읽은 릴 핌프 역시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무슨 말이든 해 봐. 이제 우린 친구니까, 뭔 말인들 못 할까.”

“예. 나 역시 핑프 공이 나의 친우라 생각하여 하는 말입니다.”

충직한 간언(諫言)은 예로부터 선비의 소양 중 하나였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달콤한 말만 일삼는다면 그것은 선비가 아닌 간신배에 가까울 터. 이제 겨우 오해를 풀고 좋은 친구 사이가 된 두 사람이었지만, 군자는 그에게 쓴 소리를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핑프 공, 애초에 우리의 뮤직비디오는 당신을 저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 그건 나도 알겠어.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니까 그런 찐따 같은 저격이나 할 놈들은 아닌 것 같더라.”

“하지만 핑프 공의 음원이 성적을 내는 과정에서 모호한 부분이 있다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뭐?”

“쉽게 말해, 그 음악이 빌보드 1위로 올라가는 동안 ‘음원 조작’ 정황이 보였다는 뜻입니다.”

군자의 직언에 릴 핌프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게 뭔 개소리야? 그러니까 네 말은, 내 음악이 사실 빌보드 1위를 할 만한 음악이 아니라는 소리냐?”

“그렇지 않습니다. 핑프 공의 음악은 참으로 원초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다른 언어로 만들어졌지만, 가사와 무관하게 사람을 흥겹게 만드는 힘이 있지요.”

“그, 그래? 근데 왜 갑자기 그딴···.”

“그렇기에 더더욱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

“정정당당하게 승부해도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음원에 잡스러운 사술(邪術)이 개입했다면, 그래서 멋지게 1위를 차지할 기회를 앗아가 버렸다면?”

“···.”

“그렇다면 핑프 공의 입장에서도 억울한 일 아니겠습니까.”

“···.”

릴 핌프는 심기가 불편해 보였지만, 딱히 군자의 말을 막을 생각은 없다는 듯 침음을 흘리며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솔직히,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나 역시 핑프 공을 의심했습니다.”

“뭐 임마?”

“핑프 공이 나의 재주를 의심했듯 말이지요.”

“그, 그거야 뭐··· 그래, 직접 보기 전까지는 의심할 수 있지.”

“하지만 핑프 공을 만나 보고, 대화를 나눠 보니 알 것 같았습니다. 이 사람은 바보 같이 망할 때 망할지언정, 치사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할 인물은 아니라는 것을요.”

“···그래? 그거 칭찬 맞지?”

“물론입니다. 핑프 공, 제가 감히 예측해 보건대··· 핑프 공의 음원 발매와 홍보 일체는 소속사에서 담당 중일 겁니다. 맞습니까?”

“그렇지.”

“핑프 공은 그들을 믿고 음악 외적인 업무를 일임했을 것이고요.”

“그래, 맞아. 우리는 가족이나 다름없어. 이 바닥에 뛰어든 뒤로, 그 놈들을 의심해 본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고.”

“···그렇군요.”

소속사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없다는 릴 핌프의 말을 듣자 군자의 표정이 괴롭다는 듯 일그러졌다.

이토록 순수한 자의 믿음을 더럽혀야 한다니!

어쩌면 주제 넘는 참견일지도 모르겠다. 이 간언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자는 참견하기로 했다. 이 순박한 청년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친구로서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핑프 공, 어쩌면 그들이 음원 조작에 가담했을지도 모릅니다.”

“···뭐 이 새끼야?”

“정황이 너무도 의심스럽습니다. 검증해 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내겐 가족 같은 사람들이라고. 못 알아들어? 그 놈들을 의심하라는 건—.”

“나는 유일한 혈육인 가족에게도 배신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

“모두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키우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했지요. 그렇기에 답답하고 괴로워도 참고 견뎠습니다. 그러나 먼 훗날 알게 됐습니다. 나쁜 마음엔 선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가족조차도 배신할 수 있다는 겁니다.”

조용히 군자의 말을 듣고 있던 릴 핌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내 소속사 놈들이 나 몰래 뭔가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

“예.”

“시발, 거 더럽게 단호하구만···.”

길게 한숨을 푹 내쉰 릴 핌프가 약간은 슬픈 눈으로 군자를 바라보았다.

“그래 썅, 이 판국에 뭔 말을 못 하겠냐.”

“예, 핑프 공도 무슨 말이든 하셔도 됩니다.”

“솔직히 나도 의심하지 않았던 건 아니야. 온 세상 사람들이 죄다 주작 주작, 아가리를 털어 대는데 나도 신경을 안 쓸 수가 있어야지. 껄쩍지근하긴 했지만, 그냥 믿었어. 아니, 믿고 싶었지.”

“이해합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요.”

“빌어먹을, 이렇게 다 쏟아 놓고 나니까 좀 후련한 것 같기도 하구만.”

“···.”

“솔직히 아직 믿고 싶은 마음이야. 그 새끼들, 손바닥 만한 작업실에서 같이 믹스테이프 만들 때부터 나랑 함께해 온 친구들이란 말야. 양아치 기질이 있기는 해도, 적어도 서로 통수 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 분들을 비호하는 건 아닙니다만··· 어쩌면 그 분들도 핑프 공을 위해 그렇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뭐 그랬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딴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냐. 진짜 날 생각한다면 그딴 병신짓은 하면 안 됐지.”

잠시 감상에 빠져 있던 릴 핌프는 이내 자신의 뺨을 짝짝 두들기며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그래, 젠장맞게 고맙다. 말이 좀 거칠게 나가긴 하는데, 진심이야. 지금까지 내 주변엔 너처럼 돌직구 던져 준 놈이 없었어. 그래서 더 멍청하게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아닙니다. 혹여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됐어, 사과는 무슨··· 하지만 일단 사실 관계는 확실히 해야겠지. 아직은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있는 건 아니니까.”

“맞습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지요.”

“좋아, 일단 회사로 돌아가서 어금니 꽉 깨물고 사실관계부터 밝혀야겠어.”

“만약 그 분들이 음원 조작에 가담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땐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군자의 질문에, 릴 핌프는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쿨하게 대답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끝이지.”

“···.”

“안타깝지만, 그런 실수를 눈감아 줄 수는 없어. 그게 사실이라면 그 놈들은 내 명예에 먹칠을 한 거라고. 오직 나만이 내 명예에 똥칠을 하고 다닐 수 있어. 게다가 그 와중에도 폼 안 나는 짓거리는 한 적 없다고. 젠장, 음원조작이라고? 당분간은 쪽팔려서 면상 쳐들고 돌아다니지도 못하겠구만!”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는 릴 핌프에게 군자가 조심스레 제안을 건넸다.

“핑프 공,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이번 음원으로 벌어들인 수익 중 일부를 기부하는 겁니다. 조작이 핑프 공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밝힘과 함께, 수익금 일부를 사회에 환원한다면 충분히 멋진 마무리가 될 겁니다.”

“오오···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잠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던 릴 핌프는 이내 결정했다는 듯 손뼉을 짝 쳤다.

“좋아, 그럼 이번 음원 수익은 모조리 기부하겠어.”

“···?”

“일부 기부, 이것도 짜쳐서 별로야. 이왕 하려면 화끈하게 전액 기부로 가야지.”

“비, 빌보드 1위 곡이라면 수익도 어마어마할 텐데···.”

“뭐? 괜찮아, 나 돈 많아.”

걱정하지 말라는 듯 쿨하게 손사래를 친 릴 핌프가 별안간 군자를 와락 안았다.

“에, 에그머니나!”

“Egg Money? 그건 또 뭔데? 아무튼 군자, 고마웠다. 너 아니었다면 앞으로 내내 멋대가리 없는 래퍼로 살 뻔 했어.”

“하, 하하하, 다행입니다.”

“우리 앞으로 종종 보자고. 알겠지?”

“좋습니다. 어머니께 안부 전화는 꼭 자주 드려야 합니다?”

“물론이지. 이제 나도 Seon-Bi라고.”

우정 가득 담긴 악수를 마지막으로 릴 핌프의 밴은 소속사를 향해 떠났다. 군자 역시 그를 기다리고 있던 멤버들에게로 돌아갔다.

“···구, 군자 형···!”

“야, 너 릴 핌프 차에서 뭐 했어!”

“그, 걔가 막 이상한 거 권유하고 그러진 않았지?”

“하하, 그런 일 없었다. 오히려 내가 먼저 대화 좀 하자고 요청했지.”

“그래여? 갑자기 무슨 대화를?”

“빌보드 차트 조작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미친···.”

“핑프 공 본인은 빌보드 조작에 개입한 것 같지 않았다. 아마도 회사의 소행으로 보이더구나. 그렇기에 회사 사람들을 의심해 보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아니··· 진짜로?”

“야, 그러다가 걔가 진짜 총이라도 쏘면 어쩌려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군주를 위해, 친우를 위해 할 말은 하는 것이 선비다. 게다가 진실을 말한다고 해서 그렇게 폭력적인 행동을 저지를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고.”

“그, 그건 그렇긴 했다만··· 그래도 뭔 그런 위험한 짓을 하냐··· 어휴, 실장님 아시면 너 엄청 혼날 걸.”

“아, 아뿔싸···.”

“아하하핫, 실장님께는 비밀로 해 드리지 뭐~”

“그래서, 핌프 형아가 뭐래여? 막 화 내여?”

“아니.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오, 진짜로?”

“처음엔 조금 당황한 것 같았지만, 이내 그도 인정했다. 그 역시 마음 속에 의심이 없진 않았더구나.”

“···하긴, 세상 사람들이 다 주작 주작 하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었겠어여.”

“다만, 워낙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었으니 믿고 싶었던 것이었겠지.”

“에효··· 그랬구나.”

“데뷔 초부터 함께 해 온 사람들이었다더라. 그러니 얼마나 믿음이 강했겠느냐.”

“에구··· 그 형도 좀 딱한 구석이 있네. 보니까 사람은 참 좋은 것 같던데.”

“아하하핫, 생각해 보면 우린 참 좋은 소속사 만났어~”

“것도 맞는 말이지. 서 팀장님은 아마 절대로 그런 일은 안 하실 듯?”

“그치. 뭐 사소한 거 하나도 다 우리한테 물어보고 결정하시잖아.”

새삼 좋은 소속사에 감사하게 되는 소년들이었다.

“그럼 이제 핌프 형아는 어떻게 될까여? 진짜 손절하려나?”

“글쎄, 조만간 뭐가 떠도 뜨지 않겠어? 아마 우리 한국 갈 때쯤엔 기사 뜨겠지?”

“손절 손절, 말이 쉽지 그렇게 가족처럼 지내던 사람이라면 연 끊기도 쉽지 않을 텐데···.”

우우웅—.

그 때, 군자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입력한 릴 핌프의 전화번호였다.

“안녕하시오, 유군자 전화 받았소이다.”

- 군자! 군자!

“핑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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