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
선비 한 명 추가요
“키야아—.”
“군자 노래는 진짜 언제 들어도 좋다니깐.”
“아하하핫, 한 곡만 더 해 줘~”
멤버들의 찬사가 끝난 뒤에도 스칼렛 홀의 박수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짝짝짝짝—.
“···짱이다···.”
다소 유치한 감탄사와 함께, 스칼렛 홀은 앉을 생각도 없이 계속해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어때? 어때? 죽이지? 데려올 만 했지?”
“그래··· 그러네···.”
“같이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막 샘솟지 않아?”
“같이 작업··· 그래···! 작업!”
업계엔 ‘윌리 그린’이라는 아명으로 더욱 많이 알려진 스칼렛 홀은 취향 까다롭기로 유명한 프로듀서였다.
돈은 스칼렛을 움직일 수 없었다. 상상하지도 못할 거대한 금액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윌리 그린’은 항상 본인의 취향과 느낌에 기반하여 작업 파트너를 선정해 왔다.
그렇게 윌리 그린의 눈에 들어 함께 작업한 아티스트들은 100% 성공했다. 80%도, 90%도 아닌 100%. 그 놀라운 성공률이 윌리 그린을 초일류 프로듀서로 만들었다. 그러나 업계 꼭대기에 오른 뒤에도 윌리 그린의 작업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심장을 뛰게 만드는 아티스트와 작업한다.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거물이라 해도 일은 받지 않는다.
언뜻 까다로워 보였으나, 반대로 스칼렛 홀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티스트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핌프, 나 아무래도 ‘덕통사고’ 당한 것 같다.”
“무, 뭔통사고? 술 먹고 차 몰았어?”
“아니··· 에휴, 관두자.”
“?”
“당장 유튜브 채널부터 구독해야겠어.”
지금 이 순간부터, 스칼렛 홀은 군자와 7IN의 모든 것을 낱낱이 알아볼 생각이었다.
“군자, 그리고 친구들. 내 무례를 사과해야겠어. 너희를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에, 아이돌 업계 전체를 비하하는 나쁜 말을 했어.”
“아닙니다. 홀 씨가 어떤 말을 하고 싶으셨던 건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의 색깔을 보여드리고 싶었고요.”
“너무, 너무 잘 봤어. 아마 근 3년··· 아니, 10년 동안 들었던 라이브 중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아니, 나는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데도 그 가사의 정서를 모두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니까. 군자, 너 노래는 대체 누구한테 배운 거니?”
“따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기루의 기생들이 소리를 내는 것을 보며 독자적으로 발성법을 연구했습니다.”
“역시··· 역시 그래서 이렇게 독특하고 예쁘게 가공된 거였어···.”
스칼렛 홀은 사랑에 빠진 눈으로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느새 그는 군자의 얼굴에 난 솜털 하나까지 사랑하게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릴 핌프에게 감사해야겠어. 평소엔 웬수 같은 놈이지만, 이렇게 멋진 친구들을 만나게 해 줬으니 그 동안의 모든 죄는 다 사해야겠지.”
“오, 그럼 지난 번에 빌린 20만 달러 안 갚아도 돼?”
“그래, 그러든가 말든가.”
“Yeah—!! 선비가 된 이후로는 좋은 일만 생기는구만!”
릴 핌프는 신이 난다는 듯 사방에 비눗방울 총을 쏘며 돌아다녔지만 스칼렛 홀은 비눗방울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시선을 7IN 멤버들에게 고정한 채 말을 이어 나갔다.
“저기, 있잖아···.”
“예, 홀 씨.”
“그··· 괜찮다면 말야, 내가 너희와 작업을 한번 해 보고 싶은데.”
“허업—.”
함께 작업해 보고 싶다는 스칼렛 홀의 말에 현수가 자신의 입을 텁 막았다. ‘윌리 그린’과 함께 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프로듀서 지현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위, 윌리 그린이랑 자, 작업을···.”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온 몸을 덜덜 떠는 현수였지만, 스칼렛 홀 역시 현수만큼 떨고 있었다.
“아, 물론 너희가 좋다면 말이지! 내가 제안한 일이니까, 스케쥴 같은 건 전부 내가 맞출 거야. 나 꽤 한가한 사람이라고. 아니, 한가하지 않더라도 다른 일들 다 미루고 이 프로젝트부터 했겠지만.”
“흐음—.”
“어때? 난 당장이라도 계약서 쓸 수 있는데.”
그러나 환희에 찬 현수와 달리 군자의 태도는 아직까지는 차분했다.
“흐음, 협업은 먼저 회사의 승인을 받아야···.”
“구, 군자야아.”
“음? 현수야, 왜 그렇게 오줌 마려운 강아지 표정을 하고 있느냐.”
“이, 일단 이건 오케이 하는 게 좋지 않을까아? 윌리 그린이라면 회사에서 반대할 일은 없을 걸···?”
“그렇다면 일단 전화를 해 보자꾸나. 홀 씨, 잠시 전화 한 통만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몇 시간이든 해도 괜찮아.”
스칼렛 홀에게 양해를 구한 뒤, 군자는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본국의 서은우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예, 유군자 씨.
“팀장님,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 예에, 며칠 전에도 본 것 같지만 어쨌거나 별 일 없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이후 이어진 군자의 설명을 들은 서은우 팀장은 충격을 받은 듯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 ···.
“팀장님?”
- 윌리 그린? 내가 아는 그 윌리 그린 말입니까?
“어, 예. 아마 맞을 겁니다.”
- 유군자 씨, 대체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요···.
“하하, 우리는 그냥 좋은 친구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그 좋은 친구가 우리를 여기로 인도했고요.”
- 그 윌리 그린이 여러분과 작업을 하고 싶어 한다고요··· 세상에···.
“예. 일단은 그렇긴 한데, 제가 보류했습니다.”
- 예에에?
“아무래도 솔라시스템 여러분들의 의견이나 계획도 있을 것이고, 함부로 외부 프로듀서를 끌어들이는 건···.
- 군자 씨이익—!!
처음으로 듣는 서은우 팀장의 삑사리에 군자도 깜짝 놀라며 스마트폰을 고쳐 잡았다. 스피커 너머로 그 목소리를 듣고 있던 멤버들도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티, 팀장님?”
-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흥분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 하지만 군자 씨, 그 제안은 무조건 수락해야 합니다. 윌리 그린과의 작업 기회는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닙니다. 일반적인 A급 프로듀서 섭외비의 100배를 써도 협업을 장담할 수 없는 프로듀서가 윌리 그린입니다. 이건 하늘이 내린 기회나 다름없단 말입니다.
“아하··· 알겠습니다.”
이제 이해했다는 듯 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윌리 그린, 즉 스칼렛 홀을 바라보았다.
“회사 측에서도 찬성하니, 함께 작업을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휴우우, 그것 참 다행이네. 좋아, 좋아.”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는데···.”
“음? 또 뭐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군자가 현수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제게 최고의 작곡가는 여기 제 친구 현수였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모든 노래를 함께 만들어 오기도 했고요.”
“···군자야아···.”
“만약 이 시점에서 홀 씨와 작업을 하게 된다면, 여기 우리 현수가 섭섭해 하진 않을지···.”
감동에 빠진 표정으로 군자를 바라보던 지현수는, 군자의 쓰잘데 없는 걱정에 놀라며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아니아니이—!!”
“?”
“괜찮아! 나 너무 너무 괜찮은데!? 아하하하, 당연히 괜찮지 임마!”
“하지만 내게 최고의 프로듀서는···.”
“야아아, 그렇게 말해 줘서 너무너무 고맙고 감동인데! 윌리 그린이잖아! 나도 낄끼빠빠 할 줄은 안다고!”
“길기파파(吉氣破破, 길한 기운을 깨뜨림)? 어찌 좋은 기운을 깨뜨리려 한단 말이냐?”
“아이, 뭔 헛소리야 이 자식아. 아무튼 난 홀 씨랑 작업하는 거 대찬성! 무조건 대찬성이야!”
안달이 난 표정으로 서 있던 스칼렛 홀도 옆에서 한 마디 거들었다.
“혹시 기존 프로듀서 멤버가 신경 쓰이는 거라면 걱정하지 마. 나도 독단적으로 모든 프로듀싱을 다 진행할 생각은 없거든. 이 팀의 메인 프로듀서는 여기 지현수 군이니까, 나도 이 친구랑 계속 연락하고 협업하면서 함께 곡을 만들어 볼 생각이야.”
윌리 그린과의 프로듀싱 협업이라는 말에 지현수의 안색은 붉은색에서 아예 보라색이 되어 버렸다.
“혀, 혀, 협업···.”
“흐음, 그렇다면 나로서도 더 반대할 이유가 없다만.”
“다, 당연히 없지이! 이건 무조건 고 해야 된다고!”
그제야 군자는 후련한 표정으로 스칼렛 홀과 덥석 악수를 했다.
“예, 알겠습니다. 솔직히 미국 음악 세계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내 붕우(朋友)가 이토록 당신을 존경하는 걸 보면 당신은 분명 훌륭한 작곡가겠지요.”
“응, 나 잘 해. 걱정 안 해도 돼.”
“하하, 그 호방함이 좋습니다.”
“여러분들, 그럼 잘 부탁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나자.”
“옙! 알겠습니다!”
“저두 너무 좋아여 누나!”
“아하하핫, 현재 얘는 벌써 누나래~”
군자를 시작으로 멤버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눈 스칼렛 홀은 다시 군자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저기, 근데 생각해 보니까 너무 내 말만 한 것 같은데. 혹시 군자 넌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니?”
“흐음—.”
잠시 턱을 괴고 무언가를 생각하던 군자가 스칼렛 홀을 보며 입을 열었다.
“처음 이 집을 보고 무슨 임금님이 사시는 대궐인 줄 알았습니다.”
“아, 응. 집이 좀 화려하긴 하지?”
“내 미국의 정서를 아직 잘 모르나, 선비라면 항상 청빈한 삶 속에서 안분지족하여야 하는 법.”
“아, 안분··· 뭐? 그게 뭔데?”
“허나 이미 지은 집을 부술 수도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대신 집 한 켠에 사군자를 모셔 두고, 틈틈이 그것을 보며 검소한 마음가짐을 키워 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사군자? 그건 또 뭐고?”
안분지족과 사군자에 대한 설명을 들은 스칼렛 홀은 배를 잡고 큰 소리로 웃었다.
“푸하하하하핫—.”
“으음?”
“이야아, 내가 이 집에 온 뒤로 검소하게 살라고 훈수하는 사람은 처음이야! 그것도 스물한 살 짜리가 말야! 푸하하학—.”
“그렇습니까.”
“너 진짜 너무 너무 마음에 든다, 군자야. 알았어! 나 결심했어, 우리 집 정원 중 하나를 완전히 한국식으로 꾸밀 거야. 대나무도 심고, 난이랑 국화, 매화도 심고.”
“너무도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릴 핌프도 옆에서 한 마디 거들었다.
“스칼렛, 너도 선비가 되기로 한 거야? 그러면 부모님께 전화도 자주 드려야 한다고.”
“그래?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는데.”
“허업, 그, 그랬구나. 미안.”
“됐어, 대신 부모님을 위한 노래를 만들지 뭐. 아무튼 오늘은 즐거운 날이네. 친구들, 음료수나 더 잔뜩 마시고 가.”
“네엡—!!”
그렇게 스칼렛 홀, 즉 윌리 그린과의 협업을 약속한 뒤 소년들은 미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멤버들이 귀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데이빗 펠런 쇼> 7IN + 릴 핌프 편이 방영됐다. 모두가 설마설마 했던 그 콜라보레이션의 실현에, 한국과 세계의 7IN 팬들은 다시 한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비단 팬들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수많은 시청자들이 함께 보는 <데이빗 펠런 쇼> 본 방송에서, 7IN이 마침내 본인들의 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