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222화 (222/303)

#222

등산돌

K-POP의 위상이 치솟은 뒤로, 빌보드 차트에서는 어렵지 않게 한국 아이돌들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1티어 보이그룹 루나틱과 벨로체는 음원을 발매할 때마다 빌보드 HOT 100 차트에 이름을 올렸다. 엄청난 수의 SNS 팔로워와 유튜브 구독자를 보유한 걸그룹 블루핑 역시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K-POP 아이돌도, 빌보드 차트에 처음 입성하자 마자 TOP 10 안쪽에 자리를 잡은 적은 없었다.

[9 : <사냥의 시간> - 7IN]

“···!?!?”

4주차 빌보드 HOT 100 차트 9위.

순위를 확인한 소년들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서로를 얼싸안으며 괴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아아악—!!”

“꾸아아악! 푸하아아아악—.”

“뭐야—!! 뭐야 이거—!?!?”

“Oh my···.”

“아하하하하하하핫~”

“···대, 대에박··· 미쳤어요···! 우리 미, 미쳤어···.”

“지화자아! 지화자 좋구나아—!!”

“푸하하하학, 욕심 버리라고 한 사람이 제일 신났네!”

“후하학, 그래! 나는 욕망 덩어리였구나!”

뒤엉킨 일곱 소년들은 커다란 공이 되어 숙소 바닥을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중간중간 태웅의 꾸웨엑 하는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지만, 그럼에도 얼굴만은 행복하다는 듯 미소가 만연했다.

“프하악, 이건 진짜 꿈 같은데!? 야 지현수, 우리 미쳤나 봐!”

“그러게! 이게 뭔 일이냐고! 흐하하하학—.”

“미국 다녀온 게 효과가 있었나 봐여!”

“···리, 릴 핌프 형이··· 언급해 준 것도···.”

“그래, 내 핌프 공에게 감사 전화도 좀 해야겠구나!”

릴 핌프와의 호들갑스러운 통화를 마친 뒤엔 사무실로 가서 모두의 축하를 받았다. ‘빌보드 9위’라고 써진 꼬깔모자를 쓴 이용중 실장과 서은우 팀장은 7IN 멤버들보다 더 흥분해 있는 것 같았다.

“여러분의 놀라운 성과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하지만 이럴 때야말로 더욱 차분해야 합니다. 지나친 흥분은 사건 사고를 부를 수···.”

“근데 팀장님이 제일 흥분하신 것 같은데여!”

“후욱, 후욱···.”

“푸하하학, 현재야! 팀장님 민망하시겠다!”

소란스러운 축하연을 마친 뒤엔 멤버 별로 소원을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빌보드 10위권 입성 기념으로, 솔라시스템 측에서 멤버들의 소원을 하나씩 들어 주기로 한 것.

“···그, 그럼 형들 먼저···.”

“아니야, 이런 건 원래 막내가 스타트 끊어 주는 거라고.”

“···그, 그런···.”

가장 먼저 막내인 유찬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부끄럽다는 듯 잠시 망설이던 유찬은, 이내 작은 목소리로 소원을 읊조렸다.

“···프, 플스랑 VR기기···.”

“뭐어—!?”

“푸하하하학, 겁나 현실적이야!”

“야, 그렇게 수줍은 목소리로 그렇게 잼민이 같은 소원 말하기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냐 임마아~ 이 겜돌이 자식아~”

“···그, 그게··· 도, 동생들이 게임을 엄청 좋아하는데···.”

“어?”

“···저, 저는 게임도 잘 모르고··· VR기기도 몰라서···.”

“어어—.”

“···혀, 형들이 도와 주면 안될까요···.”

동생을 위한 순수한 유찬의 소원에, 그를 놀리던 형들은 순식간에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 그래. 기유찬이 그렇게 세속적인 소원을 빌 리가 없지.”

“오케이! 나 완전 헤비 겜돌이 한명 아는데 소개해 줄게!”

“···그, 그게 누구···.”

“이용중 실장님!”

“엥? 나?”

“실장님 게임 엄청 좋아하시잖아요~ 다 알아요.”

“맞아여! 트위티에서 게임 스트리밍도 하시던뎅!”

“헉, 그, 그건 내 은밀한 사생활인데···.”

“실장님, 우리 유찬이 좀 도와주세여. 넹?”

“그, 그래! 뭐 게임이야 내 전문분야니까.”

유찬을 시작으로 멤버들이 차례로 소원을 말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나이가 어린 현재는 멤버들과 함께 일주일 동안 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으며, 다음으로 태웅은 숙소 구석에 개인 홈짐을 설치하고 싶다는 야욕을 밝혔다.

“홈 짐? 너 거기서 몸이 더 좋아지려고 하는 거냐?”

“아니? 너 운동시키려고 그러는 건데?”

“뭐? 나를? 왜?”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너 앞으로 10년 동안 작곡 하려면 코어근육부터 잡아야 한다?”

“아니 넌 대체 아이돌이냐고 헬스트레이너냐고···.”

“야, 나만큼 운동에 해박한 친구 둔 걸 감사하게 여겨 이 자식아. 무튼 이제부터 내가 네 몸에 대해서 좀 알아야겠다.”

“무, 뭐라고? 이상하게 해석될 수 있는 말은 좀 자제해 줄래?”

“므흐흐~”

“아오, 징그러워 진짜! 팀장님, 저도 소원 빌게요! 이 자식 좀 저한테 떼 주세요!”

“그건 안됩니다. 저도 지현수 씨가 운동 열심히 하는 건 찬성이라서요.”

“아악, 그냥 작곡만 하게 해 주세요오!”

“므흐흐흐~”

그 와중에 인혁은 미술 특강을 듣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으며, 시우는 다음 앨범의 뮤직비디오도 자신이 연출하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그렇게 모든 소원이 접수된 가운데, 마지막으로 군자의 차례가 돌아왔다.

“이제 군자 씨만 남았네요. 군자 씨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뻔하지 뭐. 막 숙소에 사군자를 놓아 달라, 그런 거 아님?”

“후후, 그렇지 않다. 숙소엔 이미 병풍도 있고, 향도 피워 놓지 않았느냐. 마음은 이미 충분히 정갈하다.”

“오, 그래? 그럼 뭔데 뭔데.”

“아주 간단한 소원이다.”

그렇게 말하며 군자가 스마트폰 캘린더를 꺼내 들었다.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2023년 6월 22일 목요일이었다.

“?”

“음?”

“뭐 어쩔냉장고?”

“후후, 딴청 피우지 말거라. 다들 이 날이 무슨 날인지 알지 않느냐.”

“어? 6월 22일이 뭔 날인데?”

“으으음, 우리 후속곡 음방 나가는 날인데.”

“어, 맞네 맞네.”

“근데 그게 소원이랑 뭔 상관이야?”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소년들의 표정에 군자가 답답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니이, 음력 5월 5일! 단옷날이지 않느냐.”

“어?”

“단오(端午)를 모른다고? 수릿날을 모른단 말이더냐?”

“어어, 들어는 봤는데···.”

“아이고오—.”

젊은이들의 시사 상식 수준이 통탄스럽다는 듯 군자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오란 예로부터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전통의 명절이었느니라.”

“그러니까 어떻게 그렇게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에 빠삭하냐고.”

“허어어, 단오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을 법도 하거늘.”

“아니 뭐··· 그래, 그렇다고 치고. 그래서 군자 네 소원이 뭔데?”

소원이 무엇이냐 묻는 태웅의 질문에 군자가 아련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단오, 즉 수릿날에는 이웃과 함께 수리취떡을 쪄 먹으며 정을 나누는 풍습이 있었더랬지.”

“수, 수리취떡? 그게 뭔 떡인데?”

“그래서 말인데, 내 너희들과 함께 등산을 가고 싶구나.”

“어?”

“함께 산을 올라 수리취나물을 캐는 것이다. 향긋한 수리취나물로 떡을 지어 팬들에게 역조공을 바치는 것, 그것이 바로 내 소원이다.”

“···아하?”

“자, 그럼 이제 함께 산을 타러 가 볼까?”

* * *

군자의 소원 성취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운동파인 태웅, 인혁, 현재는 모두 대번에 찬성했고, 유찬과 현수는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으나 군자가 하자는 것이면 무엇이든 따라 하는 멤버들이었으니까.

“아하하핫, 난 산삼 캐 올래~”

“산삼?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럼~ 오늘 느낌이 좋다구~”

시우 역시 알 수 없는 이유로 등산에 찬성하며 장비를 챙겼다.

- 여보세요? 군자냐?

“오오, 파엘 형님!”

- 오늘 뭐 해? 바빠? 얼굴이나 볼까?

“아, 저희는 산나물을 캐러 산에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 뭐? 푸하하, 또 뭔 뜬금없는 산나물이래.

“후후, 늦봄 수리취가 참 향긋하답니다.”

- 그럼 나도 같이 갈까?

“오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 좋지. 그나저나 너희 어느 산으로 갈지는 정했냐?

“아아, 그것은 아직···.”

- 야, 나물 캐기 하려면 산부터 정해야지. 국립공원 같은 데서 뭐 잘못 캤다가 큰일난다고.

“그, 그렇습니까?”

- 당연하지! 어이고, 나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

“흐어어, 그럼 산나물은 어떻게···.”

- 걱정하지 마. 리온이네 산에 가서 캐면 돼.

“오오, 리온 형님은 산도 가지고 계십니까?”

- 그렇더라고.

일곱 멤버들에 급 합류한 파엘까지, 산나물 캐기 파티원은 순식간에 여덟 명으로 불어났다. 서둘러 채비를 마친 멤버들은 이용중 실장이 모는 밴을 타고 강원도의 산골짜기로 향했다.

리온의 소유라는 야산은 아담하고 야트막한 높이였지만, 오솔길이 잘 정비되어 있었기에 산을 오르기는 어렵지 않았다.

“허억, 허억, 파엘 형, 같이 좀 가요···.”

“현수야, 넌 밤은 그렇게 잘 새면서 어떻게 체력은 이렇게 저질이냐?”

“밤은 핫식스만 먹으면 샐 수 있단 말이에요··· 근데 이 놈의 등산은 진짜···.”

“쟤 좀 봐라. 뒷짐 지고도 저렇게 축지법 쓰면서 올라가잖아.”

그렇게 말하며 파엘이 군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정비된 등산로는 딱히 이용할 생각도 없다는 듯, 군자는 뒷짐을 진 채 바위와 바위 사이를 오가며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니 무슨 신선이냐고···.”

“야 군자야, 같이 좀 가자!”

“앞서서 길을 좀 보고 있겠습니다 형님! 천천히 따라오시면 됩니다!”

“너가 그러면 나도 승부욕 생기잖아!”

그러나 파엘을 비롯한 다른 파티원들은 결코 군자의 등산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산이라··· 생각해 보니 참으로 오랜만 아니던가.”

그토록 산수(山水)를 좋아하던 군자였으나 막상 현대에 와서는 산과 가까이 지내지 못했다.

인간 세상은 천지가 개벽할 만큼 변했으나 산만큼은 군자가 기억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제는 현대 사회에 적응한 군자였지만, 모처럼 산의 품에 안기니 절로 가슴이 벅차고 흥이 오르는 것 같았다.

“흐음, 흠흠—.”

도사처럼 산을 오르며, 군자는 어느새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사실 흥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선의 산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호랑이의 습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지대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 현대엔 뛰어난 호포수들이 호랑이들을 죄다 박멸해 버렸는지 호랑이는커녕 고양이 한 마리조차 보기 어려웠다.

그저 들리느니 졸졸 흐르는 계곡물 소리 뿐이요, 산짐승이라고는 찌르레기나 다람쥐 같은 작은 금수(禽獸)들 뿐이었다.

게다가 발에는 짚신 대신 현대 기술의 집약체인 등산화를 신었다. 가벼운데다가 마찰력도 높은 등산화라는 놈은 짚신과는 차원이 다른 물건이었다.

“허허, 세상이 참으로 좋아졌다. 나익기(拿益器, 이익을 낚아채는 뛰어난 장비)라는 상표명이 괜한 것이 아니로다.”

그렇게 한참 산을 오르던 군자가 마침내 햇살이 내리쬐는 산등성이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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