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난 언제나 최고였으니
“우와아아아아아—.”
무대 위에 선 소년들을 향해 환호성이 쏟아졌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백 번도 더 들어 온 소리지만, 그걸 들을 때마다 멤버들은 언제나 전율을 느꼈다.
통통 튀는 트로피컬 하우스 풍의 전주와 함께 소년들이 사뿐사뿐 스테이지를 누비기 시작했다. 파스텔 톤의 셔츠에 ‘옷고름’을 컨셉으로 추가한 무대 의상이 부드럽게 나풀거리며 소년들의 움직임을 강조해 주었다.
<사냥의 시간>의 후속곡은 <유생>. 성균관 유생들의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답게, 후렴구는 강렬한 랩 대신 달콤한 멜로디로 이루어져 있었다.
현재와 유찬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 멜로디 위를 오가며 팬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라이브와 스테이지 위를 폴폴 날아다니는 가벼운 스텝이 그 동안의 연습량을 가늠케 했다.
오랜 연습이 일곱 소년들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수천 명의 방청객과 수천만의 시청자가 지켜보고 있는 지연 생방송 무대였으나 안무와 동선, 노래는 마치 몸에 밴 것처럼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퍼포먼스를 소화하는 데에 여유가 생기니 표정도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무대 위에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소년들은 서로를 보며 자연스레 웃음지었다. 강렬한 표정을 유지해야 했던 <사냥의 시간>과 달리, <유생>에서는 더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군자 역시 무대 위를 날아다니며 극상의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세상엔 참 다양한 즐거움이 있다지만, 이런 기분은 아마 무대 위에서만 누릴 수 있겠지.
준비된 동선과 화음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순간의 짜릿함, 때마침 동료와 눈이 마주쳤을 때 서로에게 보내는 미소.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은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믿음직한 친우들과 시선을 교환할 때마다 군자의 얼굴엔 너무도 자연스레 웃음이 걸렸다.
너무나도 즐거워 보이는 소년들의 모습에 팬들도 덩달아 행복감을 느꼈다. 무대를 위해 억지로 짓는 미소와 진짜 즐거워서 나오는 미소는 너무도 확연하게 구분됐다. 멤버들의 ‘찐 웃음’을 남기기 위해, 수많은 대포 카메라가 셔터음을 울렸다.
그렇게 30초 같은 3분이 흘러가고, 무대 중앙에 선 군자가 청량한 고음을 터뜨리며 브릿지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힘이 넘치는 군자의 진성 고음엔 현재와 유찬이 가성 화음을 얹었다. 고막을 넘어 등줄기까지 짜릿해지는 하이라이트 파트를 넘어, 마지막엔 모든 멤버들과 관객이 하나가 되어 <유생>의 후렴구를 불렀다.
그렇게 청량미 넘치는 무대를 마치고,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엔딩 포즈를 취하니 팬들은 이미 90%쯤은 넋이 나간 듯 과하게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아··· 으아···.”
“진짜 다들 너무 너무 예뻐어···.”
“어떻게 이렇게 다 잘하지? 진짜 얘들 뭐야? 왜 이래?”
“끄아아··· 군자야··· 혁이 오빠···.”
완벽한 무대를 끝낸 뒤, 소년들은 언제나처럼 백스테이지에서 서로를 얼싸안았다.
“고생했도다!”
“푸하학, 말투 뭐야.”
“아무리 동료라지만 오늘은 극진한 예를 갖추고 싶구나. 너무도 훌륭했도다.”
“그래, 뭐 다들 수고했어!”
“야아, 우리 진짜 너무 잘하는 거 아니냐!?”
“아하하하핫, 아하하하하하핫—.”
“시우 형이 평소보다 더 깔깔 웃어여! 오늘 만족스럽나 봐!”
“···노, 노래가 너무 좋아요··· 현수 형 최고···.”
“그, 아니, 뭐 너네들이 다 너무 잘 소화를 해 주니까는. 크으, 근데 군자는 라이브가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다.”
“내 말이. 고음 뭔데 진짜. 이러다가 또 오토튠 논란 나오는 거 아니냐고~”
어느새 백스테이지에 찾아온 정무도 소년들 사이에 끼어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쩡무 넌 이제 아주 우리 멤버같다?”
“헤헤, 후속곡 퍼포먼스도 넘 넘 좋은데? 나 또 듣고 싶어!”
“그래? 그럼 1등 좀 시켜줘. 1등하면 앵콜 있잖아.”
“맞네! 1등 했음 좋겠다.”
“와, 그 표독스럽던 애가 언제 이렇게 귀여워졌냐.”
“뭐? 나 안 귀여워, 나 아직 독하거든?”
“아 녜~ 그러셰여~?”
“으 씨! 아 근데 나도 같이 활동하고 싶다··· 멤버 8명으로 늘려 주면 안 되나···.”
“그러게 말이다. 우리 둘이 공동 7등이면 더 좋았을 텐데, 흐흐.”
그렇게 백스테이지 뒷풀이까지 끝나고, 어느새 이번주 에 참가하는 모든 팀이 퍼포먼스를 마쳤다.
그러나 이번주는 바로 순위발표를 하는 대신, 프로그램 MC 정무와 혜윤이 특별 스테이지 위에 섰다. 뒤이어 오늘 에 참가한 모든 아이돌들이 줄지어 특별 스테이지 위로 올라왔다.
“이제 모든 팀이 멋진 퍼포먼스를 마쳤습니다! 오늘도 정말 가~득 찬 과일바구니처럼 너무너무 알찬 시간이었는데요!”
“그런데 혜윤 씨, 오늘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이벤트가 하나 더 있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정무 씨 말이 맞습니다! 오늘은 음력 5월 5일, 수릿날이라고도 부르는 단오인데요~ 한국의 3대 명절으로도 불리는 단오를 맞아 준비했습니다! 이름하야 <아이돌 미니 전통놀이 대회>!”
“헤에~ 그러면 <아미전대>라고 부르면 되겠네요!”
“맞습니다~ 깔깔깔~”
MC인 정무와 혜윤의 말처럼, 오늘의 에는 단오를 맞아 준비한 특별한 미니 코너가 있었다.
예로부터 단오날에는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수리떡을 지어 먹는 전통이 있었다. 또한 마을 중앙에 모여 씨름을 하고 활쏘기를 하는 등, 서로의 무예 수준을 가늠해 보기도 했다.
단오의 전통을 간략하게 설명한 MC 정무와 혜윤이 오늘의 종목 두 가지를 공개했다.
“이런 단오를 맞이하여, 저희가 두 가지 종목을 준비했는데요~ 정무 씨, 어떤 종목인지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럼요! 두구두구두구··· 바로 ‘씨름’과 ‘양궁’입니다아~”
두 가지 종목이 공개되자 마자 모든 아이돌들의 시선이 7IN 쪽으로 꽂혔다.
“씨, 씨름이랑 양궁이라고···?”
“아니 그럼 칠린한테 너무 유리한 거 아니야?”
다른 아이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 팀엔 190cm에 가까운 장대한 피지컬의 권태웅과 차인혁이 있었고, 유군자는 이미 <아육시>에서 미친 활솜씨를 선보인 적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멤버 간의 극명한 격차가 있었기에 다른 팀들에게도 승산은 있었다.
“각 팀의 참가 선수는 제비뽑기로 결정됩니다! 아무리 강한 선수가 있다고 해도 제비뽑기로 추첨이 되지 않는다면 게임엔 참여할 수 없다구요~”
“허얼, 정무 씨! 그건 너무 억울한 거 아닌가요!?”
“어쩔 수 없죠~ 억울하면 운이 좋아야 한다구요~”
그렇게 시작된 추첨, 3대 3 씨름 종목에 선발된 7IN 멤버는 현시우, 지현수, 그리고 차인혁이었다. 마지막으로 인혁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팬들은 탄성을 질렀으며, 다른 아이돌 멤버들은 장탄식을 내뱉었다.
“아 미친 차인혁 나왔어···.”
“쟤를 씨름으로 뭐 어떻게 이기냐고···.”
그래도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었기에 타 아이돌 멤버들은 이를 악물고 인혁에게 저항해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휘릭, 휙, 휘이익—.
“오오오, 칠린의 차인혁 선수가 막 사람을 집어던지네요! 벌써 혼자서 몇 명을 쓰러뜨리는 건가요! 아무도 상대가 안 되는데요!?”
후반까지 힘이 남은 듯, 인혁은 쓰러지는 상대를 붙잡아 엉덩방아를 찧지 않도록 배려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괜찮아요?”
“···그, 그게···.”
‘차인혁을 넘겨 보겠다’며 이를 악물고 들이댔던 상대도, 그 자상한 배려엔 반해 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우와, 힘 차이가 너무 많이 나나 봐요~ 차인혁 선수, 상대가 쓰러지기 전에 다정하게 붙잡아 주는 거 너무 젠틀한데요~”
“아하하하하핫, 우리 인혁이 형이 다 해 준다~”
비교적 몸이 약한 시우, 현수와 한 팀이 되었기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 본 다른 팀들이었으나, 문제는 선봉으로 나오는 인혁을 제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혈혈단신으로 모든 참가자들을 제압한 인혁은 수줍은 표정으로 <아이돌 미니 전통놀이 대회>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작은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
“푸하학, 오빠! 좀 우렁차게 해 봐요!”
“야, 하지 마! 혁이 오빠 귀 빨개지잖아—.”
그렇게 수줍음 많은 MVP가 씨름판을 휩쓸고 난 뒤, 다음 종목인 양궁을 위한 참가자 선발이 이어졌다.
“팀 칠린의 양궁 종목 참가자는, 하현재··· 기유찬··· 그리고 유군자! 와아아, 여기서 유군자 씨가 나와 버렸어요~”
“어떡해~ 군자 씨 양궁 엄청 잘하잖아요!”
그러나 이번만큼은 군자에게로 모든 시선이 쏠리지 않았다.
“그럼 다음으로 바이올렛의 양궁 참가자를 뽑겠습니다! 조윤, 현지, 그리고··· 우와아아악, 보배 님까지!”
“세상에, 여기서 보배 님이 나왔네요! 정무 씨, 뽑기 잘하시는데요!?”
“헤헷, 저 재미있게 잘 뽑았죠?”
MC 양정무의 추첨에 모두가 낮은 환호성을 질렀다. 군자의 양궁 실력이 유명하듯, ‘바이올렛’에도 활 솜씨로 유명한 아이돌 멤버가 있었기 때문이다.
걸그룹 ‘바이올렛’의 리드보컬 윤보배에게는 특별한 경력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양궁 선수 생활을 했으며,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지낸 엘리트 체육인 출신이라는 점.
아이돌 멤버들이 제 아무리 운동신경이 좋다고 해도, 아무리 집중력이 좋다고 해도 양궁으로는 보배에겐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진하여 <아이돌 육상대회> 양궁 종목 출전을 포기한 보배였다.
그러나 이번엔 보배 역시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왓, 하필이면 대진도 이렇게 나왔어요! 1라운드부터 칠린과 바이올렛이 맞붙습니다!”
‘유군자는 양궁 국가대표를 해도 되겠다’는 사람들의 말이 내심 거슬렸던 보배였다.
반평생을 양궁에 바쳐 왔고, 상비군까지 들어갔지만 끝내 정식 국가대표 유니폼은 입지 못했던 보배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유군자 쟤가 그렇게 활을 잘 쏜다고? 국가대표를 할 수 있을 만큼?
그럴 리가 없지.
적어도 보배만큼은 동의할 수 없었다. 비록 음악방송에서 만들어 준 이벤트성 대회지만, 보배에겐 유군자와 양궁으로 겨뤄 볼 좋은 기회였다.
“자, 그럼 지금부터 바이올렛 대 칠린의 3대 3 양궁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처음엔 이벤트로 시작한 <아미전대>였는데, 어쩐지 지금은 엄청 진지해진 것 같아요~ 저까지 막 살이 떨린다구요~”
장난스런 멘트로 분위기를 녹여 보려 한 정무였지만 이미 특별 스튜디오엔 진지함이 감돌고 있었다. 두 팀의 팬들 역시 유군자 vs 윤보배의 대결을 기대하고 있다는 듯, 침을 꿀꺽 삼키며 시선을 두 사람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군자야, 저 보배라는 분 말야. 양궁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하신 분이래.”
“국가대표 상비군? 그건 무엇인가?”
“어, 그게 뭐냐면··· 우리나라 사람들 활 잘 쏘는 건 알지?”
“물론이지.활솜씨라면 그 어떤 변방국에도 뒤지지 않는 것이 조선이다.”
“그런데 저 누나는 우리나라에서 딱 열 명 안팎으로 뽑는 국가대표에 들어갈 뻔 했다는 거야.”
“흐음.”
“그러니까, 적어도 동년배 TOP 30 안에는 충분히 들어갈 만한 실력자라고.”
“그렇구나.”
지현수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군자는 동요할 것 없다는 듯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내가 패배할 리는 없겠구나.”
“···어?”
“난 언제나 동년배 중 최고였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