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227화 (227/303)

#227

생각만 해도 설레

솔라시스템 사무실로 향하는 밴 안, 이용중 실장은 쉴 새 없이 떠들며 오디오를 채웠다.

“아니, 내가 뭐 너희 하고 싶다는 거 막는 사람은 아니잖냐. 나도 칠린 팬이라구! 나 제이라이브도 맨날 챙겨본다? 군자가 양궁 국대라니, 생각만 해도 막 두근두근 한다구. 그런데 이제 난 마냥 팬질만 할 수는 없는 입장이잖아. 항상 논란의 위협으로부터 너희를 지키고, 어? 오래오래 안전하게 아이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어? 군자 너는 알 거 아냐. 진짜 충신일수록 쓴소리를 해야 하는 법이라고. 뭐만 하면 자꾸 반대 의견부터 내서 미안한데, 너희도 이런 내 고충을 조금만 이해해 주면 참 좋겠는···.”

이용중 실장의 재잘거림이 차내를 가득 메우는 와중에도, 군자의 머릿속엔 오로지 하나의 생각 뿐이었다.

양궁 국가대표라니,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길이다.

하긴, 과거엔 국가 대항전 같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전쟁터에서만 타국의 궁사들과 기량을 겨룰 수 있었다. 활 쏘는 것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지만, 정작 어떠한 단체를 대표하여 경연대회에 나가 본 경험은 전무한 군자였다.

“···국가대표···.”

내가 사랑하는 이 나라를 대표한다라, 말만으로도 설레는 일 아닌가.

물론 아이돌의 본분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심장이 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군자의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팀장님이 뭐라고 하실까여?”

“후우, 반대 안 하셨음 좋겠는데.”

“근데 너무 뜬금없어서··· 아마 기각될 것 같긴 해.”

“아하하핫, 그건 너무 아쉬운걸~”

“···저, 저도 아까울 것 같아요··· 군자 형 너무 멋질 것 같은데···.”

“그니깐. 어쩌면 팬 분들도 좋아하실지도 모른다고.”

“군자! 너가 팀장님 좀 잘 설득해 봐. 왜 이렇게 멍 때리고 있어?”

동료들의 지지는 고마운 일이었지만, 정작 결정권을 가진 회사에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를 일이었다.

전말을 전해 들은 서은우 팀장은 황당하다는 듯 이용중 실장에게 되물었다.

“무, 무슨 대표요?”

“국가대표요. 바이올렛의 윤보배 님이 그러시더라구요, 군자한테 국대급의 잠재력이 있다고.”

“···그래서 군자 씨 생각은?”

질문을 던지며 군자를 바라본 서은우 팀장이었으나, 굳이 대답이 필요하진 않았다. 설렘 가득한 군자의 표정이 그 자체로 대답이 되어 주었으니까.

“···크흐음···.”

사실 <아육시> 때에도 진천선수촌의 양궁 코치가 군자의 능력을 보고 군침을 흘린 적이 있었다. 거기에 이번엔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간 윤보배를 개인 점수에서 꺾으며 다시 한번 능력을 입증했고.

군자에게 비정상적인 재능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단순한 팬들의 호들갑이 아닌, 양궁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까지 탐낼 만큼의 재능이.

서은우 팀장이 고민에 빠져 있는 동안, 군자는 조용히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 조심스러운 눈빛을 마주하니 괜히 웃음이 새어 나오는 서은우 팀장이었다.

그냥 활을 잘 쏘는 게 아니라, 활쏘기를 즐기는 것이 분명하다. 군자는 도전하고 싶은 거다.

고민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윽고 입을 연 서은우 팀장은, 모두가 놀랄 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뭐, 심각하게 고민할 것은 없어 보입니다.”

“그렇습니까? 역시 국가대표는 무리인···.”

“아뇨, 무리 아닙니다.”

“예?”

“우리는 소속 아티스트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그것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입니다. 군자 씨가 뭘 원하는지는 확실히 알겠으니, 우리는 그것을 지원할 생각입니다.”

“···.”

“양궁 국가대표가 하고 싶다면 도전해야죠. 우리가 돕겠습니다.”

“!”

호탕한 서은우 팀장의 발언에 군자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의 뒤에선 여섯 동료들이 소리도 내지 못하며 서로의 손바닥을 맞잡고 있었다.

그런 소년들의 모습을 보며 서은우 팀장이 부가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들이 불법적인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한다면?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그것을 막았겠죠. 하지만 양궁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건 아주 순수하고, 심지어 흥미로운 소망입니다.”

“···.”

“군자 씨의 양궁 실력은 이미 <아육시> 시절부터 많이 언급되어 왔습니다. 이번 윤보배 씨와의 대결을 통해 논쟁의 불길은 더 거세질 겁니다. 유군자는 정말로 국가대표급 양궁 실력을 가졌을까. 현역 국가대표 후보들과 겨룰 수 있는 실력일까.”

“···.”

“이 시점에 군자 씨가 정말로 양궁 국가대표에 도전한다면, 그것 자체로 정말 커다란 화제가 될 겁니다. 동시에 우리의 팬들에게도 완전히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겠죠.”

“···!”

“양궁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있는 유군자 씨의 모습이라. 팬들이 그걸 싫어할 리는 없을 것 같네요.”

쏟아지는 긍정적인 말들에 군자의 얼굴은 점점 밝아졌다.

“해 봅시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도 안 오지만, 뭐 지금까지도 항상 그래 왔으니까요.”

“앗싸아—!!”

서은우 팀장이 말을 맺자 마자 태웅이 먼저 달려와 군자의 어깨를 덥석 끌어안았다. 군자 역시 해맑게 웃으며 달려온 동료들을 얼싸안았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으나 마음만큼은 벌써 국가대표 마크를 단 것 같이 즐거웠다.

소년들의 흥분이 잠시 가라앉기를 기다린 뒤, 서은우 팀장이 다소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반드시 유념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네, 팀장님.”

“만약 정말 양궁 국가대표에 도전하려거든··· 매 순간 100% 이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진지해진 서은우 팀장의 목소리에 군자도 덩달아 침을 꿀꺽 삼켰다.

“국가대표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문적인 영역입니다. 그만큼 언제나 진중한 태도로, 장난기를 배제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겁니다.”

“···.”

“굳이 언급하진 않았지만, 아마 군자 씨가 양궁에 도전한다고 하면 분명 누군가는 부정적인 목소리를 낼 겁니다. 누군가에겐 인생의 전부와 다름없는 영역에, 장난스레 도전하는 것이냐며 군자 씨를 비난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예.”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 진지해야 합니다.”

군자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백 번, 천 번 맞는 말씀이십니다.”

“사실 어떤 일을 하든, 군자 씨가 장난스러운 태도를 취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요.”

그렇게 말하며 서은우 팀장은 진지한 표정을 가볍게 풀었다.

그 누구보다 군자와 7IN 멤버들을 신뢰하는 서은우 팀장이었다. 그렇기에 ‘양궁 국가대표 도전’이라는 뜬금없는 제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었던 것이고.

마침 TV에선 단오 특집 민속놀이 분량이 방영되고 있었다. 서은우 팀장 휘하의 팀원들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반응을 취합하여 서 팀장과 멤버들에게 보여주었다.

[하아ㅠㅠㅠㅠㅠ군자 활쏠때마다 진짜 심장 터질것같아]

[활시위 당길때 ㅈㄴ섹시함진짜]

[나 잔머리 개많은데 내 잔머리도 좀 저렇게 땡겨줬음 좋겠다]

[ㅁㅊ잔머리를왜땡곀ㅋㅋㅋㅋㅋㅋㅋ]

[잘생기고 예쁜 아이돌들이 활쏘니까 걍 그거자체로 복지네]

[ㅇㅇ그와중에 보배언니는 또 왜이렇게 예쁘고난리,,,]

[와 근데 군자 미치긴했다]

[윤보배 국대 상비군? 상설군? 그거까지 갔다안함?]

[리얼 선출인데 어떻게 보배를 양궁으로 이겨버림;;;;;]

[마지막까지 10점이야ㅠㅠㅠㅠ진심미쳣어]

[권태웅이랑 차인혁이 미친 트롤링 하는데도 집중력봨ㅋㅋㅋㅋ]

[저 삼각근 출렁쇼 보면서도 10점 쏜건 진짜 ㄹㅇ신궁임ㅋㅋㅋ]

[보배언냐는 멘탈좀깨진듯?ㅋㅋㅋㅋㅋ]

군자가 먼저 나서지 않았음에도, ‘유군자 양궁 국가대표 가능/불가능’ 설은 벌써부터 천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아니 근데 저정도면 국가적 손실 아님?]

[ㄴ무슨 국가적손실?]

[당장 태릉으로 보내야하는거 아니냐겈ㅋㅋ]

[아 뭔 언제적 태릉이야··· 이제 진천선수촌임ㅋㅋㅋㅋ]

[ㄴ그게 핵심이 아니잖아;]

[군자는 와꾸로 복지 베풀고있는데 또 뭔 국대 타령이야]

[국대가 장난임?ㅋㅋ]

[근데 보배를 저정도로 압도하는데;; 막말로 국대도 도전해볼수 있는거 아냐?]

[ㅋㅋㅋ웃고감]

[군자 팬들은 가끔 보면 호들갑이 너무 심해;]

[느그 군자 잘난거 알겠으니까 양궁계도 존중해줘~]

[그렇게 잘 쏘면 지가 먼저 국대선발전 나왔겠지ㅎㅎㅎ]

[ㄴ이게 ㄹㅇ맞는게 국제대회서 메달 따면 군 문제도 해결되잖아]

[안할 이유가 없는데 안하고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거임!]

[아냐 내가 봤을때 실력은 이미 국대급이야]

[ㄴㅋㅋㅋㅋㅋㅋㅋ미안 좀 웃고갈게]

[ㅋㅋㅋㅋ어디 국대? 코트디부아르 국대?]

[ㅋㅋㅋㅋㅋㅋ앜ㅋㅋㅋㅋㅋ]

[아니 진짜라고ㅠㅠㅠ보배언니도 지고서 분해 하는거 안보임?]

[ㄴ멍청아 방송이잖아;;]

[난 올림픽에서도 이렇게 계속 10점 쏘는건 본적없는데?]

[ㄴ넌 실내에서 쏘는거랑 야외랑 똑같다고 생각해?]

[ㄴ이게 맞지 ㅋㅋㅋ국대선수들도 바람없는 실내에서 쏘면 10발 20발 다 10점쏨]

[얘네는 진짜 군자가 ㄹㅇ현역국대들이랑 경기 하고 개털리는 걸 봐야 조용해지려나?ㅋㅋ]

다양한 반응을 보며 서은우 팀장은 빙그레 웃었다.

“아무래도 군자 씨가 국가대표 선발전에 도전하는 모습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벌써 많은 것 같네요.”

하지만 서은우 팀장의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후우, 그러면 이제부터··· 흐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세상 유능한 서은우 팀장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막막했다. 소속 아이돌을 1등으로 만들어 본 적은 있어도 국가대표로 만들어 본 적은 없었기에.

그렇게 꼬박 하루를 고민에 빠져 있던 중.

놀랍게도, 양궁협회 측에서 먼저 솔라시스템에게 연락을 취해 왔다.

“···예? 유군자 씨를 국가대표 양궁 평가전에 초청하고 싶다고요?”

* * *

한편, 양궁계 역시 유군자 vs 윤보배의 이벤트성 양궁 대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현역 아이돌이 (전)국가대표 상비군을 순수 실력으로 찍어눌렀다. ‘국가대표보다 나은 아이돌이 있다’는 반응에, 양궁협회의 고위 인사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대책회의를 열었다.

“최근 음악방송에서 벌어진 양궁대결 사건은 모두 아실 겁니다. 고등학교 시절 대표팀 상비군까지 간 윤보배가 유군자라는 아이돌에게 양궁으로 패배했죠.”

“크흐음—.”

“대한민국은 명실상부 양궁 세계 최강입니다. 이 나라에서 활 좀 쐈다 하는 사람들, 다른 나라 가면 모두 국가대표 에이스 노릇을 할 수 있고요. 아마 보배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어딜 가든 국가대표 자격은 충분히 딸 수 있었겠죠.”

“···.”

“그런 윤보배를, 웬 얼굴 허연 아이돌이 방송에서 무참하게 무찔러 버린 겁니다.”

“···크흠, 흠—!!”

“그것도, 다섯 발 모두 정가운데 꽂아 넣는 ‘올 10’으로!”

말을 이어 나가던 협회원의 목소리가 점점 격앙되어 갔다.

“여러분.”

“···.”

“이건 양궁 역사상 유례없는 개꿀 사건입니다!”

자리에 앉은 협회원들은 모두 동의한다는 듯 폭풍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그 잘생긴 친구를 끌어들여서, 관심 좀 잔뜩 받아 봅시다!”

“···그, 그러다가 그 친구가 정말 국가대표가 되기라도 한다면?”

“그럼 더 개꿀 되는 거죠!”

“!”

“역대 최고로 잘생긴 국가대표 양궁 팀, 그런데 활도 잘 쏴! 생각만 해도 설레지 않습니까!?”

“오오!”

“일리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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