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228화 (228/303)

#228

기자회견

현역 아이돌의 국가대표 도전.

자칫 예민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안이었지만, 양궁협회는 생각보다 더 개방적인 집단이었다.

“자아, 그럼 앞으로 우리 유군자 씨와 양궁을 어떻게 엮어 가면 되겠습니까?”

“푸허헉, 아니 벌써 ‘우리 유군자 씨’가 된 거요?”

“그렇게 못 부를 건 또 뭡니까? 활 잘 쏘면 다 우리 사람이지.”

“맞는 말이에요. 그 친구 쏘는 거 봤는데, 벌써 웬만한 선수보다 낫더구만요.”

“그래요? 허허, 이거 더 관심이 생기네요.”

“훈련시설을 개방해 줄까요? 언제든 와서 트레이닝 할 수 있게.”

“흐음, 그건 좀 예민한 문제 아닙니까? 선수들이 싫어할 수도···.”

“모르는 말씀 하시네. 여자선수들 9할이 다 그 친구 팬이더랍니다. 이미 같이 훈련해 보고 싶다고 난리가 났다고요.”

“선수들끼리는 금방 친해지겠구만?”

“흐음··· 그럼 소속사에 연락을 해 봐야 하나? 아니면 윤보배 그 친구한테 얘기를 해 볼까요?”

“그래요, 뭐든 해 봅시다! 지나치게 조심스러울 필요 없지요.”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 친구는 일단 본분이 아이돌이니 이래저래 조심스럽긴 할 텐데, 우리는 손해 볼 것 없는 입장 아닙니까.”

“게다가 정말 그 팬들 말처럼, 그 친구가 우리 선수들보다 활을 더 잘 쏜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도 없고요.”

“우와··· 이거 보세요. 이 사진이요. 뭔 도포가 이렇게 잘 받는답니까.”

“이 도포에 갓에 활까지 들어 버리면··· 후우, 이거 벌써부터 심장이 아파 오는데요.”

“우리 망설이지 맙시다. 이렇게 된 거, 일사천리로 진행해 보자고요.”

“좋습니다. 그럼 혹시 이의 제기하실 위원 분 계십니까?”

회의실엔 스무 명에 가까운 협회 위원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반론은 한 마디도 없었다. 모두 군자가 양궁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오케이, 그러면 실무진들이 빠르게 소속사에 연락해 보는 것으로 합시다.”

그렇게 양궁협회가 들떠 있을 무렵, 7IN의 소속사 솔라시스템 역시 협회에 접촉하려 하고 있었다. 마치 텔레파시가 통하기라도 한 것처럼, 두 단체의 손길이 서로에게 닿았다.

솔라시스템은 ‘유군자가 양궁 국가대표팀에 합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양궁협회는 ‘재능을 가진 궁사 유군자에게 국가대표팀 합류의 기회를 주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음이 맞아 떨어지니 협상 체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협회는 유군자 씨에게 국가대표 평가전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평가전? 바로 선발전에 참여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

“흐음, 굳이?”

“선발전 참가에 앞서 평가전을 제안한 이유는 총 세 가지입니다.”

“오오, 다 생각이 있었군요?”

“물론입니다. 먼저 첫 번째, 대중들의 거부감을 최소화하기 위함입니다. 유군자 씨의 진짜 양궁 실력을 알고 싶다는 의견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검증 과정 없이 바로 선발전에 참여시키는 것은 특혜 논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뭐, 조심스럽게 생각한다면 그럴 수 있지요.”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한 평가전에서 최소한의 경쟁력이라도 보여준다면? 본 무대인 선발전에 참여시키는 데에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 평가전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어떡합니까?”

“후후, 그렇게 돼도 우리가 손해볼 일은 없습니다.”

“으음···?”

“이게 평가전이 갖는 두 번째 이점입니다. 현역 1티어 아이돌과 함께하는 평가전, 아마 무조건 방송 중계가 따라붙겠지요. 아마 대중들의 주목을 받는 평가전이 될 겁니다. 그런 무대에서, 우리 선수들이 얼마나 멋지고 잘 쏘는 선수들인지 보여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이득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그렇군요.”

“게다가, 평가전에서도 제대로 된 기량을 발휘할 수 없는 선수라면 국가대표 선발전엔 합류시켜선 안됩니다. 그건 실력 본위로 모든 것을 결정해 온 우리 양궁협회의 기조와도 반하는 일 아닙니까.”

“위원님은 어째 맞는 말씀만 하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점은, 유군자 씨와 국가대표 선수들을 미리 만나보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오, 그것도 꽤나 괜찮은 명분이군요.”

“맞습니다. 평가전이야 개인전으로 진행되지만, 막상 올림픽 본선에선 팀 게임을 해야 합니다. 얼핏 개인 종목처럼 보입니다만, 또 양궁만큼 팀 케미스트리가 중요한 스포츠도 없잖습니까.”

“유군자 씨를 평가전에 초대해서, 미리 우리 선수들을 만나 보게 한다?”

“예.”

다른 위원들은 완전히 설득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은 것은 유군자 씨 측의 승인 뿐입니다.”

군자와 솔라시스템 측에서도 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국가대표에 진지하게 도전하기로 한 이상, 선수들을 만나 기량을 겨뤄 볼 기회는 필수적이었으니까.

“평가전, 참여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군자의 평가전 참가가 결정됐다. 언제나 사전 예고 없이 큰 일을 빵빵 터뜨려 온 솔라시스템과 7IN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국가대표에 진지하게 도전하기로 한 만큼, 장난기와 유머를 쏙 빼고 진지한 보도기사를 낸 솔라시스템이었다.

[7IN 유군자, “올림픽 양궁 국가대표에 도전하겠다” 깜짝 선언!]

[‘양궁돌’의 진짜 국가대표 도전, 유군자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을 수 있을까.]

[양궁협회 대표 김명중,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국가대표에 도전할 수 있다. 유군자 씨의 국가대표 도전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물론 그 와중엔 비판적인 논조를 띈 기사들도 꽤나 보였다.

[유군자의 갑작스런 국가대표 도전 선언, 그 저의가 무엇일까.]

[진지한 도전? 또다른 어그로? 파행으로 가득찬 2년차 아이돌의 커리어.]

[[칼럼] 유군자 씨, 국가대표는 장난이나 농담이 아닙니다.]

[‘선비돌’ 표방하던 7IN 유군자, 국가대표에 대한 예의, 예의, 예의가 없구나!]

그러나 부정적인 여론 역시 예상했던 바. 양궁협회장 김명중은 미리 준비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유군자의 국가대표 도전’에 대해 언급했다.

“아이돌 유군자 씨의 국가대표 도전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양궁을 우습게 보는 것이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협회와 양궁선수들은 유군자 씨의 합류를 전적으로 환영합니다. 그가 가진 인기나 유명세 때문이 아닙니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젊은 궁사의 합류는 대표팀에도 큰 힘이 될 테니까요.”

“···.”

“반대로 말해, 유군자 씨가 국가대표에 발탁될 만한 실력을 가지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에게 대표팀 자격을 주지 않을 겁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습니다만, 결론은 간단합니다. 활을 가장 잘 쏘는 선수들이 국가대표가 된다. 이번에도 우리 협회는 그 원칙에 따라 국가대표를 선발할 예정입니다.”

김명중 회장은 ‘철저히 실력 본위로 국가대표를 선발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이것으로 모든 부정적 여론이 일소되지는 않았다. 심지어 7IN과 군자의 팬들 사이에서도 걱정의 목소리가 일었다.

[아니 국가대표 도전하는거 진짜야??;;;]

[우리야 좋은데··· 우리야 재밌는데ㅠㅠㅠㅠㅠ]

[이게 맞는거야? 괜한 논란 휘말리는게 세상에서 제일 싫음,,,]

[근데 그 협회장 말이 맞지않아? 그냥 실력으로 선발하면 되잖아 선발전은 어차피 다 중계하는데 뭐가 문제?]

[괜히 논란 생길까봐 그러는거라구]

[ㄴ그니까 논란 생길게 뭐 있냐니까]

[아 그냥 쿨할라면 혼자 쿨하게 아닥해줘;; 언제는 뭐 논란이 생길만해서 생겼음?]

[ㄴ이거진짜맞아 창조논란 만드는 사람들때매 진짜 미쳐버릴것같어]

[난 그런거 모르겠고 그냥 군자가 국대 유니폼 입은거 생각만 해도 설레는뎋ㅎㅎㅎㅎ]

[ㄴ후 나도 너처럼 그냥 단순했음 좋겟다ㅠ]

[ㄴ단순하다고? 미안한데 지금 욕한거임?]

[ㄴ그런거아님,,, 그냥 부러워서그래ㅎㅎ]

[아니 왜 팬들끼리 싸우는뎈ㅋㅋㅋ그냥 군자가 뭘 선택하든 응원해주자 뭐 잘못한것도 아닌데 왜들그래]

[걱정돼서 그런다고 괜히 상처받을까바]

[ㄴ우리군자 그렇게 여리여리한 애 아닌거 알잖아]

[ㄴ이거 진짜 맞음··· 자기 선택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야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팬들 안심시켜 줄거니까 걱정ㄴㄴ]

[맞말이긴한데 그냥 불안하다ㅠㅠㅠㅠ]

[군대 뺄라고 벌써 수작부리는거 아니냐 이런 말 나올거 생각하면 벌써부터 정병올것같아ㅠㅠ]

수많은 의문에 답하기 위해 군자와 서은우 팀장이 기자회견장 테이블에 앉았다.

당초엔 서은우 팀장만이 나서기로 했지만, 군자가 직접 기자회견에 참여하기를 희망했다. 컨퍼런스 홀을 가득 채운 기자들은, 군자가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쏟아냈다.

“갑자기 양궁 국가대표 도전을 선언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이돌로서 활동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앨범 홍보를 위한 이벤트일까요, 아니면 진지한 도전일까요?”

“현역 아이돌의 국가대표 도전에 부정적인 여론도 많습니다. 이에 대해 한 마디만 부탁드립니다!”

마이크를 잡은 군자는 당황한 기색 없이 앞선 질문부터 차근차근 대답해 나갔다.

“윤보배 님과의 대결이 동기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활 쏘는 것엔 자신이 있었습니다. 나라를 대표하여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참으로 뿌듯하고 보람찰 것이라 생각하여, 국가대표 도전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본분은 어디까지나 아이돌입니다. 국가대표에 도전한다고 해서 아이돌 활동을 접는 일은 없습니다. 아이돌 활동과 국가대표 도전,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절대로 제 본분을 잊거나, 소홀히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더불어 이 도전이 앨범 홍보를 위한 수단은 결코 아님을 밝힙니다. 활을 쏘는 순간만큼은 제 모든 진심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가대표 자격은 절대로 획득할 수 없을 테니까요.”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아이돌과 국가대표, 실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입니다만··· 저는 제 자격을 증명해 낼 생각입니다.”

침착하며 차분한 말투였지만 군자의 눈빛은 자신감과 확신으로 가득차 있었다. 공격적으로 질문을 퍼붓던 기자들도 그런 군자의 모습을 보며 하나 둘씩 설득되어 가는 중이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쟤는 진짜 묘한 매력이 있어.”

“그니깐요. 처음엔 컨셉에 매몰된 애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사랑스럽고 믿음직스럽고 그러죠.”

“야 김 기자, 너 그 펜··· 설마 칠린 굿즈냐?”

“후훗, 알아보시네요?”

“기자회견장에 아이돌 굿즈를 가져오면 어떡해···.”

“선배, 랩탑 배경화면이나 바꾸고 말씀하세요.”

“아앗, 들켰구나~ 헷~”

“으이구~”

그러나 독하기로 유명한 연예부 기자들 중엔 아직 가시를 품은 이들도 있었다.

아까부터 손을 번쩍 들고 있던 한 연예부 기자가, 옅은 미소와 함께 꽤나 묵직한 질문을 던져 왔다.

“현역 아이돌의 국가대표 도전, 색다르고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응원하고 싶은데요, 그것과 별개로 국가대표에 도전하시려는 진짜 이유가 궁금합니다.”

“···?”

“단체전 멤버로 합류해서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다면,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일까요?”

“!”

“질문을 보다 간단하게 바꿔 보겠습니다. 유군자 씨, 혹시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대표에 도전하시는 겁니까?”

난데없이 던져진 질문에 군자의 표정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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