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
집중력
쐐애애액, 퍼어어어어어억—!!
호쾌하게 날아간 화살이 과녁의 정중앙을 꿰뚫었다. 벌써 네 번째 10점. 전광판은 여지없이 ’10’을 출력하며 주변의 모두를 놀라게 했다.
“···미친···.”
“또 10을 쏜다고? 이게 말이 돼?”
“허··· 나 진짜 어이가 없네. 이게 주작일 리도 없고···.”
“저 정도면 한국만 아니라면 어디든 국대는 무조건 먹겠는데요?”
“야, 지금 한국 국대들도 고전 중인데 뭔 소리 하냐.”
군자의 스코어보드에 ’10’이 늘어갈수록 주변 선수들의 긴장감은 커져 갔다. 단지 아이돌 가수의 치기 어린 도전이라고 생각했던 선수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이 시점에선 더 이상 군자를 우습게 볼 수 없었다.
[놀랍습니다—!! 유군자 선수, 또 과녁의 정중앙에 화살 꽂아 넣었습니다!! 아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그러게 말입니다!! 프로 양궁선수도 아니고, 선수 생활을 한 적도 없으며, 데뷔 이후로 내내 쉴 틈 없이 바빴던 아이돌이 뭔 양궁을 이렇게 잘하나요!!]
[기존 선수들의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세계최강 대한민국 양궁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유군자 선수가 너무 대단합니다!! 선수들 역시 최선을 다해서 기량을 뽐내고 있습니다만··· 벌써 점수로 한참 뒤쳐진 선수들이 절반 이상입니다—!!]
해설자의 말대로, 참가 선수 중 절반 이상이 사실상 경쟁에서 도태되고 말았다.
이제 그들의 관심사는 모두 군자, 그리고 지금까지 네 발의 화살을 모두 10점에 꽂아 넣은 궁사들에게로 쏠렸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4연속 10점을 기록한 참가자는 이제 9명 뿐.
살아남은 참가자들의 표정에 더 이상의 웃음기는 없었다. 모두 한 번 이상의 국가대표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었지만, 120%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이 평가전에 임하고 있었다.
세계 랭킹 1위 고한영, 작년 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김덕준도 그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천재 궁사’로 평가받지만 기복이 심한 탓에 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던 연규정도 모든 화살을 10점에 꽂아 넣었다.
“규정이 형도 오늘 집중력 미쳤네요.”
“쟤는 원래 상대 따라서 실력이 바뀌잖아.”
“아이돌한테 지고 싶진 않은 건가···.”
“딱히 그렇다기보단··· 그냥 이 경기가 엄청 재미있나 본데?”
고한영의 말처럼, 연규정은 긴장감 없이 해맑은 얼굴로 시위에 화살을 걸고 있었다. 이어진 5차 시기, 아름다운 궤적으로 날아간 연규정의 화살은 이번에도 과녁의 정중앙에 꽂혔다.
퍼어어억—.
이어서 고한영이 당연하다는 듯 10점을 쏘았고.
“아··· 다들 왜 이렇게 잘 하는데···.”
김덕준은 침을 꿀꺽 삼키며 다소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으나, 막상 시위를 당긴 순간부터는 자신의 루틴을 완벽하게 지키며 10점을 기록했다.
[자아, 연이어 10점 기록하는 대한민국의 신궁들입니다—!! 고한영, 김덕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폼이 좋은 선수들이죠!!]
[기복이 심해서 항상 대회 막판에 미끄러졌던 연규정 선수도 오늘 펄펄 날아다닙니다!! 평가전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치열함!! 이 정도라면 유군자 선수라도 기가 죽을 만 한데··· 과연 다섯 번째 화살도 잘 쏠 수 있을지—!!]
이쯤 되니 이제 관객들도, 양궁협회 관계자들도 모두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며 안달복달했다.
“엄청 긴장되지 않을까요?”
“당연하지. 당장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일걸.”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잘한 경기였다. 다섯 번째 화살이 아예 과녁 밖으로 날아가 버린다고 해도 중간 정도의 순위는 충분히 기록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여기까지 온 이상, 실력발휘를 제대로 한 군자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당연했다.
“하필 오늘 다른 선수들도 다 엄청 잘 쏘네요.”
“그러게. 한 8점 정도만 쏴도 1위 경쟁에서는 완전히 밀려 버리겠는데.”
“원래 ‘잘 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더 흐트러지잖아요.”
“그치. 엘리트 선수들도 그 압박감을 못 이겨서 대회에서도 6점 쏘고, 4점 쏘고 그러잖아.”
“하물며 유군자 저 친구는 어떻겠어요. 마인드컨트롤 훈련이나, 억지로 집중력 끌어올리는 훈련도 해 본 적 없을 텐데.”
“사실 지금 스코어만 봐도 말도 안 되게 잘 쏜 건데···.”
“···그래도 괜히 궁금해지지 않아요?”
양궁협회의 고위급 위원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스포츠가 된 양궁이지만, 활은 기본적으로 살상용 병기다.
군자와 경쟁하는 선수들은 모두 스포츠로서 양궁을 접했다. 모두 높은 집중력과 뛰어난 실력을 가졌으나, ‘병기를 다룬다’는 느낌을 주는 선수는 없었다.
그러나 군자는 달랐다.
시위에 활을 건 순간부터 과녁에 집중하는 군자의 모습은 마치 야산 중턱의 사냥꾼, 혹은 전쟁터의 선봉에 선 마상 기마병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저 예쁘게 잘생긴 아이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살벌한 눈빛을 보니 고위급 위원들의 심장마저 쿵쾅거렸다.
“···다행히, 완전히 집중하고 있는 것 같구만.”
그 말처럼, 군자의 집중력은 한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경쟁자들이 높은 점수를 기록하는 중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군자의 승부욕에 불을 붙였다.
훌륭하다. 윤보배라는 분도 훌륭했지만, 이곳 궁사들의 솜씨는 정말 일품이로구나.
국가대표 선수가 된다면 이 분들과 함께 세계를 상대로 경쟁할 수 있다. 이토록 뛰어난 궁사들과 한 패가 되어,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싸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도 내 실력을 확실히 입증해야 하는 것 아닌가.
꽈아악—.
시위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모두의 시선이 모여 있었으나 군자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으며 활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퍼어어어어어어억—!!
[10점—!! 또 10점—!! 유군자, 유군자 참가자가 또 10점 쐈습니다!! 미쳤습니다—!! 아니이, 뭡니까 이거—!? 5연속 10점이요—!?]
[국가대표급 선수들조차 단 여섯 명밖에 남지 않은 상태!! 유군자 선수가 ‘5연속 10점’의 대열에 합류합니다!! 믿을 수가 없네요—!! 유군자 선수, 국가대표급 이상의 양궁 솜씨를 선보입니다—!!]
[자아, 평가전이지만 순위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연장전이 시작됩니다!! 추가로 두 발의 화살을 쏘아, 상위 일곱 선수들의 순위를 결정하게 될 것 같네요!!]
[평가전에서 이만큼 치열한 각축전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유군자 선수의 믿을 수 없는 선전, 그리고 그 기량이 다른 국가대표급 선수들의 집중력까지 함께 북돋운 것 같습니다—!!]
9만 명으로 시작된 온라인 스트리밍 시청자는 이미 15만 명까지 불어나 있었다. 연신 터져 나가는 서버에 불평을 쏟아내면서도, 군자의 팬들은 스트리밍 채널을 끌 수 없었다.
“미쳤어··· 진짜 미쳤나 봐···.”
연지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군자가 활 잘 쏜다는 것만 알았지, 그 실력이 실제 국가대표 선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임은 몰랐다.
‘중간 이상만 갔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민망할 만큼, 군자의 실력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반짝반짝 빛났다.
이제 최소 7등이 확보된 상황, 평가전은 연장전으로 돌입했다. 사로를 정리하고 탈락한 선수들을 내보내니 경기 집중도는 한층 더 올라갔다.
이제 선수들은 자신과 경쟁할 여섯 선수들을 볼 수 있었다. 군자 역시 그들의 면면을 가볍게 살펴 보았다.
“으음···.”
안광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결코 가벼이 여길 만한 상대가 아니다. 아마도 지난 수 년 동안, 오로지 활을 잘 쏘는 방법만을 궁리해 왔을 터.
몇몇 선수들은 군자를 향해 적대적인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으나, 군자는 어쩐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이돌 가수가 양궁을 한다고 와서 이러고 있으니, 적대감을 가지는 선수들이 있는 것도 당연하지.
허나 대충 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이 선수들의 긍지를 더럽히는 일일 테니.
전력을 다해 이 경쟁의 승자가 된다. 더 나아가, 국가대표 선발전에 합격하여 태극기를 가슴팍에 단다.
결의를 다지는 순간, 풍향이 바뀌며 강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초여름의 불안정한 대기가 변덕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평가전인 만큼 바람이 멎기를 기다렸다가 안정적인 상황에서 경기를 할 수도 있었으나, 협회 측이 경기를 속행시켰다. 협회 역시 더 이상 이 경기를 가벼운 평가전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였다.
[자아, 바람이 조금 불기 시작했습니다만 경기 딜레이 되지 않습니다—!! 선수들, 이 바람을 뚫고 화살을 쏘아야 합니다—!!]
[선수들, 표정이 복잡해 보입니다!! 긴장감도 보이고 난감함도 보이는데요, 어쩌다 이 평가전이 이렇게 진지해져 버렸는지 도통 모르겠을 겁니다—!!]
[반면 유군자 선수, 한가하게 품에서 붓을 꺼내서 만지작거리고 있군요!! 저게 그 기자회견장에서 군필자 개드립을 쳤던 그 붓인가 봅니다—!!]
연장전이 시작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웅성임이 바람을 타고 선수들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기껏 끌어올린 집중력은 흐트러졌고, 바뀐 바람은 마음에 불안감을 심어 주었다.
이 바람을 뚫고 제대로 쏠 수 있을까? 여기선 실수하면 안 되는데···.
퍼어억, 퍼어어억—.
망설임은 언제나 실수를 낳았다. 먼저 화살을 쏘아 보낸 선수 두 명이 모두 7점을 기록했다. 패배를 직감한 듯, 7점을 쏜 선수들이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아아··· 아쉽습니다!! 정하웅 선수와 박민재 선수, 여기서 7점 기록합니다!! 지금까지 내내 10점을 쏘아 오던 선수들입니다만, 연장전의 긴장감과 사나운 바람을 이겨 내진 못했습니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에게도 어려운 바람입니다!! 과연 이 바람 속에서도 좋은 점수를 낼 수 있을지, 이번에는 고한영 선수가 시위 당깁니다—!!]
쐐애애액, 퍼어어어어어억—!!
그러나 그 와중에도 고한영은 흔들리지 않으며 10점 과녁에 화살을 꽂았다. 비록 정중앙은 아니었으나 10점으로 판정받기엔 충분한 위치. 위기를 극복해 낸 고한영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영이 형! 진짜 짱이에요!”
“아직 한 발 남았잖아. 더 집중해야지.”
그렇게 말하며 고한영은 군자 쪽을 바라보았다. 한영의 멋진 퍼포먼스에 화답하겠다는 듯, 이번엔 군자가 활시위를 당겼다.
“조건은 다 같아. 똑같은 바람, 똑같은 긴장감.”
“그럼 저 사람한테도 어려운 상황이겠죠?”
“그렇겠지. 근데···.”
“근데?”
“저 분은··· 집중력이 좀 정상이 아닌 것 같단 말이야.”
한영이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도 군자의 집중력은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어려서부터 극한 상황에서 갈고 닦아 온 집중력이다. 숙부 유형원이 가해 왔던 육체적인 학대, 고립이라는 정신적 형벌. 그 속에서도 군자는 언제나 최상의 집중력으로 활을 쏘고 글공부를 해야 했다.
선수들은 집중하지 못한다면 경기에서 질 뿐이었지만, 군자에게 집중력이란 곧 생존 수단이었다.
“숙부가 주고 간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구나.”
그렇지만 감사하다는 말은 않겠습니다, 숙부님.
제 숙부의 얼굴을 과녁 정중앙에 떠올리며, 군자가 여섯 번째 활시위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