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238화 (238/303)

#238

금란의 벗

“아아, 뭐예여. 빨리 말해 줘여, 실장니임.”

“아 몰라 몰라~ 나 운전에 집중해야 돼, 말 걸지 말아줘~”

“아니 실장님이 어그로 다 끌어 놓고! 너무한 거 아니에요?”

“이제 금방 알게 된다니까.”

소년들의 성화를 애써 무시하며 이용중 실장은 오로지 운전에만 집중했다.

“암튼 이 실장은 아무것도 몰라요~ 운전밖엔 모른답니다~”

“아오, 실장니임—!!”

사실 입이 근질근질해서 미칠 노릇이었지만, 며칠 전 군자의 부탁을 생각하면 지금은 꾹 참는 것이 맞았다.

그 기특하고 귀여운 놈,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을까!

딱 나흘 전, 군자가 동료들 몰래 서은우 팀장과 이용중 실장을 찾았다.

“팀장님, 실장님.”

“으음?”

“의논드릴 일이 있습니다.”

군자의 표정엔 약간의 걱정이 어려 있었다. 개인 면담 같은 것은 좀처럼 신청하지 않는 군자였기에 두 사람 모두 놀랐으나, 내용을 듣자 그 다음부터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의논이라니, 무슨··· 아, 혹시 양궁 때문에?”

“예, 맞습니다.”

“혹시, 더 이상 양궁을 하고 싶지 않은 겁니까?”

“아뇨,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 때문일까요.”

“양궁 국가대표 일 때문에, 동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질까 걱정입니다.”

군자의 고민은 간단했다. 양궁 국가대표에 도전하는 시간이 동료들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걱정이다. 당장은 양궁에 전념하고 있지만 군자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7IN 동료들이니까. 가능한 한 동료들이 실망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

서은우 팀장 역시 진작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기에 바로 답을 줄 수 있었다.

“그런 문제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군자 씨가 없을 때에도 동료들은 항상 군자 씨의 소식을 챙겨 본답니다. 경기를 응원하는 것은 물론, 다른 양궁 선수들의 SNS까지 팔로우해 가면서 말이죠.”

“···.”

“군자 씨, 동료들은 군자 씨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군자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요.”

서은우 팀장의 말에, 군자는 안심이 된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군자는 할 말이 남았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마음이 아무리 커도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면 한낱 무형의 사고(思考)에 그치겠지요. 소중한 동료들에게 제 마음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흐음, 저희가 도와야 할 일이 있을까요?”

“예. 혹시, 하루 정도만 숙소를 비워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군자와 이용중 실장의 공조가 시작됐다.

군자의 계획은 이러했다. 동료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는 동안, 이용중 실장이 멤버들을 데리고 다른 일정을 소화한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계획이었지만, 준비할 것은 꽤나 많았다.

말로써 마음을 전달할까, 아니면 편지를 써 볼까.

다양하게 고민해 보았지만 군자가 내린 결론은 말도, 글도 아닌 다른 것이었다. 결심을 굳힌 군자는, 지현수 외에 그가 아는 유일한 프로듀서인 스칼렛 홀, 즉 ‘윌리 그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호올 선생님, 그간 강녕하셨나이까.”

- 오, 군자! 웬일로 나한테 연락을 다 했을까?

“다름이 아니오라, 호올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 안 그래도 너희를 생각하면서 곡을 쓰고 있었어. 한 달 정도 지나면 데모가 완성될 것 같은데··· 그건 그렇고, 어떤 부탁이지?

“소중한 동료들을 위해 곡을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군자가 스칼렛 홀에게 부탁한 것은 즉석 음원이었다.

말도 좋고 글도 좋지만, 짧은 시간에 마음을 표현하기엔 음악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군자의 부탁을 들은 스칼렛 홀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 친구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하하핫, 그거 참 기특한 생각이네.

“감사합니다.”

- 근데 왜 하필 나야? 한국에도 프로듀서들은 많을 텐데···.

“전 최고의 곡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한, 제 동료 지현수를 제외한다면 호올 선생님보다 뛰어난 작곡가는 없습니다.”

- 푸하하핫, 갈수록 재미있네. 군자, 내 곡비가 얼마나 되는 줄 알고 이런 의뢰를 하는 거니?

“물론 금전에 대한 협상도···.”

- 아이, 농담이야 농담. 네 부탁인데 무조건 들어 줘야지. 하지만 이건 알아 둬, 너 나한테 빚 하나 진 거다?

“···감사합니다, 호올 선생님.”

세계 최고의 프로듀서 스칼렛 홀은 결코 돈에 움직이는 인간이 아니었다. 군자가 제공한 거문고 가락에 스칼렛 홀의 기술과 노하우가 곁들여지니 순식간에 엄청난 퀄리티의 트랙이 탄생했다.

보컬 라인이 확실히 들릴 수 있도록 어레인지한 멜로디와 악기 구성은 군자의 마음에도 쏙 들었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군자는 결코 은혜를 잊지 않는답니다.”

- 흐흐, 그래. 나중에 딴 소리 하면 안 돼.

그렇게 반주 트랙을 손에 넣은 군자가 그 위에 목소리를 얹어 보았다. 진심이 담겨 있어서인지,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가사는 술술 나왔다.

그렇게 곡을 완성한 다음 날, 예정대로 이용중 실장은 다른 멤버들을 데리고 일정을 소화했다. 그 날도 군자는 진천의 훈련소에서 양궁 연습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몰래 숙소에 남은 군자는 멤버들을 위한 깜짝 파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후후, 후후후··· 친구들아. 이것이 내 마음이란다.”

동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한껏 담아, 군자는 숙소 이곳저곳을 열심히 꾸몄다. 인테리어가 거의 마무리될 즈음, 마침내 이용중 실장의 밴이 숙소에 도달했다.

“실장니이임—.”

“어어~ 이제 숙소 다 왔네. 이제 주차장이네~”

이용중 실장을 들들 볶으면서도, 멤버들은 군자가 자신들을 위한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대체 뭘··· 어라?”

마침내 멤버들이 숙소 문을 열자, 처음 맡는 향긋한 향이 코끝을 찔렀다. 은은하면서 따뜻한 향은, 그 동안 숙소에서 나던 향기와는 다른 재질의 것이었다.

“이게 뭔 향이지?”

“우아, 엄청 포근하고 좋은데여.”

“불은 또 왜 이렇게 야시시하게 꺼 있어?”

“엥? 이거 대나무 잎파리 아니냐?”

묘한 위화감을 느끼며 천천히 숙소 안으로 들어가는 멤버들이었다.

바닥 곳곳엔 푸르스름한 대나무 잎파리가 깔려 있었으며, 블루투스 스피커에선 계곡물 졸졸졸 흐르는 소리가 났다.

“···아니 이게 뭔···.”

어안이 벙벙한 멤버들이었지만, 적어도 범인이 누구인지는 단번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렇게 선비스러운 아이템으로 집을 꾸며 놓을 인간은 전 세계에 단 한명, 유군자 뿐이다.

“푸하하학—.”

“아니 이게 뭐야! 미쳤어—!?”

“이게 뭔 몰래카메라야? 우리 다같이 조선시대로 워프한 거?”

“군자야, 나와서 말 좀 해 봐.”

“군자야아아—.”

웃음기 가득 머금은 멤버들이 군자의 이름을 부른 순간.

매화가 그려진 도포를 입고, 옻나무로 만든 쟁반을 든 군자가 동료들의 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당황스런 인테리어, 그보다 더 당황스런 등장이었지만 멤버들은 차마 웃을 수 없었다.

“···아니, 얘는 왜 이딴 개짓거리를 해도 잘생겼냐···.”

웃음기가 사라진 것은 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막상 열심히 준비를 하긴 했지만, 동료들 앞에 서니 민망한 감정이 앞섰다.

샘솟는 민망함을 애써 꾹꾹 누르며, 군자는 빨개진 얼굴로 그들에게 슬슬 다가갔다.

“그, 어··· 과거 추사 김정희 선생님과 승려 초의선사는 차를 나눠 마시며 우정을 다졌다고···.”

“으음? 뭐라는 거야, 잘 안 들려! 크게 말해 줘.”

“그, 그래! 예로부터 차를 나누어 마시는 것은 우정의 상징이라고 한다!”

“푸하핫, 뭐라고?”

“돼, 됐고! 빨리 한 잔씩 마셔 보거라. 좋은 향이 다 날아갈까 걱정되는구나···.”

그제야 멤버들은 군자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애써 웃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멤버들은 이용중 실장을 흘끗 보았다. 이용중 실장 역시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 중이었다.

“그으래에, 우정의 차 맛이 어떤지 한번 보자.”

“뜨, 뜨거울 수도 있으니 조심하거라 태웅아.”

“얌마, 내가 그렇게 멍청한··· 앗, 뜨, 뜨거—.”

언제나처럼 태웅의 바보짓이 분위기를 풀어 주었다. 거기에 따뜻한 차가 들어가니, 공기는 한결 더 노곤노곤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으음, 이거 엄청 향긋한데여?”

“또 어디서 이런 맛있는 걸 가져왔대.”

“야, 이거 뜨겁긴 한데 마시니까 코가 뻥 뚫리는 것 같다. 한 잔 더 주라.”

“미친, 그걸 벌써 다 마셨어?”

그때까지만 해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동료들이 기분 좋게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니 비로소 긴장감이 풀린 군자였다.

“너희들이 좋아하니 참으로 다행이구나.”

이제 슬슬 차가 바닥나고 있었다. 이제 준비한 본론을 꺼내야 할 시간이었다.

요즘 내가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긴 하다만, 마음 속으로는 항상 너희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내게 가장 소중한 친구들은 바로 너희들이란다.

마음 속에선 애정이 가득했지만, 막상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그렇게 말하려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뭐야, 할 말 있냐? 뭘 그렇게 우물쭈물해.”

“···그, 그것이···.”

“맞아여. 이런 이벤트까지 준비하고, 차까지 대접하고. 뭔가 할 말이 있어서 이러는 거 아니에여?”

“크흐음—.”

“무슨 말이든 기꺼이 들을 테니까, 말해 봐 군자야.”

“···.”

“아하하하핫, 설마 본격 탈퇴 선언은 아니겠지~”

“아, 아니다!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

시우의 말에 황급히 반박한 군자는, 몇 번의 헛기침을 더 하다가 마침내 몸을 움직였다.

가끔은 백 마디의 말보다 한 구절의 노래에 더욱 강한 진심이 담기는 법.

“잠시만 기다려 보거라.”

방으로 들어간 군자는 이내 나유선의 향비파를 들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블루투스 스피커와 연결된 스마트폰엔, 스칼렛 홀이 만들어 준 음원이 들어 있었다.

비파를 들고 나온 군자를 보며 동료들이 작은 환호성을 질렀다.

“우왕, 갑자기 노래까지?”

“아니 군자야, 갑자기 뭔 콘서트를 하고 그러냐.”

“야, 뭐든 군자가 하면 다 좋은 거지. 토 달지 말고 그냥 들어라.”

민망함에 얼굴은 다시 한번 달아올랐다. 손발이 오그라들어 비파도 치지 못할 것 같았기에, 군자는 설명 대신 빠르게 스마트폰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스칼렛 홀이 직접 어레인지한, 거문고 가락 위주의 미니멀한 반주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아 완성된 음원이지만,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멜로디와 믹싱은 순식간에 멤버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허, 반주도 만들었다고? 근데 이거 왜 이렇게 고퀄이야?”

“조용히 해, 군자 노래하잖아.”

“알았어 알았어.”

잡담 소리마저 잦아들자, 마침내 군자가 동료들을 위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 그대들을 아낌이

어느 곳에 있든 당연한지라,

언제든 우리 갈 길이

여러 갈래인 듯 하나일지라.

금란(金蘭)의 벗, 내게는 그대지.

전에는 몰랐네, 그 커다란 의미.

그대를 만나면 내 마음 들뜨니,

수어지교(水魚之交) 곧 우리들 이야기.

“···.”

“우와···.”

그 때까지는 장난스런 웃음을 짓고 있던 멤버들도, 군자가 노래를 시작하자 어느새 그 노랫소리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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