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
이런 귀여운 짓을
음향 장비 하나 없이도 군자의 목소리는 숙소 거실을 온전히 감쌌다.
군자의 목소리엔 특별한 힘이 있었다. 장소가 어디든 그곳을 콘서트 홀로 만들어 버리는, 가벼운 가창만으로도 사람을 흠뻑 매료시키는 그런 힘이.
동료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군자의 목소리는 그런 동료들마저 매번 무장해제시키곤 했다.
“···와아···.”
게다가 이번에는 그 가사가 동료들을 호명하고 있었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엔 손가락이 오그라들어 비파나 잘 칠 수 있을까 걱정인 군자였다. 그러나 막상 반주가 흐르기 시작하니 부끄러움은 사라지고 자연스레 입이 열렸다.
친구들을 생각하며 차분히 적어 내려간 가사다.
혹여 소중한 친구들이 자신을 오해할까, 마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오로지 진심만을 담았다.
우리는 월광에 번쩍이던 일곱 칼날,
오색의 부채와 줄을 타던 일곱 한량.
어찌 잊으랴, 고락의 순간들.
열띤 표정과 보람의 나날들—.
노래를 부르다 보니 자연스레 동료들과 함께했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서바이벌 오디션을 통해 하나가 되었고,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굳건한 관계를 만들어 나갔다.
어쩌면 이렇게도 뜻이 통할 수 있는지, 어쩌면 이다지도 결이 맞을 수 있는지.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형제가 없는 군자였지만, 이들이야말로 배다른 형제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지음(知音)의 벗, 얼마나 중한지.
일찍이 알았네, 그 커다란 의미.
그대 떠나면 내 현도 끊어지니,
백아절현(伯牙絶絃) 곧 우리들 이야기.
소중한 만큼, 동료들을 잃는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울적해졌다.
친구를 떠나보내고 거문고의 현을 끊어 버린 장인 백아(伯牙)처럼, 군자 역시 동료들을 잃는다면 더 이상 그 무엇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노래를 부르며 군자는 동료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어찌 이리도 각양각색인지. 닮은 듯 미묘하게 모두 다른 여섯 동료들이었지만, 그 다른 눈매가 모두 군자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아기 같았던 유찬이는 어느새 장성한 청년이 되어 있었고.
항상 다정다감한 현재는 오늘도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눈빛을 보내 주었다.
과분한 현수의 추앙은 군자로 하여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으며.
때 묻지 않은 시우의 웃음을 보고 있노라면 군자의 마음도 가뿐해지곤 했다.
듬직한 인혁이 형님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군자에게 힘이 되었고.
매번 군자를 웃음짓게 만드는 태웅 역시 군자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었다.
후후, 태웅아. 너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의 설화를 알고 있느냐.
모른다고 해도 무방하다. 중요한 것은 설화가 아닌 우리들의 마음 아니겠느냐.
우리는 심산을 누비던 일곱 사냥꾼,
장단에 몸짓을 맞추던 일곱 소리꾼.
어찌 등지랴, 존망의 동지를.
어찌 놓치랴, 소망의 결실을.
민망함과 부끄러움은 어느새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이용중 실장이 몰래 그 모습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고 있었으나, 군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오롯이 노래에만 집중했다.
이 마음이 너희들에게 전달된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간절한 바람은 동료들에게도 닿은 것 같았다. 어느새 유찬과 인혁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으며, 오그라드는 건 못 견디는 태웅도 군자의 노래에 푹 빠진 것 같았다.
그렇게 노래는 두 번의 후렴을 넘어 수미상관의 구조로 마무리됐다.
내 그대들을 아낌이
어느 곳에 있든 당연한지라,
언제든 우리 갈 길이
여러 갈래인 듯 하나일지라—.
그렇게 노래가 끝나고, 반주 소리마저 잦아드니 폭포수 같은 민망함이 단번에 밀려들었다.
“···그, 어··· 끝났구나···.”
내가 참 잘도 이런 짓거리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군!
화끈해진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황급히 향비파를 정리하려던 순간, 동료들이 군자에게 다가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
얼굴은 이미 새빨개지다 못해 폭발할 것 같았지만 동료들은 군자를 놓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야, 우리도 오그라드는 거 싫어하거든? 근데 지금은 걍 가만히 있어라.”
“흐흐, 우리 이렇게 스크럼 짜 보는 것도 오랜만이네여. 경연 이후로는 처음인 것 같은데?”
“아니 언제 이렇게 대단한 걸 다 기획하고 준비했대.”
“···구, 군자 형, 고마워요···.”
“···고맙기는.”
민망하긴 했지만, 막상 동료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뭉쳐 있으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냥, 내가 양궁을 한다고 너희를 떠나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아···.”
“그랬구만. 그게 신경쓰였어.”
“혹여 너희가 섭섭할까 걱정이 되었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내 몸이 두 개가 아니다 보니 너희의 옆에 있어 주지 못했다.”
“야, 우리가 뭐 그런 걸로··· 아니, 근데 이해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그럼 그럼.”
“비록 몸이 멀리 있어도 마음은 항상 너희의 곁이었다. 너희를 떠올릴 때마다 백아절현(伯牙絶絃) 이야기가 생각나더구나. 태웅이는 모르겠지만, 그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얌마! 나도 알거든!? 그 뭐야, 친구 잃고 거문고 줄 끊어 버린 얘기잖아!”
“오?”
“오? 는 개뿔!”
진지한 분위기는 채 1분을 가지 않았다. 어깨동무를 푼 소년들은 다시금 평소처럼 서로에게 장난을 치며 웃기 시작했다.
“군자 형아, 그럼 우리가 제일 소중해여?”
“당연하지. 내겐 가족과 너희들이 가장 소중하다.”
“그러면 양궁소년단 형아들이랑 우리 중엔 누가 더 소중해여?”
“물어 무엇하느냐. 양궁 선수들도 모두 좋은 친구지만, 너희와의 우애에 비할 수 없지.”
“오오, 그래에? 그럼 둘 중 한 쪽만 골라야 한다면? 우리 선택하고 양궁소년단 님들은 포기할 수 있어?”
“···어?”
“어어어? 망설인 거야?”
“아니, 그것이 아니라···.”
“망설인 거 맞네! 웅이 형아! 우리 배신당했어여!”
“배신이네, 배신이야!”
“내 말을 좀 들어 보거라! 양궁 선수들은, 어쩌면 나와 함께 국가대표가 되어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
“군자, 말이 길다.”
“헉, 인혁이 형님까지?”
“푸하하하학, 얘 얼굴 파래진 거 봐.”
“아니다, 아니야! 너희들은 나에게 너무도 소중한···.”
“소중하지만 국대 친구들보단 덜 소중했고~”
“소중하지만 둘 중 한 쪽을 고르라면 망설여 버리고~”
“이런··· 이런 의금부에 갈 놈들 같으니!”
“우와, 조선쌍욕이다!”
결국 장난으로 끝난 대화였으나 동료들이 군자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양궁 국가대표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어떻게 이런 노래까지 준비했을까.
잠시나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는 사실이 미안해질 정도로, 동료들을 향한 군자의 마음은 진심 그 자체였다.
이런 선물을 받았으니 동료들도 군자의 행보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크크, 이제 장난 그만 쳐여. 이러다 군자 형아 울겠다.”
“아, 좀 아쉬운데. 조금만 더 하면 울 것 같은데.”
“이노옴, 권태웅!”
“푸하하하학, 알았어 알았어. 안 할게. 안 하면 되잖아.”
“흐극···.”
“어? 울어? 우는 거 아니지?”
“안 운다, 이 놈아!”
“그래, 울지 마. 너 마음 다 알겠어. 솔직히, 진짜 솔직히 섭섭한 마음이 아주 쪼오—끔은 있었는데.”
“있었는데···?”
“오늘 싹 풀렸다. 이렇게 맛있는 차 먹고, 이렇게 좋은 노래까지 받았는데 꽁해 있으면 그건 친구도 아니지.”
“···다행이구나.”
이번엔 동료들이 군자에게 한마디씩 건넸다.
“난 오늘 결심했어여. 앞으로 군자 형아가 뭔 일을 하든 전적으로 응원하기로.”
“나도야. 사실 원래도 그러고 있었고. 군자, 괜히 우리한테 미안하다는 생각 하지 말고 무슨 일이든 100% 집중해서 해. 너도 우리가 다른 일 하면, 그렇게 응원해 줄 거잖아. 그치?”
“물론이다. 너희들이 어디에서 뭘 하든, 성공을 기원하고 응원할 거다.”
“그래. 진짜 오그라드는 말이긴 한데, 난 이런 친구들이 생겨서 너무 기뻐. 앞으로도 평생 갔으면 좋겠어.”
“···흠흠, 그, 노래는 괜찮았느냐?”
“어, 좋더라. 비트는 누구한테 받은 거야? 지현수가 하진 않았을 거고.”
“아, 호올 선생님께 부탁드렸다.”
“뭐? 스칼렛 홀? 윌리 그린한테 비트를 받았다고!?”
“그래. 너희를 위한 노래인 만큼 최고의 작곡가를 섭외했지.”
“미친, 뭔 이런 노래에 윌리 그린 비트를 써!”
그 때까지 멤버들의 영상을 찍던 이용중 실장이 조심스레 소년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군자야. 너 노래하는 영상 말인데. 공식계정에 올려도 될까?”
“흐음, 조금 민망하긴 합니다만···.”
“그래? 하지만 팬 분들은 엄청 좋아하실 것 같은데!”
“그렇다면 좋습니다.”
“맞아여, 모처럼 좋은 노래 만들었는데 이렇게 묻히는 것도 아깝잖아여.”
“오케이, 그럼 올린다!”
군자의 컨펌을 받은 이용중 실장은 바로 영상을 SNS에 게시했다. 별다른 편집이나 후보정도 없이 원본 그대로 올라간 영상에, 수많은 7IN 팬들이 환호했다.
[헐 이게 또 뭔 뜬금떡밥]
[ㅇㅇ허엏ㅇ헐 너무좋아 노래머야 군자 목소리 머어ㅐㅑ]
[ㅠㅠㅠㅠㅠㅠ가사가 너무 애뜻하다]
[아니나는 상황이 너무 귀여워ㅠㅠㅠ양궁때매 친구들 삐질까바 노래 만들어서 불러준거라는 말이잖아ㅠㅠㅠㅠㅠㅠ]
[진짜 씹덕터진다··· 이렇게 생겨서 이렇게 귀여우면 이건 개반칙아니냐고 나랑장난함? 내일상생활어쩔건데??????]
[하아 나도 나도나도 군자때문에 속상하면 노래 만들어서 불러주나ㅠㅠㅠㅠㅠ]
[근데 얘때문에 속상할일이 없다는게 함정이야ㅅㅂ]
[맞넼ㅋㅋㅋㅋㅋ맨날 즐거워··· 매일이 짜릿하고 새로오ㅝ···]
[아니 이렇게 무해할수있는거임?]
[바닥에 대나무잎깔린거봨ㅋㅋㅋㅋ개킹받앜ㅋㅋㅋㅋㅋ]
[이 와중에도 포기 못하는 매란국죽]
[ㅋㅋㅋㅋㅋㅋㅋ진짜 사군자에 미친자임]
[나는 진짜 우리 애들 관계가 너무 건강하고 건전한것 같아서 행복함··· 남자들이라고 투박한 말만 주고받는게 아니라 서로 표현도 잘하고 위해주는게 보여서 너무 사랑스럽고 좋아]
[불화설보다 결혼설이 빠를 것 같은 남돌 1위]
[ㄴ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습적으로 올라간 노래 영상은 순식간에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군자가 노래를 하는 영상은 멀리 바다 건너 스칼렛 홀에게까지 전달됐다.
“흐음, 이런 귀여운 짓을 하려고 부탁한 거구만?”
노래를 부르는 군자를 보며, 스칼렛 홀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비록 간단하게 만든 인스턴트 음원이지만, 어쨌거나 스칼렛 홀과 군자의 첫 협업이었다.
“더 함께하고 싶어지네.”
자신의 프로듀서명인 ‘윌리 그린’으로 SNS에 접속한 스칼렛 홀은, 군자가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자신의 계정에 리포스팅했다.
[이 노래 내가 만듬. 내가 사랑하는 가수와의 첫 협업! 언젠가 진짜 끝내주는 작업을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몰라. #농담아님 #YooKunja #7IN #WGreen]
안 그래도 화제의 중심이었던 이 영상은, 작곡가가 무려 ‘윌리 그린’이었다는 사실에 더 큰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