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244화 (244/303)

#244

애 같고 좋네

“그, 혹시 요즘 바쁘신지···.”

- 우리가 바쁠 게 뭐가 있겠어, 아들 덕에 일도 안 하고 사는데.

“그렇다면 익월 초 쯤에 시간 괜찮으십니까?”

- 응응, 언제든 괜찮아. 왜?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함께 LA로 가자는 말에, 군자의 부모님은 소리까지 지르며 행복해 했다. 얼마나 신나셨는지, 전화기 너머로도 그 희열이 전해질 정도였다.

- 정말!? 정말이지 군자야—!?

“예, 정말입니다.”

- 우와, 너무 너무 너무 기대되는데—!? 우리 미국 처음이야—!! 진짜 진짜 가 보고 싶었는데—!!

“좋아해 주시니 저 역시 기쁩니다.”

- 우와아, 미국, LA—!! 행복해—!!

“하핫.”

- 아 맞다, 이거 절대로 미국 가서 좋아하는 거 아니다! 너랑 여행 가서 좋은 거라구!

“제가 어찌 그 뜻을 모르겠습니까, 하하핫—.”

한껏 들뜬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도저히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솔직히 부모님은 미국에 가신다는 것 자체에 신이 나신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자식 된 입장으로서, 부모님이 자신의 제안에 기뻐하는 것만 보아도 뿌듯했으니까.

나머지 멤버들 역시 모두 부모님 초대에 성공한 듯 들뜬 표정이었다.

“아하하핫, 부모님이 엄청 좋아하시더라~”

“시우 부모님은 프랑스에서 오시는 거야?”

“으응~ 바로 비행기 표 끊으셨어~”

“···제 도, 동생들도 엄청··· 엄청 기뻐했어요···.”

“그랬겠다. 그럼 유찬이 가족도 다 오는 거야?”

“···네에···.”

“푸하학, 너 얼굴 빨개졌어!”

“···아앗···.”

“거 되게 좋아하네. 하긴 우리 부모님도 엄청 좋아하시더라.”

“부모님이랑 같이 여행 가 본 건 엄청 오래됐으니까···.”

“이번 기회에 관광도 좀 하고, 선물도 잔뜩 사 오고 그래야지.”

“근데 난 아직도 릴 핌프, 그 형이 이런 공연을 기획했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아니 어쩌다가 그 사고뭉치 형님이 AKA 효도왕이 된 거냐고···.”

“군자 물들어서 그렇지 뭐. 본토 리얼 힙합 아티스트에 유교 냄새를 묻히다니, 이 자식도 진짜 보통은 아니라니까.”

“후후, 칭찬 고맙구나 태웅아.”

“오케이, 효도사이드 스쿼드 친구들! 오늘도 어머님의 은혜 10회 반복 시작해 볼까?”

공연 연습은 순조로웠다. ‘효도사이드 스쿼드’의 래퍼들은 착실한 연습량으로 <어머님의 은혜>를 마스터해 나갔다.

“좋아 좋아, 딱 좋아요. ‘다 잊으시고’를 ‘Die Juicy Go’로 발음하는 것만 고치면 더 좋을 것 같아.”

“Shit, 그 부분이 이 노래의 킬링 파트라고!”

“킬링은 개뿔, 부모님한테 바치는 노래에서 죽이긴 누굴 죽여!”

“몰라서 묻냐? 불효자 새퀴들을 죄다 묻어 버려야지! 우리 공연 이름도 패륜킬러라고!”

“어후, 진짜 이 인간들을 어떻게 해야 되냐.”

스칼렛 홀과 7IN의 두 번째 콜라보레이션도 차근차근 진행되어 나갔다.

“군자랑 한 작업은 미니멀했지만 이번에는 악기를 조금 더 펼쳐 볼 거야.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만든 노래니까, 아무래도 조금 더 감성을 자극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넵, 윌리 그린 누님!”

“원래 음악으로 감성팔이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부모님이라면 얘기가 또 다르잖아? 생각해 보니까 내가 가족을 주제로 노래를 만들어 본 적이 없더라고. 나한테도 꽤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아. 무엇보다, 일단 너희랑 일을 하는 걸 엄청 기다려 오기도 했고.”

“위, 윌리 그린 누님이 우리를···.”

“아, 그리고 평소엔 그냥 스칼렛이라고 불러. 윌리 그린은 오그라들거든. 군자는 호올 선생님이라도 부르긴 하더라만···.”

“네엡, 호올 선생님!”

“···그냥 스칼렛이라고 부르라니까···.”

윌리 그린 - 7IN, 그 두 번째 콜라보레이션 트랙의 작사는 군자가 맡았다. 랩 파트가 없으며, 진중한 효심을 담은 서정적인 가사를 써야 하는 만큼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효자인 군자가 적격이라는 의견이었다.

“흐음, 작사라···.”

“이건 군자가 해야지. 솔직히 우리 중에 군자보다 효자인 사람이 없잖아.”

“맞아여 맞아여. 그리고 원래도 형아 파트는 형아가 작사 했잖아.”

“그렇긴 하다만, 곡 전체를 통으로 작사해 본 경험은 없기에 불안하구나.”

곡 전체의 작사를 담당해 본 경험은 없기에 불안감이 앞서는 군자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순간이 아니면 언제 부모님께 이런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까.

게다가 ‘윌리 그린’의 이름을 빌린다면 이 노래를 전 세계에 전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자식지간을 갸륵한 효심으로 묶는 노래를 만든다라. 이 얼마나 의미있는 작업인가.

그렇게, 부담감을 꼭꼭 누르며 작사 작업을 이어간 군자였다.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이번에는 옛 말투를 버리고 현대 어투의 가사를 붙였다. 가끔은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았지만 꾹꾹 참으며 가사를 한 줄 한 줄 추가해 나갔다.

“···후우, 민망하기 그지없구나···.”

어렵게 완성시킨 가사를 동료들에게 조심스레 공유했다. 처음에는 오그라든다며 군자를 놀리던 동료들도, 2절 가사까지 모두 읽고 난 다음엔 마음이 뭉클해진 듯 군자를 칭찬해 주었다.

“야 군자야.”

“음?”

“잘 썼는데? 솔직히 오그라들긴 하는데, 그래도 담백하고 담담하게 나온 것 같아.”

“휴우, 다행이구나.”

“어, 음, 난 좀 걱정인데여.”

“걱정? 무엇이? 가사의 수준이 조금 별로더냐?”

“아니, 우리 부모님들 다 오시잖아여. 이런 노래 불렀다가 괜히 막 다 통곡하면 어떡해. 나 그런 거 보면 노래 못 불러여.”

“부모님이라면 그러실 수도 있겠지. 하지만 노래를 멈춰선 안된다. 우리가 준비한 마음을 끝까지 예쁘게 잘 전달해야 하지 않겠느냐.”

군자의 말에, 멤버들은 각자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감상에 젖었다. 평소엔 투박한 성격의 태웅마저 코를 슥슥 비비며 괜히 딴청을 피웠다.

“어우, 난 벌써 코 매워. 엄빠 생각하면 이상하게 코가 맵다니까.”

“···흑.”

“뭐야, 혁이 형 또 울어요?”

“아니, 아니다.”

“이 형은 진짜 왜 툭하면 울어?”

“형, 유튜브에 즙인혁 하이라이트 모음집 뜬 거 알아요?”

“즙인혁?”

“맨날 즙 짠다고, 형한테 새로 붙은 별명인데.”

“···푸, 푸흡···.”

“기유찬 넌 뭘 웃어. 너랑 인혁이 형 둘이 묶어서 눈물즈라고 부르시던데.”

“···허억···.”

“아하하, 다들 너무 눈물이 많아~”

“현시우, 넌 한번쯤 울어 봐. 너 울려 보고 싶다는 팬들도 많더라.”

“아하하하하, 쉽지 않을 걸~”

LA - 서울 투어, 는 깜짝 이벤트라 할 만큼 급하게 기획됐지만, 제대로 된 홍보를 하기도 전에 전석이 순식간에 조기 매진되어 버렸다.

모든 공연 준비와 연습을 마친 멤버들과 릴 핌프, 그리고 ‘효도사이드 스쿼드’ 래퍼들은 다시 LA행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갔다.

“형제들, 일주일 뒤에 보자. 우리의 좆되는 효심으로 무대를 뒤집어 버리자고.”

“하하, 효심이라는 단어 앞에 비속어를 붙이니 이상하잖소.”

공연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일찍 미국에 온 이유는 가족들과 함께 관광을 하기 위함이었다.

7IN의 일곱 멤버들은 모두 그들의 부모님, 가족과 함께 이동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동안은 주로 멤버들, 혹은 회사 사람들과 함께했기에 멤버들에게도 이번 여행이 뜻깊은 시간이었다. 특히 동생들과 함께하는 유찬의 모습은 동료들을 놀라게 했다.

“형아, 형아야, 나 어밴저스 보러 갈래.”

“기유현, 안 돼. 순서대로 관람해야지.”

“히잉, 어밴저스···.”

“칠린 형아들이랑 같이 다니기로 했잖아.”

“···우웅···.”

“그럼 우리끼리 따로 다닐래?”

“···아니이···.”

꽤나 엄격한 유찬의 목소리에, 남동생 유현은 고개를 살짝 가로저으며 형의 손을 꼬옥 잡았다.

“형아들이랑 같이 다닐래···.”

“그래, 너 이 형아들 다 좋아한다고 했잖아.”

“으응, 맞아.”

그제야 유찬은 동생 유현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여동생 유주는 유현보다도 어렸지만 오히려 의젓한 면이 있었다.

“오빠아, 저기 솜사탕 있다아.”

“응, 유주 솜사탕 먹을래?”

“우음, 아니! 솜사탕 먹으면 이 썩어.”

“음, 하나 정도는 괜찮지 않아?”

“어··· 음··· 그으래? 그럼 오빠, 우리 나눠 먹자!”

“좋아. 솜사탕 사러 가자.”

“히히, 응.”

손을 잡고 폴폴 뛰어다니는 유찬과 동생들을 보며 멤버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와, 기유찬이 동생 다루는 거 봐라.”

“나는 동생이랑 완전 웬수 그 자체인데···.”

“아니 근데 유주 너무 귀여운 거 아니에여? 둘 다 울 회사에서 연습생 시켜도 되겠어여.”

“그러게. 목소리도 되게 예쁘다.”

“제일 놀라운 게 뭔지 알아?”

“아하하핫, 뭔데~”

“기유찬이 말을 안 더듬어··· 동생이랑 얘기할 땐 청산유수 그 자체라고!”

“놀랄 것 없다. 유찬이도 동생들에겐 의젓한 형이고 다정한 오빠임이야.”

“나 너무 당황스럽다. 어째 나도 유찬이 동생 하고 싶어지는데?”

“후후, 사실 정신연령만으로 따진다면 태웅이 네가 유찬이의 동생이라고 해도···.”

“이제 아주 틈만 나면 디스를 하는구만? 일루 와 이 자식아.”

“아이고오, 부모님. 저 좀 살려 주십시오.”

그 자리엔 군자를 비롯한 멤버들의 부모님도 모두 있었다. 장난기 넘치는 소년들의 모습을 보며, 군자의 부모님은 안심이라는 듯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하하, 군자가 친구들이랑 친하게 잘 지내는구나.”

“부모님, 부모님. 왜 보고만 계십니까. 저 좀 살려 주십시요, 아이고오.”

태웅이 헤드락을 시전하는 것을 보면서도 군자의 부모, 상헌과 연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3년 전만 해도 방구석에서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던 군자였다. 그런 군자가 학폭 피해자임을 알았을 땐 가슴이 찢어질 만큼 고통스럽고 지나간 시간이 후회됐다.

“···너무 보기 좋네.”

“그러니까요. 진짜 좋은 친구들을 만난 것 같아요.”

그런 군자가 친구들과 격 없이 노는 모습을 보니,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있었던 마음의 빚도 모두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헤드락에 걸려 한참을 고통받던 군자는, 이내 뿌루퉁한 얼굴로 부모님께 다가가 툴툴거렸다.

“···너무하십니다···.”

“하하, 뭐가 너무해.”

“아들을 구해 주시지도 않고오···.”

“우리 군자는 머리가 헝클어져도 잘생겼네.”

“됐습니다, 저도 토라질 겁니다.”

군자는 볼멘 소리를 했지만, 언제나 어른스러운 군자였기에 그런 아이 같은 모습조차 부모의 눈에는 사랑스러웠다.

“그래, 이제 좀 애 같고 좋네.”

“예에? 제가 애 같다는 말씀이신지요?”

“응, 지금 꼭 애기 같은데?”

“아니, 어머니! 제가 얼마나 어른스럽다는 평판을 받는지 모르시는···.”

“푸하핫, 그래 그래. 오구오구, 우리 군자 으른 맞지.”

“우아아, 억울합니다!”

그렇게, 웃음 넘치는 일주일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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