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은 선비님-245화 (245/303)

#245

지극한 효심을 담아

LA에서의 일주일은 순식간에 흘렀다.

모처럼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사실 난감한 부분이 꽤나 많았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7IN 멤버들을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꺄아아아악—.”

“여기 좀 봐 주세요—!!”

“사랑해—!!”

LA의 한국 교민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꽤나 정확한 한국어 발음을 구사하며 멤버들의 뒤를 따랐다. 그 중에선 언젠가 7IN을 만날 순간을 위해 한국어를 연습해 온 이들도 있었다.

“기다렸어, 기다렸어요. 나, 몹시 기다렸다, 지금 이 순간!”

“Thank you. It’s honor to hear you say so.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영광이에요.)”

“나의 심장이 아파. 군자의 얼굴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Really? I didn’t wear makeup today.(정말요? 오늘 화장 안 했는데···.)”

“화장을 입지 않아도 빛이 난다! 너의 그대로를 사랑합니다!”

때로는 해외 팬이 한국어를, 7IN 멤버들이 영어를 사용하는 이질적인 풍경이 연출됐다.

어디서든 팬들을 만나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그러나 모처럼만의 가족 여행이었기에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렇게 어딜 가든 팬들이 몰려든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가 없을 텐데. 결국 남은 시간은 모두 호텔 방에서 보내야 하는 걸까.

그러나, 군자와 멤버들의 걱정은 괜한 것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팬들의 파도가 어느새 잠잠해졌다. 멤버들을 중심으로 몰려들던 팬들은 어느새 다가오는 것을 멈추고 먼 발치에서 스마트폰을 만질 뿐이었다.

“···으음?”

“오잉, 이제 더 안 오시나 봐요.”

“보안 요원 분이 제지해 주신 건가···.”

그러나 팬들의 움직임은 철저히 의도된 것이었다.

예의와 도리를 중시하는 7IN인 만큼 팬들 역시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제이라이브, 각종 인터뷰 컨텐츠 등에서 꾸준히 ‘예의와 도리를 아는 자가 이상형이다’라고 말해온 바, 팬들 역시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군자와 7IN 멤버들은 가족과 함께 여행 중이다.

이 행복한 시간을 방해해선 안된다. 그것이 팬으로서의 예의와 도리 아닌가.

7IN을 아는 모든 팬이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보안요원이 통제력을 잃은 상황에서도 팬들은 스스로를 통제하며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였다.

“Back off—.”

“물러서요, 뒤로 물러서요. 가족 여행 중이잖아요.”

“가족들과의 시간을 지켜 줘요. 멤버들에게도 가족과 함께 행복한 추억을 만들 권리가 있어요.”

LA 거주 교민, 미국 국적의 현지인,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한 뜻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군자와 멤버들은 감동받았다는 듯 입술을 꾹 다물었다.

“현재야,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 아니더냐.”

“그러게여. 넘 비현실적이야···.”

“아하하, 우리 팬들이 제일 예쁘고 제일 착하네~”

“···귀엽다.”

“혁이 형, 암튼 귀여운 거 엄청 좋아한다니까.”

“후우, 이러니까 오히려 더 가서 말이라도 한 마디 하고 싶네. 안 그러냐?”

“내 말이. 가서 잠깐 인사라도 드릴까?”

“그래, 그러자꾸나.”

얌전하게 줄을 선 팬들을 향해, 이번엔 멤버들이 먼저 다가갔다. 거의 기절 직전의 고양감 속에서도, 예의와 도리를 지키기 위해 자못 태연한 척을 하는 팬들의 모습이 멤버들의 눈에 들어왔다.

“참으로 귀엽지 아니한가.”

그 모습이 군자에게도 참 아름다워 보였다.

예(禮)야말로 군자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 팬들이 이 가치를 함께 소중히 여겨 준다면, 군자에게는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터였다.

내 선비로서 품위를 지켜야 하나,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도 표현을 참기는 쉽지 않구나.

“여러분들, 참으로 귀엽소이다.”

“꺄아아아악—.”

군자의 입에서 ‘귀엽다’는 소리를 듣자 팬들도 참지 못하겠다는 듯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게 잠시간의 인스턴트 팬 미팅 시간을 보낸 뒤, 멤버들과 그 가족들은 인적이 드문 해안으로 장소를 옮겼다.

푸르고 푸른 것이 맞닿아 있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군자는 깊은 감상에 빠졌다.

돌이켜 보니 오직 부모님만을 위해 노래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구나.

3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때때로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재잘재잘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것 같기도 했으나, 그것은 부모님을 위한 노래라기보다 그저 군자 스스로 흥에 취해 부른 노래였을 것이다.

이제는 친부모님만큼이나 소중해진 현대의 부모님이지만, 그 분들을 위해서 노래를 부른 적은 없었다. 매일 문안 인사를 드리고 영상전화로 얼굴을 보였다지만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부모님과의 직접 교류를 게을리 했다.

충효가 입버릇인 자칭 선비가, 부모를 위해 노래 한 가락 해 본 적이 없다니. 이 어찌 불효막심한 패륜적 처사란 말인가.

먹먹한 표정으로 수평선을 바라보던 군자에게 부모님이 말을 걸어 왔다. 군자와는 달리, 부모님은 수심 하나 없이 행복한 얼굴이었다.

“군자, 왜 이렇게 표정이 심각해?”

“···제가 참으로 불효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음? 무슨 소리야.”

그러나 부모님은 군자와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이젠 군자가 그저 건강하게 자라 주기만 해도 행복할 부모님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군자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부모님에게는 효도나 다름없었다.

“네가 어떻게 불효자일 수 있니. 나 진짜 이해가 안 가네.”

“···.”

“이렇게 멋지게 자라 줬고, 이렇게 부모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 줬는데!”

“···.”

“우리는 이미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해, 군자야.”

“···.”

“이젠 너가 바라는 일을 해. 우리는 이미 너어어어무 행복하니까. 알겠지?”

부모님의 따뜻한 말에 눈물이 날 것 같은 군자였다. 소금기 섞인 바람에 눈이 아프다는 듯, 군자는 괜히 손등으로 눈 언저리를 비벼 댔다.

“뭐야, 군자 울어!?”

“···아, 아닙니다···.”

“흐흐, 조선시대였으면 자식이 둘은 있었을 나이 아냐?”

“어? 어머니가 그것을 어떻게 아시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군자는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닦았다.

내 이번엔 반드시 부모님을 위해 노래를 부르리라. 오늘은 내가 눈물을 흘렸지만, 공연 날은 부모님의 눈에서 감동의 눈물이 흐르게 하리라.

“그래서, 군자 네가 하고 싶은 건 뭔데?”

때마침 훅 들어온 질문에, 군자는 전후 문장을 자르고 결론만 말해 버리고 말았다.

“훌쩍, 부모님, 부모님을 울리고 말 겁니다.”

“···어?”

“아니, 그러니까 그것이···.”

“우리를 울린다고? 우와, 군자야! 너 불효자가 꿈이었던 거야!?”

“어어, 그런 것이 아니오라—!!”

“대체 우리를 어떻게 울린다는 거야~ 군자, 실망인데?”

“—!!”

* * *

일주일 후, LA 로파이 스타디움엔 수만의 관객이 운집했다. 모두 7IN과 릴 핌프, 그리고 ‘효도사이드 스쿼드’의 공연을 보러 모인 이들이었다.

얼핏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았지만, ‘효도’라는 슬로건 아래 모인 이들의 트랙 리스트엔 꽤나 일관성이 있었다.

먼저 무대를 장식한 것은 릴 핌프와 ‘효도사이드 스쿼드’의 공연이었다. 힙하고 중독성 있는 힙합 비트 위에 효심으로 가득찬 가사는 아이러니하면서도 묘한 청각적 쾌감을 선사했다.

우리는 패륜킬러, 우리는 패륜킬러.

처먹은 그릇 안 담궈 놓는 새끼들,

양말을 뒤집어 벗어 놓는 새끼들,

다 조지러 왔지, 다 조지러 왔지—!!

와아아—.

와아아아아아아—.

우리는 패륜킬러, 우리는 패륜킬러.

부모님 계좌번호도 모르는 새끼들,

가족 단톡방 대화 읽씹하는 새끼들,

다 조지러 왔지, 다 조지러 왔지—!!

효심을 가득 담은 공격적인 훅은 금세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오로지 7IN만을 보러 공연장을 찾은 팬들도 ‘효도사이드 스쿼드’의 공연에 신이 난다는 듯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어깨를 흔들었다.

백스테이지에서 이들의 공연을 지켜보던 7IN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공연은 잘 하는구만.”

“가사가 좀 충격적이긴 한데.”

“난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 현지에서도 이런 컨셉이 먹힌다니···.”

“그러게 말이다. 부모님 사랑하는 마음이야 전 세계 공통이라 그런 거 아닐까?”

현수의 말에 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문화가 다르다 해도, 부모님을 생각하는 지극한 마음이 다를 리 없다. 효심이야말로 전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훌륭한 주제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허나 서양의 친구들이 이토록 갸륵한 효심을 보이니, 군자 역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승부욕이 솟구쳐 올랐다.

“···우리가 더···.”

“그래, 군자야. 우리가 더 공연 잘 해야지.”

“우리가 더 큰 효심을 보여야 하나니.”

“···아니 뭐야, 그 얘기였어?”

태웅의 말에 군자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효심으로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군자였다.

효도사이드 스쿼드와 릴 핌프의 공연은 순식간에 마무리됐다. 두 팀의 공연이 끝나고, 이제는 7IN 멤버들이 무대에 오를 차례였다.

큰 심호흡과 함께 마지막 장비 체크가 시작됐다. 이제 공연엔 꽤나 익숙한 멤버들이었지만, 모든 가족들이 왔다는 생각 때문인지 표정엔 약간의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

“후우, 지난 콘서트에도 부모님이 오시긴 했는데··· 공연 주제가 효도라 그런가, 뭔가 더 떨리는 느낌이에여.”

“괜히 긴장해서 실수하지 말자. 벌써 수백 번도 더 한 노래들이잖아.”

“자, 오랜만에 모여서 파이팅 하자.”

가장 덩치가 큰 인혁의 주변으로 모인 멤버들은 서로를 단단히 감싸안았다. 옆 멤버의 어깨와 등짝을 팡팡 두들겨 주며 서로를 격려해 준 뒤, 마침내 모든 멤버들이 무대 위에 올랐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가족들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수만의 관객이 내지르는 환호성이 귀를 먹먹하게 했지만, 군자의 귀에는 이상하게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미지의 타국에서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도 각별했으나, 이 시간이야말로 이 효도 여행의 정수 아닐까.

아육시에서부터 두 번의 큰 경연, 정규 1집에 이르기까지.

7IN의 핵심 트랙이 공연장을 점점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힙합으로 편곡된 넘버에 릴 핌프, 그리고’효도사이드 스쿼드’ 멤버들이 함께 올라와 더블링을 더하니 무대는 훨씬 더 풍성해졌다.

멤버들의 가족은 가장 즐겁고 행복한 표정으로 공연을 즐기는 중이었다.

이제 오십이 다 된 부모님이었으나, 지친 기색도 없이 응원봉을 들고 폴짝폴짝 뛰며 자녀들의 이름을 연신 부르셨다.

그런 소중한 가족을 위해, 7IN과 스칼렛 홀이 준비한 신곡의 전주가 로파이 스타디움에 잔잔히 깔리기 시작했다.

국악 현악기의 부드러운 선율과 함께 시작하는 서정적이면서 온화한 느낌의 장조 발라드. 지금까지 무대 위를 펄펄 날아다니던 멤버들은, 어느새 동양풍의 하얀 셔츠를 갖춰 입고 의자에 앉아 핸드마이크를 쥐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군자가 쓴, 군자 최초의 단독 작사 트랙.

곡의 시작은 언제나 유찬, 혹은 현재의 차지였으나 이번에는 군자가 먼저 입을 열며 첫 가사를 내뱉었다.

마음이 캄캄할 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답답할 때—.

다섯 걸음만 걸어가도 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그의 소중한 부모님을 바라보며.

퉁명스럽고 모질게 굴었던 나를,

가만히 기다려 주셨죠.

비록 친부모님은 아니나, 세상에서 가장 지극한 효심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를 꼭꼭 눌러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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